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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40화 (40/252)

40화

성현은 조용히 웃기 시작했고 지르힐이 물었다.

-왜 웃지?

“……존재의 세상에 종말을 내리고 싶다고?”

-그래, 우리는 억겁의 시간을 살아오며 존재의 이유를 잊었다. 남은 것은 인간과 같은 욕망……. 난 더 추해지기 전에 우리의 세상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거 마음에 드네.”

성현의 목표는 지연우다.

하지만 지연우를 죽인다고 해서 끝나는 일은 아니다.

지연우에게 지시를 내렸던 존재들의 단체 ‘교’가 남아 있다.

교는 어머니급 존재 여섯과 군주급 존재 일곱이 모여 만든 단체…….

군주 하나만 해도 지구를 박살 내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하니 그 단체의 힘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성현은 그들을 상대할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르힐이 말했다.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와 계약한 존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그리고 지르힐의 목표는 존재의 세상에 종말을 내리는 것.

성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목표…… 같이 이루도록 하지.”

그리고…….

까악…… 까악…….

까마귀가 우는 탑.

그 탑을 둘러싼 곳은 검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였다.

그 탑의 최상층에는 쇠사슬로 몸이 묶인 여성이 있었다.

발가벗겨진 여성의 몸은 흉터로 가득했고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가늘게 떨리는 그녀의 나체…….

그녀의 금발이 몸을 가리고 있지만 그녀의 나체를 본 사람은 누구라도 말할 거다.

완벽하다고…….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탄탄한 허벅지.

하지만 흑심조차 품을 수 없을 정도로 신성해 보이는 그녀…….

눈이 붕대로 묶여 한 치 앞도 바라보지 못하는 그녀가 깔깔깔 웃었다.

“목표를 ‘같이’ 이루자고?”

누군가가 그녀를 봤다면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웃는 얼굴은 진지했고 엄숙했다.

그녀가 읊조렸다.

“그날을…… 기다리지.”

-그날을 기다리지.

지르힐의 말에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도 좋아. 함께할 테니까.”

-믿어도 좋다?

“그래.”

성현은 단언했지만 인간이 존재의 세상을 박살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임 속 캐릭터가 밖으로 나와 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존재의 세상으로 갈 수 없다.

하지만…… 지르힐은 성현을 비웃지 않았다.

성현은 지금껏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예언에만 전해져 오던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그래서 뭔가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뭔가 해 줄 것 같은 느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기대하지.

그녀는 성현의 말을 믿고 싶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끝났다.

지르힐이 창고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선물을 보내지. 잠시 후에 확인하도록 하라.

“선물?”

-확인하면 알게 될 거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몸을 돌렸다.

잠시 후, 선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떴다.

도착한 것은 동그란 펜던트가 8개 달려 있는 금색의 얇은 체인 목걸이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온 메시지…….

-그대의 신체는 호칭의 권능을 사용하기에 아직 미약하다. 해서 이 목걸이를 선물한다. 펜던트는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는 제약이다.

호칭을 얻으면 24시간 후부터 그에 따른 마력이 들어온다.

그런데 성현이 얻은 호칭은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였고 그것은 지르힐의 권능과 연관이 없었다.

즉, 성현은 두 가지 권능을 갖게 된 거다.

‘자칫 통제할 수 없는 두 힘이 부딪쳐 폭주할 수도 있지.’

그래서 지르힐은 성현이 그 힘을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지 제약을 걸어 두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성현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땡큐.”

성현은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그리고 창고의 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연우의 이름부터 그 동료들의 이름이 빽빽이 적혀 있다.

성현은 터벅터벅 벽으로 다가갔다.

오진구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놈은 오미로 베루스의 원주인이며 강령술사.

지연우의 동료였으며 죽여야 할 대상.

어떻게 보면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와 비슷한 권능을 사용한다.

‘첫 사냥감으로 꽤 괜찮겠어.’

성현의 몸에 벌써부터 엄청난 힘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 힘이면…….

‘가능해.’

오진구는 좋은 스파링 상대가 될 것 같다.

물론 스파링의 끝은 오진구의 사망이 되겠지만…….

성현은 빙긋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 이름을 툭툭 두들겼다.

그날 밤부터 성현의 수련이 시작됐다.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가 가진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일단 작은 곤충부터…….’

성현의 손짓에 죽은 곤충이 꿈틀댔다.

2마리, 3마리…….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검은 비를 내리는 것까지는 무리였지만 검은 안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 * *

며칠 후…….

성현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시끄러웠다.

-어젯밤 새벽 3시, 부여군 일대에 짐승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1등급 이상의 짐승이 대거 출몰했으며…….

화면에 수십 미터가 넘는 매머드가 보였다.

놈이 걸을 때마다 세상이 쿵쿵 흔들리는 것 같다.

-대짐승 진압 부대가 토지 탈환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전투기가 떠오르는 게 보였고 곧 다량의 폭탄을 떨어졌다.

산이 불타고 일대는 초토화되었으며 짐승이 울부짖었다.

아무리 거대한 짐승이라도 인간의 첨단 무기에 찢겨 죽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승리의 공식은 아니었다.

인간의 물자에는 한계가 있지만 짐승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짐승을 쫓아내는 방법은 단 하나.

차원의 돌을 찾아 부수는 것.

그것은 반경 10km 일대를 이계와 같은 환경으로 변화 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돌의 주변에 짐승이 살 수 있었고 그 돌을 찾아 부수면 짐승의 등장은 멈추게 된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대짐승 진압 부대의 침투조가 진입했습니다. 부대장은 하루빨리 차원의 돌을 찾아 부순 후 땅을 탈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부대장은 자신 있게 인터뷰했지만 사실 인간이 승리할 확률은 희박했다.

어디에 처박혀 있을지 모를 차원의 돌을 짐승과 싸우며 찾아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다.

-임시 대피소에 방문한 대한당 윤환철 대표는 시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며…….

윤환철 대표는 천도리 던전에서 사망한 윤진영의 부친이었다.

그가 텔레비전에 모습을 드러낸 후 번지르르한 말을 지껄이고 있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줘야 한다.

국민이 편안해야 한다.

국민을 위하기는 개뿔…….

그 모든 말은 거짓이다.

희박한 확률로 토지가 탈환된다 해도 그 땅이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군사 지역이네 어쩌네…….

불발탄이 있을지도 모르네…….

국가가 이 토지를 사용하는 게 모두를 위한 것이네 저쩌네…….

정부는 갖은 변명을 지껄인 후 헐값으로 그 땅을 빼앗아 버린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땅은 정치인들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꿀꺽 먹어 버린다.

놈들이 부자가 되는 방법이다.

텔레비전에서는 계속해서 윤환철 대표를 집중했다.

그는 잠이 든 어린아이를 보며 눈시울을 닦는 중이다.

누군가는 윤환철 대표를 보며 인간적인 사람이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성현에게는 아니었다.

‘윤환철…… 네가 지연우라는 괴물을 만들었어.’

정치인들이 탐욕적으로 국민의 재산을 빼앗은 것, 그 뒤에는 윤환철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연우라는 괴물이 나타난 명분이 되었다.

‘네놈도 부숴 버릴 거다.’

그때…….

지이이잉.

성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서은서…….

-도착했어요.

* * *

“부여에 나타난 던전…… 거기 토벌권, 페이트 길드가 가져갔죠?”

집 근처의 커피숍이었다.

성현의 질문에 서은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 소문이 났나요?”

“뻔하죠.”

부여군에 짐승의 공격이 있었다.

전투가 벌어졌고 9개의 던전이 솟아났다.

“정부의 힘으로 9개나 되는 던전을 통제할 수는 없잖아요? 상황이 급하니 길드의 순위대로 토벌권을 뿌렸겠죠.”

성현의 말에 서은서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런데 왜……?”

“토벌대에 들어가고 싶은데요.”

서은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토벌대에 들어오고 싶다고?’

그녀는 성현이 예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뭔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성현이 나서면 반드시 어떤 일이 벌어지니까…….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토벌대에 넣어 드릴게요. 하지만…… 성현 씨의 이름은 사용하지 못할 거예요. 이유는 알고 있죠?”

성현은 고등학생이다.

낮은 등급의 던전만 들어갈 수 있고, 그것도 짐꾼으로만 참여가 가능했다.

이번 던전은 꽤 높은 등급, 당연히 미성년자는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서은서는 페이트 길드의 마스터 서문길의 막내딸이자 인사 팀장이다.

꼼수를 부릴 능력은 충분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름을 사용 못 한다는 것. 그러니까, 토벌에 성공해도 성현 씨의 업적에 도움될 일은 없다는 거예요. 괜찮나요?”

“상관없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어떤?”

“제가 들어갈 팀을 지정하고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어느 팀요?”

페이트 길드가 토벌권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토벌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이번 던전은 아무리 낮게 생각해도 A-급…….

적어도 300명의 인원이 필요했고 그 인원 전부를 페이트에서 채워 넣기는 무리였다.

혹시라도 그들이 전멸하면 길드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청을 줬고 용병을 모집했으며 계약자 연맹의 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에 성현이 원하는 팀은…….

“연맹 소속, 오진구의 팀에 들어가고 싶어요.”

“……오진구요?”

서은서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오진구는 강령술사이자 지연우의 동료, 그리고 지난 삶에서 오미로 베루스의 주인이었던 자다.

그리고 그는 이 바닥에서 미친놈으로 통한다.

연구를 위해 산 사람의 뇌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여기를 누르면 아파?’ 라고 묻는 사람이며 시체를 사랑하는 변태 새끼여서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도 경직된 시체가 미학적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미친놈.

서은서는 오진구의 성격과 평판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그래서 같이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성현의 눈빛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진구가 더 나쁜 놈이어도 상관없다는 표정이다.

‘또 뭘 예지한 건가?’

그녀는 낮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지?’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런데 오진구 씨는 우리 길드가 아니라 연맹 소속이에요. 그 팀에 합류하려면 직접 오진구 씨에게 허락을 받아야 해요. 제가 만남을 주선할 수는 있지만…….”

“그거면 충분해요.”

성현은 빙긋이 웃으며 찻잔을 손에 쥐었다.

* * *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음 날, 성현은 차이나 레스토랑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오진구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런데 성현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마치 도깨비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오진구…….’

성현과 오진구는 악연이 있었다.

함께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지만 놈에게 고문을 당한 적도 있다.

그러니까, 반역죄로 잡혔을 때였다.

성현은 당연히 오해였음이 밝혀져 조용히 풀려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얌전히 잡혔는데 그것은 멍청한 판단이었다.

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왔어? 지금부터 게임을 할 거야. 네가 자백하면 나의 승리. 끝까지 잡아떼면 너의 승리.

-난 네가 끝까지 참아 줬으면 좋겠어. 어떤 고문에서 가장 높은 데시벨로 비명을 지를지…… 궁금하거든.

그리고 놈은 역사에 기록된 모든 고문을 성현에게 가했다.

뼈를 조각내고 살을 뜯어내고 그 위에 벌레를 뿌리고 불을 피웠다.

그 기억이 떠오르기가 무섭게 성현은 지금 당장 오진구를 뜯어 죽이고 싶어졌다.

그리고 성현은 오진구가 기다리는 방 앞에 섰다.

직원이 입을 열었다.

“문을 열겠습니다.”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렸고 오진구의 모습이 드러났다.

원형 테이블에 앉아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싱글벙글 웃고 있는 새끼.

그놈을 보는 순간…….

‘죽여 주마.’

하지만 성현의 표정은 생각과 달랐다.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첫 번째 사냥감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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