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오미로 베루스의 머리가 튕기듯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성현의 머릿속에 옛 기억이 스치고 있었다.
성현이 구악의 멤버들과 함께 해남 토지 탈환 작전에 참여했을 때였다.
그러니까, 아직은 지연우와 사이가 틀어지기 전이었다.
워낙 위험한 작전이라 연맹은 물론이고 각 길드의 내로라하는 실력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오진구도 있었다.
오진구는 지연우의 동료이자 강령술사……. 연구를 위해 산 사람의 가죽을 벗겨 낸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잔혹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는 오미로 베루스를 소환마로 데리고 있었다.
그날…… 숙영 준비를 마치고 자유 시간을 가졌을 때, 오진구는 부드러운 극세사 천으로 오미로 베루스의 백골을 닦고 있었다.
그의 옆으로 성현이 앉으며 물었다.
“어떻게 한 거지?”
“뭘?”
“어떻게 죽지 않는 놈을 소환마로 만들었냐고.”
성현의 질문에 오진구가 낄낄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환마를 만드는 기본 방법은 똑같아.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고 내 사념을 집어넣으면 되는 거지. 이놈 같은 경우는 머리를 계속 때렸어. 말 그대로 해골이 흔들려서 어떤 생각도 못 하게 만든 거지. 계속해서 치고 때리고 두들기면서 적당히 정신이 빠졌을 때…….”
오진구가 오미로 베루스의 관자놀이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여기에 사용자의 머리카락과 마력을 집어넣었지. 그러자 오미로 베루스의 영혼은 성불했고 이 뼈다귀는 귀엽고 예쁜 내 인형이 된 거야.”
오진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성현의 옆에 앉아 있던 구악의 멤버 이서아가 고개를 저었다.
“해골이 귀엽다고요? 난 정말 이해가 안 돼.”
오진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미학을 모르는 너의 감상을 듣고 싶지는 않다. 늙으면 주름이 생기는 너와 달리 이놈은 부서지고 박살 나도 완전히 가루가 되지 않는 한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오지. 불사의 매력…… 보기만 해도…….”
오진구는 묘한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며 계속 말했다.
“……흥분돼.”
‘어떤 생각도 못하게 계속 때렸다고?’
옛 생각을 마친 성현이 앞을 바라봤다.
갑작스레 공격을 당한 오미로 베루스가 휘청거리고 있다.
‘좋은 정보 고맙다.’
성현은 놈의 머리에 주먹을 날렸다.
쾅! 쾅! 쾅!
쉬지 않고 날아온 주먹에 놈은 주춤주춤 뒤로 밀렸고 결국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한참을 굴러 땅에 처박힌 오미로 베루스가 손을 땅에 대고 일어나려 했다.
-크르르…….
하지만 무리였다.
뒤따라온 성현이 놈의 머리를 발로 가격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오미로 베루스의 백골이 출렁거렸고 “크아아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입을 벌렸다.
그 순간 성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 쥔 단검을 놈의 입에 쑤셔 넣고 옆으로 비틀었다.
‘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오미로 베루스의 턱뼈가 박살 났다.
‘라이트닝 볼.’
성현의 손에서 라이트닝 볼이 솟아났고 그것은 그대로 오미로 베루스의 얼굴에 처박혔다.
한 방, 두 방, 세 방, 네 방!
꽝! 꽝! 꽝! 꽝!
오미로 베루스의 몸이 전기로 휩싸일 때 놈의 눈에 박힌 푸른 불꽃은 타올랐다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성현은 엄청난 스피드로 오미로 베루스를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확실히 파워가 부족해.’
이 정도 때렸으면 반응이 와야 했다.
하지만 놈의 다리는 굳건했고 박살 났던 턱뼈는 어느새 치유됐다.
놈의 몸은 불사였다.
‘내 힘으로 이놈을 박살 내기는 어려워.’
확실히 느꼈다.
아직 성현의 힘은 부족하다.
‘이놈을 박살 내려면…….’
그래서 준비해 온 게 있었다.
이계 시장에서 구매한 붉은 용의 머리.
정확히는 헤츨링을 잡아 박제한 것으로 그 크기는 아직 주먹만 했다.
‘성체였다면 좋았겠지만…….’
하지만 상관없었다.
용의 머리에서 필요한 것은 오직 송곳니였고 헤츨링의 송곳니만으로도 충분했다.
‘용의 송곳니는 마법 능력을 떨어뜨리지.’
그 마법 능력 중에는 치유 능력도 있었는데, 특히 오미로 베루스처럼 재생 능력을 가진 놈들에게 효과적이었다
성현은 용의 송곳니를 뜯어내며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그런데 오미로 베루스가 용의 송곳니를 알아봤다.
놈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용의 송곳니라…….
놈의 기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끼고 모든 힘을 끌어 올리는 중이다.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5분.
하지만 오미로 베루스는 성현을 죽이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놈의 눈에서 일렁이던 푸른 불꽃이 짙어졌다.
-죽어라!
놈이 성현을 향해 튀어 나갔다.
주먹을 날리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성현은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스치는 것만으로 살점이 떨어졌고 땅에는 성현의 핏방울이 튀고 있었다.
이어서 놈의 주먹이 복부를 찔러 들어왔다.
이건 피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야 한다.
꽈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성현은 내장이 꼬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젠장.’
성현이 비틀거리자 오미로 베루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꽈앙! 꽈앙! 꽈앙!
주먹 하나하나가 해머 같았다.
성현도 당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라이트닝 볼로 오미로 베루스의 얼굴을 가격했다.
꽈아아앙!
* * *
‘저, 저게 던전의 주인인가?’
막 돌아온 이태산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의 눈에 담긴 것은 오미로 베루스…….
놈은 보통의 해골 짐승과 달랐다.
키만 해도 3m였고 덩치도 대단했다.
그것만으로 위압감을 느끼고 있는데, 몸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마력은 당장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살기가 가득했다.
‘그런데…….’
이태산은 성현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더 놀라운 것은 그에 맞서는 성현 역시 다르지 않다는 거다.
성현은 오미로 베루스의 주먹에 얼굴을 ‘꽝! 꽝! 꽝!’ 하고 맞았다.
피와 함께 살점이 튀었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이미 만신창이, 죽었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하지만 성현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한 대를 맞으면 두 대를 때린다.
어떻게든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있다.
핏물이 가득한 얼굴에서 번뜩거리는 성현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였다.
이태산은 그런 성현을 보며 한 단어를 떠올렸다.
‘광전사…….’
광전사란 광기에 휩싸여 싸우는 자를 말한다.
삶이 재가 될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우고…….
하지만 그게 한계였다.
성현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오미로 베루스는 불사였고 놈의 몸은 계속해서 회복한다.
체력적으로 성현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쿵!’ 하고 성현의 등에 동굴 벽이 닿았고 성현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앞을 바라봤다.
오미로 베루스가 덜그럭 덜그럭 뼈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성현의 앞에 선 오미로 베루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놈의 손 주변에서 검은 연기가 일렁거렸고 주먹이 꽉 쥐였을 때 느껴지는 힘은 두려울 정도였다.
저 주먹이 성현의 얼굴에 닿으면 이 싸움은 그대로 끝날 거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
지켜보던 이태산의 입술이 바짝 말라 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해.’
하지만 성현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지금도 겨우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피할 수는 없을 거다.
지켜보던 이태산이 몸을 움직였다.
그는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뛰었다.
오미로 베루스가 주먹을 날리기 전에 성현의 앞을 막아서기 위해서다.
‘내가 막아야 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성현을 잃고 싶지 않았다.
‘더 빨리!’
그때…….
오미로 베루스가 주먹을 날렸고 ‘꽈아아앙!’ 하고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 * *
툭……툭…….
성현의 이마에서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뭐지?’
분명 오미로 베루스의 주먹이 날아왔고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충격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유를 알고 싶어 고개를 들었는데…….
성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뜬금없이 이태산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성현의 앞을 가로막았고 성현 대신에 오미로 베루스의 주먹에 등을 맞았다.
하지만 꾹 참고 있었다.
입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
“……뭐 하는 거지?”
성현은 구악의 동료가 다치는 게 싫었다.
그들은 성현의 말을 따르다 전원이 죽었다.
성현은 그들의 죽음을 스스로의 죄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트라우마였다.
그래서 옆에 이태산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이 싸움에 합류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태산이 억지로 웃는다.
“이럴 때는 왜라고 묻는 게 아니라 고맙다고 말하는 게 먼저 아닌가? 뭐, 그건 그렇고…… 이 주먹을 견디고 있었던 거야?”
성현은 오미로 베루스의 주먹을 수십 수백 대 맞았다.
그걸 견뎠고 미친 듯이 싸웠다.
하지만 이태산은…….
“……난 이게 한계야. 더는 못 견딜 것 같아…….”
그의 무릎이 쿵…… 땅에 닿았고 무너지듯 땅에 쓰러졌다.
그리고 이태산에게 가려져 있던 오미로 베루스가 드러났다.
오미로 베루스의 눈에 박힌 푸른 불꽃이 일렁거렸다.
-이제 방해하는 놈은 없겠지.
놈의 주먹이 다시 움직였다.
그 주먹이 정확히 성현의 정수리를 향했다.
그런데…….
‘충분히 쉬었어.’
성현은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태산이 시간을 끌어 준 덕에 조금의 체력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오미로 베루스의 동작은 여전히 컸다.
이것은 성현이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방심은 치명적인 실수를 낳는 법…….
놈의 주먹이 허공을 가를 때, 성현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놈의 이마에 용의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콰아아악!
오미로 베루스의 이마 뼈가 쩍, 갈라졌다.
그 틈에서 검은 마력이 피처럼 쏟아졌다.
-크아아악!
놈은 손으로 이마를 감쌌고 처음 맛보는 고통에 분노를 쏟아 냈다.
-인간! 죽인다! 인간!
하지만…….
“송곳니는 하나가 아니다.”
송곳니는 2개였고 남은 하나가 오미로 베루스의 관자놀이에 처박혔다.
쩌엉!
불사의 존재…… 죽지 않는 것이지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놈은 심각한 고통을 느꼈고 비틀비틀 뒤로 물러섰다.
미간에서는 뼛가루가 투투툭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놈이 고통에 울부짖을 때, 성현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라이트닝 볼.”
라이트닝 볼이 깨진 뼈 사이를 쑤시고 들어갔다.
콰지직!
오미로 베루스는 동굴 벽에 기대 주저앉아 있었다.
눈에서 타오르던 불꽃은 힘을 잃고 흔들리는 중이다.
그리고 놈의 앞에 성현이 다가와 섰다.
“이만 죽어라.”
-죽어?
오미로 베루스가 클클클 웃었다.
놈의 얼굴에 표정이 있다면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을 게 분명했다.
수천 년을 이러고 살아왔는데, 죽다니…….
그동안 오미로 베루스보다 강한 자는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불사의 존재였고 계속해서 살아남았다.
-말도 안 되는…….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직접 겪어 봐. 이전의 미래였다면 너는 오진구와 함께 악행이나 저지르고 다녔겠지.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다. 내가 너를 거둬 주마.”
그 말을 끝으로 성현은 머리카락을 뽑았고 마력과 함께 놈의 관자놀이에 쑤셔 넣었다.
그러자 단 한순간이었다.
오미로 베루스의 눈에 있던 푸른 불꽃이 촛불 꺼지듯 사라졌다.
놈의 영혼이 불사의 육체를 놔둔 채 이곳을 떠난 거다.
수천년을 살아왔지만 어떤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그렇게 푸른 불꽃이 일렁이던 눈은 어두운 암흑만이 남았다.
하지만 잠시였다.
작게 불꽃이 일더니 새로운 불꽃이 솟아났다.
이번 불꽃은 금빛…… 지르힐의 눈동자 색과 같다.
즉, 오미로 베루스는 성현의 소환마가 된 거다.
‘됐어.’
성현은 소환마가 된 오미로 베루스를 천천히 지켜봤다.
원래 오미로 베루스는 지연우의 동료인 오진구의 소환마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오미로 베루스가 없다면 오진구의 전력은 80%가 없는 거다.
-오미로 베루스가 없었다면 지연우의 성공은 10년 이상 뒤처졌을 거다.
그 오미로 베루스가 성현의 손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