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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50화 (50/252)

50화

“건방진!”

마리안느가 인상을 구기며 몸을 틀었다.

하지만 성현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이미 멀리 떨어져서 활을 조준하는 중이다.

퍽! 퍽! 퍽!

화살이 마리안느의 미간과 가슴에 꽂혔고 그녀의 흰색 드레스가 피로 물들었다.

“쥐새끼 같은 놈이!”

그녀의 손톱이 암살자가 사용하는 ‘클로’처럼 길고 날카롭게 뻗어졌다.

“죽여 주마!”

그녀가 성현을 향해 달렸고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하지만 부아악, 허공만 갈랐다.

성현은 반대편으로 이동해서 다시 활을 조준하고 있었다.

“와라.”

성현의 전략은 간단했다.

그녀는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없다.

게다가 원래의 힘도 돌아오지 않았다.

멀리서 활을 쏘며 그녀의 체력을 갉아먹을 생각이다.

그리고 그녀의 다리가 멈췄을 때, 비상구를 열고 도망치려 한다.

지금은 도망칠 수 없다.

그녀에게 등을 보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운 방법은 아니었다.

이곳은 옥상이며 공간의 한계가 있다.

좁은 공간에서 고속으로 움직이며 그녀를 상대해야 한다.

조금만 방심하거나 발을 삐끗해도 먹이가 되고 말 거다.

‘집중. 그리고 신중하게.’

성현은 침착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퍽!

마리안느의 몸에 화살이 박혔다.

그녀의 몸은 끔찍했다.

수백 개의 화살들이 고슴도치처럼 박혔고 흐른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새하얗던 드레스는 이미 붉게 물든 지 오래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틀어 성현을 향했다.

“인간…… 정말 나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성현은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화살을 손에 쥐었다.

지금은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상대의 체력을 없애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쐐애애애액!

마리안느가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속도로 다가왔고 성현의 코앞에 섰다.

순식간이었다.

당황한 성현을 보며 그녀가 활짝 웃었다.

“방금 문신 하나가 완벽히 지워졌지.”

그녀의 팔에 그려진 문신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적어도 힘의 30%는 돌아온 거다.

‘젠장.’

성현은 그녀의 앞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가 빨랐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성현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쥐었다.

성현의 행동은 멈췄고 손톱이 파고든 어깨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녀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네 피는 어떤 맛일까?”

“글쎄.”

그녀가 성현의 어깨에 입을 가져다 대는 순간 성현은 주머니에서 화염병을 꺼내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

콰아악!

병이 깨졌고 화염이 확 일어나며 그녀의 상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성현은 불꽃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가 빨랐다.

불꽃 속에서 그녀의 손톱이 튀어나오더니 성현의 어깨를 그어 내렸다.

주우우욱!

* * *

서은서와 염준안 그리고 김보명은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1층이다.

조금만 있으면 지하에 도착할 거다.

그런데 김보명의 눈빛이 이상했다.

그는 헐레벌떡 내려가는 염준안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몇 시간 전 일이 떠올랐다.

‘이 멍청한 새끼 때문에…….’

김보명은 어린 시절부터 좋은 길드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가난을 극복하고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염준안이 찾아왔다.

“인사 팀장이 누군지 몰라? 서문길 마스터의 딸이라잖아! 여기서 잘 보이면 우리도 벤츠 탈 수 있어!”

“벤츠에는 관심 없어.”

“야, 네 동생 이번에 대학 간다며? 대출받고 다니게 할 거야? 아버지, 병원비는?”

“잘 보이면 보너스라도 준대? 아니잖아. 난 잠이나 자련다.”

“만약에 인정받아서 개인 가드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봐.”

“가드?”

서씨 일가를 쫓아다니는 복면인,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야.”

염준안이 씩 웃었다.

‘그 말에 넘어간 내가 미친놈이지.’

김보명은 한숨을 내뱉었다.

결과적으로 얻은 게 하나도 없었다.

잘 보이기는커녕 찍혀 버리기까지 했다.

이대로 밀려나면 모든 게 끝이다.

한직이나 유지하다가 은퇴하게 될 거다.

국내 5대 길드인 페이트에 들어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데…….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어. 난 염준안 저 새끼와 달라.’

그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겠다고 말하려 했다.

뭔가 보여 주지 못하면 그의 인생은 뻔했으니까.

“먼저 가세요.”

김보명의 눈이 커졌다.

지금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보명이 아니었다.

서은서였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은서를 바라봤다.

그것은 염준안도 마찬가지였다.

염준안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팀장님, 우리는 도움이 안 될 거예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지원을 기다리고 길잡이를 하는 게…….”

“길잡이는 한 명이 해도 충분하죠. 가서 해 주세요. 난 도와야 할 것 같아요.”

그녀의 시선이 계단 위로 향했다.

그녀의 목표는 페이트 길드의 마스터가 되는 거다.

하지만 언니, 오빠를 뒤로하고 마스터가 되는 것은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다.

‘유성현이 있으면 가능할 수도 있어. 천리마를 탈 수 없으면 목을 베라고 했지?’

그녀의 아버지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남들도 탈 수 없게 죽이는 것이 이득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길들일 때까지 내 옆에 두면 되는 거야.’

페이트 길드의 마스터가 되지 못하면 그녀의 삶은 의미가 없다.

‘시집이나 가겠지.’

다른 길드나 기업, 어쩌면 정치인의 자제와 결혼하게 될 거다.

집안의 발전을 위한 M&A, 예쁘게 웃으며 인형처럼 살 게 되는 인생이다.

어떤 결정 권한도 없이 남편의 액세서리가 되어서 행복하고 무료하게…….

‘차라리 죽고 말지.’

그녀는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녀의 뒤에서 김보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도 가겠습니다.”

“아뇨. 위험합니다. 가세요.”

“가면…… 뻔합니다.”

서은서는 ‘뻔하다’라는 단어에 눈을 깜빡였다.

그녀도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김보명이 말을 이었다.

“팀장님을 두고 떠나면, 목숨은 건지겠죠. 하지만 상급자를 두고 도망친 쓰레기로 찍힐 겁니다. 한직으로 밀려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제 목숨을 걸고 도박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김보명의 눈빛은 단호했다.

서은서는 한숨을 내뱉었다.

“마음대로.”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옥상으로 향했다.

김보명은 큰 숨을 내뱉은 후 주먹을 꽉 쥐었다.

‘할 수 있어.’

염준안만 미칠 지경이었다.

‘저 새끼, 왜 저래?’

염준안도 두 사람을 쫓아 계단 위로 올라갈까 고민했다.

하지만 다리가 움직여 주지 않는다.

본능이 도망가라 외친다.

목숨은 소중한 거다.

‘어쩌지? 어쩌지?’

* * *

마리안느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몸에는 여전히 화살이 박혀 있었고 얼굴은 피부가 녹아 뼈가 드러날 정도였다.

물론 성현의 피해가 더 크다.

상처투성이라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광대는 무너졌고 코뼈는 으스러졌다.

심지어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옥상의 난간에 기대 버티고 있는 게 전부였다.

지금의 성현과 비교하면 주차장에서 만났던 좀비가 더 인간 같았다.

하지만 마리안느는 방심하지 않았다.

성현의 눈 때문이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그녀가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포기하지 않는가?”

“포기?”

성현이 웃었다.

성현은 이서아의 소멸을 제물로 과거로 돌아왔다.

이 세상에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심지어 그녀의 부모조차 그녀를 처음부터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성현이 도끼를 고쳐 잡았다.

“와라.”

마리안느가 깔깔깔 웃었다.

“죽어야 포기하겠다는 거지? 좋다. 그럼 원하는 대로 죽여 주지.”

그 순간이었다.

딱! 돌멩이가 날아와 마리안느의 얼굴을 가격했다.

“돌멩이?”

그녀의 시선이 돌멩이가 날아온 곳으로 틀어졌다.

비상구였다.

그곳에 서은서가 서 있었다.

서은서가 긴장을 숨기며 입을 열었다.

“어머, 너 못생겨졌구나?”

“뭐라?”

“못생겼다고.”

마리안느가 어이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그녀는 존재였다.

잘못을 저질러 던전에 묶였고 수천 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한낱 인간이 비웃다니.

그녀가 저벅저벅 서은서를 향해 걸어갔다.

“그래, 넌 참 아름답구나? 그런데 그 얼굴에 피부를 벗겨 내면 그때는 어떨까? 그때도 아름다울까?”

서은서는 마른침을 삼켰다.

성현은 치아를 꽉 깨물었다.

‘왜 온 거야?’

성현의 머릿속에 구악의 동료들이 스쳤다.

이기적이지 못해서 죽어 버린 자들.

그런 자들은 이제 싫었다.

그래서 서은서와 함께하려 했다.

이기적인 선택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녀가 돌아왔다.

이유가 무엇이든 자신의 목숨을 내버리다니.

‘이놈이나 저놈이나 마음에 안 들어.’

성현은 걸음을 옮겼다.

어떻게든 서은서의 앞으로 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심한 상처를 입었다.

걸을 때마다 뚝, 뚝…… 핏물이 떨어진다.

“이거 드세요.”

옆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김보명이었다.

그가 조용히 성현의 옆으로 다가와 한 움큼의 알약을 건넸다.

체력 회복과 진통제 등등…….

“드세요.”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김보명은 왜 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이놈도 마음에 안 들어.’

성현은 망설이지 않고 알약을 씹었다.

바닥이 났던 체력이 돌아왔고 앞으로 몇 분은 더 싸울 수 있었다.

성현이 손가락으로 브이 표시를 그렸다.

“20초.”

“네?”

“20초만 막아 주세요. 그리고 또 하나. 혹시라도 저놈이 피를 빨려고 하면…….”

“하면?”

“자결하세요.”

“네?”

“아니면 그 전에 제가 죽일지도 모릅니다. 원망하지 마시고요.”

“그게 무슨……?”

마리안느는 벰파이어다.

피를 흡수하면 몸이 회복되고 김보명은 마리안느의 권속이 될 거다.

그것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럼…… 부탁합니다.”

김보명은 성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 표정을 보고 ‘할 수 없어요.’ 따위의 말은 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마리안느를 향해 움직였다.

성현은 옥상의 중앙에 놓인 의자로 시선을 옮겼다.

마리안느가 구속되어 있던 의자, 그녀를 옥죄고 있던 쇠사슬이 보였다.

‘지금 전력으로 마리안느와 싸워 이길 방법은 없어.’

이곳에서 살아 나갈 방법은 두 가지다.

마리안느를 다시 의자에 앉히는 것과 비상구를 통해 도망치는 것.

하지만 의자에 앉히는 것은 물론이고 도망치는 것도 여의치 않다.

마리안느는 힘을 되찾는 중이고 등을 보이는 순간 최악의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성현이 의자로 걸어가 쇠사슬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마력이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이 쇠사슬은 마력을 없앤다.

오랜 시간 마리안느를 옥죄고 있던 이유다.

성현의 시선이 마리안느에게 향했다.

김보명은 무릎을 꿇고 컥컥 거렸다.

그는 20초는커녕 10초도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리안느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못 가.”

“하찮은 인간이!”

마리안느가 김보명의 얼굴을 콱, 짓밟았다.

그 한 방에 김보명은 그대로 축 처졌고 그녀의 발목을 잡았던 손이 스르륵 풀렸다.

마리안느의 시선이 서은서에게 옮겨졌다.

서은서는 난간에 기대어 거친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마리안느가 히죽 웃었다.

“이제 네 가죽을 벗길 시간이다.”

그 순간…….

“네 상대는 나잖아?”

성현이 그녀의 얼굴을 향해 쇠사슬을 휘둘렀다.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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