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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46화 (46/252)

46화

* * *

콰앙!

오진구는 부서진 난간의 골조에 처박혔다.

“커억!”

쇠파이프가 옆구리를 뚫고 지나가며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아파할 시간은 없었다.

그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체력은 이미 바닥났고 몸은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난간을 잡고 일어나려던 그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끝인가?’

오진구는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만신창이다.

팔이 한 짝 없었고 찢어진 뱃가죽에서 피가 꾸물꾸물 흘러나오고 있다.

죽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가 고개를 들어 앞을 향했다.

“……너 누구냐?”

힘겨운 목소리로 질문했지만 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끼를 들고 저벅저벅 다가갈 뿐이다.

오진구가 다시 물었다.

“……누구냐고.”

하지만 이번에도 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뚜벅뚜벅 다가올 뿐이다.

오진구가 핏물을 토해 내며 다시 물었다.

“하, 하나만 묻자.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그, 그건 대답해 줄 수 있잖아!”

“복수다.”

“……보, 복수? 날 알아?”

성현의 대답은 끝났다.

대답 대신 손에 힘을 주고 그저 도끼를 휘두를 뿐이다.

퍽!

성현은 난간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섰다.

오진구는 죽었다.

하지만 기뻐할 수는 없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연우와 그 동료들 그리고 존재의 단체 ‘교’의 세상에 종말이 오는 날, 미래가 바뀔 거다.

성현은 기뻐하는 것은 그날로 미루기로 했다.

‘다음은…….’

성현이 고개를 틀어 먼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던전의 태양이 서쪽으로 기우는 것을 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비상구의 뒤에는 서은서가 있었다.

그녀는 본의 아니게 성현의 전투 장면을 보고 말았다.

‘뭐, 뭐야……. 도대체 몇 가지 권능을 사용하는 거야?’

그녀가 본 것만 해도 4개였다.

피를 이용한 스킬과 강령술 그리고 전기와 예지…….

‘말도 안 돼…….’

보통의 계약자는 하나의 권능만 사용한다.

많아 봤자 2개다.

4개를 사용하는 것은 그녀가 아는 상식에서 어긋난 일이었다.

얼굴을 쓸어 만졌다.

그녀의 머릿속에 아버지 서문길 마스터가 하던 말이 스쳤다.

-천리마가 앞에 있으면 네가 탈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해야 해. 만약 탈 수 없을 것 같으면 목을 베어야지, 다른 사람도 탈 수 없도록.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부숴 버린다, 다른 사람도 쓸 수 없도록.’

그녀는 그렇게 교육받아 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한 천리마가 성현과 같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컨트롤할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되는…….

‘앞으로 더 강해지고 세상을 알게 된다면, 그때도 나와 함께 있을까?’

그녀는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성현은 지금도 페이트 길드와의 계약을 질질 끌고 있다.

그녀에게 호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해 보면 이득에 대한 거래였을 뿐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 의리는 없었다.

그녀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유성현이 다른 길드에 들어간다면?’

생각만으로 섬뜩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예지, 거기에 네 가지 권능…….

그때 성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났으니까 나와도 괜찮아요.”

서은서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알고 있었나?’

그녀는 비상구의 벽 뒤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성현에게 들켜 버렸다.

성현은 오진구와의 전투 중에도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열어 뒀다.

오진구는 강령술사였고 시체를 조종할 수 있다.

언제 죽어 있던 시체가 성현의 등을 찌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은서는 한숨을 내뱉으며 지금껏 불안해하던 표정을 싹 감췄다.

표정 연기라면 자신 있었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녀가 성현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죄송해요. 몰래 보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오진구를 쫓다가 본의 아니게…….”

“아, 괜찮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지켜본 김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서은서가 앞으로 다가가며 물었지만 성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요. 지금은 중요한 것부터 하죠.”

“중요한 거요?”

성현은 말없이 오진구의 품을 뒤졌고 약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뭐죠?”

“해독제요. 환각의 가루…….”

독을 사용하는 사람은 반드시 해독제를 가지고 있다.

자신 또는 자신의 동료가 그 독에 중독될 수도 있어서다.

서은서는 성현이 건넨 약봉지를 소중하게 받았다.

비록 환각의 가루의 효과는 몇 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몇 명이 더 죽을지 모른다.

조금이라도 빨리 해독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다급히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발소리가 완벽히 사라졌을 때 성현의 시선은 다시 오진구에게 향했다.

정확히는 놈의 목에 걸린 얇은 금목걸이였다.

‘내가 알고 있던 게 맞지?’

오진구가 자랑하던 목걸이가 있다.

서민들은 절대 가질 수 없다며 손도 못 대게 했던 것.

성현의 손이 천천히 목걸이로 향했다.

그리고 드드득 오진구의 목에서 목걸이를 뜯어냈다.

[여왕의 눈물이 담긴 목걸이]

백성을 사랑했지만 반란군에게 잡혀 희대의 악녀로 포장된 여왕, 그녀의 눈물이 닿아 있다.

-파워 +6

-마력 +3

-공격 속도 +10%

-캐스팅 속도 +10%

-물리 크리티컬 히트 +3%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그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다.

이 정도면 적어도 트리플 A급.

성현은 기쁨을 참으며 목걸이를 꽉 쥐었다.

이 던전에 들어와서 도끼와 목걸이, 대박 아이템을 2개나 얻었다.

아이템만으로도 능력치가 솟구치는 중이다.

‘좋네.’

성현은 거침없이 목걸이를 착용했다.

스텟 평균이 올랐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잠시 후, 성현은 계속해서 오진구의 몸에서 물건을 챙겼다.

손목과 손에서 아이템을 빼냈고 품을 뒤져 지갑까지 챙겼다.

심지어 주변에 쓰러진 다른 계약자의 아이템도 주머니에 넣었다.

이곳은 던전이다.

강해질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불쌍해’, ‘잔인해’ 등의 나약한 소리를 내뱉는 순간 던전에 잡아먹히고 말거다.

극단적으로 이기적이어야 살 수 있다.

죽은 자의 물건을 챙기는 행동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 *

“사망자 68명, 현재 인원 227명, 부상자와 짐꾼을 제외하면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157명이 전부입니다.”

지휘소 텐트였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토벌대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고 토벌대장과 팀장들이 모여 있었다.

토벌대장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젠장…….”

토벌대장의 표정을 살피며 부관이 입을 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것은?”

“사망자의 대부분은 짐꾼이라는 겁니다.”

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할 소리냐?”

“……죄송합니다.”

토벌대장은 부관을 노려본 뒤 팀장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다른 대안이 있는지 눈빛으로 묻는 거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괜히 아이디어를 냈다가 총대를 멜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무조건 책임을 미뤄야 했다.

팀장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것은 의자에 앉은 서은서였다.

“어떻게 할까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서은서에게 집중됐다.

그녀는 토벌대장 몰래 토벌에 참여했다.

순전히 성현을 쫓아왔던 것이지 오진구의 계략이 없었다면 끝까지 신분을 속였을 거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토벌대장이 그녀에게 의지하는 것은 당연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진구의 팀원은 부상자와 함께 던전 밖으로 내보내죠. 데리고 있어 봤자 고민거리만 될 거예요.”

“네.”

“그리고 결정은 내일 하겠습니다. 오늘 밤은 아무 생각 없이 휴식을 취해 주세요. 가벼운 술과 음료를 제공해도 좋습니다. 팀원들의 멘탈을 수습하는 게 우선이니까요.”

“멘탈요?”

“동료가 죽었어요. 어쩌면 자신의 손으로 베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멘탈이 정상일까요?”

그녀의 말에 팀장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텐트 밖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지휘소 밖의 분위기는 처참했다.

환각 상태에서 깨어난 직후 그들이 본 현실은 형제, 친구, 동료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목에 칼을 댄 것은 어쩌면 그들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고통이 그들을 짓밟고 있었다.

팀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은서 팀장님이시라고요? 얼굴은 처음 보는데, 서문길 마스터가 훌륭한 따님을 두셨네요. 이럴 때, 대원들을 먼저 생각하고…… 말씀하신 대로 대원들의 감정부터 다독이겠습니다.”

보통의 지휘관은 던전에서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죽은 자를 숫자로 볼 뿐이다.

하지만 서은서는 달랐고 그들은 감사 인사를 전한 후 지휘소 텐트를 벗어났다.

서은서도 계속 지휘소 텐트에 있을 생각은 없었다.

“저도 나갔다 올게요.”

그녀는 토벌대장을 뒤로하고 텐트를 벗어났다.

그리고 성현을 찾았다.

성현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성현은 오진구가 죽은 옥상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오미로 베루스가 보였다.

성현이 오미로 베루스에게 개미 알 2개를 건넸다.

“이거 던전에서 키워 봐.”

-크르르르.

성현은 오미로 베루스를 통해 던전을 운영하고 있다.

그 던전은 일정 시간마다 지구에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스페셜 던전이다.

그때 도굴꾼에게 털리지 않으려면 짐승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미는 꽤 괜찮은 짐승이었다.

비록 가진 알은 2개지만 몇백 마리로 불어나는 것은 순간일 거다.

게다가 협공도 가능하고 땅속에 숨어 매복도 할 수 있다.

이 도시의 바닥이 아스팔트가 아니라 흙바닥이었다면 계약자들도 꽤 고생을 했을 거다.

오미로 베루스가 고개를 숙인 뒤 모습을 감췄다.

성현은 다시 난간 앞에 섰다.

멀리 던전의 주인이 있는 병원을 보며 팔짱을 꼈다.

‘이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것.’

성현에게 오진구를 죽인 것은 이미 기억 속에 없었다.

머릿속에는 앞으로 강해질 계획만 가득했다.

그리고 저 병원에 꽤 괜찮은 아이템이 있다.

마력을 증폭시켜 주는 반지와 권능이 담긴 보석이다.

다만 이 던전의 주인은 존재급으로 강하다.

지금의 성현이 이길 수는 없다.

토벌대의 남은 모든 인원이 상대해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렇다고 아이템을 남겨 둔 채 떠날 생각은 없었다.

‘그럼, 몰래 빼내야 한다는 것인데…….’

다행히 성현은 이 던전에 대한 연구 논문을 무수히 읽었고 공략법은 머릿속에 있었다.

그때…… 성현의 뒤에 낯익은 기척이 느껴졌다.

“저기요?”

타닥, 타닥…….

모닥불이 피어오르는 곳에 성현과 서은서가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부상자를 제외하면 157명만이 전투가 가능해요. 계속 토벌을 해야 할까요?”

지금 전력으로 던전의 주인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성현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성현은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를 조력자로 쓸지 말지…….

성현이 겪을 앞으로의 싸움은 지옥이며 그 지옥은 홀로 걷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뒤에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서은서는 그 후보였다.

그녀는 상황 판단이 빨랐고 똑똑했으며 많은 돈과 세력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녀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기적이며 언제나 자신이 가장 우선인 사람이다.

위기를 느끼면 언제든 몸을 뺄 거다.

그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회귀 전 구악의 동료들은 미련하게 죽어 버렸으니까…….

‘어쨌든.’

후방에서 조력을 한다 해도 함께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담력이다.

압도적인 상대를 마주했을 때 겁에 질려 도망조차 칠 수 없다면 성현에게는 큰 독이 된다.

‘시험해 볼까?’

이번 던전의 주인은 존재급의 짐승이다.

존재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압도적인 두려움을 선사할 수 있다.

성현은 그녀가 그 짐승을 앞에 두고 어떤 행동을 보일지 궁금했다.

도망칠지 아니면 주저앉을지.

그 행동이 그녀의 미래를 결정할 거다.

생각을 마친 성현이 입을 열었다.

“이 던전은 150명으로 토벌할 수 없어요.”

“그럼, 퇴각해야 하나요?”

퇴각을 말하는 그녀의 눈빛에 아쉬움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가기는 아쉽죠. 저 병원에는 괜찮은 아이템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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