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32화 (32/252)

32화

성현의 뜬금없는 말에 서동길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가 다시 묻는다.

“제자?”

“네.”

서동길은 외골수다.

권력과 명예, 돈과 여자, 어떤 것에도 관심 갖지 않고 오직 연구에만 몰두했다.

박박 씻어도 독 냄새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그 결과 페이트 길드에서도 특이한 존재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독에 미친 사람’.

‘독마’.

‘알코올중독자’.

‘꼰대’.

사람들은 그를 피했다.

그래서 제자는커녕 누군가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성현이 처음이었다.

그에게 ‘제자’라는 단어를 말한 사람은…….

‘제자라고?’

그는 죽음을 생각할 나이였고 자신이 이룬 성과를 누군가를 통해 남기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었다.

‘게다가 이놈…….’

서은서의 말에 따르면 계약자가 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초보자다.

그런데 벌써 스킬을 사용하고 호칭을 받을 위치에 섰다.

평범한 놈이었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시간을 한 달로 끝내 버린 거다.

‘유능한 제자…… 실력 있는 제자……. 복이 굴러온 것인가?’

잠시 생각에 빠졌던 서동길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본 미래에 내 제자가 되는 게 있었나?”

“아뇨. 없었습니다.”

“그럼, 미래를 바꾸는 것인가?”

“아마도…… 그렇습니다.”

서동길이 막걸리 잔을 들었다.

“그럼, 자네를 제자로 받으면 난 미래를 거역한 사람이 되는 건가?”

“네.”

“그건 마음에 드는군. 클클클클.”

서동길은 막걸리를 한 번에 비운 후 말을 이었다.

“제자…… 있으면 좋겠지. 하지만 간단히 들일 마음도 없어.”

서동길이 품에서 손가락만 한 유리병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검은색 액체가 가득한 게 예사롭지 않았다.

서동길이 병을 툭툭 치며 계속 말했다.

“독의 무서운 점이 뭔지 아는가?”

독의 무서운 점은 간단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훈련을 받지 않은 여자와 아이도 밥이나 물에 타서 상대를 죽일 수 있다.

게다가 몰래 숨길 수 있으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공기 중에 살포할 수 있는 것은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을 한 번에 중독시켜 죽일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점은 독에 따라 해독제가 다르다는 것이야. 독의 종류에 따라 해독제를 가지고 있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강자라도 독에 중독되어 죽는 거야.”

서동길이 병을 가로로 누이며 말했다.

“난 네가 나쁜 놈인지 좋은 놈인지 모른다. 내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어. 독을 손에 쥐는 순간 세간의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으니까. 넌 악인이 될 것이고 나쁜 놈으로 기록될 거다. 그래도 상관없나?”

“네.”

성현은 구악의 대장이었다.

세상은 구악을 악인으로 불렀으며 반역자로 기록했다.

그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데 이제와 착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념이며 ‘나’라는 존재니까.

성현의 눈빛을 본 서동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리병을 손에 들더니 까드득. 병뚜껑을 뜯었다.

“가져와.”

그 말과 동시에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더니 복면인이 쥐 한 마리를 들고 들어왔다.

서동길이 쥐를 손에 쥐고 그 입에 독약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찍, 소리도 없었다.

발버둥 치던 쥐는 그대로 죽었다.

서동길의 시선이 성현에게 향했다.

그리고 다시 병뚜껑을 닫더니 툭, 성현의 앞으로 굴렸다.

“이 독을 마셔 봐라. 쥐보다 덩치가 크니 당장 죽지는 않을 게야. 하지만 평생 손가락질을 받으며 사는 고통은 이 독을 마셔 느끼는 고통의 반도 안 될 거다.”

각오를 보이라는 거다.

성현이 유리병을 손에 쥐자 서동길이 빙긋이 웃으며 계속 말했다.

“참고로 해독제는…….”

성현은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병뚜껑을 열고 입에 털어 넣었다.

서동길의 눈이 커졌다.

순간 성현의 입에서 검은 피가 주륵 흘렀다.

성현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억지로 웃었다.

“예상은 했지만 맛은 별로네요.”

“그, 그걸 왜 먹어! 그거 해독제, 여기 없어!”

서동길이 테이블을 치며 일어섰고 서은서의 얼굴은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앞에 성현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할아버지!”

“그냥 겁만 주려고 한 거지! 독이 무서운 걸 가르쳐 주려고! 독을 저렇게 먹는 미련한 놈이 어디에 있어!”

“그런 말을 왜 해요!”

서동길은 눈을 감았다.

지금 서은서와 말다툼할 시간은 없었다.

‘임시 해독제…… 뭐가 필요하지? 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해독제 갖고 있는 것이 있으면 다 가지고 와! 어서!”

서은서도 품에서 해독제를 꺼냈고 복면인들도 모두 가져왔다.

서동길은 산더미처럼 쌓인 해독제를 분류하며 슬쩍 성현을 살폈다.

‘요놈 봐라?’

성현의 입과 코에는 검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표정은 유유자적하다.

서울의 야경을 보며 조용히 웃고 있다.

배 속의 고통도 그로 인해 죽는 것도 상관없다는 듯이…….

지금 일어나는 일을 마치 다른 세상의 일처럼 여긴다는 듯이…….

“어서 먹어.”

서동길이 성현에게 급히 제조한 약을 건넸다.

성현은 느긋하게 약을 받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슬쩍 웃으며 말했다.

“통증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네요.”

서동길이 눈살을 찌푸렸다.

“미련한 놈. 앞으로 이런 짓 하지 마라. 죽기 딱 좋으니까.”

“어르신을 믿었습니다.”

“됐다. 오늘은 이만 가. 널 보고 있으니까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게 일찍 죽을 것 같아.”

성현은 몸을 일으킨 후 서동길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서은서 팀장을 통해 연락하지.”

제자로 받겠다는 말이었다.

성현과 서은서가 떠난 자리, 그곳엔 서동길이 혼자 앉아 있었다.

그가 막걸리를 입에 댈 때 문이 열리고 복면인이 들어왔다.

복면인이 물었다.

“어르신…… 아까 그거 독이 아니라…….”

“이계 시장에서 산 영약이지. 흡수만 제대로 하면 마력이 50%는 더 상승할 거야. 클클클.”

마력이 높을수록 스킬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다.

50% 이상을 끌어 올리는 영약이라면 시장에 잘 나오지도 않고 나온다 해도 아무나 살 수 없는 엄청난 가격이다.

“그런데 왜 독약이라고……?”

“재밌잖아? 그걸 마실 줄 알았겠어? 푸핫핫핫!”

서동길은 껄껄껄 웃으며 손으로 총각김치를 집어 아득아득 씹어 먹었다.

잠시 후, 성현의 집 앞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연락할게요.”

운전석에 앉은 서은서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잠깐의 인사를 나눈 뒤 그녀는 차량을 움직여 단지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성현과 헤어진 후 그녀의 표정이 굳어진다.

생각에 빠진 모습이다.

‘뭐야?’

그녀가 떠올린 것은 독약을 마시고 창밖을 보던 성현이었다.

‘분명히 웃었어.’

누군가는 죽음을 앞두고도 담담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은서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가 보기에 성현은 자신의 목숨을 값싸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성현은 서은서의 차량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차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몸을 돌렸다.

‘이제 슬슬…….’

내일은 경기도 광주에서 던전이 나타나는 날이다.

던전에 들어가서 매개체를 얻고 권능 이해도를 10% 이상 돌파해야 한다.

그럼 호칭을 얻을 수 있다.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집에서는 어렵고…….’

성현의 집은 거실과 방 하나가 전부다.

곧 어머니가 오실 시간인데 소파에 앉아 있다가 사라졌다 나타나면 깜짝 놀라실 거다.

‘사람이 오가지 않는 곳…….’

아파트 옥상 앞, 비록 옥상으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 있지만 여기도 충분하다.

여간해서 사람이 드나들지 않기 때문이다.

성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자 창고였다.

가장 먼저 식료품을 확인했다.

던전에서 식량이 떨어지면 짐승을 요리해 먹어야 한다.

그냥 먹기에는 끔찍한 맛이기 때문에 소금과 고추장 같은 게 반드시 필요했고 성현은 라면 수프까지 준비했다.

아쉬운 점은…….

‘휴대용 버너를 들고 가면 좋은데…….’

현대 물건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모두 녹아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현대 물건의 반입이 가능했다면 성현의 창고는 식료품이 아니라 총을 비롯한 무기로 가득했을 거다.

‘다음.’

먹을 것의 확인이 끝났으니 다음은 아이템을 살펴야 했다.

먼저 항상 사용하는 알약.

‘스테미너, 스피드…… 다 있고.’

승려의 단검도 날이 살아 있었다.

모든 것을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한 후 이계 시장으로 이동했다.

사막의 건조한 모래바람을 맞으며 성현은 시장을 향해 걸었다.

입구에 서자 터번을 둘러쓴 남자 2명이 휘어진 칼을 들고 성현의 앞을 막았다.

“또 1층에 가십니까?”

“어.”

문지기가 성현을 살폈다.

“……이제 2층이나 3층에 가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이계 시장은 높은 탑으로 되어 있고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좋은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다.

하지만 성현은 계속 1층에 머무르는 중이다.

높은 층에 오르려면 해당 층을 지키는 문지기와 싸워야 하는 것도 귀찮고…….

‘여기는 꼬마가 있지.’

꼬마는 10층 이상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척척 내놓는다.

그래서 아직은 더 높은 층으로 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꼬마는 성현에게 필요하다.

놈이 성현의 옆에 딱 붙어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때까지는 1층에 있어야해.’

성현은 문지기를 스쳐 시장으로 들어갔다.

“또 왔네요?”

꼬마의 앞이었다.

“제물로 바칠 동물이 필요해. 알 하나 있으면 줘.”

“제물요?”

“네가 말한 던전…… 매개체가 제단에 있다며?”

“……그랬죠?”

“그럼 당연히 제물을 바쳐야 매개체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냐?”

“역시…… 대단한 인간이에요. 보통은 그런 생각까지 하지 않는데.”

꼬마는 가방에서 달걀을 꺼내 돗자리에 올렸다.

외관은 달걀처럼 보이지만 태어나는 것은 닭이 아니라 이계의 생물이다.

“사용법은 마력을 주입한 후 땅에 심으면 돼요. 그럼 1시간 뒤에 나무가 자랄 거고 열매를 맺을 거예요. 열매가 빨갛게 익으면 짠! 생물이 태어나는 거죠.”

어떤 생물이 나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애완동물을 사는 것도 아니고 제물로 바칠 동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뭐가 나오든 상관없었다.

꼬마가 묻는다.

“이해했죠? 그럼, 또 필요한 게 있나요?”

“하나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이번에 나타나는 던전…… 스페셜 등급인가?”

“네?”

“정상적인 던전은 아니잖아? 어떤 거야? 시간? 아니면 선택?”

보통의 던전은 한 번 나타나면 길드가 토벌할 때까지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스페셜 등급은 다르다.

그것은 1시간에서 2시간 정도만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곳으로 내부의 모습도 보통의 던전과는 다르다.

단순히 짐승을 잡고 주인을 죽여 토벌하는 곳이 아니라는 뜻이다.

꼬마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느낌이라고 치자.”

성현이 이번 던전을 스페셜 등급이라고 장담하고 있었다.

‘내 기억에 경기도 광주에 등장한 던전은 없었어.’

경기도 광주는 서울에서 멀지 않다.

그곳에 던전이 등장했다면 언론이 난리가 났을 거다.

게다가 성현은 지금 고 3.

혹시나 수능이 미뤄지지는 않을까 기대했을 텐데, 그런 요란한 기억은 없었다.

그럼 잠깐 나왔다가 사라졌다는 뜻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알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다.

‘그럼 스페셜 등급이지.’

꼬마가 황당한 표정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눈빛에는 ‘그걸 어떻게?’라는 문장이 박혀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스페셜 등급에는 여러 가지가 있죠. 이번에 나타나는 곳은 ‘선택의 던전’이라고 해요.”

“선택의 던전?”

“네, 선택의 던전은…….”

성현은 꼬마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곧바로 필요한 물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개 코의 가루, 부싯돌, 길잡이 벌레, 붉은 용의 머리뼈 그리고…….”

“잠깐, 잠깐만요.”

“왜?”

성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꼬마가 깔깔깔 웃었다.

“당신…… 평범한 사람과 달리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죠. 그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희박한 확률이지만 완벽하게 제로는 아니니까. 하지만 이 던전의 공략법을 아는 것은 문제가 달라요. 지금 인간의 정보력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문제예요. 그런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답해야 하나?”

“안 해 줄 거죠?”

“어.”

“이런 말 하면 내 계약자들이 싫어하겠지만 난 당신이 정말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비록 나와 계약한 사람은 아니지만…….”

꼬마가 반지를 꺼내며 계속 말했다.

“선물이에요.”

[사막의 반지]

-스피드 +2.

-물리 방어력 5% 증가.

-낮은 확률로 상대의 과거를 볼 수 있다.

옵션은 상당히 좋다.

이 정도 아이템이면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꽤 나갈 거다.

“돈을 줘야 하나?”

“선물이라니까요.”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 뭘 원하는 거지?”

“계속 친하게 지내요, 하하.”

성현은 꼬마의 속셈이 뻔히 보였다.

하지만 모른 척…….

“다음에는 나도 선물을 하나 가져오지.”

성현이 떠났다.

꼬마의 앞으로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늙은 노파가 스르륵 나타났다.

노파가 허리를 굽힌 후 물었다.

“왜…… 저 인간을 도우시는 겁니까?”

“돕는 이유? 난 저놈이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라고 확신해. 그럼 이 정도 호의는 싸게 먹히는 거지.”

꼬마의 눈빛이 바뀌었다.

지금껏 귀엽던 얼굴이 아니다.

소름 끼칠 정도로 매서운 눈빛이다.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얼어붙을 것처럼 차갑게…….

꼬마가 중얼거렸다.

“저놈은 더 강해져야 해. 날 왕으로 만들어 줄 거니까!”

그리고 꼬마는 깔깔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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