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 * *
집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성현은 창고에서 커스터마이징을 받고 있었다.
오미로 베루스에게 두들겨 맞으며 코뼈와 광대뼈가 함몰되었고 치아가 2개나 빠졌기 때문이다.
성현의 몸을 감쌌던 밝은 빛이 사라졌을 때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끝났다. 그런데 무료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커스터마이징에는 약 3억 원의 돈이 든다.
아무리 존재라고 해도 매번 해 주기는 힘들었다.
“땡큐.”
성현은 거울을 바라봤다.
상처가 나았고 코뼈와 광대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괜찮네.’
그런데 성현이 거울을 바라볼 때 옆에서 덜그럭덜그럭 소리가 들려왔다.
창고에는 성현과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곳엔 오미로 베루스도 있었다.
놈이 라면 박스를 들더니 스르륵 사라졌다.
그리고 곧 빈손으로 나타났다.
이번엔 고추장을 들고 사라졌다.
그렇게 오미로 베루스는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성현의 지시를 받고 창고에 있는 상자를 던전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가 오미로 베루스를 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대는 던전을 창고로 이용하는구나.
“그렇게 됐어. 생각지도 못하게 던전 운영도 해 보게 생겼네.”
-던전 운영이라……. 던전을 지키기 위해 토벌대와 싸우는 상황도 오겠군.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는 뭐가 재밌는지 쿡쿡쿡 웃었다.
그리고 한참 후…….
성현은 품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오미로 베루스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양이가 잠에서 깨어 성현의 손을 핥을 때 마지막 박스를 들고 사라졌던 오미로 베루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성현의 앞으로 다가온 놈이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성현은 창고를 둘러봤다.
박스로 가득했던 곳인데 지금은 쾌적해 보였다.
“고생했어. 이제 던전에 가서 기다리고 있도록 해. 조만간 또 부르도록 하지.”
오미로 베루스는 그 지시를 따랐다.
덜그럭거리며 허리를 굽힌 후 고양이를 손에 들고 스르륵 사라졌다.
그렇게 창고에는 성현과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만 남았다.
지르힐이 입을 열었다.
-이제 호칭을 얻어야지?
“그래야지.”
성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테이블에 놓인 팔찌를 손에 들었다.
이번에 얻은 매개체였다.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가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설레지 않는가?
“뭐가?”
-호칭을 얻는 것. 인간들은 상당히 기대한다고 들었는데…….
“아마…… 굶주린 개가 나올 거야.”
-굶주린 개?
굶주린 개는 지난 삶에서 성현이 얻었던 호칭이었다.
특수 권능으로는 마력이 떨어졌을 때 휴대폰이나 자동차 배터리를 흡수해 사용하는 것…….
그래서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굶주린 개라니?
“그런 게 있어. 지켜보면 알 거야.”
성현은 더 입을 열지 않고 팔찌를 팔목에 착용한 후 마력을 담았다.
그러자 푸른빛이 일렁였고 원래 가지고 있던 반지 모양의 매개체가 부르르 떨려 왔다.
성현은 반지를 빼서 팔찌에 댔다.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매개체를 업그레이드합니다.
-존재의 권능을 20%까지 견딜 수 있습니다.
-모든 공격력이 10% 증가됩니다.
-모든 방어력이 10% 증가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1 됩니다.
이어서 지금껏 막혀 있던 권능 이해도가 쭉쭉 오르기 시작했다.
-권능 이해도가 10%가 되었습니다.
-권능 이해도가 10.1%가 되었습니다.
-권능 이해도가 10.2%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갑작스레 솟아난 힘에 심줄이 불거졌고, 손이 파르르 떨려 왔으며 근육이 뒤틀리는 느낌이 온 신경을 헤집었다.
‘아직은 참을 만해.’
성현은 곧바로 손끝에 전기를 모았고 모은 전기를 온몸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현의 신체는 권능을 담기에 그릇이 부족했고 파도처럼 밀려든 힘을 몸 안에서 해결하기는 무리였다.
‘라이트닝 볼!’
성현은 스킬을 사용해 마력을 소모하기로 했다.
곧 그의 손에서 라이트닝 볼이 솟아났다.
1개가 아니라 2개, 3개!
지금까지는 하나가 전부였는데 동시에 3개를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그것들은 성현의 몸을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쿨럭!”
성현의 입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
스킬을 사용했지만 힘은 소모되지 않았다.
댐이 무너진 것처럼 힘이 밀려오고 있었다.
‘뭐지?’
뭔가 이상했다.
지난 삶에서 호칭을 받을 때 당시는 이 정도 스킬을 사용 후 권능을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성현의 신체에 마력이 담기는 게 아니라…….
‘마력의 바다에 던져진 것 같잖아?’
막막할 정도로 거대한 힘에 잠기는 기분이었다.
이어서 성현의 머리가 정전기로 인해 뻗쳤고 몸 주변에서도 스파크가 튀었다.
창고 전체가 전기로 휘감기는 것은 금방이었다.
“크읍!”
그렇게 거대한 힘에 압사해서 의식이 날아가려 할 때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개체가 당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호칭을 얻을 자격을 얻었습니다.
-호칭의 대상을 찾아내십시오.
세상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위도 아래도 주변도…… 모든 것이 검었고 성현은 마치 검은 하늘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성현은 얼굴을 쓸어 만지며 주변을 살폈다.
이제 굶주린 개를 찾아 계약하면 그 호칭을 얻게 되는 거다.
그런데…… 어디를 봐도 굶주린 개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 삶에서는 가까이 다가와 꼬리를 흔들고 있었는데…….
‘어디 있지?’
그때 어둠 속 저 멀리, 몸을 웅크리고 있는 무엇인가가 보였다.
성현은 그곳을 향해 몸을 이동했다.
핏물이 뚝뚝 흐르는 검은 갑주를 입은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거인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거대했고 그 남자의 등에서 오싹할 만큼 섬뜩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가까이 다가가면 반드시 씹어 죽이겠다는 살기…….
성현은 다가서는 것을 멈추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남자를 지켜봤다.
‘이건 대체 뭐야?’
하지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갑주를 입은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확 돌렸다.
검은 투구에 숨겨진 눈이 시퍼렇게 빛나더니…….
-카아아아악!
성현은 남자의 눈동자를 통해 그의 과거를 볼 수 있었다.
남자는 피로 물든 강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신에게는 감정이 없어. 단지 피스를 움직일 뿐이야. 단순한 재미에 인간은 죽어 가지.”
피스, 체스의 말을 뜻하는 용어다.
그리고 남자의 말 대로였다.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신선이 백색 피스를 들어 옮겼다.
-피할 텐가, 싸울 텐가?
신선의 시선은 앞으로 향했다.
그곳엔 검은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여신이 앉아 있었다.
그녀가 검은색 피스를 들어 올리며 야릇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싸워야죠.
그녀는 손에 쥔 검은색 피스를 백색 피스 앞에 놓았다.
그러자 백색 피스와 검은색 피스가 만난 곳은 전장이 되었다.
수십만 명이나 되었다.
검은색 복식을 입은 사람과 흰색 복식을 입은 사람들은…….
마주한 그들은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를 위해!”
“신의 명령이다! 이단을 불태워 죽여라!”
“와아아아!”
그들은 서로의 신앙을 외치며 칼을 휘둘렀고 화살을 쏘아 댔다.
강물은 피로 물들었고 숲은 썩은 내가 가득했다.
패자는 시체가 되었고 승자는 악마가 되었다.
반항하는 소녀의 가슴에 창을 찌르며 낄낄낄 웃는 병사…….
건물에 갇힌 아기들이 살려 달라 외치는데 불을 지르는 병사…….
한 여자가 외쳤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요!”
하지만 악마가 된 신앙인은 그 목소리를 외면한다.
싹싹 비는 여자의 머리채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갈 뿐이다.
“죽기 전에 최고의 쾌락을 선물하지! 따라와!”
그곳에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검은 갑주를 입은 남자였다.
남자는 가차 없이 창을 휘둘렀다.
여자를 범하려던 군인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고 장난삼아 아기를 죽이던 병사의 심장에 창이 쑤셔졌다.
“기습! 기습이다!”
군인들이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고 남자는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신은 너희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에 죽어 있던 시체가 들썩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카아아아아!
시체가 칼을 쥐고 군인과 싸웠고 그렇게 죽은 자는 또 시체 병사가 되어 군인과 싸웠다.
이어서 하늘에서는 검은 비가 내렸다.
검은 비에 닿는 사람은 그대로 녹아 버렸다.
“끄아아악!”
“악마야! 악마! 살려 줘!”
하지만 비명은 잠시다.
곧 입까지 녹아 버리며 고통에 발버둥 치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수십만의 군인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살아남은 군인을 찾아 죽이고 또 죽였다.
아무도 없을 때까지…….
그리고 건물이 무너진 폐허, 검은 갑주를 입은 남자가 그곳에 섰다.
이제 이곳에 있는 생명은 남자밖에 없었다.
남자가 껄껄껄 웃는다.
그 목소리는 매우 허탈했고 허무했다.
이어서 남자의 초점 없는 눈이 허공을 향했다.
구름에 앉아 허허 웃으며 체스를 두고 있던 두 신이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여신의 붉은 입술이 움직인다.
-제법이네?
“제법이라…….”
그 목소리가 쓸쓸하게 들려왔다.
그가 들고 있던 창에서 핏물을 털어 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오늘 신을 죽일 거다.”
그게 끝이었다.
성현은 다시 어두운 공간에 있었다.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씁쓸한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난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 자네에게 부탁하지. 나 대신 신을 죽여 다오, 내가 그럴 수 있는 힘을 줄 테니…….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
성현의 눈동자가 떨려 왔다.
이계 시장의 꼬마가 몇 번이나 이야기했던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 남자가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였다.
성현은 남자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싶었다.
방금 봤던 그 과거는 무엇인지…….
신을 왜 죽여야 하는지…….
하지만 무리다.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잠깐!”
성현의 목소리만 어두운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
이어서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호칭이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로 결정되었습니다.
성현은 한숨을 내뱉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성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라…….’
호칭…… 계약된 존재와 연관된 호칭을 얻는 게 일반적이었다.
예를 들어 이전의 삶에서 성현이 얻었던 ‘굶주린 개’라는 호칭, 그것은 전기를 흡수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르힐과 연관이 있었다.
하지만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는 달랐다.
남자는 시체를 이용했고 알 수 없는 검은 비를 내리게 했다.
지르힐의 권능과는 상관없는 힘.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 그 힘을 내가 얻을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 힘에 지르힐의 권능을 더할 수 있다면?’
성현의 눈이 빛났다.
어쩌면 지연우보다 더 강해질 수도 있다.
성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온몸엔 식은땀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성현을 지르힐의 금빛 눈동자가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성현의 존재였고 성현이 어떤 호칭을 얻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라…….
“알고 있나?”
-알고 있어. 간단히 설명하자면 일부 존재들은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가 계약된 존재에게 엄청난 힘을 준다고 믿고 있지.
“엄청난 힘?”
-창조주의 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권능이다.
그런데 그 말을 내뱉는 지르힐의 금빛 눈동자에 욕망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성현이 지르힐을 알고 처음 느끼는 분위기였고 저 짙은 금빛의 눈동자는 이전의 삶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의 눈빛을 살피던 성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만약 창조주의 힘을 얻는다면 넌 뭘 하고 싶지? 하고 싶은 게 있나?”
지르힐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존재의 세상에 종말을 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