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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47화 (47/252)

47화

* * *

이곳의 밤은 서울의 밤과 비슷했다.

늘어진 빌딩과 불 켜진 사무실, 다른 것이 있다면 저 수많은 빌딩에 단 1명의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던전의 밤은 섬뜩할 정도로 고요했다.

성현은 여전히 옥상에 있었다.

화려한 야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머릿속은 던전에 대한 정보로 가득했다.

이 던전의 주인은 하급 마녀나 마족에 준하는 존재급 짐승이다.

항간에는 원래 하급 존재였는데 잘못을 저질러 짐승 취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존재급이라…….’

하급이라 해도 존재는 존재다.

지금 성현의 힘으로 가까이 다가서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성현은 도전하려 한다.

‘할 수 있어.’

회귀 전을 떠올리면, 이 던전은 환각의 가루를 통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존재급의 주인도 나타났던 곳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많은 연구가 있었고 성현의 머릿속에는 나타날 짐승의 특징과 공략법 그리고 숨겨진 퀘스트까지 들어 있었다.

성현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앞으로의 대책을 세워 나갔다.

“더 필요한 게 있을까요?”

성현의 시선이 옆으로 틀어졌다.

서은서가 와 있었다.

그녀가 가져온 물건을 펼쳐 놓았다.

갖가지 치료제와 식량이었다.

성현이 물건을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활과 화살, 밧줄이 추가로 필요한데요. 그리고 신나나 휘발유 그리고 빈 병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성현의 이어지는 말을 듣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휘발유라니……. 어디에 사용하려 하는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묻지 않았다.

상대는 성현이다.

높은 예지력을 갖고 있고 반드시 쓰임새가 있을 거다.

“챙겨 올게요. 또 다른 것은?”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성현이 추가로 이야기한 것을 준비해서 나타났다.

성현은 그녀가 가져온 물건을 확인 후 입을 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출발할까요?”

“네.”

성현은 물끄러미 서은서를 바라봤다.

짐을 챙기는 그녀의 표정은 담담하다.

지금껏 그녀가 본 던전의 주인은 짐승에서 조금 더 진화한 정도, 하지만 이곳의 주인은 다르다.

놈을 마주하면 원초적 공포를 느끼게 될 거다.

그리고 성현은 그녀의 행동을 보고 조력자로 삼을지 말지 결정할 생각이다.

그때…….

“저, 저희도 같이 가면 안 되겠습니까?”

나타난 것은 남자 둘, 페이트 길드의 길드원이었다.

이름은 염준안과 김보명, 그들은 서은서가 뭔가를 준비하는 것을 봤고 그 뒤를 밟았다.

염준안의 생각이었다.

‘서문길 마스터의 막내딸이라고 했지? 얼굴도장을 찍어 두면 무조건 이득이야!’

페이트 길드는 국내 5대 길드, 엄청 유능해도 라인을 타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의 앞에 서은서라는 동아줄이 내려왔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못 잡으면 등신이지.’

염준안은 곧장 허리를 굽혔다.

“던전은 위험합니다. 어디를 가시는지 몰라도 옆에서 보좌하고 싶습니다.”

서은서는 난처한 표정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그녀는 재벌이다.

비록 얼굴이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지만 언제든 입방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래서 조심했는데, 한밤중에 성현과 사라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들을 놔두고 떠난다면 앞으로 어떤 풍문에 시달릴지 알 수 없었다.

재벌이라 받는 제약이었다.

성현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4명이 된다고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딱히 없었다.

고개를 끄덕…….

“좋습니다. 짐이나 나눠 들죠.”

속셈이 빤히 보이는 염준안에게 가장 무거운 가방과 기름이 가득 든 말통을 던졌다.

* * *

좀비, 인간형 짐승으로 썩은 시체를 떠올리면 된다.

보통의 인간보다 행동이 느리고 두뇌도 나쁘지만 기본적으로 300마리 이상이 함께 서식한다.

그런데 놈들의 무서운 점은 무리 지어 생활한다는 게 아니다.

내장이 쏟아지고 머리통이 날아가도 생명력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 움직인다는 거다.

인간과 똑같이 생겼는데, 내장을 쏟으며 어기적어기적 다가오는 모습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그래서 좀비를 상대하느니 차라리 드래곤이 낫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성현에게는 예외였다.

병원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목, 성현은 거침없이 활시위를 당겼다.

퍽! 퍽!

화살은 정확히 좀비의 머리에 꽂혔다.

하지만 놈들은 화살에 맞았다고 죽지 않는다.

-크웩, 크웩.

화살이 날아온 곳을 찾아 느릿느릿 움직인다.

성현은 뒤로 물러서며 계속해서 활을 쏘아 댔다.

놈들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러자 무리 지어 생활하는 습성답게 화살에 맞지 않은 놈들도 성현을 향해 다가왔다.

“지금!”

성현의 지시에 염준안과 김보명이 바닥에 휘발유를 뿌렸다.

20L 말통 2개에 가득 담겼던 휘발유가 순식간에 바닥을 적셨다.

그리고 좀비의 대다수가 휘발유 위로 올라섰을 때, 성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됐어요.”

그 말이 신호였다.

서은서가 부싯돌을 던졌다.

화르르륵!

순식간에 좀비들의 몸에 불이 붙었고 놈들은 오징어처럼 몸을 뒤틀었다.

-크에에엑!

불꽃은 생명력을 태워 버린다.

놈들은 본능적으로 불을 무서워하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그것은 성현이 유도한 것이었고 잘못된 판단이었다.

“다시!”

염준안과 김보명이 좀비의 머리 위로 휘발유를 뿌렸다.

불이 붙은 좀비가 다른 좀비와 부딪혔고 또 불을 옮겼다.

영원히 움직일 것 같았던 좀비가 타 죽고 있었다.

성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뒤로 물러서며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 댔다.

타깃은 불길 밖으로 도망친 좀비였다.

퍽! 퍽! 퍽!

화살에 맞은 좀비들은 마지막 생명력을 잃었고 픽픽 쓰러졌다.

-숨겨진 퀘스트, 3분 동안 좀비 10마리를 죽이며 좀비 사냥꾼을 달성했습니다. 스텟 포인트 1을 얻었습니다.

-숨겨진 퀘스트, 5분 동안 좀비 20마리를 죽이며 잔혹한 좀비 사냥꾼을 달성했습니다. 스텟 포인트 1을 얻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하지만 성현은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품에서 도끼를 꺼내며 다음 퀘스트를 떠올렸다.

‘다음은 좀비 머리 콜렉터.’

불길이 잦아들었을 때, 성현은 곧바로 좀비 무리로 튀어 들어갔고 거침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콰지직!

그 잔혹한 모습에 염준안과 김보명은 자신들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좀비 머리 콜렉터’는 20마리의 좀비 머리를 잘라 내야 달성할 수 있다.

얼핏 들어 보면 어렵지 않은 퀘스트다.

하지만 실제로 달성한 사람은 회귀 전을 기억해도 몇 명 없었다.

인간과 똑같이 생긴 좀비의 머리를 쳐 내는 것은 보통의 멘탈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염준안은 헛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성현을 바라봤다.

‘완전히 미친 새끼잖아?’

염준안과 김보명은 성현의 모습이 마치 악마 같다고 느꼈다.

그만큼 성현은 망설이지 않고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강해져야 한다.

어떤 악명을 얻더라도 상관없다.

그게 과거로 돌아온 이유이며 삶의 목표다.

-……스텟 포인트 1을 얻었습니다.

‘다음 퀘스트는…….’

성현은 자세를 낮추고 좀비의 허벅지를 베어 냈다.

서걱!

염준안이 서은서에게 물었다.

“……팀장님, 저 사람 누구죠?”

그는 성현을 처음 봤다.

그리고 성현의 앳된 얼굴만 보고 별것 아닐 거라 생각했다.

이 바닥에서 전성기를 맞으려면 적어도 20대 중반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현의 몸짓은 압도적이었다.

빠르고 강했으며 날카로웠고 거침이 없었다.

서은서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놀란 눈으로 성현을 보는 중이다.

그녀가 놀란 이유는 염준안과 다르다.

그녀는 성현의 강함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놀란 이유는…….

‘또 강해졌어.’

성현은 또 강해졌다.

오진구를 상대하던 몇 시간 전보다 더.

‘어떻게…… 저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지?’

그녀가 성현을 만난 것은 몇 달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짐승의 땅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성현을 손쉽게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녀조차도 성현을 상대로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내가 유성현을 통제할 수 있을까?’

-……달성했습니다. 스텟 포인트 1을 얻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서 있던 좀비가 쓰러졌다.

무심한 눈으로 좀비를 바라보던 성현은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싸우면서도 계속해서 스텟을 올렸다.

그 덕에 스텟 평균이 17을 넘어섰다.

문지기의 팔찌를 사용하면 20도 넘어설 거다.

‘괜찮네.’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보통 사람은 계약 후 몇 년이 지나도 이렇게 강해지기 어렵다.

역사상 가장 천재라 일컬어지는 지연우조차도 이렇게 빠른 성장은 이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성현은 몇 달 만에 이뤄 낸 쾌거였다.

‘좋아.’

툭, 툭…….

도끼를 흔들어 좀비의 피를 털어 낸 성현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병원 입구는 온통 좀비의 사체로 가득했다.

성현이 사체를 밟고 이동했다.

찾아 가는 곳은 경비실 앞에 쓰러진 보스 좀비였다.

다가선 성현이 손가락으로 놈의 몸을 툭 건들자 스르륵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다이아몬드처럼 생긴 코어가 남아 있었다.

이 코어의 사용처는 아이템에 장착할 수도 있고 목걸이 같은 장신구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성현은 코어를 손에 쥐었다.

[보스 좀비의 코어]

무기 장착 시 캐스팅 속도 +0.001%

방어구 장착 시 물리 방어력 +0.001%

‘좋아.’

성현이 고개를 틀어 서은서를 향했다.

“들어갈까요?”

좀비는 끝났다.

이제 깊숙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서은서가 뒤에 멍하니 서 있던 염준안과 김보명에게 손짓 했다.

“우리도 들어가죠.”

“아, 네.”

서은서의 뒤를 쫓던 염준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서은서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하지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됐다.

그가 한 일은 성현의 지시를 받고 휘발유를 뿌린 게 전부다.

그의 시선이 성현의 뒷모습으로 향했다.

‘새끼…….’

염준안은 입술을 핥았다.

성현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돋보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 개고생만 하다가 돌아가는 거다.

그건 싫었다.

주차장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건물 내부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종합 병원의 로비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고장이 났는지 깜빡거리는 형광등 때문에 음산하게 느껴졌다.

“이쪽으로.”

성현은 거침없이 2층으로 올랐다.

사실, 이런 던전은 길잡이 벌레 등을 통해 안전을 확인한 후 이동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로에 빠져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현은 이 던전을 알고 있다.던전의 주인이 있는 곳은 5층.

그런데 단순히 계단을 걸어서는 5층에 도달할 수 없다.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그리고 장례식장의 계단을 통해야 5층으로 갈 수 있다.

모르고 들어왔다면 꽤 오랜 시간 이 던전에서 헤맸어야 할 거다.

그리고 2층의 비상구에 섰을 때, 모두는 불쾌한 소독약 냄새를 맡았다.

“이게 무슨 냄새죠?”

염준안이 물었고 성현은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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