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성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연우가 말했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
“어디로 거는 거지?”
“질문은 받지 않는다.”
협박성이 강한 목소리였다.
성현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지연우의 지시를 따른다.
그게 계획이다.
도착한 곳은 호텔 뒤에 있는 옥외 주차장이었다.
지연우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성현의 팔을 콱 움켜잡았다.
그리고 파아아앙, 그대로 뛰어올랐다.
빌딩의 옥상이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통신사의 중계기뿐, 비상구는 잠겨 있고 들어올 사람은 없었다.
지연우는 성현을 집어 던졌다.
콰당탕탕!
그리고 성현이 일어나기도 전에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름.”
“뭐?”
“두 번 묻지 않는다. 이름.”
지연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질적인 살기가 느껴졌다.
살기가 느껴지는 방향은 지연우가 아니라 성현의 뒤였다.
‘다른 사람이 있나?’
그 순간 슥…… 성현의 목에 날카로운 단도가 닿았고 가래 끓는 목소리가 들렸다.
“단장…… 죽여도 되나?”
“……!”
성현은 천천히 고개를 틀었다.
히죽히죽 웃고 있는 미친놈이 보였다.
성현이 알고 있기로 이런 미친놈은 단 한 명이었다.
지연우의 호위 무사, 미치광이 오즈…….
오즈라 불릴 뿐 정확한 이름과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인면피를 사용해 외모를 숨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의 오즈는 주름이 가득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기를 꾹 누르면 바로 죽일 수 있는데……. 단장, 허락해 줘.”
하지만 지연우는 대답하지 않았고 성현은 항복의 표시로 양손을 들었다.
“내 이름? 유성현.”
“나이는?”
“열아홉.”
성현은 순순히 대답했지만 겁을 먹었거나 비굴한 눈빛은 아니었다.
오즈의 협박이 실행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 죽였겠지.’
지연우에게 성현이란 존재는 언제든 죽일 수 있는 벌레와 같았다.
그런데 오즈를 불러냈다는 것은…….
‘내 진심을 알기 위해 미친놈을 옆에 두고 협박하겠다는 거지. 그래, 언제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라. 언젠가 뼈까지 씹어 먹어 줄 테니까.’
하지만 성현은 속마음을 완벽하게 숨긴 채 담담하게 지연우를 바라봤다.
“유성현이라고?”
지연우는 휴대폰을 통해 연맹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리고 성현의 이름이 계약자 연맹에 등록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없다.
다시 확인해 봤지만 마찬가지다.
“……미등록 계약자인가?”
지연우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미등록 계약자는 불법이다.
통제를 벗어난 계약자는 그 엄청난 힘을 이용해 어떤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강력범죄에 대한 통계를 봐도 미등록 계약자가 대부분.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계약자 등록제법 역시 그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즉, 정부의 법을 반대하는 지연우에게 미등록 계약자는 눈엣가시였다.
지연우의 살벌한 눈동자가 성현을 향했다.
“오즈, 죽여.”
오즈가 정말 기쁘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여기를 꾸욱!”
오즈가 힘을 주자 성현의 목에서 핏방울이 솟았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
성현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니, 아직 일주일 정도 남았어.”
지연우가 손을 들어 오즈의 행동을 멈춘 후 물었다.
“일주일이 남았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계약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불법은 아니야.”
성현은 진실을 말했지만 지연우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서늘해졌다.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인가?”
한 달도 되지 않은 초짜가 높은 등급의 짐승을 잡았다.
게다가 스킬을 사용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됐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살벌한 살기가 쏘아졌다.
하지만 성현은 담담했다.
“감정의 돌을 가져오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인데 거짓말을 왜 해?”
감정의 돌은 계약자 등록을 할 때 사용되는 아이템이다.
돌 위에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언제 계약을 했는지, 어떤 계열의 능력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괜한 의심 하지 말고 돌을 가져와. 바로 확인해 줄 테니까.”
성현이 대답하며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손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
‘빙빙 돌리지 말고 궁금한 거나 물어봐라. 네가 궁금한 게 내 계약자 등록일은 아니잖아?’
지연우의 눈동자가 오즈에게 옮겨졌다.
감정의 돌을 가져오라 지시할까 잠시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었다.
성현의 생각대로 지연우가 궁금했던 것은 소환석이었다.
“다음 질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알고 있지?”
지연우가 소환석을 꺼내 보였다.
성현의 입에서 긴장된 한숨이 내뱉어졌다.
‘기다리던 상황이야.’
지연우를 이길 수 있는 무량대수 중의 하나의 확률, 그 첫 단추가 꿰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모든 게 그대로 어긋나 과거로 돌아온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며, 소멸된 이서아만 불쌍해지는 거다.
‘침착하게…….’
지금부터는 성현도 모르는 미래가 펼쳐지는 거다.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물속, 깊이를 모르는 상태에서 발을 내딛는 것처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 능력 중에 하나가 아이템 감정평가야. 권능 이해도가 낮아서 모든 아이템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소환석 정도는 알아볼 수 있지.”
“……감정평가? 그런 능력이 있었나?”
“존재의 숫자는 별만큼 있지. 특이한 권능 한두 가지는 있는 법이잖아.”
“좋다. 그럼 소환석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다는 거지?”
“어.”
“알고 있는 사람은 너 하나인가?”
“아마도.”
“혼자라…….”
지연우는 말없이 소환석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콱 움켜쥐었다.
손을 펴자 가루가 된 소환석이 파스스스 바람에 흩어졌다.
지연우의 눈빛은 무서웠고 주변의 공기는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잠시 그렇게 있던 그가 고개를 끄덕끄덕…….
동시에 농구공만 한 불덩이가 생겨났다.
그것도 4개씩이나…….
화르르르륵!
불덩이가 불꽃을 뚝뚝 떨어뜨리며 느릿하게 날아갔다.
목표는 정확히 성현이다.
입에서 내뱉은 말은 딱 하나.
“미안하다.”
놈은 성현을 죽여 입을 막으려 한다.
성현만 없다면 누구도 모를 거니까.
그리고 지옥의 불꽃은 완벽 살인에 아주 적합했다.
한 번 타오르면 가루조차 남기지 않고 모조리 태워 버리기 때문이다.
불꽃이 성현을 향하자 그 뒤에 서 있던 오즈는 다급히 지연우의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때…….
“이해하고 있어.”
성현의 말에 다가오던 불덩이가 멈칫거렸다.
성현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이유가 있었겠지. 모든 것은 세상을 위한 일이잖아. 당신은 언제나 정의를 따르지. 그래서 어떤 일을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선택이 옳을 것이라 믿고 있어.”
지연우의 눈빛에 흥미가 보였다.
성현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것은 모두 신념처럼 자주 내뱉던 말이었으니까…….
-난 언제나 정의를 따르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도 많아. 그럴 땐 다수를 선택할 거야. 내가 악당이 된다고 해도…… 모든 것은 세상을 위한 일이다.
성현이 계속 말했다.
“트롤리 딜레마라는 것이 있지. 당신은 그 딜레마에서 다수를 위한 선택을 한 거야.”
트롤리 딜레마는 영국과 미국의 철학자가 고안한 것으로 지연우가 자주 예시로 들던 이야기였다.
육교 위에 있던 당신은 멀리서 달려오는 기차를 보았습니다.
기차가 달려오는 철길에는 5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중입니다.
기차를 멈추지 않으면 그들이 죽고 말 겁니다.
기차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열차 앞으로 큰 물건을 던지는 겁니다.
그런데 주변에는 큰 덩치의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사람을 육교 아래로 밀어 버리면 기차는 멈출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죽겠지만 일하던 5명의 노동자들은 살겠죠.
자,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겁니까?
지연우는 존재의 단체 ‘교’에게 갓난아기를 바치면서도 말했었다.
-난 언제나 다수를 선택할 거다.
-내가 악마가 되어서라도 많은 사람들을 살릴 거다.
-그게 내가 내린 정의다.
성현이 지연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무엇을 위한 결정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선택하는 순간까지 괴로웠겠지.”
조용히 듣고 있던 오즈가 낄낄낄 웃었다.
“꺄하하하하! 너 따위가 단장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개소리하지 마!”
오즈의 몸이 금방이라도 성현을 향해 튀어 나갈 것 같았다.
그런데 지연우는 다시 손을 들었다.
“조용.”
그 말에 오즈는 입을 닫았고 농구공만 한 불덩이 4개 중 하나가 스르륵 사라졌다.
남은 불덩이는 3개…….
지연우가 입을 열었다.
“그걸 이해했다면서 짐승은 왜 죽인 거지? 네 말이 사실이라면 가만히 놔뒀어야 하지 않나?”
“요양 병원에 어머니가 계셨어. 당신의 뜻을 이해한다고 해도 어머니를 구하는 것은 당연하잖아?”
지연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요양 병원에서 성현을 넘어뜨렸을 때…….
중년의 여인이 “서, 성혀……!”라고 외치면서 움직이던 것이 떠올랐다.
서은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여인이 달려와 지연우의 앞을 가로막았을 거다.
‘그 사람이 이 녀석의 어머니였나?’
지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불덩이 중 또 하나가 스르륵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2개.
그런데 그것은 여전히 시뻘건 불꽃을 이글거리며 성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성현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저기…… 오해가 풀렸으면 이것도 좀 없애 주지?”
“마지막 질문이다. 짐승을 잡은 후 왜 나를 공격한 거지?”
“어머니가 위험했잖아. 그 원인은 그쪽이었고. 그래서 한 대 때려 주고 싶었어.”
불덩이가 또 하나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하나가 남아 있다.
“아직 남은 질문이 또 있나?”
“내가 소환석을 사용한 것, 비밀로 할 수 있겠나?”
“당연하지.”
“맹세의 수갑을 채워도 괜찮겠나?”
맹세의 수갑은 비밀을 강제하기 위한 아이템이다.
세상 모두를 믿고 사랑하는 척 가식을 떨지만 사실 누구도 믿지 않는 지연우에게 딱 어울렸다.
놈의 속마음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처럼 메말라 있으니까.
“채워.”
성현이 손목을 내밀었다.
애초에 다른 곳에 가서 떠벌릴 생각은 없었다.
그 정도 소문으로 무너질 놈도 아니었고 아직 사람들은 소환석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즉, 믿어 줄 사람도 없고 떠벌려 봤자 성현만 미친놈 되는 거다.
성현이 손목을 내밀자 지연우가 품에서 맹세의 수갑을 꺼냈다.
“3년짜리 수갑이야. 그동안 비밀을 지키겠다고 맹세하겠나? 맹세를 어기면 다리 한쪽을 가져가는 것으로 하지. 어때?”
맹세의 수갑은 강제할 수 있는 기간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1년에 약 2억 원이니까 3년이면 6억.
돈 낭비를 제대로 하고 있지만 제 돈을 제가 쓴다는데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맹세하지.”
대답과 동시에 수갑이 성현을 향해 날아와 손목에 채워졌고 이내 투명해졌다.
손목을 만져 봤지만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맨살만 만져졌다.
“비밀만 지킨다면 수갑이 불편하게 하는 일은 없을 거다. 3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질 거고.”
성현은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남은 불덩이가 아직 그대로 있었다.
“이거 안 치우나?”
그런데 지연우의 입가에는 서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 표정은 장난으로 개미의 더듬이를 뜯고 노는 아이들의 표정이다.
일명, 순수한 악.
그 순간 느릿하게 오던 불덩이가 순간적으로 바람을 갈랐다.
성현은 불덩이가 가까워지며 살이 익을 것 같은 뜨거움을 느꼈다.
하지만 성현은 여유롭다.
마치 지연우가 이럴 것이라고 예상한 것 같았다.
‘넌 날 죽이지 못해. 장난은 그만 쳐라.’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불덩이는 성현에게 닿기 직전에 화르륵 사라져 버렸다.
지연우가 서글서글한 눈매와 함께 사람 좋은 미소를 그렸다.
“마음에 들어. 연맹에 오면 연락해라.”
지연우는 성현의 손에 명함을 건넨 후 빌딩을 떠나기 위해 난간으로 걸어갔다.
오즈가 그 옆을 쫓다가 힐끗 성현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여전히 히죽히죽 웃고 있다.
“네 목이 잘리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나중에 만나면 목을 자르지 않고 뽑아 줄게.”
그 말이 끝이었다. 오즈는 지연우를 쫓아 난간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소란이 가득했던 옥상에는 이제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성현은 지연우의 명함을 손에 들며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연락하라고?’
바라던 바다.
하지만 연락하지 않을 거다.
‘연락하는 것은 너야.’
성현은 지연우의 명함을 콱 구긴 후 툭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