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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41화 (41/252)

41화

* * *

중국 음식이 가득한 원형 테이블에 성현과 오진구가 마주 앉아 있었다.

오진구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말끔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계약자가 아니라 학자처럼 보였다.

오진구가 이력서를 보며 물었다.

“이름이…….”

“강진안입니다.”

강진안은 서은서가 만들어 준 가짜 신분증에 적힌 이름이었다.

“토벌 경험이 몇 번 안 되네?”

“천도리 던전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힘은 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허락해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진구가 이력서를 옆으로 치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페이트에서 보증을 선다면 경력을 볼 필요는 없지.”

“감사합니다!”

성현은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정말 기쁜 듯이…….

하지만 그런 성현을 바라보는 오진구의 표정은 싸늘하게 변해 있었다.

그가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픽 웃었다.

‘페이트도 별거 없어. 이런 새끼를 감시자로 보내다니…….’

대규모 토벌의 경우 여러 소속의 계약자가 함께한다.

그래서 유대감이 적었고 좋은 아이템이 나오면 몰래 꿀꺽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 보니 타 소속 계약자의 이기적인 플레이를 막기 위해 감시자를 보내기도 한다.

오진구는 성현이 페이트의 감시자라고 확신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들기며 차가운 눈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뭐, 상관없지. 때를 봐서 죽이면 되니까.’

오진구는 성현을 우습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오진구에게 감사를 표하며 고개 숙인 성현의 표정은…….

오진구를 산 채로 씹어 먹을 것처럼 잔혹했다.

* * *

부여군 일대의 분위기는 처참했다.

아이들이 다슬기를 잡던 하천에는 시체가 둥둥 떠다녔고 사람들의 비명과 짐승의 울부짖음이 쉬지 않고 들려왔다.

그리고 페이트 길드의 집결지로 선택된 중학교 운동장에 버스가 멈춰 섰다.

내린 사람들은 짐꾼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생김새는 천도리 던전의 짐꾼들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당시 천도리 던전은 고등학생 위주였지만 이번 던전은 베테랑이 아니면 뽑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짐꾼인데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고 얼굴은 흉터투성이, 쉽게 다가서기 힘든 인상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앞으로 장사꾼들이 몰렸다.

“멀티툴 있습니다. 3만 원!”

“전자시계 1만 원! 항상 시간을 확인하세요!”

“백숙 드시고 가세요! 든든하게 먹어야 일도 잘되는 법입니다!”

“계좌 이체 가능합니다!”

장사꾼들은 무섭게 생긴 짐꾼들을 둘러싸고 갖가지 물건들을 들이댔다.

같은 시각, 오진구는 운동장의 구석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의 제목은 ‘고문의 기술’, 제목처럼 어떤 고문이 효과적인지 정리된 책이었다.

내용은 물론 인쇄된 사진도 잔인하고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하지만 오진구는 진지한 얼굴로 책장을 넘겼다.

마치 심오한 책을 보는 것처럼…….

그리고 오진구의 옆에는 남녀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오진구의 팀원이자 오른팔, 왼팔로 일컬어지는 주황덕과 이지은이었다.

주황덕이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낄낄거리자 이지은이 한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건 왜 샀어?”

“부러우면 너도 사. 이게 생존 팔찌야. 호루라기도 있고 나침반도 있고 이 끈은 파라코드라고 하는데 이게 뭐냐 하면…….”

“그래서 얼만데?”

“3만 원.”

이지은이 휴대폰을 들고 ‘생존 팔찌’를 검색해 봤다.

그리고…….

“그거랑 똑같은 거 여기는 8천 원인데?”

“얼마?”

“8천 원.”

화면과 팔찌를 번갈아 보던 주황덕의 인상이 확 찌그러졌다.

“저 장사치 새끼, 죽여 버릴까?”

“참아, 참아.”

조금은 가볍게 보이는 언행이었지만 이들은 A급 이상의 던전을 스무 번 이상 클리어한 베테랑이었다.

비록 국내 100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이들의 실력은 랭커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소문나 있다.

이지은이 주황덕의 어깨를 토닥이며 오진구에게 시선을 돌렸다.

“팀장님, 그런데 우리를 감시하러 오는 놈이 누구라고 그랬죠?”

오진구가 책을 덮으며 시선을 틀었다.

“누구?”

“우리 감시하러 오는 놈이요.”

“아, 강진안이라고 있어.”

강진안, 성현의 가짜 신분증에 적힌 이름이었다.

이지은이 그 가짜 이름을 몇 번 중얼거렸다.

“강진안…… 강진안…….”

그러더니 깔깔깔 웃는다.

“불쌍해서 어쩌죠? 던전이 무덤이 되게 생겼는데…….”

“조용히 말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주황덕이 인상을 썼지만 이지은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뭐 어때? 다 죽일 건데.”

“다 죽이는 거 아니라고! 절반만 죽일 거라고!”

“네 목소리가 더 크거든? 그리고 난 하면 하고 아니면 아니야. 절반만 죽일 거면 왜 죽여? 다 죽여야지.”

“야!”

그때 오진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온다.”

그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막 도착한 버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렸고 그중에 성현이 있었다.

마트에서 구매한 가벼운 트레이닝복 그리고 값싼 가방, 역시 값싼 모자…….

물끄러미 성현을 바라보던 이지은이 “풉!” 하고 웃었다.

“팀장님, 쟤 맞아요?”

“어.”

“정말?”

“그래.”

“저런 거지 같은 애랑 우리를 붙였다고요? 페이트가 미쳤네요. 우리가 아무리 전력을 숨기고 있다고 해도 저런 놈을 감시역으로 붙이다니…….”

주황덕도 고개를 저었다.

“죽이기도 미안하게 생겼네.”

그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어느새 성현이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오진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여기는 이지은, 주황덕. 그리고 나머지 팀원들은 저 뒤에 있으니까 차차 인사하도록 해.”

이지은이 활짝 웃었다.

그 미소는 방금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다.

친근하고 맑은 미소, 누구에게나 호감가는 귀여운 얼굴로 변해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마, 반가워요. 이지은이라고 해요. 이름이? 나이가?”

완벽한 연기였다.

웃는 얼굴 속에 칼을 숨기고 성현의 심장을 찌르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하지만 그것은 성현도 마찬가지였다.

완벽한 초보의 얼굴을 보이며 조금은 멋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강진안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성현은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을 꺼내 마시며 힐끗 그들을 살폈다.

이지은도 성현을 보고 있었는지 눈이 마주쳤다.

성현이 생긋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이지은, 주황덕…… 너희도 있었구나.’

저 두 사람은 오진구의 부하였다.

오진구의 지시라면 어린아이라도 죽이려는 자들…….

회귀 전 성현은 오진구뿐만 아니라 저들에게도 고문을 받았었다.

똑같은 대상을 고문하는 것에 질린 오진구가 주황덕에게 성현을 넘겼고 마지막에는 이지은이 들어왔다.

놈들은 성현을 장난감으로 여겼다.

그리고 온갖 끔찍한 행위를 모두 저질렀다.

구악의 멤버들이 살려 주지 않았다면 성현은 그때 이지은의 손에 죽었을 거다.

정신병에 걸렸을 수도 있고…….

성현이 고개를 숙이고 끌끌끌 웃었다.

‘오진구만 사냥하려 했는데…….’

먹잇감이 단체로 굴러들어 왔다.

성현의 눈빛이 시퍼렇게 변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을 이어 가던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 계획에는 이지은이 필요하지.’

성현은 저들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놈들의 목표는 던전 클리어가 아니다.

놈들은 토벌에는 관심조차 없다.

‘던전에 들어간 사람을 절반 이상 죽일 생각이지.’

그것 역시 지연우의 계획이었다.

바로 계약자 등록제 때문이다.

계약자 등록제란 계약자의 몸에 칩을 심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법.

정부는 계약자를 억압해서 연맹의 세력 형성을 억제하려 한다.

새로운 세력의 등장은 기존 세력의 몰락을 뜻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권력 싸움이었고 지연우와 연맹은 계약자 등록제를 반대하는 중이다.

하지만 여론도 정부의 편에 손을 들어 줬다.

인간의 힘을 뛰어넘은 계약자가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 일반 사람들의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국민이 법안을 찬성한다며 연맹을 압박하고 있다.

지연우는 결국 극단적인 계획을 세웠다.

‘바로 동정론이지.’

던전에 들어간 계약자 중 절반 이상이 사망하면 세상은 추모 열기로 가득해진다.

그럼 사람들의 인식 역시 변화할 거다.

-우리를 도와주는 계약자를 왜 테러리스트처럼 관리해야지?

여기까지 생각한 성현이 차갑게 웃었다.

‘원래의 역사라면 이번 일은 지연우의 승리로 끝나지.’

하지만 역사는 뒤틀렸고 ‘원래’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역사대로라면 요양 병원 앞에 전갈이 나타났을 때 지연우의 인기가 폭등했어야 했다.

지연우는 그 인기를 등에 업고 이번 던전의 추모 행사로 쐐기를 박았을 거다.

하지만 요양 병원 사건은 흐지부지됐다.

이번 일 역시 마찬가지가 될 거다.

‘지연우의 마음대로 되지 않을 거야.’

성현은 조용히 웃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오진구에게 향했다.

‘이번 던전에서 지연우의 충견 하나를 없앤다.’

* * *

해가 떨어졌다.

페이트 길드의 길드원과 짐꾼 그리고 용병과 연맹 소속으로 이뤄진 300명이 던전으로 향했다.

각 방송사의 카메라가 집중되었고 리포터들은 쉬지 않고 입을 열었다.

-지금 페이트 길드의 토벌대가 던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토벌대장은 이수남 부장으로 홍천과 원주 던전 토벌이 대표적이며 반드시 토벌에 성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300명의 인원이 모두 던전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시커먼 문이 끼기긱,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쿵!’ 하고 닫혔다.

“일단 정지!”

토벌대장의 목소리에 토벌대는 걸음을 멈췄다.

던전 내부는 정글이나 동굴이 아닌 도시의 형태였다.

수십 층의 빌딩들이 즐비했고 아스팔트 역시 곧게 뻗어 있었다.

“여기서 살아도 되겠네.”

누군가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반론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은 그만큼 현실과 비슷했다.

그리고 토벌대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팀장 집합!”

곧 10명의 팀장이 토벌대장의 앞에 섰고 그중에는 오진구도 있었다.

토벌대장이 입을 열었다.

“선발대는 이 도시의 끝에 있는 병원에 던전의 주인이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던전에 들어왔으면 밖에서 세운 계획을 현장에 맞게 뜯어고쳐야 한다.

책상머리에서 생각한 계획과 현장은 언제나 다른 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 15분 후에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작전명령이 끝났다.

오진구는 몸을 돌려 자신의 팀으로 향했다.

그의 팀원은 총 12명.

그런데…… 10명만 있었다.

오진구가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이지은이랑 그 감시자는 어디 갔어?”

주황덕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은이요?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요?”

“왜 불렀죠?”

토벌대가 모인 곳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건물의 2층, 텅 빈 공간에는 짐승의 사체만 가득했다.

그곳에 성현과 이지은이 있었다.

성현의 표정을 살피던 이지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할 말이 있다며 따로 보자고 하던 성현이었다.

그런데 지금 얼굴은 어리바리하지 않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서늘한 눈빛이다.

결국 그녀의 눈빛도 냉랭하게 변했다.

“부른 이유가 뭐냐니까?”

“그거.”

성현이 손가락으로 그녀의 목을 가리켰다.

그녀가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이거?”

“애들 이빨 맞지?”

그녀의 목걸이는 10세 이하 아이들의 송곳니를 엮어 만든 것이었다.

물론 그 아이들을 죽인 것은 이지은 본인이었다.

그녀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싱그럽게 웃었다.

“혹시…… 이 애들하고 아는 사이? 그럼 봐 봐. 이 가죽 팔찌도 아이들의 피부를 엮어 만든 거야. 난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항상 곁에 두고 싶거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이 애들은 항상 나와 함께 있을 거고 아이들도 좋아할 거야. 외롭지 않으니까…….”

성현이 끌끌끌 웃기 시작했다.

“고맙다.”

이지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고마워?”

“걱정했어, 혹시 지금은 착한 사람이면 어쩌나 하고…….”

“뭐?”

“그런데 정말 고맙게도 나쁜 사람이었네.”

“뭐라는 거야!”

“이제 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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