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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24화 (24/252)

24화

일렁거리는 허공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고 하수구에서는 바퀴벌레가 쏟아져 나왔다.

도로를 메울 정도로 많은 바퀴벌레에 사람들이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검은 연기와 바퀴벌레들이 꾸물꾸물 모이며 형체를 만들어 갔다.

그 형체는 검은색의 거대한 전갈…….

-카아아아악!

전갈이 포효했고 곧 짐승의 출몰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짐승, 짐승이 나타났다!”

“도망쳐, 어서!”

쏟아지는 빗줄기와 사람들의 비명 그리고 사이렌,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침착한 것은 오직 성현뿐.

성현은 마스크를 쓰며 지겨울 정도로 봤던 전갈의 행동을 떠올렸다.

‘놈이 처음 한 일은 버스를 짓뭉갠 거야.’

도로에 세워진 버스…….

전갈은 조금 있으면 버스를 박살 낼 거다.

다행인 것은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도망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갈은 성현의 예상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덩치에 맞지 않게 엄청난 속도로 버스를 향해 달려갔고 집게를 확 들어 올렸다.

꽈아아앙!

버스는 그대로 우그러졌다.

이어서 놈의 꼬리가 꿈틀대더니 버스를 찍어 버렸다.

콰지지직!

꼬리는 버스를 뚫고 아스팔트까지 박살 냈다.

경악할 위력이었다.

아직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패닉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성현은 달랐다.

‘지금이야.’

전갈은 꼬리 공격 이후 0.5초 정도 행동을 멈춘다.

성현은 이 순간을 기다렸고 곧바로 전갈의 등에 올라탔다.

‘팔찌 사용.’

10분간 모든 스텟을 +5 할 수 있는 문지기의 팔찌가 사용됐다.

온몸에 힘이 솟는다.

‘다음은…….’

성현은 승려의 단검을 쥔 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승려의 단검은 낮은 확률로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아이템이다.

낮은 확률이라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성공만 하면 단번에 싸움을 끝낼 수 있다.

‘제발!’

성현은 승려의 단검을 내리찍었다.

하지만…… 퍽!

이번에는 그 권능이 나타나지 않았다.

즉, 공격은 실패였다.

‘젠장.’

성현이 미간을 찌푸리는 순간 전갈의 꼬리가 ‘후우우웅!’ 하고 바람을 가르며 휘둘렸다.

뻐어억!

팔을 들어 막았지만 뼈가 부서지는 통증을 느끼며 아스팔트에 처박혔다.

몇 바퀴를 구른 후 다급히 일어났는데 전갈은 어느새 코앞에 서 있었다.

놈의 꼬리에 검은 기운이 일렁인다.

‘독?’

반드시 피해야 했다.

스치기만 해도 몸이 녹아 버릴 거다.

* * *

코너에 숨어 성현을 지켜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얼마 전 성현에게 당한 주열호였다.

성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품에 손을 넣었다.

서늘한 쇳덩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것은 총이었다.

주열호가 히죽 웃었다.

몰락한 왕의 미래는 뻔하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까지 학교에서 최강자였던 그의 인생은 성현을 만나며 비참하게 변했다.

‘죽여 버릴 거야.’

주열호의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함께 담배를 피웠고 술을 마셨으며 쉬는 시간만 되면 몰려와 낄낄거렸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열호가 뭘 하든 좋다고 쫓아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친구들은 외면했고 여자애들은 그를 벌레 취급했다.

그렇게 주열호는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의 머릿속에는 성현이 했던 말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스킬을 쓸 줄 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별거 아니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겼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별거 아니네?

성현을 죽여야 그 목소리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됐다.

성현이 없어야 다시 강자로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암시장을 통해 총을 구했고 며칠 동안 성현의 뒤를 쫓았다.

완벽 범죄의 찬스를 얻기 위해서다.

그리고 지금 그 찬스가 왔다.

‘사이렌이 다시 울릴 때, 총을 쏠 거야. 그럼 저 새끼는 짐승의 밥이 되겠지. 증거는 없어질 테고……. 좋아, 완벽해.’

주열호의 일그러진 눈동자가 성현을 향했다.

그리고…….

필기 소리가 사각사각 들리는 독서실.

그곳엔 한아성이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한참 수학 문제를 풀던 그녀의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문장이 나타났다.

존재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시립 요양 병원으로 가라.

한아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식으로 연락이 온 것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요양 병원으로 가라고?’

그때 그녀의 휴대폰도 진동했다.

이번엔 국가에서 온 긴급 메시지.

-시립 요양 병원 앞에 고위험 등급의 짐승 출현. 절대 외출 금지.

한아성의 눈이 반짝였다.

‘아…….’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요양 병원은 그녀가 다니는 독서실에서 멀지 않은 곳…….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데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조용히 물었다.

“왜? 어디 가?”

“아, 화장실.”

“같이 갈래?”

“아니야, 괜찮아.”

한아성은 친구에게 말한 후 독서실을 빠져나갔다.

쏴아아아아.

거센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아성은 우산을 펼치고 요양 병원을 향해 걸었다.

그 와중에도 존재에게서 메시지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라.

-다음 골목에서 왼쪽.

이상했다.

알고 있는 길을 왜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려 주는지.

하지만 한아성은 묻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며 계속 걸었다.

그런데 요양 병원 가까이 와서는…….

-철물점이 있는 건물 사이로 들어가라.

‘여기서요?’

요양 병원으로 가려면 조금 더 가야 한다.

이곳으로 가면 빙 돌아가는 거다.

그녀가 의문을 가졌을 때, 곧바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가라. 내 오늘 네가 가진 이해도보다 더 큰 힘을 선물할 것이다.

‘내가 가진 권능 이해도보다 큰 힘?’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강해지고 싶어 한다.

그래야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살릴 수 있다.

‘알았어요.’

그녀는 존재가 가르쳐 주는 곳을 향해 걸었다.

철물점 사이, 빌딩과 빌딩의 어두운 골목으로…….

그리고 그녀는 골목의 끝에 숨은 덩치 큰 남자를 봤다.

‘쟤는?’

바로 주열호였다.

놈이 총을 들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죽여 버릴 거야. 그럼 내가 최고야. 내가 최고라고…….”

그 순간 한아성에게는 존재의 메시지가 또 도착했다.

-저놈이 죽이려 하는 사람은 유성현이다.

-놈은 유성현을 죽이려고 한다.

-그런데 유성현은 지금 짐승과 싸우는 중이다.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겠지.

-저놈의 기습은 성공할 거다.

한아성의 눈이 커졌다.

‘성현이를 죽인다고요?’

-그래.

-죽이겠지.

-성공할 거다.

-넌 다시는 유성현의 냄새를 맡지 못할 거다.

단정적인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도착할 때마다 한아성의 눈빛은 점차 서늘하게 변하고 있었다.

존재는 그걸 원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며 한아성을 자극했다.

-딸아…… 저놈을 죽여라. 먹어라. 너의 양분으로 삼아라. 내 너에게 그럴 힘을 주겠다. 너에겐 그럴 힘이 존재한다.

한아성의 손이 점점 커졌다.

손가락 하나가 다리보다 더 길어진다.

급기야 손바닥에는 입이 생겨났고 몸에선 폭력적인 기운이 살벌하게 흘렀다.

살기를 느낀 주열호가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한아성을 발견했다.

주열호는 겉모습만 신경 썼고 작고 약해 보이는 한아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놈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넌 뭐야!”

그 순간 그녀의 거대해진 손이 주열호를 향해 뻗어졌다.

그 손은 주열호보다 훨씬 거대했다.

주열호의 주변이 어두워지며 그녀의 손바닥에 나타난 입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카아아악!

갑작스러운 공격에 주열호는 다급히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늦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그의 몸을 파고들었고 그녀의 손바닥은 보자기처럼 주열호를 덮어 버렸다.

꽈드드드득.

주르륵!

성현의 코에서 코피가 흘렀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다.

찢기고 터지고…….

하지만 통증을 느끼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성현은 피를 훔친 후 시선을 들었다.

전갈이 집게를 딱딱거리며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미치겠네.’

성현과 달리 전갈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당당함을 보면 성현을 먹잇감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성현은 한숨을 내뱉은 후 단검을 쥔 손에 힘을 꽉 줬다.

‘애초에 한 번에 성공할 거란 생각은 없었잖아. 될 때까지 공격해야지.’

승려의 단검이 권능을 발현할 때까지 계속 공격을 이어 갈 생각이다.

그게 수천 번, 수만 번이 될지라도…….

그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전갈의 집게가 성현을 향해 날아왔다.

부아아악!

성현은 몸을 구르며 전갈의 공격을 피했다.

전갈의 집게가 아스팔트를 뚫고 들어갔고 이어서 꼬리가 날아왔다.

성현은 몸을 일으켜 전갈의 꼬리를 밟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전갈의 등을 향해 승려의 단검을 쑤셔 박았다.

그런데…….

-승려의 단검이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합니다.

‘됐어!’

낮은 확률의 권능이 발현됐고 ‘푸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단검이 꽂혔다.

‘이건 시작이다.’

성현이 단검을 비틀며 껍데기를 부쉈다.

이어서 틈이 생긴 곳으로 손을 쑤셔 넣었다.

파지지직!

전갈의 몸이 전기에 휩싸였다.

-키에에에엑!

귀를 찢을 것 같은 비명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세상을 채웠다.

“한 번 더.”

성현의 손에 다시 전기가 만들어졌다.

그 순간, 전갈의 몸이 다시 바퀴벌레와 검은 연기로 분해되었고 도로를 채운 바퀴벌레가 한쪽으로 도망쳤다.

성현의 눈이 반짝였다.

‘좋아.’

지금의 공격으로 전갈은 평생 몰랐던 고통과 두려움을 느꼈다.

그걸 피해 바퀴벌레와 연기로 분해되어 도망치는 거다.

‘이제 끝이야.’

그동안 수없이 봤던 영상에서도 지금과 똑같았다.

지연우에게 당한 전갈은 바퀴벌레와 전갈이 되기를 반복하다가 죽고 말았다.

성현의 시선이 도망치는 바퀴벌레에게 향했다.

“도망쳐 봤자 소용없다.”

성현의 손에서 지름 20cm의 라이트닝 볼이 둥실 떠올랐다.

‘가라.’

라이트닝 볼이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쉬이이익!

이어서 바퀴벌레가 있는 곳에 처박혔고 전기는 빗물을 타고 더 광범위하게 퍼졌다.

파지지지직!

수천 마리의 바퀴벌레들이 죽어 갔다.

이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놈들은 다시 하나로 뭉쳤다.

연기와 바퀴벌레가 모이며 전갈의 형체가 되어 갔다.

하지만 이미 겁을 먹은 짐승이다.

게다가 단검에 당한 상처 역시 아물지 않았다.

성현은 그 상처에 또 한 번 전기를 쑤셔 넣기로 마음먹었다.

성현이 자세를 낮추자 허벅지에 힘이 콱콱 들어갔고 심줄이 솟았다.

그런데…….

‘뭐지?’

성현은 거대한 힘을 느끼고 시선을 틀었다.

허공이 일렁이고 있다.

그 허공이 확 찢어지더니 검은 암흑 속에서 짐승이 뱉어졌다.

나타난 것은 천도리 던전에서 봤던 난쟁이, 그것도 약 200마리.

난쟁이들의 흰털이 비에 젖으며 더럽게 변했다.

그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성현을 노려봤다.

-카아아악!

성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사건의 영상을 수 없이 돌려 봤고 초 단위로 외우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난쟁이가 나타난 상황은 없었다.

분명 전갈만 있었다.

‘도대체 뭐야?’

생각을 이어 가던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아니다.

덮어 놓고 싸워야 한다.

순간 난쟁이 몇 마리가 독침을 쏘아 댔다.

파파팍!

몸을 틀어 피했지만 이번엔 전갈의 꼬리가 날아왔다.

완벽하게 피하는 것은 어렵다.

팔 하나 내줄 것을 각오하며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런데…….

꽈아아아앙!

난데없이 날아온 승용차가 전갈의 몸에 맞고 떨어졌다.

성현을 공격하려던 전갈은 행동을 멈췄다.

전갈의 얼굴이 기괴하게 틀어지며 승용차가 날아온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한 남자가 손을 들고 있었다.

“여기.”

살짝 처진 눈꼬리, 누가 봐도 선한 얼굴.

성현은 그를 알고 있었다.

그는 히어로라 불리며 사람들의 인기를 독식하는 계약자다.

가까운 미래에 성인으로 칭송받으며 세상의 지도자가 될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바로 가식적인 새끼…… 지연우였다.

그런데 그를 보던 성현은 이번에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연우가 나타나는 것은 경찰이 나타난 뒤다.

아직 경찰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지연우가 등장하다니…….

‘이건 또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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