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 * *
서울의 한 컨벤션 센터, 그곳의 야외 주차장에 검은 차량이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나온 사람은 지연우와 오즈 그리고 한아성의 오빠 한지혁이다.
그런데 오즈의 모습이 이상했다.
지난번에는 중년의 남자였는데 오늘은 60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언제나 다른 모습, 오즈의 본모습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목소리조차 마찬가지다.
모습에 걸맞게 목소리가 변한다.
오즈가 담배를 입에 물자 한지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담배 좀 끊어라. 그러다 병 걸려.”
“병? 난 폐암으로 죽기 전에 칼에 맞아 죽을걸. 그래서 상관없어.”
오즈가 히죽 웃으며 담배 연기를 내뱉자 한지혁이 고개를 저었다.
지연우는 트렁크를 열고 있었다.
안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흰 가면이 있었고 지연우는 그것을 꺼내 그들에게 건넸다.
“써라.”
그들은 가면을 쓰고 건물로 향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가면을 쓴 사람이 많이 보였다.
고양이나 캐릭터 가면 또는 흉측한 할로윈 가면도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연회장이었다.
가면을 쓴 사람이 바글바글한 그곳, 스크린 옆에 선 사회자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1라운드의 첫 번째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도끼를 주 무기로 하는 16번 참가자와 프레데터처럼 생긴 7번 참가자!
스크린에 나타난 것은 성현과 이주안이 싸우는 지하상가였다.
성현이 이주안의 얼굴에 라이트닝 볼을 갈기고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화면에 나타난 그들의 얼굴이 강아지와 프레데터 그림으로 가려져 있다.
신상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다.
화면을 보던 지연우가 오즈에게 물었다.
“저기에 참여한 사람들…… 누군지 알아냈어?”
지연우는 실력만 있다면 누구든 영입하려 했다.
그 사람이 흉악한 죄를 지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적으로 실력을 우선하는 사람, 그래서 이번 카니발에 관심이 많았다.
우승자는 그 실력을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대답은 한지혁이 했다.
“지금까지 2명 알아냈습니다.”
“누구지?”
“3년 전에 대짐승 진압부대에서 강간 미수로 쫓겨난 대위 기억하세요?”
“이주안?”
“네, 이주안이 참여한 것 같습니다. 우승해서 벤틀리를 받겠다고 떠들썩하게 자랑한 모양이에요. 그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강세준이라고 있어요. 재산 문제로 부모를 살해하고 교도소에 있다가 얼마 전에 출소한 놈.”
“아, 알아.”
“강세준도 아세요?”
“어.”
지연우는 짧게 대답후 시선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이주안과 강세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지연우가 영입 대상에 올려 둔 사람들이다.
포악한 성격이 얌전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이 이 카니발에 참여했다니…….
‘뭐지?’
지연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옆으로 검은 정장에 붉은 나비넥타이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양반탈을 쓴 사람이 섰다.
“베팅하시겠습니까?”
존재들만 카니발을 보며 도박을 즐기는 게 아니다.
계약자들도 소정의 돈을 내면 지금처럼 카니발을 관람할 수 있었고 베팅 역시 가능했다.
양반탈이 말을 이었다.
“베팅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싸움의 승, 패를 맞히는 것, 최종 우승자를 맞히는 것 등등. 취향에 맞게 즐기시면 됩니다.”
지연우가 물끄러미 양반탈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
“7번에게 100만 원을 걸지.”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양반탈이 고개를 숙이고 그 옆을 스쳤다.
지연우가 양반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 * *
“끄으으읍!”
이주안은 뒤로 물러섰다.
그의 코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씁.”
그가 소매로 피를 훔친 뒤 성현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는 성현에게 집중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주변을 신경 쓰고 있다.
‘또 1마리는 어디에 있지?’
그는 분명 225mm의 발자국을 봤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뜻.
신경 쓰지 않으면 언제 기습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소환마냐 아니면 똘마니냐?’
그리고 그것은 반응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고 가볍게 던진 라이트닝 볼도 피할 수 없었다.
파지지직!
“끄아아악!”
이주안은 휴대폰 진열대를 뒤엎으며 바닥에 엎어졌다.
하지만 정신을 차릴 시간도 없었다.
복부에서 둔탁한 충격을 느꼈다.
콰직!
걷어차인 거다.
바닥을 뒹굴며 이주안은 이를 꽉 물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거다.
숨어 있는 상대에게 뒤통수를 맞을지라도 일단 성현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바닥을 짚고 일어서던 그가 눈을 반짝였다.
‘이건?’
물이다.
바닥에서 추적추적, 물기가 만져진다.
‘그러고 보니까…….’
여성의 발자국, 그것도 물을 밟았기 때문에 나타난 흔적이었다.
이주안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어.’
그의 권능은 얼음이었다.
얼릴 수 있는 물이 있다면…….
‘난 신이다.’
그의 시선이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크로스 백으로 향했다.
‘이 안에 들어 있는 것은 500ml 생수 3개.’
그의 능력이 발현되려면 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공간에 물이 있으리란 법은 없었다.
그래서 비상용으로 사용할 생수 3개를 가져왔다.
더 가져오면 좋겠지만 물의 무게와 부피를 생각하면 3개도 많은 거다.
그리고 이 물은 꼭 필요한 순간, 반드시 사용해야 할 때를 고민했고 언제 얼마를 써야 할지 계산해야 했다.
그러니까, 성현처럼 허접한 놈에게 사용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거다.
하지만 그 생각은 변하고 있었다.
성현은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 조력자가 숨어 있다.
그리고 바닥에는 물이 흥건하다.
‘여기에 물 한 통만 쓰면…….’
바닥의 물기로는 부족하지만 물 한 통을 더하면 성현을 완벽하게 박살 낼 수 있다.
이주안은 지금껏 물을 아끼고 있었다.
하지만 물기가 손에 닿는 순간 그 생각이 변했다.
그 물을 성현이 뿌려 둔 것도 모른 채…….
‘그래, 딱 한 통만 쓰자.’
이주안의 눈빛이 시퍼렇게 변했다.
그가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기울였다.
물이 쏟아진다.
쪼르르륵…….
그리고 건너편, 점포.
옷가게에 숨어 있던 윤희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주안이 나타나기 전, 성현이 했던 말이 있다.
-놈이 나타나서 바닥에 물을 뿌리면 활을 쏴 주세요.
그녀는 성현을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녀가 성현에게 이용당하는 중이다.
‘손해 보는 장사 같아.’
하지만 그녀는 성현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지금은 동맹 관계다.
진심으로 도와야 나중에 제대로 이용할 수 있고 뒤통수를 칠 수 있다.
사기란 상대의 마음을 일그러뜨리는 예술이다.
‘망가진 네 얼굴이 궁금해.’
그녀는 성현의 표정을 기대하며 활시위를 당겼다.
그 순간 이주안이 그 소리를 들었다.
“쥐새끼! 거기 숨어 있었구나!”
“늦었어!”
그녀는 활시위를 놓았고 화살은 고속으로 쏘아졌다.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
웬만큼 강하지 않고서는 활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주안은 웃고 있다.
“늦었다고!”
그 순간, 얼음 조각이 치솟아 오르더니 라면 박스만 한 큐브가 되었다.
하나가 아니라, 둘, 셋, 넷, 다섯, 여섯!
그 모든 큐브가 이주안의 몸을 가렸다.
퍽!
화살은 큐브에 맞고 힘없이 떨어졌고 큐브는 다시 나뉘어 얼음 조각이 되었다.
이주안이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너부터 없애 주지. 뒈져라.”
수천 개의 얼음 조각이 곧장 그녀를 향해 쏘아졌다.
쉬이이이익!
“꺄아아악!”
윤희진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그때 파지지직, 스파크 소리가 들렸고 이주안의 시선이 다급히 움직였다.
성현이 바닥에 손을 대고 있었다.
전기가 바닥의 물기를 타고 쏘아지는 중이다.
웅크리고 있던 윤희진이 활짝 웃었다.
‘그래, 전기! 이것 때문에 바닥에 물을 쏟은 거지?’
바닥의 물은 성현이 쏟아 둔 거다.
처음에는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는 알 수 있다.
‘저놈은 전기 능력자야. 물기가 있다면 광범위한 공격이 가능하지!’
그리고 윤희진의 생각대로였다.
이주안은 윤희진을 향해 쏘았던 얼음의 방향을 바꿨다.
얼음은 큐브가 되어 그의 앞에 ‘탁! 탁! 탁!’ 하고 쌓였다.
전기를 막기 위해 얼음의 큐브로 방어벽을 만드는 거다.
윤희진이 깔깔깔 웃었다.
‘멍청한 놈! 얼음은 물로 되어 있는 거 몰라?’
전기가 얼음에 부딪쳤다.
윤희진의 생각대로라면 전기는 얼음을 타고 이주안에게 향해야 한다.
하지만, 파츠츠츠츠…….
라이트닝 볼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방어벽 앞에서 힘없이 사라졌다.
그녀가 틀렸다.
얼음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벽을 넘어 이주안의 앞까지 간 전기가 있다 해도 따끔할 뿐이다.
이주안이 손으로 이마를 짚고 악마처럼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크, 크하하하하!”
계약자들의 싸움에는 상성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통하지 않는 권능이 존재한다.
전기 계열에게는 이주안의 얼음이 그런 권능이었다.
“넌 그만 죽어라.”
그 말과 함께 큐브가 다시 얼음으로 나뉘었고 성현을 향해 쏘아졌다.
수천, 수만 개의 얼음 조각이 고속으로 성현을 향해 쏘아졌다.
콰콰콰쾅!
성현이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얼음 더미만 보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성현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주안은 더 이상 성현을 신경 쓰지 않고 윤희진을 향했다.
놈이 벨트를 풀어 헤친다.
“이 장면을 전 세계는 물론이고 존재들도 지켜보고 있다는 거 알아? 그리고 알지, 계약자들이고 존재들이고 다 또라이인 거? 내가 여기서 미친 짓을 할수록 후원금이 막 들어올 거야.”
그가 벨트를 손에 쥐었다.
윤희진의 눈빛은 사정없이 떨려 왔다.
그런데…….
“일단 좀 맞자.”
“뭐?”
“벨트로 널 때릴 거야. 네 하얀 등과 다리에서 피가 질질 흐르겠지. 존재들이 좋아할걸.”
“미친 새끼.”
그녀의 앙칼진 모습에 이주안이 혀를 날름거리며 낄낄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벨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죽여 주지.”
그가 윤희진의 앞에 섰을 때, 뒤에서 성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좀 신경 써 줬으면 좋겠는데.”
“살아 있었냐? 그런데, 넌 나한테 안돼.”
“그럴까?”
이주안이 천천히 고개를 틀어 성현을 바라봤다.
그런데 성현이 손가락으로 이주안의 발밑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
이주안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휴대폰 수백 개가 널브러져 있다.
싸우면서 진열대에 있던 게 널브러진 것이다.
성현이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과충전은 폭발의 위험이 있지.”
성현이 손을 들자 전기가 파직거렸고 휴대폰이 터지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젠장!”
배터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놈은 그것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벽에 등이 닿았을 때다.
마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뭐지?’
성현이 마리안느를 옥죄고 있던 쇠사슬을 발밑에 깔아 둔 거다.
생긴 것으로 보면 보통의 쇠사슬…….
함정으로 쓰기에 딱 좋았고, 놈은 그것을 밟았다.
‘놈은?’
이주안은 다급히 성현을 찾았다.
예상대로 그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중이다.
손에 전기를 파직거리면서…….
‘젠장.’
이주안은 얼음을 끄집어내려 했다.
얼음을 방패로 삼으면 전기 따위야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마력이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만들어진 것은 고작 큐브 하나.
“와! 오라고, 이 새끼야!”
그가 악을 지르는 순간 성현이 바닥을 짚었다.
파지지지직!
전기가 물기를 타고 그에게 쏘아졌고 이주안은 큐브로 전기를 막았다.
“헛수고야!”
전기가 흐르지 못하는 물질을 절연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물질이 가진 절연내력을 초과하면 전기가 통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절연파괴라 한다.
즉, 큐브 하나로 성현의 라이트닝 볼을 막을 수 없었다.
파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악!”
이주안이 비명을 질렀다.
그 찰나의 순간, 성현은 이계에서 사 온 연막탄과 마력 방해의 아이템을 던졌다.
얼음 조각과 휴대폰 배터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고 거기에 연막탄까지, 이곳은 난리도 아니었다.
성현의 시선이 바닥으로 옮겨졌다.
“지금!”
동시에 바닥이 박살 나며 오미로 베루스의 손이 쑥 튀어나와 이주안의 발목을 잡았다.
‘어?’
이주안은 바닥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땅속으로 끌려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