23화
* * *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주열호를 박살 내며 학교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혼자다.
가끔 한아성이 눈인사를 보냈을 뿐 누구도 성현의 옆에 오지 않았다.
‘뭐…….’
차라리 그게 편했다.
성현의 신체 나이는 비록 열아홉 살이지만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중년의 아저씨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과의 대화는 귀찮았고 조용히 생각할 것도 있었다.
성현의 계획은 지연우를 박살 내는 것.
물론 지금 성현의 힘으로 지연우와 함께 있는 전투 요원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연우에게 협조했던 조력자를 찾아 막을 수는 있다.
그들이 없으면 지연우의 힘은 미래에 비해 반으로 떨어질 거다.
문제는…….
‘놈들을 어디서 찾지?’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성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가…….
‘서은서?’
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유성현입니다.”
-서은서예요. 잠깐 보고 싶은데, 시간 괜찮나요?
“괜찮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부르르릉!’ 하고 요란한 엔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교문 바로 앞으로 붉은색 오픈카가 멈춰 섰다.
4억이 훌쩍 넘는 초고가의 슈퍼카.
학교를 빠져나가던 학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자동차로 향했다.
차에는 선글라스를 낀 여자, 페이트 길드의 서은서가 앉아 있었다.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성현을 향했다.
동시에 그녀를 보던 학생들의 입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와…….” 하고 탄성이 흘렀다.
그녀는 아름답다.
성격이 냉혹한 것을 넘어서 소시오패스라고 알려졌지만 외모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섹시함과 청순함이 공존한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당연히 학생들은 난리가 났다.
“누구야? 영화배우도 앞에 두면 오징어 되겠네.”
“존재가 커스터마이징한 거 아니야?”
“커스터마이징도 본판이 예뻐야 저렇게 되는 거지. 아니면 존재가 금손이거나.”
“그런데 누구를 데리러 온 거지?”
학생들은 그녀가 데리러 온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성현이었다.
그녀가 성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타세요. 집까지 데려다줄게요.”
학생들의 눈이 커졌다.
“쟤 누구야?”
“쟤 몰라? 유성현이잖아. 오늘 주열호 박살 낸 애.”
“대박.”
학생들이 놀라고 있을 때, 성현은 차에 올랐고 서은서가 선글라스를 쓰며 입을 열었다.
“그럼 출발할게요.”
그녀가 액셀을 밟자 자동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학생들은 자동차가 점으로 보일 때까지 머물러 있었다.
도착한 곳은 가까운 커피숍이었다.
서은서가 테이블에 커피를 내려 두자 성현이 물었다.
“찾아온 이유가 뭐죠?”
쓸데없는 인사말 대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뜻이다.
서은서는 낮게 한숨을 내뱉은 뒤 입을 열었다.
“도움을 좀 받고 싶어서요.”
“도움?”
“저와 손잡은 정보 상인이 있어요.”
“정보 상인? 지하 세계의 일인가요?”
“맞아요. 지하 세계의 일이죠.”
페이트는 독으로 유명한 길드다.
그리고 독이라는 특성상 지하 세계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깡패, 양아치, 암살 집단 등등.
그중에 서은서가 키운 단체가 있다.
바로 샤를이라는 이름의 클럽이다.
겉으로 볼 때는 평범한 클럽이지만 사실은 정보를 모으는 조직.
“그런데 샤를의 옆에 다른 클럽이 오픈했어요.”
일반적인 이야기였다.
놈들은 세력 확장을 위해 시비를 걸었고 샤를은 피해를 입었다.
문제는…….
“평범한 깡패들이었다면 제가 해결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그 뒤에 서준식 본부장이 있었어요.”
서준식은 그녀의 오빠, 페이트 길드의 차기 마스터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일개 팀장이 본부장과 싸울 수는 없잖아요.”
그녀는 성현이 자신의 신분을 모른다고 생각했고 여전히 비밀로 하는 중이다.
물론 성현은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었지만 꼬치꼬치 따지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샤를의 뒤에 제가 있다는 것을 본부장은 몰라요. 그리고 클럽의 세력 싸움에 본부장이 직접 나설 수 없다는 거죠.”
페이트 길드는 국내 5대 길드 중 하나다.
그곳의 자식들이 대놓고 클럽을 운영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즉, 서로의 장기짝을 두고 싸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슨 도움을 원하는 거죠?”
“다음 주에 그쪽 클럽과 서로의 영업권에 대한 협상이 계획되어 있어요. 그런데 놈들이 해결사를 데리고 온다는 첩보를 들었죠.”
해결사를 데리고 오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날 모여 있는 샤를의 임직원을 단번에 쓸어버리겠다는 의도.
그런데 서은서는 그 계획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는다.
“전 해결사를 역이용하려고 해요. 놈들을 막아 낸 후 계속해서 협상을 이어 가면 우리가 우위에 설 수 있으니까요.”
“…….”
“해결사가 성현 씨보다 강하지는 않을 거예요. 협상장에 계약자는 들어갈 수 없으니까요. 정확히 말하면 연맹에 등록된 계약자는 들어갈 수 없죠. 즉, 그들은 평범한 사람. 하지만 성현 씨는 등록되지 않은 계약자.”
서은서가 성현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말을 이었다.
“놈들이 방심할 수 있도록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 그러면서 놈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도와주세요.”
“대가는?”
“원하는 게 있나요?”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는 25평 아파트. 그리고…….”
성현은 수첩을 꺼내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수첩을 서은서에게 건넸다.
“이 사람들의 주소를 찾아 주세요.”
서은서는 수첩을 조용히 바라봤다.
권순용 : 한국 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박준만 : 국가 생명공학 연구소 재직 경력.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이름과 대략적인 정보가 적혀 있다.
“이 사람들은 왜……?”
지연우에게 협조했던 사람들의 이름과 대략적인 정보였다.
서은서를 통해 그들의 주소를 알아내고…….
‘죽인다.’
성현은 대답하지 않았고 서은서도 더 묻지 않았다.
성현이 미래 예지를 통해 무엇인가 또 봤다고 생각해서다.
“알았어요. 찾아볼게요. 그리고 할 말이 또 하나 있는데요.”
“어떤?”
“혹시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되나요? 성현 씨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 토요일은 절대 시간을 뺄 수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날이다.
잠시 후, 성현의 집 앞.
성현은 떠났지만 서은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령.”
그 말과 동시에 그녀의 뒤에서 스르륵 복면인이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그녀가 복면인에게 수첩을 건넸다.
“찾아봐.”
“네.”
복면인은 허리를 굽힌 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서은서의 시선은 계속해서 성현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그녀의 눈빛이 차갑다.
* * *
“안 가시면 안 돼요?”
주말이었다.
어머니는 요양 병원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가 편찮으신 것은 아니고 봉사활동에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성현을 빤히 바라봤다.
“왜?”
어머니는 모르지만 오늘 그 요양 병원 근처에서 짐승이 나타날 거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그 안에는 어머니도 계셨다.
성현은 그 미래를 바꿀 생각이다.
성현이 뮤지컬 티켓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선물로 받았는데, 정말 재밌는 거래요. 친구분이랑 같이 가세요.”
“뮤지컬?”
“봉사 활동은 제가 대신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은 문화생활 하세요.”
“……그럴까?”
지이이잉.
어머니가 티켓을 손에 잡았을 때 어머니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어머니가 전화를 귀에 댔고…….
“알았어. 지금 갈게.”
전화를 끊은 어머니가 미안한 표정으로 성현을 향했다.
“성현아, 미안해서 어쩌지?”
“네?”
“요양 병원에 엄마랑 친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대. 뮤지컬은 볼 수 없을 것 같은데.”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요양 병원에 가는 것을 뮤지컬 티켓으로 막으려 했지만 역시 실패였다.
이제 방법은 하나…….
‘내가 막아야지.’
어머니는 먼저 요양 병원으로 떠났고 성현은 아직 집에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성현이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뉴스를 검색하는데 눈에 띄는 기사가 보인다.
당정청, ‘계약자 등록제’ 발의
지금도 계약자들은 계약 후 한 달 이내에 연맹에 등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법은 계약자의 몸에 내장 칩을 의무화해서 효과적으로 감시하겠다는 것.
명분은 계약자가 보통의 인간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가졌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었다.
성현은 기사를 확인했다.
쭉 읽어 내려가는데 반가운 이름이 보인다.
계약자 연맹의 미래전략 기획단 지연우 단장은 이번 ‘계약자 등록제’에 대해 인권을 무시한 처사라며…….
성현은 픽 웃으며 휴대폰을 덮었다.
정부가 말하는 명분과 연맹이 말하는 인권…….
다 개소리, 밥그릇 싸움이다.
지금까지 계약자는 연맹이 관리했다.
그런데 칩 이식을 통해 정부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거다.
당연히 연맹은 그걸 반대하는 거고.
성현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이거였나?’
지연우는 법안을 뒤집기 위해 대중의 인기를 원했고 극적인 승리가 필요했다.
그때 마침 요양 병원에 짐승이 나타난 거다.
‘지연우의 힘을 생각하면 그 정도 짐승은 손쉽게 잡을 수 있어.’
하지만 지연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픈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이 악물고 싸우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 하찮은 권력 싸움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다.
성현은 한숨을 내뱉었다.
‘다른 방법도 많았잖아.’
정부의 법 발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계약자 연맹이 야당의 손을 잡아도 되고 그 외에 벌어질 문제를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됐을 거다.
그런데 지연우는 가장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을 한 거다.
성현은 가방을 손에 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이제 세상은 지연우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을 거다.
* * *
모자를 푹 눌러쓴 성현은 요양 병원 앞에 도착했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발을 툭툭 굴렸다.
‘짐승이 나타나는 곳은 여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사건이다.
길에 나타난 짐승이 왜 요양 병원으로 돌진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이 사건의 영상을 수없이 돌려 봤다.
그래서 눈을 감고도 그려 낼 수 있다.
이번에 나타나는 짐승은 레미콘만 한 전갈.
나타나자마자 버스를 내리 찍으며 고철로 만들었다.
‘경찰이 도착한 것은 3분 17초 후.’
경찰 14명이 모여서 총을 쐈지만 전갈의 껍데기를 뚫기는 무리였다.
오히려 놈의 집게에 몸이 잘려 죽고 말았다.
‘경찰 6명 사망. 지연우가 나타난 것은 경찰이 등장하고 12분 후.’
성현의 머릿속에 전갈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담겼다.
꼬리로 아스팔트를 뚫어 버릴 정도의 파괴력.
하지만 그 순간 전갈의 행동은 0.5초 정도 멈출 거다.
‘그때가 기회야.’
성현은 품에 손을 넣었다.
천도리 던전에서 얻은 승려의 단도가 만져졌다.
지금 성현의 힘으로는 전갈에게 대미지를 먹일 수 없다.
하지만 승려의 단도를 사용하면 낮은 확률로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할 수 있다.
‘좋아.’
성현은 길가에 서서 전갈과의 싸움을 예상했다.
그리고…….
‘여기서 실패하면 다음은…….’
다음은 요양 병원이다.
과거를 기억하면 전갈이 요양 병원으로 향한 것은 지연우가 그곳으로 도망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 전에 상황을 종료할 생각이지만 모든 계획이 완벽할 수는 없다.
‘요양 병원의 내부도 확인해야 해.’
성현은 횡단보도를 건너 병원으로 향했다.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병원의 구조를 눈에 담는 것이었다.
계단이 어디에 있고 병실은 어디에 있는지…….
싸움에 우선되어야 할 것은 지형지물을 익히는 거니까.
그런데 성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최악의 상황이야.’
치매 환자가 대다수고 그중에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70%…….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단 2대.
짐승이 병원에 들어왔을 때 환자를 이동시킬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는 싸울 수 없어.’
생각에 빠졌던 성현은 기둥 뒤로 몸을 감췄다.
어머니가 친구분들과 함께 지나가고 있어서다.
‘어머니…….’
잠시 어머니를 바라보던 성현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반드시 살린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다.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비가 투투툭 쏟아졌다.
이것은 높은 등급의 짐승이 나타나는 징조...
그리고 성현은 알고 있었다.
나타나는 전갈은 에우제서스보다 몇 수는 강한 짐승이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현에게 두려운 눈빛은 없다.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체크하던 성현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 나타날 시간이 되었다.
성현은 승려의 단도를 손에 쥐며 긴장된 한숨을 내뱉었다.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