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 * *
“으아아악!”
한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화살을 쏘아 댔고 그 화살은 정확히 난쟁이의 미간에 꽂혔다.
-키엑!
난쟁이는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하지만 남자의 눈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짐승은 난쟁이가 끝이 아니었다.
그곳엔 좀비도 있었고 고릴라도 있었으며 다리가 수백 개 달린 벌레도 보였다.
“그만, 그만!”
그리고 그의 앞으로 좀비 1마리가 어기적어기적 다가오고 있었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남자는 시뻘건 눈으로 좀비를 노려보며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 댔다.
하지만 좀비는 능숙하게 화살을 피하고 칼로 쳐 낸다.
그러다가 화살이 모두 소모되었다.
남자는 뒤로 물러섰다.
“누구 없어! 사람 살려!”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남자는 혼자였다.
그러니까, 그가 혼자가 된 것은 토벌대가 도시의 중심부에 들어왔을 때였다.
갑자기 짐승이 나타났고 계약자들은 짐승과 싸우며 뿔뿔이 흩어졌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 구석으로 몰렸고 결국 토벌대의 곁에서 낙오됐다.
‘도대체 얼마나 떨어진 거야?’
토벌대의 본진과 얼마나 멀어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꽤 멀리 떨어진 게 분명하다.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검을 꺼내 들었다.
“쉽게 안 죽어!”
남자의 검에서 시퍼런 기운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력을 사용하는 것은 남자만이 아니었다.
좀비의 칼에서도 마력이 일렁였고 곧 검은 기운이 솟구쳤다.
남자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던전의 주인도 아닌데, 마력을 쓴다고?”
남자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설 때, 좀비가 남자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남자는 피하려 했지만 무리였다.
푸욱!
남자의 가슴에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혼자는 안 죽어, 이 새끼야…….”
남자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캡슐 하나를 꺼냈다.
반경 10m를 날려 버리는 자살 폭탄이었다.
“같이 죽자, 이 새끼야!”
남자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그런데 앞에 선 좀비의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흉측한 얼굴에서 그의 동생으로…….
“여, 영중아?”
동생의 표정은 참담했다.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얼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칼을 들고 있다.
그와 싸우던 것이 좀비가 아니라 동생이었던 거다.
남자는 자신이 환각 속에 있던 것을 깨달았다.
남자가 다시 외쳤다.
“영중아!”
하지만 그 목소리는 동생에게 닿지 못했다.
“제발 죽어!”
동생은 칼을 휘둘렀고 그게 끝이었다.
퍽!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오래 걸리네요.”
5층 건물의 옥상이었다.
그곳에서 10명의 사람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진구와 주황덕 그리고 그들의 팀원이었다.
그들이 내려다보는 곳에는 계약자끼리 싸우고 있었다.
서로 칼을 휘두르고 활시위를 당겼으며 스킬까지 사용해 죽이고 또 죽였다.
“죽어!”
“누구 없어?”
“으아아악!”
저들은 오진구가 가져온 환각의 가루를 흡입했다.
그래서 착각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본진과 떨어졌고 짐승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들이 베고 쏘는 대상은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있다.
저 지랄맞은 환각에서 깨어나는 방법은 단 세 가지뿐이다.
해독제를 먹거나 칼에 찔려 정신이 번쩍 들거나…….
‘또는 시간이 지나거나.’
오진구는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환각의 상태가 된 지 1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도망치는 사람도 많았고 계약자들의 실력이 비슷비슷해서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지금껏 고작 20여 명 죽은 게 전부다.
그것도 대부분 짐꾼이다.
‘남은 시간은 약 2시간.’
저러다가 약효가 떨어지고 제정신을 차리면 놈들은 환각 상태를 대비하게 될 거다.
‘대비책은 어렵지 않아.’
손가락으로 간단한 표식을 만들면 된다.
서로가 짐승처럼 보여도 상대에게 약속된 표식을 보이면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고 싸우지 않을 수 있다.
그럼 저 인원의 절반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다.
오진구가 고민으로 가득한 표정으로 턱을 매만졌다.
‘그 전에 끝내야 해. 어떻게 해야 하지?’
한참을 고민하던 오진구가 입을 열었다.
“버서커의 가루 있지?”
버서커의 가루는 마약의 일종이다.
팔이 잘리고 내장이 흘러도 그 고통을 쾌락으로 받아들이며 죽을 때까지 싸움을 이어 간다.
오진구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뿌려.”
주황덕의 품에는 버서커의 가루가 있었다.
하지만 그 용도는 최후의 순간을 대비한 거다.
“그런데 그걸 지금 뿌리라고요?”
“어.”
오진구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주황덕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종이 약봉지를 꺼냈다.
그 안에는 버서커의 가루 1g이 들어 있다.
양은 적지만 12명을 버서커로 만들 수 있으며 가격만 해도 수억 원,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끝까지 망설였다.
“팀장님, 마지막에 써야 할지도 모르는데…….”
“이번 작전은 이곳이 끝이야. 저놈들의 숫자가 반으로 줄면 곧바로 퇴각할 거야.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짐승은 거의 없었어. 나갈 때도 똑같을 거야. 산책이나 하며 돌아가는 거지. 그러니까…… 이번 던전에서 버서커의 가루를 쓸 일은 없다는 거지.”
오진구가 주황덕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황덕아…… 우리 같이 성공하자. 딱 150명만 죽이면 연맹의 요직에 넣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어. 너도 어서 자리 잡아야지. 내가 도와줄게.”
“요직이요?”
“그래, 같이 가자.”
오진구의 말에 주황덕의 시선이 버서커의 가루로 향했다.
사실 그는 이 약을 이곳에서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요직에 올려 준다는 말 따위는 믿지 않았다.
약속은 문서에 도장을 찍었을 때에나 믿을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아직 지은이가 돌아오지 않았어.’
이곳은 던전이다.
몇 시간이나 소식이 없다는 것은 불길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어서 일을 마치고 그녀를 찾아봐야 했다.
‘그래, 쓰자.’
주황덕이 약봉지를 뜯으며 중얼거렸다.
“윈드 블로.”
곧 바람이 불어왔고 버서커의 가루가 흩날렸다.
가루는 오진구가 지정한 사람들의 앞으로 이동했다.
정확히 12명.
가루를 흡입한 그들의 눈이 시뻘겋게 변했고 온몸의 심줄이 터질 것처럼 솟아났다.
그리고 그들이 주변의 동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베고 또 베고…….
서로가 짐승으로 보이는 상태였기 때문에 죄책감은 없다.
게다가 살인의 쾌락은 환상적으로 다가왔고 그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더 거칠게 칼을 휘둘렀다.
그때…….
쿵! 쿵! 쿵!
묵직한 발소리가 도로를 울렸다.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백골, 오미로 베루스가 서 있었다.
환각 상태였지만 짐승은 짐승으로 보였다.
예사롭지 않은 덩치와 흉폭한 기운에 사람들은 주춤주춤 물러섰다.
“저, 저건 뭐야?”
“던전의 주인인가?”
오미로 베루스가 포효했다.
-카아아아악!
귀를 찢을 것 같은 소리에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처럼 강한 짐승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두 가지 행동을 보인다.
하나는 맞서 싸우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도망치는 것.
이곳에는 버서커로 변한 계약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당연히 싸우는 것을 선택했다.
12명의 계약자들이 오미로 베루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오진구와 주황덕도 오미로 베루스를 봤다.
“저, 저건 뭐야? 던전의 주인인가?”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에 던전의 주인이 나타날 이유가 없다.
던전의 주인은 그 보금자리를 공격하거나 뭔가 특정한 행동을 했을 때 튀어나오는 법이니까.
“뭐지?”
오진구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쾅!’ 하고 옥상의 비상구가 거칠게 열렸다.
오진구와 주황덕 그리고 팀원 모두의 시선이 비상구로 향했다.
그곳엔 피투성이가 된 성현이 서 있었다.
그것도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성현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저기…….”
먼저 반응한 것은 주황덕이었다.
그가 성현의 멱살을 잡았다.
“지은이는! 지은이는 어디 있어! 왜 네가 오고 있어!”
그는 이지은이 성현을 죽이러 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지은은 없었고 성현 혼자 나타났다.
“지은이는 어디 있냐고!”
주황덕이 섬뜩한 표정으로 성현을 노려봤다.
성현이 그의 시선을 피하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마, 막 던전에 들어왔을 때였습니다. 그 여자분께서 제게 뭔가를 알려 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조금 떨어진 건물의 뒤로 갔는데…….”
“갔는데?”
“거기서 저 백골을 만났습니다.”
주황덕의 얼굴이 참혹하게 변했다.
“백골이면 저거?”
“네.”
건물의 아래에 있는 오미로 베루스, 혼자 12명의 버서커를 상대하고 있다.
이지은이 이길 상대가 아니다.
성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황덕이 어렵게 묻는다.
“그래서 지은이는?”
“……저기, 저쪽까지 업고 왔습니다.”
“살아 있어?”
“방금까지는 살아 있었습니다.”
주황덕의 시선이 오진구를 향해 다급히 틀어졌다.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하…….”
오진구는 잠시 망설였다.
이지은이 아깝기는 하지만 던전에서 다친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게다가 성현의 말을 들으면 생존의 가능성도 제로에 가까운 것 같았다.
하지만 주황덕은 앞으로도 계속 데리고 있어야 할 충견이다.
이지은도 없는데 주황덕마저 떠나 버리면 손실이 컸다.
여기서는 배려하는 게 이득이라는 계산이 섰다.
“조심해.”
“감사합니다.”
주황덕은 살짝 고개를 숙인 후 다시 성현에게 시선을 틀었다.
“앞장서.”
“네.”
성현이 앞장섰고 주황덕이 그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은 비상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갔다.
“이쪽입니다.”
“지은아!”
빌딩 사이의 골목, 주황덕은 쓰러진 이지은을 보자마자 달려갔다.
딱 봐도 그녀의 몸은 정상이 아니다.
부러지고 터졌으며 피가 질질질 흐르고 있다.
“지은아!”
주황덕이 이지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다.
맥을 짚었다.
반응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황덕이 꾹 울음을 삼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까 그 해골이 이렇게 했다고?”
“아니.”
뒤에서 들려오는 성현의 목소리는 달라져 있었다.
냉랭하다.
주황덕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성현을 향했다.
그런데 성현의 표정도 변해 있었다.
차갑고 서늘하게 주황덕을 바라보며 적의를 뿜어내는 중이다.
주황덕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냐?”
“그 이빨 목걸이, 이지은이랑 맞춘 거냐?”
“너냐고!”
“아이들이 비명을 지를 때, 미안하지 않았어?”
“대답해! 네가 지은이를 이렇게 했냐?”
“설마……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고 애들의 생니를 뽑은 것은 아니지?”
주황덕이 얼굴을 구겼다.
“너…… 나 아냐?”
“이거 지금부터 미친 새끼였네.”
성현과 주황덕은 서로 다른 말을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분위기는 점점 싸늘해지고 있다.
툭 하면 죽일 듯이…….
성현이 입을 열었다.
“너한테도 정말 고맙다.”
“뭐?”
“너 역시 나쁜 놈이라서……. 내가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이번엔 네 차례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야!”
주황덕은 참지 못했다.
손에 마력을 모은 후 성현을 향해 튀어 나갔다.
“죽여 버린다!”
당장 성현을 씹어 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턱!
갑자기 그의 발목이 잡혔다.
지금껏 움직이지 않고 있던 이지은이 손을 움직여 그의 발목을 잡아챈 거다.
물론 성현이 그녀의 시신을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주황덕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지, 지은아…….”
성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주황덕의 뒷덜미를 향해 손도끼를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