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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44화 (44/252)

44화

“커헉!”

기습적인 공격에 주황덕은 자신의 목덜미를 쥐고 비틀거렸다.

그의 눈동자가 성현을 향해 천천히 틀어졌다.

하지만 그는 성현을 봐서는 안 됐다.

그의 시선이 성현에게 닿는 순간…….

푸욱!

이지은의 칼이 그의 가슴을 찌르며 폐를 꿰뚫어 버렸기 때문이다.

주황덕은 자신의 가슴에 박힌 칼과 이지은을 번갈아 봤다.

그녀의 껍데기는 이지은이지만 이지은이 아니다.

성현에게 조종받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그러니까 적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동안 함께한 시간이 그녀의 껍데기를 믿게 한 거다.

그 결과 등 뒤에 적을 둔 채 한 눈을 파는 멍청한 짓을 해 버렸다.

“쿨럭.”

주황덕이 강하다고 해도 인간이다.

도끼가 목을 갈랐고 칼이 내장을 쑤시면 견뎌 내기 어렵다.

주황덕은 서 있을 수 없었다.

폐를 찔렸기 때문에 비명조차 내뱉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가 목과 가슴에서 꿀렁거리는 피를 틀어막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죽음을 앞둔 상황의 극단적인 두려움만 존재할 뿐이었다.

만약 그가 입을 열 수 있었다면 말했을 거다.

살려 달라고…….

하지만 성현은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 역시 수많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성현은 무심한 눈으로 손도끼를 휘둘렀다.

콰직!

화르륵.

성현은 불이 붙은 장작더미에 목걸이와 팔찌를 던졌다.

그것은 아이들의 신체로 만든 거다.

오랜 시간 놈들의 장신구로 사용되며 치욕을 당했던 아이들의 흔적을 불길이 집어삼켰다.

곧 검은 연기가 흘렀다.

성현은 그것이 꼭 아이들의 한 같다고 느꼈다.

성현은 그 아이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이름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저 세상에서는 부디 행복하기를 바랐다.

악마 같은 주황덕과 이지은은 잊고 뛰놀기나 하면서……. 이승에서의 끔찍한 고통은 기억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성현은 몸을 일으켰다.

그 시선이 도시의 끝으로 향했다.

멀리 병원 건물이 보였고 그곳에 던전의 주인이 있다.

‘던전의 주인을 만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성현은 오진구를 사냥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를 사냥할 계획은 이미 세워졌다.

‘이 던전의 짐승 중에는 개미가 있지. 놈들을 이용할 거야.’

생각을 마친 성현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어나. 이번에는 네가 수고를 해야겠어.”

성현의 목소리에 주황덕이 몸을 일으켰다.

-크르르르…….

* * *

도시의 중심부, 그곳에는 환각에 빠진 계약자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

모자를 쓴 사람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가녀린 몸매의 주인공, 그녀는 서은서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그녀는 신분을 속이고 던전에 들어왔다.

이곳에 성현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성현은 언제나 기적적인 일을 벌여 왔고 이번에도 뭔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일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마주한 현실은 끔찍했다.

‘그 냄새…….’

던전의 주인이 있는 곳을 향해 행군하던 중 맡게 된 고약한 냄새,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고 갑자기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직전까지 웃으며 농담하던 동료였고 친구였다.

하지만 그들은 동료의 심장에 칼을 꽂았고 형제의 입을 찢었다.

그 뒤는 혼란이었다.

도망치는 사람, 싸우는 사람…….

그녀 역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환각의 가루에 중독됐기 때문이다.

주변 모든 것이 짐승으로 보였고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숨을 돌리며 그 냄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거다.

‘환각의 가루가 맞는 거지?’

그녀는 자신의 옷깃에 스며든 냄새를 맡아 봤다.

지끈거리는 두통…….

환각의 가루가 만들어 내는 특유의 통증이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품에서 약병을 꺼내 마셨다.

그녀는 해독제를 준비해 왔고 다행히 환각에 대한 대비책도 존재했다.

약을 다 마신 그녀는 입에 흐르는 약물을 닦아 낸 후 시선을 틀었다.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거지?’

환각의 가루는 인간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것이다.

즉, 누군가가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것.

‘토벌을 위해 들어와서 같은 계약자를 죽이려 하다니…….’

미친 사이코패스 새끼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자를 찾아 막아야 했다.

‘이 토벌의 책임은 우리 길드에 있어. 가루를 뿌린 놈을 찾아 막아야 해.’

토벌대는 다양한 소속이 함께 움직이고 있지만 토벌권은 페이트 길드가 가지고 있었다.

즉, 문제가 일어나면 모든 책임은 페이트가 져야 하는 거다.

‘하지만 어떻게 찾지?’

서은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가루에 중독된 계약자들은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고 그곳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그들 중에서 이 사건을 주도한 사이코패스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

그런데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성현의 목소리가 스쳤다.

성현은 말했다.

-연맹 소속, 오진구의 팀에 들어가고 싶어요.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혹시?’

성현이 뜬금없이 오진구의 팀에 들어가려 했던 이유, 그리고 그동안 오진구가 했던 행실을 기억하면…….

‘가루를 뿌린 놈이 오진구였나?’

그녀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가능성은 높아.’

오진구는 지연우의 패거리다.

그리고 지연우는 페이트 길드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지연우가 페이트 길드를 상대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오진구가 지연우에게 잘 보이려고 일을 벌였을 수도 있지.’

지나친 충성은 무리수를 낳기도 한다.

게다가 오진구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하는 탐욕적인 인간이다.

그녀는 그렇게 판단했다.

‘일단 막아야 해.’

결심은 빨랐고 그녀는 다시 계약자들이 싸우는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쉬이이익!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다.

10여 분을 달려 도시의 중심부로 들어온 그녀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저건 또 뭐야?’

골목의 끝에 거대한 백골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백골은 12명의 계약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쾅! 쾅! 쾅!

아스팔트가 백골의 주먹에 바스라졌고 계약자들은 공격을 피하며 백골의 다리를 부쉈다.

하지만 백골은 경이로운 재생 능력을 갖고 있었다.

부서진 곳이 순식간에 재생된다.

-카아아악!

백골이 팔을 휘둘러 한 남자의 몸을 가격했다.

쩌엉!

남자는 쇳덩이로 만든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갑옷은 한 방에 찌그러졌다.

아마 갈빗대까지 부서졌을 거다.

그런데 남자는 피를 토하면서 웃고 있다.

통증에 쾌락을 느끼며…….

“좋아! 더 해 봐! 더! 더!”

지켜보던 서은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버서커의 가루도 사용한 거야?’

버서커의 가루는 일시적으로 온몸을 전투 상태로 만들지만 뇌에 심각한 해를 입힌다.

그래서 환각의 가루와 함께 마약으로 분류되어 금지된 약물…….

하지만 오진구는 저 약물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언제나 마지막을 대비해야 한다나 뭐라나.

이로써 범인은 명확해졌다.

오진구다.

‘어디지? 이 상황을 지켜보며 싸움을 조율할 수 있을 장소……. 어디에 있는 거지?’

그녀는 오진구가 있을 만한 곳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잠시였다.

두두두두…….

땅을 울리는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그녀의 시선은 다급히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옮겨졌다.

황소만 한 개미가 보였다.

그 숫자가 수백 마리.

도로가 시커멓게 메워졌다.

그런데, 그 수백 머리의 개미 앞에는…….

‘주황덕?’

오진구의 부하 주황덕이었다.

그가 개미의 가장 앞에서 여왕개미의 머리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여왕은 개미의 어머니이자 지켜야 할 대상, 그 여왕의 머리를 들고 뛰면 당연히 쫓아온다.

그러니까 주황덕의 저 행동은 자폭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은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당황한 것은 오진구도 마찬가지였다.

건물의 옥상에 있던 오진구는 달려오는 개미 떼와 주황덕을 발견했다.

아니, 발견 못 하는 게 이상하다.

수백 마리의 개미가 도로를 시커멓게 만들었으니까.

“저…… 저 새끼, 뭐 하는 거야?”

주황덕은 이지은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

그런데 피투성이가 된 채 여왕개미의 머리를 들고 오고 있다.

팀원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이지은 대리가 죽었나 봅니다. 그래서 저런 미친 짓을 하는 것 같습니다.”

“뭐? 여자 하나 죽었다고 저 지랄을 해?”

“팀장님이 계속 괜찮을 거라고…….”

팀원들은 주황덕과 이지은의 사이를 잘 알고 있었다.

던전에 들어온 후 이지은은 오랜 시간 보이지 않았고 주황덕은 걱정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었다.

-지은이는 괜찮을까요?

그런데 오진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잘 있을 거야.

그는 주황덕을 안심시켰고 임무에 대한 이야기만 이어 갔다.

그래서 팀원은 생각했다.

‘주황덕은 이지은이가 죽은 이유가 팀장 때문이라고 생각할 거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자의 분노는 크다.

그 책임을 오진구에게 묻고 있을 수도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진구의 눈빛이 섬뜩해 졌다.

“미련한 새끼…… 여자야 돈만 있으면 바꿀 수 있는 것인데……. 이번 임무만 마치면 예쁜 애들 서너 명은 안을 수 있었는데…….”

오진구가 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가차 없이 주황덕의 미간을 조준한다.

주황덕은 오진구의 충견이었다.

하지만 오진구는 망설이지 않고 시위를 당겼다.

“저놈이 달려오는 곳은 명확해. 바로 이 건물이지. 이곳에 오기 전에 죽여야 해.”

주인을 무는 개는 과거가 어떻든지 죽여야 한다.

그게 오진구의 생각이었다.

피잉!

화살이 쏘아졌고 ‘퍽!’ 하고 주황덕의 미간에 정확히 박혔다.

“성불해라.”

오진구의 목소리가 감정 없이 흘렀다.

그런데…… 주황덕은 쓰러지지 않았다.

미간에 화살이 박혔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온다.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오진구의 얼굴이 구겨졌다.

“……강령술? 강령술이야! 누군가가 황덕이의 시신을 조종하고 있어!”

“강령술요?”

오진구의 지시가 빠르게 이어졌다.

“내려가! 가서 머리를 잘라! 그리고 몸통과 10미터 이상 떨어뜨려! 그럼 잠시는 움직일 수 없을 거야! 그때 불에 태워 버려! 여기로 절대 못 오게 해야 해!”

“알겠습니다!”

지시는 빠르게 이뤄졌고 곧 8명의 팀원이 비상구를 빠져 나갔다.

그런데 팀원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이었고 팀원을 소모품처럼 생각하는 오진구의 행동에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계속 저 새끼랑 같이 있어야 해?’

‘밖에 나가면 다른 팀을 구해 봐야겠어.’

그들에게 의리란 없었다.

옥상에는 오진구만 있었다.

그가 난간에 손을 대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래는 개판이었다.

계약자끼리 싸우고 팀원과 개미가 싸우고…….

그중에 이마에 화살이 박힌 주황덕이 가장 사납게 칼을 휘두르고 있다.

그를 보던 오진구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토벌대의 정보를 얻었다.

상대의 전력을 살피는 게 싸움의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령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오진구 자신이 유일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강령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럼 이 던전에 먼저 들어와 숨어 있었거나 신분을 숨겼거나, 둘 중 하나다.

‘누구냐…….’

강령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시체와 영혼을 대하는 일이라 평판이 좋지 않아 꺼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오진구의 머릿속에 강령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대체 어떤 새끼냐고!”

그때 그의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다,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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