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일단 이태산을 지키고 있어라.”
성현이 오미로 베루스에게 내린 첫 지시였다.
성현은 해야 할 일이 있었고 혹시 모를 위험에서 이태산을 보호해야 했다.
오미로 베루스가 덜그럭덜그럭 이태산의 옆으로 다가갔다.
거대한 백골이 다가오자 이태산은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뭐, 뭐 하는 거야! 저거 안 치워!”
“위험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뭐?”
“그럼, 쉬고 있어.”
성현이 몸을 돌려 계단으로 향했다.
그 뒤에서 이태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디 가는 거야!”
잠시 후, 성현은 다시 계단의 정상에 서 있었다.
오미로 베루스가 앉아 있던 넓은 마법진이 보였고 그 중앙에는 팔찌가 놓여 있었다.
저 팔찌가 매개체였다.
성현은 중앙으로 이동해서 팔찌를 손에 들었다.
[A+급 매개체]
-형태 : 팔찌
-존재를 불러낼 수 있다.
-존재의 권능을 10%까지 견딜 수 있다.
-모든 공격력을 10% 증가시킨다.
-모든 방어력을 10% 증가시킨다.
-모든 능력치 +1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대박이네…….’
꼬마는 이 던전에서 나타날 매개체가 최상급이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조금은 기대했었는데 이건 기대 이상이다.
‘시장에 내다 팔면 인생이 바뀌겠어. 진짜 로또야.’
모든 공격력과 방어력, 심지어 능력치 +1이라니…….
이 매개체가 경매장에 나타나면 돈 많은 부자들이 돈을 싸 들고 나타날 거다.
하지만 팔 생각은 없었다.
매개체를 업그레이드해서 호칭을 받아야 한다.
성현은 매개체를 품에 넣은 뒤 다시 아래로 향했다.
당장 매개체 두 개를 조합해서 업그레이드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래로 내려온 성현은 이태산 앞에 섰다.
그리고…….
“먹고 가자.”
“먹자니?”
“손톱.”
던전의 1층에서 손톱 짐승을 잡았다.
그 손톱을 달여 마시면 스피드가 올라간다.
다만 그 맛이 거지 같았고 몸에 흡수될 때까지 느껴야 할 복통은 참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니까 여기서 먹자는 거야. 밖에서 먹었다가 복통을 느끼는 순간에 습격이라도 당하면…… 너 죽어.”
이태산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반론하지는 못했다.
그의 직업은 해결사…… 위험과 함께했고 죽음이란 단어를 옆에 품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머리에 탄알이 뚫고 지나가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성현의 목소리가 나직이 흘렀다.
“그러니까 여기서 먹어. 곁에 있어 줄게.”
이태산은 조용히 성현의 표정을 살폈다.
‘또 저 표정…….’
이태산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한다는 표정, 그리고 믿을 수 있는 표정…….
‘왜 저러는 거지? 나한테 왜?’
저런 표정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성현과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물어봐도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고…….
잠시 생각에 빠졌던 이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서 먹지.”
복잡한 생각은 멈추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성현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태산이 가방에서 기다란 손톱을 꺼낸 후 물었다.
“이걸 어떻게 하면 되지?”
“일단 잘게 부숴 놓고 있어. 난 창고에 다녀올 테니까.”
창고에 들어온 성현은 주변을 살폈다.
창고에는 유통기간이 긴 조미료와 향신료 그리고 인스턴트식품과 물이 박스째로 놓여 있었다.
게다가 냄비와 솥단지, 심지어 프라이팬까지…….
던전에서 가장 심각한 상황은 무서운 짐승을 만났을 때가 아니다.
바로 길을 잃었을 때다.
나가지도 못하고 몇 달, 몇 년을 던전 안에서 보내야 하는 그때…….
음식과 조리 도구는 그런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거다.
성현은 냄비와 라면 그리고 물과 부싯돌을 들고 창고를 빠져나갔다.
다시 밖으로 나온 성현은 마른 나뭇가지를 찾아 한곳으로 모았다.
그 위에 휘발유를 뿌리고 가져온 부싯돌을 던졌다.
화르륵 불이 붙는다.
냄비에 물을 붓고 불 위에 올렸다.
“손톱은?”
이태산이 잘게 자른 손톱을 성현에게 건넸다.
성현이 손톱을 냄비에 넣으며 입을 열었다.
“손톱을 달인 물은 정말 맛이 없어. 그래서 라면과 함께 끓일 거야. 그래도 맛은 없겠지만……. 아, 고기도 넣을까? 맛이 없으면 식감이라도 좋아야지.”
성현은 맛없다는 말만 세 번을 반복했다.
얼마나 맛이 없으면 저러는지 몰라도 고기라는 말에 이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성현은 시선을 틀었다.
멀리 죽어 있는 고릴라가 보였다.
성현은 고릴라를 향해 걸어갔고 승려의 단검을 꺼내 허벅지 살을 발라냈다.
큼직한 고깃덩이가 나오자 그걸 손에 쥐고 다시 냄비로 걸어왔다.
“이계의 고릴라는 식감이 부드럽고 맛도 꽤 좋아. 보기엔 안 좋지만 눈 딱 감고 먹어 봐.”
이태산은 힐끗 솥단지를 바라봤다.
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데 물색이 걸쭉한 녹색이다.
냄새는…… 시궁창에 코를 박고 있는 것 같았다.
“저걸 먹어야 한다고?”
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라면 수프와 함께 얇게 썬 고깃덩이를 넣을 뿐이다.
냄새가 아주 조금은 좋아졌을 때, 이태산이 물었다.
“……날 어떻게 아는지 듣고 싶은데.”
“말했잖아, 네가 유명해서 잘 알고 있다고?”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이거나 먹어.”
성현이 쑥 내민 냄비를 보며 이태산은 한숨을 내뱉었다.
몇 번을 물어본다고 성현이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먹기나 해야지…….
그가 수저를 들며 말했다.
“색이 묘하군.”
이태산은 국물을 조금 떠먹었고 곧바로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걸 먹으라고!”
“몸에 좋은 약이 쓴 법이야.”
“하…….”
1시간 정도가 지났다.
이태산의 표정이 뒤틀려 있었다.
약효가 시작되며 끝없는 복통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고 몸은 바르르 떨렸다.
“끄읍.”
참으려 했지만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으며 꽉 쥔 주먹에서는 피가 떨어지고 있다.
성현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이태산을 바라봤다.
‘참아라.’
몸에 흡수되어 스피드가 올라갈 때까지 꾹 참아야 한다.
성현이 서동길이 준 독을 먹고 견뎠던 것처럼…….
지금 고통을 덜어 줄 방법은 없었다.
성현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주변에 접근하는 짐승을 때려잡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던전의 주인이 죽으면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던전 내부의 짐승이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그런 메시지는 없었다.
짐승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성현이 잡은 짐승만 2마리였다.
게다가…….
‘또 나타났어.’
또 송아지만 한 개미가 나타났다.
무슨 냄새를 맡고 왔는지 거대한 이빨을 딱딱 움직이고 있다.
‘도대체 왜?’
성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일단 해야 할 일은 저 개미를 죽이는 거다.
성현은 오미로 베루스에게 지시했다.
“죽여.”
오미로 베루스의 안광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덜그럭, 소리를 내며 개미에게 다가갔다.
-크르르르…….
성현은 오미로 베루스가 개미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며 다시 생각에 빠졌다.
‘클리어가 안 된 이유가…… 혹시, 저놈이 죽지 않아서?’
오미로 베루스의 혼은 망자의 세상으로 떠났다.
하지만 육신은 아직 죽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다.
‘그럼 이 던전의 주인은 여전히 저놈인 것인가?’
그리고 오미로 베루스의 주인은 성현이다.
‘설마…….’
성현은 입술을 쓸어 만지며 옛 기억을 더듬었다.
던전을 소유한 계약자가 있었는지 떠올리는 중이다.
하지만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원래 오미로 베루스를 소환마로 사용하던 오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하긴…… 던전을 소유하고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겠지.’
성현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어쩌면 이 던전을 소유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한번 해 봐?’
소환마는 성현이 부르면 장소가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
성현 역시 마찬가지, 인간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라면 소환마가 있는 곳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즉, 던전이 모습을 감춰도 성현은 이 던전에 들어올 수 있다.
‘이거 엄청난 이득인데…….’
그때 성현의 생각이 멈췄다.
드드드드, 땅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아서다.
성현의 눈동자는 진동이 시작되는 곳으로 향했다.
오미로 베루스와 싸우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
‘아, 저것도 있었어.’
이계의 알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 거대한 나무였다.
나뭇가지에는 박 같은 게 달려 있었고 저 안에 이계 생물이 있다.
사실 제물로 사용하려던 것이다.
하지만 제물의 역할은 한채윤이 대신했고 태어날 생물은 긴 삶을 살아가게 될 거다.
그리고…… 박이 ‘툭’ 떨어졌다.
앞으로 다가가자 계란처럼 깨진 박 안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껍질을 뜯어 주자 손바닥보다 작은 고양이가 보였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새끼 고양이가 성현의 손바닥에서 몸을 비비적거렸다.
색은 검은색, 아직은 새끼라 그런지 입을 뻐금뻐금 벌리며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이 참 귀엽다.
이계의 생물은 눈을 뜰 때까지 태어난 박의 속껍질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껍질을 뜯어 줬더니 냥냥거리며 잘도 받아먹는다.
그리고 기분이 좋은지 성현의 손가락에 자신의 볼을 싹싹 비볐다.
‘귀엽네.’
성현이 고개를 들었다.
오미로 베루스가 덜그럭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넌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 지내라. 그리고…….”
성현은 손에 있던 고양이를 오미로 베루스의 손에 넘겼다.
“잘 키우고 있어.”
직접 키우고 싶지만 지구의 고양이가 아니라 이계의 생물이다.
귀여운 외형을 갖고 있지만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몰랐다.
‘던전에서 키우는 게 오히려 안전하지.’
성현의 지시를 받은 오미로 베루스가 고개를 숙였다.
손에는 고양이를 소중히 안은 채로…….
-크르르르…….
이태산이 정신을 차린 것은 약 2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오미로 베루스는 제단 위로 올라갔기 때문에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태산의 몸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비명은 안 질렀네? 지를 줄 알았는데.”
이태산은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살폈다.
“확실히…… 스텟이 올라갔어.”
사실 긴가민가했다.
짐승을 먹어서 스텟을 올린다는 것은 들어 본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성현을 믿고 끔찍한 음식을 먹었고 조금은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이태산이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
“됐고. 정신 차렸으면 이만 가자.”
성현은 무심한 말투와 함께 가방을 챙겨 어깨에 걸쳤다.
던전을 빠져나온 것은 그로부터 3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하지만 밖의 시간은 달랐다.
고작 몇 분이 지났을 뿐이다.
그리고 던전의 출입문은 흙먼지가 되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이어서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그게 끝이었다.
처음부터 어떤 것도 없었던 것처럼…… 습지 공원에서는 가을철 풀벌레 소리만 들려왔다.
성현은 조용히 던전의 문이 있던 곳을 바라봤다.
‘고양이를 잘 돌보고 있어라.’
오미로 베루스에게 한 말이었다.
이제 이 던전이 다시 솟아나려면 성현의 지시가 있어야 할 거다.
속으로 인사를 전한 성현은 몸을 돌렸다.
그 뒤를 이태산이 따른다.
“어, 어디 가?”
“집에.”
“……집?”
“그럼, 집에 가야지.”
집에 가서 매개체를 업그레이드하고 호칭을 받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