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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57화 (57/252)

57화

쿠우우웅!

바닥에 떨어진 이주안은 몸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릴 시간은 없었다.

‘뭐지?’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그는 갑자기 무엇인가에 발목을 잡혔고 바닥을 뚫으며 이곳에 떨어졌다.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어디지?’

뚫고 들어온 천장의 구멍이 아니었다면 빛 한 줄기 없을 어두운 공간,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긴 터널로 여겨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주변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멎었다.

3m가 훌쩍 넘는 거대한 백골, 오미로 베루스가 보였다.

이주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두운 곳에서 본 백골은 끔찍할 정도로 두려웠다.

게다가 백골의 몸에서 풍겨지는 포악한 기운은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것 같았다.

그런데 놈이 절그럭절그럭 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주안은 다급히 일어서서 가방을 열고 생수를 꺼냈다.

그의 권능은 아이스 계열이었고 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수를 아껴 사용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거침없이 물을 뿌렸고 작은 얼음 알갱이로 만들었다.

“가라!”

얼음 알갱이가 오미로 베루스를 향해 쏘아졌다.

퍼퍼퍼퍽!

알갱이는 오미로 베루스의 몸을 뚫고 들어가 박혔다.

이주안의 입술이 뒤틀렸다.

“넌 뒈졌어!”

그 말과 동시에 오미로 베루스의 몸 안에 박혀 있던 얼음이 사정없이 폭발했다.

콰콰콰쾅!

오미로 베루스의 뼛가루가 사방으로 튀었고 이주안은 멈추지 않았다.

그 얼음을 다시 모았다.

그것들이 모이더니 끝이 뾰족한 거대한 송곳으로 변해 간다.

“죽어!”

얼음 송곳이 그대로 날아가 오미로 베루스의 무릎에 처박혔다.

콰드드득!

오미로 베루스의 무릎 뼈가 으스러졌고 3m 가까이 되는 거대한 백골이 무릎을 꿇었다.

쿠우우웅!

그 충격으로 먼지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주안은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그가 손을 하늘로 뻗자 흩어졌던 얼음이 허공으로 올라섰다.

“익스플로전!”

그 얼음이 오미로 베루스의 몸으로 떨어져 박혔고 폭발했다.

콰콰콰쾅!

오미로 베루스의 몸은 사방으로 꺾였고 부서졌다.

뼛가루가 튀었고 조각난 팔꿈치 뼈가 바위틈에 박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주안은 오미로 베루스가 더 움직이지 못하자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

“죽었지? 죽은 거지? 크하하하!”

그런데 그 웃음은 잠깐이었다.

스르르륵, 오미로 베루스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뼛가루가 재생되었고 절그럭절그럭, 다시 일어선다.

눈이 있어야 할 어두운 부분, 그곳에서 타오르는 금빛의 불꽃이 정확히 이주안을 노려본다.

-크르르르.

불사의 신체, 가루로 만들지 않으면 오미로 베루스를 죽일 수 없다.

이주안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곧 벽에 닿았고 더 도망칠 수 없었다.

“오, 오지 마!”

사정없이 고개를 흔들며 울부짖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오미로 베루스가 그의 머리를 잡았고 그대로 패대기쳤다.

이주안은 반대편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콰아아아앙!

이주안은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방은 놓치지 않는다.

‘기회가 올 거야.’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기회는 온다.

오미로 베루스와 싸워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 어둠 속 어딘가에 성현이 숨어 있을 거다.

성현을 찾아 죽이면 저 소환마도 사라진다.

‘가방에는 생수가 한 통 있어.’

그것으로 성현을 죽일 생각이다.

그가 눈동자를 번뜩이며 성현을 찾았다.

찾는 즉시 목을 잘라 죽일 거다.

그 신체를 자근자근 씹어 먹을 생각이다.

‘어디 있지? 이 쥐새끼야!’

그 순간 콱, 그의 목이 쇠사슬에 감겼다.

“여기에 있다.”

성현은 뒤에 있었고 마력을 빼앗는 쇠사슬로 이주안의 목을 감았다.

“컥!”

이주안이 발을 동동거렸다.

하지만 마력이 빠져나가는 중이고 오미로 베루스에게 맞으며 체력이 떨어졌다.

아무리 성현이 나약하다 해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이주안이 설움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살려 줘.”

하지만 성현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오미로 베루스가 절그럭절그럭 이주안을 향해 다가올 뿐이다.

-크르르르.

이주안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씨, 씨×…….”

오미로 베루스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콰앙!

이주안은 의식이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쿨럭.”

이주안은 검은 피를 토해 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오미로 베루스의 발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력을 쓸 수도 없었다.

쇠사슬이 그의 발목을 감고 있어서다.

이주안은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죽음을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그의 귓가에 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주안.”

성현이 이름을 부르자 이주안의 눈이 커졌다.

카니발에 참여했어도 서로의 이름은 모른다.

그저 서로의 번호를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를 알아?”

동시에 오미로 베루스가 이주안의 정강이를 짓밟았다.

빠드드득!

“끄아아악!”

다리가 역으로 꺾였고 이주안은 비명을 내질렀지만 반대로 성현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존댓말을 써라.”

“미친 새끼야!”

다시 오미로 베루스가 반대쪽 정강이를 짓이겼다.

콰직! 콰직! 콰직!

“끄아아아악!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이 새끼야!”

“……새끼?”

오미로 베루스가 이번엔 허벅지를 짓밟았다.

이주안은 넝마가 되어 있었다.

그가 설움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울며 두 손을 싹싹 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냥 죽여 주세요, 제발…….”

뭐가 죄송한지 몰랐다.

하지만 고통 없이 죽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해야 했다.

눈물 콧물 흘리며 죽여 달라 부탁하는 이주안을 보며 성현이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죽여 줘?”

“부탁드립니다.”

성현이 그의 가슴 위로 양피지 한 장을 툭 떨어뜨렸다.

“읽어 봐.”

* * *

“16번과 7번!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바닥이 무너진 거지?”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컨벤션 센터였다.

스크린을 통해 성현과 이주안의 전투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오미로 베루스의 손이 튀어나오는 순간 얼음이 부서지고 연막탄이 터지는 등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현은 마력 방해 아이템을 던졌다.

스크린에 보이는 것도 바닥에 난 구멍이 전부였다.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저 안을 볼 수는 없어?”

불평의 목소리가 커질 때,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16번이 마력 방해의 아이템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20분 동안 내부를 볼 수 없습니다! 아, 지금 2번과 5번의 전투도 시작했습니다!

화면은 다급히 다른 전투로 옮겨졌다.

지연우는 턱을 쓸었다.

“저 사회자라는 놈은 저런 정보를 어디서 얻고 있을까?”

카니발을 열기 위해서는 존재의 눈동자가 필요하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카니발은 20년 만에 벌어진 이벤트였다.

지연우도 카니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고 있었다.

“알아봐?”

오즈가 히죽 웃으며 말했지만 지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어. 직접 해 보면 알 일이지. 카니발을 오픈하려면 존재의 눈동자가 필요하다고 했지?”

“사냥할 거야, 존재를?”

오즈가 눈을 반짝였다.

존재의 목숨을 끊어 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그 눈빛에 가득했다.

반대로 조용히 있던 한지혁은 당황스러웠다.

“단장님, 설마……. 위험하지 않을까요? 하하.”

한지혁은 웃음으로 넘기려 했다.

하지만 지연우의 목소리는 한없이 진지하다.

“지혁아…… 내가 왜 그러는지 알잖아?”

짐승이 나타나는 시간이 짧아졌고 존재가 인간에게 간섭하는 순간은 많아졌다.

뉴스에는 사람의 소식보다 짐승과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오는 중이다.

바꿔 생각하면 인간의 세상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거다.

모든 것은 짐승과 존재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존재에게 굽히느냐 아니면 독자적으로 살아남느냐. 그런데 굽힌다고 자존심 상하는 게 아니고 독자적으로 살아남는다 해서 마냥 좋은 것도 아니지.”

“…….”

“높은 양반들은 이미 존재에게 대항하기로 결정했어. 이유는 간단해. 쥐고 있는 권력을 놓기가 싫은 거야. 그래서 짐승을 이용해 생체 병기를 만들려 하지.”

권력자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존재와 싸우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결정에 죽고 다치는 것은 국회에 있는 늙은이들이 아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어린 학생들이다.

그들의 피로 세상이 채워질 거다.

그리고 다짜고짜 존재와 싸우게 되면 인류는 종말의 시간으로 다가서게 된다.

지연우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걸 막으려 한다.

“그걸 막고 중재하려면 강해져야 해. 시간이 없어. 무슨 짓이든 해야 해.”

지연우의 눈은 서늘했다.

그때 다시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1라운드 전투의 세 번째 결과가 나왔습니다. 16번 VS 7번. 16번의 승리입니다.

16번은 성현이었다.

땅속으로 들어간 두 사람이 어떻게 싸웠는지도 스크린에 나오지 않은 채 성현의 승리가 회장에 울리고 있었다.

지연우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흘렀다.

“100만 원 잃었어.”

그는 이주안에게 걸었다.

* * *

같은 시각…….

“유성현이 네놈에게 뭘 사 갔다고?”

“네? 하하하.”

성현이 이계의 시장에서 거래하는 꼬마였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올 법한 신전에 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높은 계단과 그 위의 왕좌가 보인다.

왕좌에 앉은 사람은 아름다운 여인.

낫을 든 마녀 아리가 매번 보고하러 오는 그 여인이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말하라.”

“그게…….”

꼬마는 대답 대신 미소만 그렸다.

그러자 계단의 가장 아래, 붉은 갑옷에 투구를 쓴 남자가 호통을 내질렀다.

“이 건방진 놈! 지금 이곳이 어디라고 웃음만 흘리고 있느냐! 유르라헬의 피를 우습게 아느냐! 죽고 싶은 것인가!”

꼬마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아이고, 제가 뭐라고 유르라헬의 피를 우습게 알겠습니까?”

“네놈의 더러운 입으로 스스로의 신분을 말하라! 스스로 위치를 깨닫고 고개를 숙이라!”

“저는 몰락한 왕가의 자손입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꼬마가 굽실거리자 여성이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계단의 위에서 꼬마를 내려다봤다.

“그런데? 그 스스로 자신의 신분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대답을 안 하는 게지?”

“전 제 신분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중입니다. 지금은 몰락한 왕가의 자손이라는 것을 버리고 정보 상인으로 살아가는 중이죠. 공짜로 드릴 수는 없습니다요. 헤헤.”

꼬마가 비굴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고 붉은 갑옷이 꼬마의 앞에 종이를 던져 뒀다.

꼬마가 주섬주섬 종이를 펼쳤다.

만족스러운 금액이 적혀 있는지 그가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럼, 말하라. 유성현이 뭘 사 간 거지?”

“계약서를 사 갔습니다.”

“계약서?”

“주종의 계약서입니다. 일종의 노비 문서죠. 사인을 하면 영원히 노비로 있어야 하는 거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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