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짧은 머리가 눈을 찌푸렸다.
‘이 미친 새끼가 감히 명령을 내리겠다고?’
하지만 지금은 성현이 갑이다.
언제든 모두를 죽일 수 있으며…… 저 눈빛은 진짜다.
살인을 경험해 본 자의 눈빛이다.
‘어린 새끼가 어떻게 저런 눈을…….’
짧은 머리가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손이 바닥에 닿으면…… 우리뿐만이 아니라 당신들의 대표도 위험해요.”
물에 닿은 전기는 컨트롤할 수 없다.
사방팔방 날뛰며 피아를 가리지 않고 감전시킬 거다.
그럼 짧은 머리의 말대로 샤를의 대표와 이사도 위험하다.
하지만 성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러니까…… 가드는 그만 뒤로 빠져 줬으면 좋겠는데요. 이건 이제 우리들의 일이라…….”
성현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전기를 컨트롤할 수 없으니까…… 나는 빠져라?”
“그, 그렇죠.”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 샤를의 관계자는 나가세요.”
“……!”
간단한 해결 방법에 짧은 머리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성현은 테이블에 있던 서류를 손에 들었다.
방금 짧은 머리가 내밀었던 서류다.
주류 및 음료 판매 그리고 실장급 인물을 내부에 집어넣겠다는 불공정 계약서…….
성현이 서류를 툭툭 흔들며 입을 열었다.
“이 계약서가 참 마음에 드네. 우리, 이대로 하지. 단 서로의 입장은 바뀌겠지. 앞으로 그쪽 클럽은 샤를에서 술과 음료를 제공받을 거다. 샤를의 인물을 보낼 테니 실장급으로 넣어 주고.”
“그, 그게 무슨……?”
그때 지금껏 겁을 먹었던 샤를의 대표가 껄껄껄 웃었다.
이태산이 무너지며 샤를이 협상의 주도권을 가지고 왔다.
그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읽어 볼 필요도 없고 그냥 사인하시면 됩니다. 안 하면 오늘 같이 오신 분들 모두 죽게 될 겁니다. 하하하하!”
잠시 후, 짧은 머리와 그 일당은 클럽 샤를을 떠났다.
그리고 대표는 성현의 손을 꽉 잡고 흔들었다.
“정말 대단해, 자네 이름이 뭔가? 어?”
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쓰러진 이태산에게 닿아 있었다.
그러다가…….
“저놈은 어떻게 되죠?”
“누구? 저놈? 글쎄…… 관례에 따르면 우리가 폐기 처분해야겠지?”
폐기 처분이란 존재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장애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평생 힘을 쓸 수 없도록…….
성현은 이태산이 그렇게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정중히 치료한 후에 풀어 주세요.”
“어? 정중히 대한 후에 풀어 주라고?”
대표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태산은 상대의 해결사였고 먼저 권능을 펼쳤다.
그것은 칼을 꺼내 협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놈을 그냥 놓아준다는 것은 이쪽 바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민으로 가득한 표정의 대표를 보며 성현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되면 윗선에 물어보세요. 그렇게 하라고 할 테니까.”
“……윗선?”
성현이 떠난 뒤 대표는 곧장 서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녀석이 권능을 사용하려 했던 해결사를 놓아주라고 해서요.”
대답은 역시였다.
-그 사람의 말을 따르세요.
서은서는 성현이 예지 능력을 갖고 있다 생각했다.
이태산을 정중히 치료하라는 것도 마찬가지…….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 * *
페이트 길드의 사옥…….
서준식 본부장은 문서를 보고 있었다.
꽉 쥔 주먹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서준식 본부장의 앞에 선 중년의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샤를의 사람이 우리 클럽의 실장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클럽의 일거수일투족이 샤를에 보고되겠죠. 그리고 주류와 음료 일체를 그쪽에서 받아 쓰기로…….”
“그만.”
서준식 본부장은 눈을 감았다.
완벽하게 당했다.
사실 업장의 이익은 관심 없었다.
클럽에서 얻는 돈은 몇 푼 안 됐고 그곳에서 나오는 정보 역시 아직은 미약했기 때문에 아쉽지 않았다.
기분 나쁜 것은 하나였다.
쉽게 밟아 죽일 수 있는 벌레에게 당했다는 것…….
그렇다고 보복을 할 수도 없다.
서준식은 국내 5대 길드 페이트의 차기…….
시끄러운 일이 길어지면 그의 모습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래서 혹시라도 언론에 알려지면 아버지 서문길 마스터가 분노할 테고 그럼 차기의 자리에서 내려가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최악의 상황이고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짜증을 내뱉는 것이었다.
“……해결사를 썼잖아? 미등록 중에서는 꽤 괜찮은 놈이라며? 그런데 왜?”
“상대도 미등록 해결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서 방심했고…….”
“확실해? 이 새끼들이 배신 때린 것은 아니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준식 본부장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젠장, 그쪽에서 데려온 해결사…… 이름 알아?”
“알아보겠습니다.”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숙일 때, 테이블에 놓인 인터폰이 울렸다.
-서은서 인사 팀장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그 말과 함께 서준식 본부장의 앞에 섰던 남자가 스르륵 사라졌다.
삐걱, 문이 열리고 서은서가 들어왔다.
서준식 본부장의 표정을 즐기러 온 거다.
서준식 본부장은 클럽 샤를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서준식 본부장은 그녀가 후계 싸움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 누구보다 탐욕적이었다.
서준식 본부장을 짓밟고 싶었던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천진난만한 동생을 연기하며 입을 열었다.
“저녁 같이할까? 오빠가 좋아할 만한 레스토랑을 찾았거든.”
서준식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에서 일어섰다.
“그래, 그러자. 맛있는 거라도 먹어야겠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됐어.”
“왜?”
그녀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서준식 본부장을 향해 다가갔다.
“우리 오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기분 풀어 줘야겠네. 내가 맛있는 거 사 줄게.”
* * *
이태산이 눈을 뜬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벌떡 일어선 이태산이 주변을 살폈다.
낯선 장소…….
‘어, 어디지?’
게다가 자신의 몸에는 화상을 치료한 흔적마저 보였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났으면 밥이나 먹고 가라.”
문 앞에 선 남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여기는 어디지?”
“샤를의 직원 숙소야.”
“나, 나를 왜……?”
“우리도 몰라. 널 그렇게 만든 사람이 정중하게 대해 달라고 부탁했대.”
순간 이태산은 기절하기 전의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성현이 주먹을 꽉 쥐고…….
-형이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조언이다. 앞으로는 착실하게 살아라. 맛있는 것도 많이 사 먹고 아버지께 효도하고.
이태산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버지께 효도하고?’
그 상황에 뜬금없이 효도하라는 말도 이상했지만 보통은 어머니 또는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버지라니…….
‘나를 알고 있나?’
게다가 그 마지막 말은 정말 이태산 자신을 걱정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이태산의 시선이 다시 문 앞에 선 남자에게 향했다.
“날 이렇게 만든 사람…… 누군지 알고 있지?”
“난 말단 직원이야. 당연히 누군지 모르지.”
“그럼 대표는 알고 있을까?”
“글쎄…….”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고 이태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비틀……. 아직 회복이 덜 됐다.
“좀 더 쉬지?”
이태산은 고개를 저은 후 남자의 옆을 스쳐 갔다.
남자는 이태산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스르륵…… 외모가 바뀌었다.
그는 서은서의 옆을 따라다니던 복면인, 무령이었다.
그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말씀하신 대로 유성현을 찾고 있습니다.”
그 시각, 성현은 사막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이계 시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건조한 바람을 느끼며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이 돈으로 될까?’
성현은 20실버 정도가 있었다.
뱀을 팔아 벌었던 돈과 샤를을 도우며 받은 사례비.
물론 사례비는 대표가 건넨 봉투였다.
서은서에게는 약속한 것을 아직 받지 않았다.
어쨌든…….
‘이 돈으로 해결됐으면 좋겠는데…….’
그때 멀리 모래바람이 이는 게 보였고 점점 가까이 오며 형태가 드러났다.
말 2마리, 타고 있는 사람은 딱 봐도 사막의 도적이었다.
얼굴은 천으로 둘둘 감아 눈만 보이는 상태였고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들려 있었다.
놈들이 성현의 앞에 다다르자 고삐를 당겼고 말이 앞발을 들며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검은색 천을 두른 남자가 식상한 말을 내뱉었다.
“이 형님들이 일주일 동안 밥을 굶어서 배가 고프다. 그러니까 가진 돈을 다 꺼내도록 해라. 그럼 목숨은 살려 주지.”
성현은 물끄러미 도적을 바라봤다.
“혹시…… 초보자 사냥꾼?”
“뭐?”
놈들은 분명 성현보다 강한 권능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경험치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다.
기껏해야 도토리 키 재기.
그러니까 강도짓이나 하는 거다.
‘잘됐네.’
성현은 돈이 필요했고, 놈들에게 좀 ‘빌리기로’ 했다.
“가진 것 다 내놓으라니까!”
남자가 버럭 외치는 순간 성현이 바닥을 차고 뛰어올랐다.
“단골손님 오셨네요. 똑같은 거죠?”
금발 머리 꼬마는 가방을 열고 알약을 꺼내 들었다.
진통제, 체력 회복제 등 성현이 언제나 구매해 가는 것이다.
“아니, 그건 됐어.”
“네?”
성현은 알약을 거절하고 돗자리에 깔린 물건을 슥 훑어봤다.
코끼리 인형, 열쇠고리 등 잡다한 것만 있었다.
평소와 다른 성현의 행동에 꼬마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해졌다.
“오늘은 약이 아니라 다른 게 필요한가요?”
“매개체는 없나?”
매개체는 존재를 불러내 계약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도구.
성현은 종합 병원에서 쥐를 잡으며 얻었고 형태는 반지였다.
그런데 또 매개체를 찾는 이유는 하나다.
성현은 이미 권능 이해도를 9%나 달성했고 매개체는 10%가 한계였다.
그 이상의 권능을 얻으려면 매개체의 성능을 높여야 한다.
‘매개체의 한계를 늘리는 방법은 다른 매개체와의 합성이지.’
그런데 꼬마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세상의 시스템이 관장하는 일이죠. 우리는 매개체를 보관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너한테는 없다는 거지?”
“네.”
“그럼 매개체가 언제 어디에 나타나는지 알고 싶은데…….”
“하하,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정보 상인이잖아?”
꼬마의 눈빛이 변했다.
묘한 눈으로 성현을 바라본다.
“……나를 아나요?”
“조금은.”
성현은 이 꼬마를 알고 있었다.
금발 머리에 하얀 피부, 겉모습은 순진무구하지만 그 속은 끔찍하다.
놈은 ‘살아 있는 인간을 뜯어 먹는 게 최고의 미식이야.’라고 외치는 악귀니까.
그리고 놈은 이계의 정보 상인이기도 했다.
“……인간들은 나를 모를 텐데? 어떻게 알았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 상인이면 상인답게 이득만 생각해.”
꼬마가 탐욕스럽게 웃었다.
“인간과는 거래를 하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은 신기한 인간……. 배우지 않고 이계 시장을 왔고 물건을 보는 눈도 있고 나도 알고 있죠. 좋습니다. 정보를 거래하죠. 필요한 것은 매개체가 나타나는 시기와 장소죠?”
“얼마지?”
성현의 품에는 1골드와 28실버가 있었다.
도둑들에게서 돈을 빼앗으며 자산이 확 늘었다.
그런데…….
“돈은 됐어요. 대신 나도 알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정보를 교환하면 최상급 매개체가 나오는 장소와 시각을 알려 드리죠.”
“뭐지?”
“호칭을 받을 때가 됐죠?”
권능이 10%가 되면 호칭을 받게 된다.
지금 지르힐의 권능에 더해 호칭에 걸맞는 특수 능력을 얻게 되는 거다.
물론 호칭은 랜덤이며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호칭을 얻게 될지 기대한다.
꼬마가 말을 이었다.
“혹시……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라는 호칭을 알고 있나요?”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
처음 듣는 호칭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꼬마가 차가운 눈으로 성현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치 성현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려는 것처럼…….
‘왜 저렇게 보는 거지? 대체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가 뭐기에?’
성현이 대답하지 않자 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면 됐어요. 그럼 다음에 만날 때 어떤 호칭을 얻었는지 알려 주겠어요?”
‘호칭이라…….’
성현은 자신이 어떤 호칭을 받을지 예상하고 있었다.
지난 삶에서 얻었던 호칭은 ‘굶주린 개’.
그래서 이번에도 비슷할 것이라 예상됐다.
‘딱히 숨길 필요는 없지만…….’
하지만 이계의 정보 상인이 물어보고 있다.
어쩐지 쉽게 수락하기에는 뭔가 꺼림칙했다.
“아니, 정보를 거래하고 싶지는 않다. 돈으로 하지.”
성현의 표정을 살피던 꼬마가 활짝 웃었다.
“단골에 대한 서비스로 이번은 무료로 알려 드리죠. 당신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원치 않거든요. 매개체는 일주일 뒤, 경기도 광주의 습지공원에 던전 하나가 나타날 거예요. 그 던전 2층에 있는 제단. 거기에 가 보세요.”
“땡큐.”
잠시 후, 성현은 이계 시장에서 벗어나 다시 창고로 이동했다.
스킬 수련을 준비하던 성현의 머릿속에 꼬마가 했던 말이 계속 울렸다.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