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이지은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던 그녀가 눈물까지 닦으며 입을 열었다.
“미치겠네……. 이제 내 차례라고?”
“어.”
그녀가 고개를 끄덕끄덕, 뒷짐을 지고 성현의 주변을 걸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성현을 살핀다.
“페이트에서 감시자를 보낸 게 아니라 킬러를 보냈던 거야? 그런데 너, 스텟 평균이 얼마나 되니? 권능 이해도는? 딱 봐도 이제 막 호칭을 얻은 것 같은데……. 겨우 그 정도로 나를 죽이겠다고? 차라리 내가 잠을 잘 때를 노리지 그랬어? 그랬다면 확률이라도 있지. 이건 너무 미련하잖아? 자살하고 싶은 거야?”
“……많네.”
성현이 뭐라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 한 거야?”
“……주절주절 말이 많다고.”
그 말과 함께 성현의 주먹이 그녀의 얼굴에 꽂혔다.
뻐억!
느닷없이 얼굴을 맞은 그녀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 새끼…….”
그녀의 눈살이 찌푸려질 때 성현의 손에 스파크가 파직거렸고 둥실, 라이트닝 볼 3개가 허공에 떠올랐다.
“전기 능력자?”
“어.”
라이트닝 볼이 그녀를 향해 쏘아졌다.
그녀가 몸을 틀어 성현의 공격을 피했다.
쾅! 쾅! 쾅!
라이트닝 볼은 벽에 처박혔고 이지은은 썩은 미소를 지었다.
“겨우 이 정도로 나를 죽이겠다고? 아가야…… 내가 약속 하나 할게. 네가 죽으면 그 피부를 벗겨서 짐승에게 던져 주지. 네 피부와는 함께하고 싶지 않거든!”
그녀가 품에서 단검 2개를 꺼내 양손에 쥐었다.
단검의 날이 시퍼렇게 빛났다.
‘도살자의 검.’
저 단검에 수백 명의 아기들이 죽었고 회귀 전 성현의 허벅지 살을 발라내던 검이기도 하다.
그녀가 혀를 할짝거리며 성현을 향해 튀어 나갔다.
파아아앙!
순식간에 다가온 그녀가 단검을 휘둘렀다.
성현은 뒤로 물러서며 공격을 피했지만 단검은 2개다.
하나의 공격이 끝났다고 끝이 아니다.
부아아악!
또 다른 검이 성현의 뺨을 스쳤고 그 피가 그녀의 얼굴에 튀었다.
그녀가 히죽 웃었다.
“아쉽네, 조금만 깊었으면 머리를 날려 버릴 수 있었는데. 그런데 너 그거 아니? 난 아직 권능도 사용하지 않았어. 그런데도 너를 몰아붙일 수 있는데, 권능까지 사용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궁금하지? 확인해 볼래?”
그녀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일렁였다.
이내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 날카로운 고드름이 가득 맺혔다.
그 크기가 사람만 하다.
저게 떨어지면 얼음의 끝에 몸이 관통되어 죽을 것이다.
천장 전체에 걸쳐 수백 개가 만들어졌기에 피할 곳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깔깔깔 웃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지? 그냥 뒈져, 이 새끼야!”
그 말과 함께 고드름이 일제히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쾅!
고드름이 박힌 건물 바닥은 금이 쩍쩍 갔고 성현은 고드름을 피할 수 없었다.
부서진 얼음덩이 안에 파묻혔다.
이지은이 방긋방긋 웃으며 성현이 있던 자리로 천천히 걸어갔다.
“죽었을 확률이 90%. 하지만 살아남았다 해도 전투 불능 상태. 그런데 난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산 채로 가죽을 뜯는 것도 재밌지만 다 큰 남자의 비명, 살려 달라고 비는 눈물은 정말 짜증 나.”
얼음 앞에 선 그녀가 손을 위로 뻗었다.
그러자 ‘드드드’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이 옆으로 치워졌다.
그런데…….
“어?”
낯선 무엇인가가 보였다.
거대한 백골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거대한 백골이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불사의 존재 오미로 베루스였다.
얼음이 떨어져 내린 순간 성현은 오미로 베루스를 소환했고 방패로 사용했고.
-크르르르…….
오미로 베루스의 눈이 이지은을 향했다.
이지은의 눈이 황당하게 변했다.
“저, 저게 뭐야?”
오미로 베루스의 키는 약 3m.
그 덩치도 만만찮다.
적어도 던전의 주인급으로 보인다.
지금 시점에 저 정도의 소환마를 데리고 있는 사람은 성현뿐이었다.
그녀는 저런 게 있다는 소문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오미로 베루스의 뒤에서 성현이 나타났다.
“뭐냐고? 내 소환마지.”
“소환마?”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낀 이지은이 다급히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에 날카로운 고드름 9개가 둥실 떠올랐다.
“죽어!”
그 고드름이 미사일처럼 성현을 향해 날아갔다.
쐐애애애액!
하지만 성현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오미로 베루스가 성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콰쾅!
고드름은 그대로 오미로 베루스의 몸에 처박혔고 성현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게다가 고드름에 맞아 부서진 오미로 베루스의 갈빗대가 금세 재생되고 있었다.
이지은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고 성현을 이길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뭐야, 넌 뭐냐고!”
성현이 그녀의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네가 궁금해야 하는 것은 내가 누군지가 아니야. 첫 사냥감으로 널 선택한 이유지.”
“뭐? 사냥감?”
“그 이유는 세 가지. 하나는 네가 가진 그 도살자의 검.”
그녀의 단검은 성현이 가진 승려의 단검과 조합이 가능한 아이템이었다.
조합에 성공하면 훨씬 더 강한 무기를 손에 얻을 수 있다.
성현이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네가 가지고 있을 해독제.”
“……해독제?”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해독제를 알고 있다는 것은 성현이 그들의 계획을 알고 있다는 뜻.
“안 돼…….”
그녀는 성현이 페이트 길드의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성현이 그 계획을 알고 있다면 당연히 페이트 길드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막아야 해.”
이지은이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서 오진구를 만나 계획이 틀어진 것을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이곳이 그들의 무덤이 되고 말 거다.
오진구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A급 계약자 수백 명을 상대할 수는 없다.
그녀가 비상구의 문으로 달려가는데 머리가 반쯤 파인 곰이 비상구를 막고 있었다.
‘어?’
그것은 분명 이 건물에 있던 짐승의 사체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너, 전기 능력자 아니었어?”
시체를 움직이는 것은 강령술…….
두 가지 능력을 가진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곰의 사체가 그녀를 향해 쿵쾅쿵쾅 달려왔기 때문이다.
일단 피해야 한다.
그녀는 몸을 빙글 돌렸다.
‘창문이야! 창문으로 뛰어내리면 돼!’
다행히 이곳은 2층이었고 큰 부상 없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성현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창문으로 가는 길에는 오미로 베루스가 서 있었고 놈의 주먹이 그녀의 얼굴에 꽂혔다.
콰직!
* * *
성현은 건물의 기둥에 기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이지은에게 당했던 고문이 떠올랐다.
짜악! 짜악!
채찍이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지은은 성현의 등을 향해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그리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다가와 핏물이 흐르는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었다.
“그거 알아? 난 중년의 남자가 정말 싫어. 냄새나거든……. 더럽고, 재수 없고…….”
그녀가 혓바닥으로 성현의 등을 핥았다.
“그래서 널 괴롭힐 거야.”
조금이라도 인상을 쓰면 사정없이 뺨을 때렸고, 제공되는 식사는 바닥에 쏟았다.
그리고 성현의 머리를 발로 밟으며 말했다.
“개처럼 핥아먹어. 넌 귀여운 개니까.”
옛 기억을 떠올리던 성현이 미간을 찌푸릴 때…….
“……으음.”
작은 신음 소리에 성현이 고개를 돌렸다.
의자에 묶인 이지은이 깨어나고 있었다.
실눈을 뜬 그녀가 성현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날 어떻게 하려는 거지?”
“죽일 거다.”
간단한 답.
이지은은 포기한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성현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쉽게 죽이려 했다면 네가 의식이 없었을 때 죽였을 거야. 지금껏 살려 둔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
“뭐지?”
“첫 사냥감으로 널 선택한 것에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어. 하나는 네 단검, 두 번째는 해독제, 세 번째는…….”
“세 번째는?”
“네 시체다.”
“내 시체?”
“너희는 환각의 가루를 사용할 계획이지.”
오진구는 환각의 가루를 사용해 계약자끼리 서로 싸우게 하려 한다.
환각의 가루는 다른 사람을 짐승 또는 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당사자는 죽을 때까지 무기를 휘두를 거다.
가장 빠른 시간에 절반의 인원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성현은 이미 그 계획을 알고 있었다.
“네 시체가 그 전장에 참여할 거야.”
“……!”
성현은 강령술을 사용할 수 있다.
즉, 그녀의 시체를 움직일 수 있다.
성현이 몸을 낮춰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황덕이 너를 공격할 수 있을까?”
“하지 마…….”
“네 손톱은 주황덕의 심장을 뜯어낼 거야.”
그녀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그녀와 주황덕은 사랑하는 사이다.
비록 서로 고백한 연인은 아니지만 감정은 느낄 수 있었다.
티격태격하며 지내 온 세월이 사랑을 쌓았으니까.
“하지 마!”
성현이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툭 건드렸다.
“이 아이들도 그렇게 말했을 거야. 하지 말라고, 살려 달라고…….”
그녀가 다급히 변명했다.
“뭔가 오해하는 게 있는데, 이 아이들은 행복해! 영원히 내 소유가 된다는 것에 기뻐하고 감사했어! 이 아이들은 죽은 게 아니야! 내 가슴속에 살아 있는 거지! 그러니까 난 잘 못이 없어! 잘못은 이 아이들을 버린 그 엄마, 아빠에게 있는 거야! 난 아이들에게 애정을 준 거야!”
“그래, 그럼 나도 애정을 주지.”
“뭐?”
그 순간 성현이 그녀의 손가락을 잡고 반대로 꺾었다.
우드드득!
“끼아아아악!”
“실망이네, 고작 이 정도로 비명을 지른다고?”
“하지 마, 하지 마! 제발…… 살려 줘.”
“지금껏 네가 아이들에게 했던 것. 똑같이 해 주지. 그러니까 기뻐하고 행복해라. 내가 네 이빨을 뜯어 영원히 보관해 주마.”
“이 아이들은 행복해했다니까!”
“너도 행복해해라.”
“싫…… 싫어, 싫어!”
하지만 성현은 봐주지 않았다.
우드드득!
“꺄아아아악!”
* * *
“지은이는 괜찮겠죠?”
토벌대는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주황덕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고 오진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새를 못 참고 그놈을 죽이러 갔을 거야. 살인 중독이잖아……. 곧 웃으면서 가죽 팔찌를 만들었다고 자랑하면서 나타나겠지.”
“살인 중독이기는 한데, 그 대상이 어른은 아닌데…….”
“항상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 가끔 반찬도 필요하지.”
“……그렇겠죠?”
“그래,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하지만 주황덕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초보 하나를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닌데 몇 시간이나 돌아오지 않는 게 걱정돼서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오진구가 말을 이었다.
“그놈이 도망이라도 쳤나 보지. 아무리 벌레 같은 놈이라도 도망치면 시간이 걸리잖아. 게다가 이곳은 도시야. 숨을 곳도 많고 도망칠 곳은 더 많지.”
“……네.”
주황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이지은이 성현에게 당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팀원들한테 슬슬 해독제를 나눠 줘. 중심부로 이동하면 바로 시작할 거니까. 지은이는 해독제를 가지고 있지?”
“아, 네.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나눠 줬습니다.”
“그럼, 준비하자고.”
오진구는 품에 있는 검은 봉지를 만지작거렸다.
그 안에 환각의 가루가 들어있다.
이 가루가 뿌려지면 계약자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할 거다.
* * *
그 시각…… 성현은 창고에 있었다.
던전에서는 창고에 들어가는 게 제한된다.
하지만 그것은 전투 중이거나 위험에 처해 있을 때다.
지금은 어떤 위험도 없었고 자연스레 창고에 들어올 수 있었다.
성현은 자신의 손을 살폈다.
이지은이 사용하던 도살자의 검과 승려의 단검이 보였다.
‘승려와 도살자라…….’
불필요한 살생을 금하는 승려와 살생을 업으로 하는 도살자는 극단적인 위치에 존재한다.
하지만 극단적인 것이 잘 맞는다고 도살자의 검과 승려의 단검은 꽤 괜찮은 조합의 재료였다.
성현은 금고를 연 후에 들고 있던 검을 모두 집어넣었다.
그리고 ‘텅!’ 하고 문을 닫았다.
곧 금고의 틈으로 빛이 새어 나왔다.
조합되는 중이다.
‘성공? 실패?’
조합은 도박과 같다.
성공하면 꽤 괜찮은 성능의 아이템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소멸될 수도 있다.
잠시 후, 새어 나오던 빛이 멈췄다.
‘어떻게 됐을까?’
성현은 금고의 문을 열었다.
무엇인가가 보였다.
그런데 단검의 모양이 아니다.
‘손도끼?’
성현은 손을 뻗어 손도끼를 손에 들었다.
[낡은 손도끼]
착한 나무꾼이 사용하던 것으로 금이나 은보다 더 큰 값어치가 있다고 전해진다.
-낮은 확률로 방어력을 무시할 수 있다.
-낮은 확률로 꼬리가 아홉 달린 늙은 여우를 소환할 수 있다.
-스킬 공격력 +5%
-모든 능력치 +1
손도끼를 손에 쥔 성현의 눈이 커졌다.
원래 가지고 있던 권능까지 그대로 이어지다니…….
‘이거 대박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