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오진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성현이었다.
“강령술을 사용하는 게 너였냐?”
“글쎄…….”
“순진한 얼굴로 멍청하게 행동하더니, 쥐새끼였어? 이지은과 주황덕도 네가 죽였나?”
“그건 맞아.”
성현의 목소리는 건조했고 오진구는 굳은 얼굴로 금테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 끄덕 한참 동안 뭔가를 생각하더니 싸늘한 눈으로 성현을 쏘아봤다.
“……그러니까 내 계획을 모두 망친 게 너라는 거지?”
성현으로 인해 이지은과 주황덕이 죽었고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조금 있으면 사람들은 환각의 가루에서 깨어날 테고 대비책을 세울 거다.
그 모든 원흉이 성현이었다.
오진구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네 시체는 박제로 만들어 주마.”
그 말이 끝이었다.
오진구의 앞에서 검은 연기가 일렁거렸다.
작은 돌멩이가 움직일 정도로 거대한 힘…….
이어서 검은 연기는 곧 코브라의 형태를 갖췄고 그 크기가 점점 커졌다.
약 12m 크기의 코브라, 그것은 오진구가 불러낸 소환마였다.
-카아아아악!
놈이 포효했고 그 입에서 독 냄새가 확 풍겼다.
성현의 눈이 찌푸려졌다.
‘역시 강해.’
주먹을 섞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오진구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강하다.
하지만 성현은 웃었다.
지연우의 열두 동료 중 하나, 오진구…….
‘넌 오늘 죽는다.’
성현의 시퍼런 눈빛이 오진구를 향했다.
그때 코브라가 입을 벌렸다.
-카아아악!
놈이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텁! 텁! 텁!
이빨이 허공을 물었고 성현은 재빨리 피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반격을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고 있다.
그러다가 힐끗 비상구를 살폈다.
‘언제 오는 거야?’
성현은 주황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성현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시체가 되었고, 죽음과 통증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였다.
그놈이 코브라를 상대하는 동안…….
‘난 준비할 게 있지.’
그리고 그 준비가 끝나면 오진구는 죽고 말 거다.
그때 ‘끼이이익!’ 하고 비상구가 열렸다.
‘왔다.’
기다리던 주황덕이었다.
-크르르르.
그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뱉으며 코브라를 마주했다.
성현이 주황덕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가라.”
주황덕은 성현의 지시를 듣자마자 칼을 쥐고 코브라를 향해 달렸다.
주황덕은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코브라와 싸울 거다.
그동안 성현은 계획했던 것을 시작하기 위해 죽은 자들의 핏물을 손에 쥐었다.
주황덕의 칼이 코브라를 베고 지나갔다.
코브라의 피가 주황덕의 얼굴에 튀었다.
그 피는 맹독이었고 주황덕의 얼굴이 치이익! 타들어 갔다.
하지만 주황덕은 이미 죽은 자다.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크르르!
계속해서 칼을 휘둘러 코브라를 베기 시작했다.
코브라가 밀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코브라를 소환마로 사용하는 오진구의 표정은 느긋했다.
여유롭게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있다.
그가 느릿하니 입을 열었다.
“이만 죽여.”
지시를 받은 코브라가 쉬이이익! 빠르게 주황덕을 옭아매었다.
그리고 빠드드득! 주황덕의 뼈는 으스러지고 말았다.
–캬아아악!
코브라가 입을 벌려 주황덕을 집어삼켰다.
단숨에 꿀꺽.
주황덕은 순식간에 끝나 버리고 말았다.
성현이 아직 준비하던 것을 다 끝내기도 전이었다.
코브라가 혀를 날름거리며 고개를 틀었다.
그 눈이 성현을 향한다.
그 눈빛은 마치 ‘다음은 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 *
“죽어!”
“더듬이를 뜯어! 그럼 자기들끼리 싸울 거야!”
“악! 난 짐승이 아니야! 사람이라고!”
“꺼져! 꺼지라고!”
건물의 아래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계약자끼리 싸우고 개미가 인간을 물어뜯었다.
살점이 튀고 피가 흘렀다.
사람들의 비명이 귀를 찢을 듯 울려 왔다.
그리고 그 시각…….
서은서는 여전히 오진구를 찾고 있었다.
놈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 만한 곳을 찾아 시선을 돌리는 중이다.
그때 폐가 찌릿할 정도의 독 냄새를 맡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자연스레 독 냄새가 흐르는 곳을 향했다.
그곳은 옥상이었고 거대한 코브라의 머리가 보였다.
‘소환마?’
그런데 코브라가 끝이 아니다.
시체가 일어서더니 코브라가 있는 건물로 이동하고 있다.
마치 누군가의 부름을 받은 듯이…….
그녀의 눈이 찌푸려졌다.
‘죽은 자가 움직인다고?’
그것은 강령술이다.
그리고 이곳에 들어온 사람 중 강령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오진구가 유일했다.
‘거기 숨어 있었구나.’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고 건물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건물의 입구에 섰을 때, 오진구의 팀원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놈이 칼을 뽑으며 그녀를 쏘아봤다.
“들어갈 수 없다.”
그녀가 칼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칼 치워.”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놈과 실랑이를 벌일 시간이 없었다.
그녀의 손에서 붉은 안개가 피어나더니 그의 몸을 감쌌다.
뒤늦게 안개를 알아챈 그가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간간히 바르르 떠는 게 전부였다.
‘죽이지는 않았다. 잠시 그대로 있어라.’
그녀는 팀원을 스치며 입구로 들어섰다.
* * *
다시 옥상…….
지금껏 들어온 시체가 8구였다.
놈들이 모두 성현을 향해 다가왔다.
서걱!
성현이 휘두른 도끼에 시체의 다리가 잘려 나갔다.
균형을 잃은 시체가 쓰러졌다.
하지만 놈은 강령술에 지배된 시체다.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끝없이 움직인다.
지금도 그랬다.
바닥에 엎드린 채 기괴한 모습으로 성현을 향해 기어 오고 있었다.
성현은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시선을 오진구에게 옮겼다.
놈은 난간에 기대 담배만 피워 대고 있다.
그러다가 거만한 눈동자로 성현을 바라보며 입 모양만으로 말했다.
-그만 죽어.
그것이 끝이었다.
오진구는 성현에 대한 신경을 꺼 버렸다.
그가 봤을 때 성현의 시체 조종 능력은 이제 막 걸음마 수준이었다.
권능을 얻은 지 길어야 3개월 정도였다.
그 능력으로 시체 8구와 거대한 코브라를 이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어차피 죽을 놈.’
오진구는 고개를 틀어 난간 아래를 바라봤다.
아래는 여전히 혼란이다.
짐승과 계약자 들이 뒤엉켜서 미친 듯이 싸우고 있다.
죽고 죽이고 다치고…….
그건 오진구의 팀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막 팀원 중 한 사람의 팔이 개미에게 뜯겼다.
근육이 찢기며 피가 솟구쳤다.
팀원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살려 줘! 살려 줘어어!”
팀원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무리였다.
다가온 개미가 팀원을 잡고 질질질 골목으로 끌고 갔다.
잠시 후, 그의 비명 소리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봤지만 오진구의 눈빛은 냉랭했다.
‘저 병신…….’
그에게 팀원은 도구였을 뿐이다.
개미 따위에게 죽은 도구는 필요 없었다.
그는 곧 팀원의 죽음도 잊었다.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빠져갔다.
‘어떻게 한다…….’
환각의 가루가 끝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절반을 죽여야 하는데.’
이 상태로 그 임무를 수행하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직접 나서야 하는가?’
남은 사람이 약 240명, 하지만 오진구의 힘으로 모두를 죽일 수는 없다.
누군가는 살아남을 테고 오진구의 살인을 목격할 거다.
그놈이 입을 나불거리면 오진구는 끝이다.
영원히 감옥에서 살게 될 거다.
오진구의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오갔다.
그러다가 번뜩이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 토벌대장을 죽이는 거야.’
토벌대장을 강령술로 움직여서 토벌대를 험지로 몰아가는 것.
그래서 짐승에게 모두 죽게 만드는 것.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모든 책임은 페이트가 질 거야.’
그가 빙긋이 웃으며 담배꽁초를 건물 아래로 던졌다.
그리고 환각 상태에 빠져 동료를 공격하는 토벌대장을 찾았다.
‘거기 있었구나.’
토벌대장을 찾은 오진구가 잔인하게 웃었다.
그때…….
‘어?’
오진구는 이질적이면서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날 정도였다.
‘뭐지?’
그가 천천히 고개를 틀었다.
검붉은 액체로 만들어진 지름 2m 정도의 구체가 허공에 떠 있었다.
그 검붉은 액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오진구는 그 액체의 정체를 금세 알 수 있었다.
‘피?’
피였다.
그러고 보니 그가 옥상으로 부른 시체의 형태가 이상했다.
모두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그곳에서 흐른 피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 한데 모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피로 만든 구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성현이다.
오진구의 눈이 튀어나올것처럼 커졌다.
“어, 어떻게 강령술사가 피를 사용할 수 있지?”
강령술 중에 피를 움직이는 것은 없다.
피를 움직이는 권능은 그가 알기로 뱀파이어 계열뿐이었다.
“도대체 뭐야! 강령술사가 어떻게……!”
“내 권능이 강령술이라고 말한 적은 없어.”
“뭐?”
“네가 지레짐작한 거야.”
“……이 새끼가 감히 나를 놀려!”
“놀린 적 없어.”
부글부글 끓는 핏물을 보며 오진구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곳은 옥상이다.
난간에 막혔고 더 물러설 수 없었다.
그가 코브라를 향해 소리쳤다.
“먹어! 저 새끼를 먹어!”
지시를 받은 코브라가 성현을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성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네 상대는 내가 아니다.”
그 말에 오미로 베루스가 나타났다.
그리고 코브라의 이빨을 잡아챘다.
“죽여.”
오미로 베루스는 알아들었다는 듯 코브라의 이빨을 뽑아냈다.
-캬아아악!
이어서 오미로 베루스의 주먹이 코브라의 머리통을 찍어 눌렀다.
콰직!
그사이 성현은 저벅, 저벅 오진구를 향해 다가갔다.
오진구는 난간에 기대 고개를 저었다.
“사, 살려 줘! 살려 달라고!”
그가 피를 토하듯 외쳤지만 성현은 무심하다.
오히려 비웃으며 물었다.
“살려 줘?”
“그, 그래! 살려 주기만 하면 연맹에 좋은 자리를 약속하지! 내가 그럴 힘이 있어!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관심 없다.”
“그, 그럼 돈을 줄……!”
오진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공에 솟아 있던 검붉은 구체가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오진구는 헐레벌떡 피했다.
콰르르릉!
핏물은 오진구를 놓치고 난간을 부숴 버렸다.
오진구는 순식간에 초췌해진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 살았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난간을 부수며 사방으로 튄 핏물이 오진구의 얼굴에 닿았다.
끓고 있던 핏물은 뜨거웠고 그의 얼굴은 흉측하게 익어 버렸다.
“끄아아악!”
그래도 다행이었다.
어쨌든 목숨은 구했으니까.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면 된 거다.
망가진 얼굴이야 커스터마이징으로 고치면 된다.
흉측하게 녹아내린 얼굴을 만지며 그가 실없이 웃었다.
“살았어! 살았다고! 또 해 봐 이 새끼야! 죽여 보라고! 못하지? 할 수 없지? 그럼 이제 네가 죽을 차례다, 이 새끼야!”
그는 성현이 방금의 그 스킬을 또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쉽게 만들 수 있었다면 그 전에 몇 번이나 사용했을 거다.
즉, 시간이 필요한 스킬이다.
그러니까, 저 스킬을 사용하기 전에 성현을 죽이면 모든 게 끝난다.
그런데 성현을 노려보던 오진구의 눈이 다시 한번 부릅떠졌다.
“저, 전기?”
성현의 손에서 ‘파지지직!’ 하고 전기가 솟아나고 있었다.
오진구가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전기도 사용할 수 있다고?”
평범한 계약자는, 아니 대다수의 계약자는 단 한 가지의 스킬만 사용한다.
하지만 성현은 강령술도 사용하고 피를 움직이기도 했으며 전기까지 만들어 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사기다.
“……넌 대체 뭐 하는 새끼야! 뭐 하는 새끼냐고!”
하지만 성현은 대답대신 오진구의 입에 라이트닝 볼을 처박았다.
콰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