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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51화 (51/252)

51화

갑자기 튀어나온 성현 때문에 서은서가 눈을 크게 떴고 마리안느는 쇠사슬에 맞아 피가 철철 흐르는 얼굴을 감싸 쥐고 분노를 토해 냈다.

“인간!”

그 순간을 성현은 빠르게 움직이며 그녀의 몸을 쇠사슬로 감았다.

“어?”

마리안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마력이 쭉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이건……?”

쇠사슬은 수천 년 동안 그녀를 옥죄고 있던 거다.

그리고 이 쇠사슬은 그녀에게 저주였고 트라우마였다.

그런데 인간 따위가 이 쇠사슬로 그녀를 옥죄려 한다.

그녀의 눈이 시뻘겋게 변했다.

“죽여 버리겠어! 반드시! 반드시!”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서은서가 붉은 안개를 만들어 그녀의 얼굴을 덮어 버렸다.

안개에는 독이 스며 있었다.

그 독이 마리안느의 피부에 닿았고 호흡기관을 통해 폐로 스며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녹아내렸다.

기침을 하자 검은 피가 쏟아졌다.

“아, 안 돼!”

마리안느는 일단 피하려 했다.

그때 땅에서 검은 손이 쑥 튀어나와 마리안느의 발목을 잡아챘다.

“어?”

그녀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쾅! 쓰러졌다.

검은 손은 김보명의 권능이었다.

잠시 기절해 있던 그가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성현과 서은서 그리고 김보명은 계속해서 마리안느를 공격했다.

하지만 몰아세우고 있는 게 전부다.

마리안느의 생명을 끊어 버리기에 이들의 힘이 모자랐다.

지금은 정신을 못 차리게 한 뒤 다시 의자에 봉인하는 게 최고의 방안이다.

그러려면 정신을 차리게 놔둬서는 안 된다.

힘을 회복하면 끝이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성현이 다급히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서 느껴지는 오싹한 기운, 그리고 깜빡이는 수많은 눈동자.

‘존재?’

저 눈동자가 무엇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꼭 존재처럼 여겨졌고 그들의 눈동자가 꼭 성현을 관찰하는 것만 같았다.

‘뭐지?’

하지만 그 정체를 파악할 시간은 없었다.

뭔가 엄청난 게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성현이 빠르게 외쳤다.

“피해!”

“네?”

서은서와 김보명이 눈을 깜빡였다.

“피하라고!”

하지만 피하기는 늦었다.

주먹만 한 돌덩이 수만 개가 떨어지고 있었다.

“오미로 베루스!”

오미로 베루스가 소환됐고 성현은 ‘찰나’를 이용해 서은서와 김보명을 잡아챘다.

모두는 오미로 베루스의 품 안에 숨었다.

동시에 돌덩이가 ‘콰콰콰쾅!’ 떨어졌다.

솟구친 먼지가 건물 전체를 뒤덮었으며 날아오른 파편이 총알처럼 튀겼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오미로 베루스의 눈이 깜빡인다.

-크르르르…….

체력을 모두 소진했고 더 싸울 수 없는 상태다.

“쉬어라.”

오미로 베루스가 덜그럭거리며 스르륵 사라졌다.

성현의 시선이 마리안느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무방비 상태로 돌에 맞았다.

아직 먼지가 잦아들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정상은 아닐 거다.

그런데 ‘그그그그’ 하고 옥상이 떨릴 정도로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힘은 마리안느가 있는 곳에서 모이고 있었다.

성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벌써 힘을 되찾고 있나?’

그럼 선택은 하나다.

“비상구로 나가요! 최대한 빨리!”

지금까지는 도망칠 생각을 안 했다.

등을 보였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어서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힘을 되찾았다면 가장 안전한 방법이 도망치는 거다.

“어서!”

서은서와 김보명이 몸을 돌릴 때, 먼지 속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살기와 목소리.

“인간!”

먼지를 뚫고 마리안느가 튀어나왔다.

그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흰색 드레스는 이미 없다.

나체, 하지만 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모든 피부는 녹아내렸고 도끼에 찍힌 살이 너덜거렸다.

귀여웠던 외모는 사라졌고 끔찍한 악귀가 되어 성현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성현이 서둘러 막았지만 ‘쩌엉!’ 하고 튕겨 벽에 부딪쳤다가 떨어졌다.

성현은 빠르게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이미 다가온 마리안느가 성현의 머리를 향해 발을 들었다.

“죽어라.”

콰직! 콰직! 콰직!

성현의 얼굴이 사정없이 바닥에 처박혔고 짓밟힐 때마다 성현의 피가 낭자하게 튀었다.

“그만해!”

서은서가 철근을 휘둘러 마리안느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퍽!

헛수고였다.

마리안느는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녀가 천천히 시선을 틀어 서은서를 향했다.

입꼬리를 비틀며 차갑게 웃는다.

“너니?”

서늘한 눈동자에 서은서는 자신도 모르게 물러섰다.

그리고 처음 이 옥상에 올라왔을 때 느꼈던 두려움을 떠올렸다.

잠시 몰아세웠다고 무기력해질 정도로 끝없는 공포를 잊고 있었나 보다.

“내가 우습게 보이지?”

마리안느가 손을 들었다.

서은서는 어깨 위에 몇 톤이나 되는 쇳덩이가 놓인 것 같았다.

“무릎 꿇어!”

마리안느가 거세게 외쳤다.

“이익!”

서은서는 견디려 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결국…….

“컥!”

그녀는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마리안느가 활짝 웃으며 서은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난 너희 같은 인간들이 참 싫어. 끝까지 허세 부리는 인간들. 조금만 괴롭히면 알아서 살려 달라 외칠 거면서.”

“죽여!”

마리안느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서은서의 머리를 꽉 잡았다.

“넌 절대 안 죽일 거야. 죽고 싶어서 몸부림을 쳐도 죽지 않을 거야. 넌 불사의 몸이 되어 영원히 내 종으로 살게 될 거야.”

마리안느는 뱀파이어다.

피를 흡수하면 체력을 회복한다.

그리고 피를 뺏긴 자는 그녀의 종이 된다.

이게 그녀의 두려운 점이다.

수천 명의 토벌대가 달려와도 그녀를 죽일 수 없을 거다.

부서지고 박살 나도 그녀는 누군가의 피를 빨아 체력을 회복할 테고 그녀의 권속이 된 자는 동료들과 싸울 테니까.

“네 피를 빠는 순간 난 완벽히 부활할 거다.”

마리안느의 혓바닥이 서은서의 목을 핥았다.

서은서는 소름이 끼친다는 듯 몸을 떨었고 마리안느가 입을 쩌억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그녀의 목을 향해 다가갔다.

서은서가 비명 같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냥 죽이라고!”

김보명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는 성공을 위해 옥상으로 올라왔다.

죽기를 각오했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마리안느의 앞에서 그 각오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지금은 후회만 가득하다.

‘내가 왜 그랬지? 왜 그런 거야?’

거지같은 하루를 살아도 저승보다 이승이 나은 법이다.

하지만 후회해봤자 늦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어떻게……?’

김보명의 떨리는 눈동자가 성현에게로 향했다.

‘저놈만 멀쩡하다면…….’

성현만 멀쩡하면 뭔가 기적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지금껏 성현이 보여 준 능력은 엄청났기 때문이다.

기적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현은 낭자한 피를 쏟아 냈다.

살아 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아니, 살아 있다 해도 전투 불능이다.

이미 만신창이, 뇌가 깨져 의식도 없을 거다.

‘어?’

김보명이 눈을 깜박였다.

성현의 손가락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고 손가락이 브이 표시를 만들어 보인다.

아까 알약을 건넬 때, 했던 표식과 같다.

-20초만 견뎌 주세요.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20초?’

김보명의 시선이 마리안느에게 향했다.

날카로운 이빨이 서은서의 하얀 목덜미로 옮겨지고 있다.

서은서는 김보명보다 강하다.

그런 그녀가 1초도 견디지 못하고 저 꼴이 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20초를 견딜 수 있을까? 멀쩡했을 때도 10초를 못 견뎠는데? 지금은 부상을 입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김보명은 이를 콱 깨물었다.

‘고민하면 뭐 해? 어떻게든 해야지!’

김보명이 마리안느를 향해 튀어 나갔다.

“죽어!”

마리안느의 시선이 김보명에게 향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김보명을 가리켰다.

“냄새나는 놈은 다가오지 마라.”

그 한마디에 김보명의 몸이 멈칫, 그 상태로 굳어 버렸다.

“처박혀 있으리라.”

마리안느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김보명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김보명은 전신이 으스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땅을 기어 마리안느를 향해 다가갔다.

움직일 수 있다면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날 죽여!”

마리안느가 무심한 눈으로 김보명을 내려다봤다.

“하찮은 인간이…….”

성현은 목에 걸린 목걸이로 손을 가져갔다.

동그란 펜던트 8개가 만져졌다.

이 목걸이는 지르힐의 선물이었고 이것을 주며 그녀는 말했었다.

-그대의 신체는 호칭의 권능을 사용하기에 아직 미약하다. 해서 이 목걸이를 선물한다. 펜던트는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는 제약이다.

‘통제…….’

통제가 풀렸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뭐라도 해야지.’

투투툭!

펜던트 하나를 뜯었다.

그러자 온몸의 심줄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고 세상 모든 마력이 몸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끄으으읍!”

뼈가 으스러지는 통증을 받았다.

신경의 마디마디가 끊어지는 것 같았고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터질 것 같았다.

통제를 잃은 힘이 날뛰고 있었다.

의식이 희미해진다.

몽롱해졌고 살을 베는 것 같았던 통증은 점차 잊혔다.

포기하면 편할 거다.

이대로 누워서 한숨 푹 자고 싶었다.

‘안 돼!’

성현은 눈을 부릅떴다.

이제 오진구 하나 죽였을 뿐이다.

여기서 무너지면 과거로 돌아온 게 억울하기만 하다.

정신을 차리자 느껴 보지 못한 어마한 힘이 소용돌이처럼 돌았다.

그 마력이 성현의 몸에서 흘러 바닥에 고인 피로 모였다.

이 모든 과정은 성현의 의지가 아니다.

통제되지 않은 힘이 제멋대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성현은 그 힘을 억지로 막으려 하지 않았다.

가만히 내버려 뒀다.

그 힘이 노리는 곳이 정확히 마리안느이기 때문이다.

모아진 피가 성현의 앞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그 피가 성현에게 묻는 것 같다.

-원하는 무기가 있는가?

성현은 이 스킬을 알고 있었다.

이름은 ‘블러드 웨폰’.

피를 원하는 형태의 무기로 만들어 주는 스킬이다.

성현이 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원하는 무기?’

창이다.

오랜 시간 창을 사용했고 가장 익숙했다.

그 생각과 동시에…….

-접수했다.

그렇게 답하듯 피로 만들어진 창이 성현의 손에 쥐였다.

이어서 전신에 힘이 솟구쳤다.

하지만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30초 남았습니다.

-29초 남았습니다.

-28초 남았습니다.

그 안에 서은서와 김보명을 피신시켜야 한다.

그때 서은서의 목에 이빨을 가져다 대던 마리안느가 힘을 느끼고 고개를 틀었다.

뻐어어억!

마리안느는 성현이 휘두른 창대에 얼굴이 맞고 반대편에 있는 비상구까지 날아가 떨어졌다.

꽤 큰 충격이었지만 마리안느는 곧장 몸을 일으킨 후 고개를 갸웃거리며 성현의 창을 바라봤다.

“설마…… 블러드 웨폰?”

“어.”

“네 존재는 뱀파이어가 아닐 텐데?”

“상관있나?”

“없지. 그런데 뱀파이어를 흉내 냈다고 나를 이길 수 있겠는가?”

“마력이 돌아왔다고 체력이 돌아온 것은 아니잖아? 해볼 만할 것 같은데.”

성현이 도발했지만 마리안느는 빙긋이 웃었다.

성현은 눈을 찌푸렸다.

그녀는 아직 서은서의 피를 빨지 못했다.

게다가 창대에 맞으며 서은서와 김보명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즉, 체력을 회복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런데 그 미소는 이상할 정도로 여유롭게 느껴졌다.

“먹이가 오는구나.”

그녀의 말과 함께 비상구가 끼이이익 열렸다.

그리고 염준안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지금 시간이면 뭔가 해결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겁하게 혼자 도망쳤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다시 나타난 거다.

지금쯤이면 안전할 줄 알고…….

하지만 기다리는 것은 마리안느의 날카로운 손톱이었다.

마리안느가 활짝 웃으며 염준안의 멱살을 콱 잡았고 그 목으로 이빨을 가져갔다.

“카아아악!”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어느새 나타난 성현이 창을 휘둘렀고 ‘콰아아악!’ 하고 마리안느의 눈을 뚫고 지나갔다.

“예측하고 있었다.”

성현은 염준안이 나타날 것과 마리안느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염준안의 피를 마시기 위해 방어를 포기한 순간을 노렸고 그 순간 ‘찰나’를 사용했다.

그 결과 그녀의 눈이 창에 꽂혔다.

“네 눈은 내가 가져가겠다.”

성현이 창을 뽑아내자 그 끝에 그녀의 눈동자가 박혀 있었다.

“꺄아아아악!”

그녀가 얼굴을 가린 채 비명을 질렀다.

성현은 서은서와 김보명에게 다급히 손짓했다.

“어서!”

그들과 염준안이 빠르게 비상구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마리안느는 그들을 막지 못한다.

끔찍한 고통에 비명만 지를 뿐이다.

“인간! 넌 산 채로 피를 뽑을 거야! 반드시!”

마지막으로 성현이 이동할 때 마리안느의 손이 마구잡이로 휘둘러졌다.

급기야 정확히 성현의 어깨를 향해 뻗어졌다.

저 손톱에 잡히면 도망칠 수 없다.

이 옥상에서 그녀의 식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성현이 조금 더 빨랐다.

쾅!

비상구의 문이 닫혔고 그녀의 손은 비상구를 때릴 뿐이었다.

문 밖에 선 성현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주저앉았다.

머릿속에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1초.

-0초.

“쿨럭.”

성현의 입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

“괜찮아요?”

서은서가 걱정했고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쉬죠.”

마리안느는 이곳으로 나올 수 없다.

비상구는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편에서 분노를 쏟아 내는 게 전부다.

‘여긴 괜찮아.’

성현은 계단의 벽에 몸을 기댄 뒤 뜯어냈던 펜던트 하나를 목걸이에 끼웠다.

그러자 팽팽하게 당겨졌던 근육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이제 좀 쉬자.’

하지만 머릿속은 쉬지 못한다.

‘아까 그것은 뭐였지?’

하늘에 박혔던 수많은 눈동자들, 그리고 갑자기 쏟아진 돌덩이.

그것은 마리안느의 힘이 아니었다.

분명 다른 존재였다.

생각을 이어 가던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천천히 생각하자.’

지금은 달리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성현은 손을 펼쳤다.

가져온 마리안느의 눈동자가 보였다.

[짐승으로 강등된 존재의 눈동자]

계약자의 축제를 열 수 있다.

성현이 조용히 웃었다.

‘축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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