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 * *
“아아아악!”
마리안느가 분노를 참지 못한 채 울부짖었다.
피부가 녹아내린 모습은 흉측했고 한쪽 눈마저 잃었다.
남은 눈에서 분노가 시퍼렇게 흘렀다.
“내가 왜!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저 새끼, 죽여 버릴 거야! 죽일 거라고!”
하지만 그녀는 문을 열 수 없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비상구는 열리지 않는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리안느…….”
그녀가 고개를 틀었다.
금발 머리에 검은 드레스, 낫을 든 마녀 아리가 보였다.
마리안느가 그녀를 경계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무, 무슨 일이지?”
“어머니께 지시받은 일이 있어.”
“……지시?”
아리는 어머니라 불리는 존재에게 지시를 받은 게 있다.
-극적인 순간에 마리안느를 죽여 성현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라.
하지만 실패였다.
돌멩이까지 떨어뜨렸지만 성현이 가진 호칭의 권능만 성장시켜 줬을 뿐이다.
“너를 죽여서 지시의 반쪽이라도 성공시키려고 해.”
“아리!”
“미안.”
아리가 사신의 낫을 꺼내 들자 마리안느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내, 내가 쉽게 당할 것 같아!”
“어.”
그게 끝이었다.
아리가 사신의 낫을 휘두르자 마리안느의 몸은 반으로 썰리고 말았다.
마리안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죽어 버렸다.
그 피와 살점이 땅에 쏟아졌지만 아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곧 신경을 끄고 시선을 들어 하늘을 향했다.
껌뻑거리는 눈동자가 수십 개 보인다.
‘유성현을 지켜보는 존재가 늘었어. 대체, 어디서 소문이 새어 나간 거지?’
아리의 눈빛이 병원을 빠져나가는 성현의 뒷모습으로 옮겨졌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병원을 빠져나가던 성현도 시스템 메시지를 들었다.
멈칫거린 그가 몸을 틀어 병원을 향했다.
주차장에 쓰러져 있던 좀비 사체가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있다.
던전의 주인이 죽은 거다.
‘뭐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번을 생각해 봤지만 이 던전에 그녀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
성현은 다급히 하늘을 향했다.
검은 하늘에는 존재로 추정되는 눈동자가 박혀 있다.
‘설마, 현신했다는 건가?’
저들이라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존재였던 마리안느와 존재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대체 왜?’
성현은 의문으로 가득한 눈으로 병원의 옥상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시퍼런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낫을 든 마녀 아리?’
분명 그녀다.
비록 거리는 있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성현은 몸을 틀어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확인할 게 있었다.
쾅!
성현은 비상구의 문을 열고 옥상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조용하다.
아리는 보이지 않고 마리안느의 사체만 있다.
성현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했다.
혹시 하늘에 있나 싶었지만 역시 없다.
하늘에 박혀 껌벅거리던 눈동자도 모두 사라졌다.
남은 것은 적막과 어둠이다.
성현은 한숨을 내뱉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밖으로 나가려던 성현의 시선에 마리안느를 옥죄고 있던 쇠사슬이 보였다.
* * *
던전의 문 앞이었다.
군인과 계약자들이 웅성거리는 어두운 산속에 불빛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부상자와 함께 나온 오진구의 팀원들이 포승줄에 묶여 호송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그곳에 지연우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죠?”
“그러니까…….”
직원이 대답을 시작했다.
“오진구가 환각의 가루를 이용했습니다.”
“환각의 가루?”
지연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고 직원은 알고 있는 정보를 술술술 내뱉었다.
토벌대가 서로 싸웠고 버서커의 가루를 사용했으며 그리고…….
“서문길 대표의 막내딸이 오진구를 죽였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정확한 조사를 해 봐야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답이 나온다는 말에 지연우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하지만 직원은 알 수 없었다.
계속 말할 뿐이다.
“문제는 조사의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페이트 길드와 연맹 그리고 정부에서 서로 조사하겠다고 싸우는 중입니다.”
사소한 알력다툼이다.
그들은 진실보다 힘을 과시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팀원들은 어디에 있죠?”
“일단은 페이트 길드의 집결지로 사용된 학교 교실에 잡아뒀습니다.”
직원이 떠났다.
지연우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오랜 시간 어둠 속에 서 있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즈.”
지연우의 옆으로 중년의 남성이 섰다.
지연우의 호위 무사 미치광이 오즈였다.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가짜다.
그는 인면피를 이용해 매일같이 얼굴을 바꾼다.
그래서 본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즈가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녀올까?”
“지금이 새벽 3시, 해가 뜨기 전에 끝내도록 해.”
“그래. 다녀올게.”
오즈는 모습을 감췄다.
“나, 난 아무것도 말 안 했어. 아는 것도 없고…….”
페이트 길드가 집결지로 사용하는 학교였다.
복도에는 시체가 가득했고 CCTV는 모조리 깨져 있었다.
그리고 2층에 있는 교실, 핏물이 흥건한 그곳에 오진구의 팀원이 의자에 묶여 있었다.
그가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살려 줘, 살려 줘!”
“너만 남고 다 죽었어. 그런데, 너 혼자만 살겠다고? 이기적인 거 아냐?”
오즈가 히죽 웃으며 다가섰다.
“제, 제발! 평생 감옥에서 썩어도 괜찮아! 어떤 말도 안 할게! 그러니까 살려 줘! 조금 있으면 아들이 태어난단 말이야!”
“아들?”
“그래, 제발…….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이름을 지어 주고 싶어.”
팀원은 울먹였다.
의자에 묶여 있지 않고 손이 풀려 있었다면 파리처럼 싹싹 빌었을 거다.
조금 고민하던 오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회칼을 허공에 그으며 말했다.
“에이, 기분이다. 선택해.”
“서, 선택? 살려 주는 거야?”
“1번, 너만 죽는다. 2번, 너는 살고 네 가족이 모두 죽는다.”
“뭐?”
“네 가족에는 네 아내, 배 속에 있는 아기, 네 부모 그리고…… 사촌까지 모두 포함된 거야. 자 대답해. 안 하면 너만 살 거야. 10, 9, 8, 7…….”
팀원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오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놈은 방긋방긋 웃으며 팀원의 가족을 죽일 거다.
임신한 아내, 배 속의 아기,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님까지 모두.
심지어 1년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사촌까지.
이런 선택은 할 수 없다.
팀원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그냥 날 죽여! 이 개 같은……!”
동시에 오즈가 회칼을 휘둘렀다.
핏물이 오즈의 얼굴에 확 튀었고 팀원의 목이 땅으로 툭 떨어졌다.
오즈가 떨어진 머리를 보며 히죽 웃었다.
“해 뜨기 전이네.”
이로써 지연우와 오진구가 연관된 것을 아는 사람은 모두 죽었다.
성현을 제외하고…….
* * *
-낫을 든 마녀 아리가 그곳에 있었다고?
“어.”
성현은 창고에 있었다.
성현의 상처를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치료하던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에게 관심 갖는 존재가 많을 거다. 아리 정도면 그대를 관찰하기에 훌륭한 심부름꾼이지.
“관찰한다고?”
-그대의 호칭 때문이지.
성현의 호칭은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다.
숨기려 해도 권능을 사용한 이상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가 주변을 맴돌고 있을 거다.
-이미 많은 존재가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대와 계약을 원하는 다른 존재가 있다면 어떻게 할 텐가?
지르힐은 입을 닫고 조용히 성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존재와 인간은 계약으로 얽혀 있지만 계약이란 약속된 대가를 치르면 파기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존재들은 그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그대와 계약을 맺고 싶어 할 거다.
예언에 따르면 창조주의 힘에 버금갈 수 있는 ‘에느가인’이란 것이 있다.
그리고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는 ‘에느가인’을 찾을 열쇠다.
예언을 믿든 안 믿든 오랜 시간을 살아온 존재들에게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는 좋은 유흿거리였다.
성현이 입을 열었다.
“너와 계약을 깰 생각 없어.”
-그대에게 유리한 조건이 올 수도 있다.
“존재의 세상을 없애려 하는 존재가 너 말고 또 있을까?”
-뭐라?
존재들은 억겁의 세월을 살아왔고 살아갈 거다.
그만큼 자신들의 세상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자신들의 세상을 없앤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존재는 지르힐뿐일 거다.
지르힐이 크게 웃었다.
-그래, 그 때문에 계속 나와 계약하겠다는 거지?
“어.”
-기분이다. 이번에도 공짜로 해 주지.
성현은 커스터마이징을 하는 중이었다.
커스터마이징이라는 게 꽤 많은 돈이 들어가고, 지르힐은 이번부터 돈을 받겠다고 으름장을 놨었다.
그런데 또 한 번 공짜로 하게 됐다.
-그러고 보니, 키도 꽤 컸구나.
처음 커스터마이징을 받을 때, 지르힐은 성현의 키가 더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 뒀다.
-이제 180cm는 되는 것 같은데? 적어도 3~4cm는 더 클 것 같으니 일찍 자도록 하라.
성현에게 외모는 관심 밖이었지만 지르힐은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성현이 거울을 보며 말했다.
“땡큐. 그리고 하나 더 부탁할 게 있는데.”
-뭐지?
성현이 주머니에서 마리안느의 눈동자를 꺼내 보였다.
“카니발을 열어 줬으면 좋겠는데…….”
마리안느의 눈동자에는 권능이 숨겨져 있었다.
바로 ‘계약자의 축제를 열 수 있다’는 권능.
이것이 카니발이다.
계약자끼리 싸우는 전장, 상대의 스텟을 흡수할 수 있고 아이템도 빼앗을 수 있는 약탈의 현장이다.
빠른 성장을 얻을 수 있는 만큼 죽을 가능성 역시 크다.
지르힐의 검은 그림자가 고개를 저었다.
-반대한다. 위험해.
“하지만 얻는 것은 크잖아? 그리고 참가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지?”
성현이 카니발을 여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빠른 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성현이 직접 참가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거다.
성현의 시선이 벽으로 향했다.
하얀 벽에 보드 마카로 적힌 이름, 오진구의 위로 박준영, 윤희진, 이주안 등등이 보인다.
모두 지연우의 부하였던 놈들이다.
저 15명을 초대해 서로 싸우게 만든다.
서로 죽이고 또 죽이게 한다.
그게 가능한 것이 카니발이다.
성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으로 걸어갔다.
보드 마카를 들고 오진구의 이름에 엑스 자를 죽죽 그으며 말을 이었다.
“지연우라는 놈이 있어. 이놈은 자신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지. 자신 외에는 모두가 틀렸다고 생각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지. 그리고 이놈은 세상을 심판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해. 난 이놈을 부술 거야.”
그리고 저주받은 미래를 바꿀 거다.
지르힐은 안타까운 눈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그녀는 성현 외에 많은 계약자들을 데리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세상을 건조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존재의 세상을 없애려 하지만 그대는 인간의 세상을 없애려 하는군.
“아니, 난 극단주의자를 없앨 뿐이야.”
-그대에게 세상은…….
“지옥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