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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58화 (58/252)

58화

* * *

“어떻게 된 거예요?”

성현이 올라오자 윤희진이 다급히 물었다.

성현이 아이템을 통해 마력을 방해했기 때문에 그녀는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이주안의 비명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정말 궁금했는데, 성현은 대답 대신 어깨만 으쓱거렸다.

“글쎄요.”

“그럼, 아까 그놈은요? 항복한 거예요, 아니면 죽은 거예요?”

“죽지는 않았어요.”

“그럼, 항복?”

“그런 셈이죠.”

“……그런 셈?”

윤희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봤던 이주안은 정말 강했다.

성현이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항복?’

그녀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하지만 성현은 이미 몸을 틀어 다른 곳을 보는 중이다.

그런 성현의 뒷모습을 뜯어보던 윤희진이 픽 웃었다.

‘꼴에 비장의 카드가 있다는 거지? 그런데 꼬마야, 카드는 너만 숨긴 게 아니야.’

성현은 매장의 물건을 살피는 중이었다.

이곳은 지하상가였고 쓸 만한 물건이 잔뜩 보였다.

운동화 끈, 휴대폰 배터리, 각양각색의 화장품 등등…….

성현은 앞으로의 싸움을 예측하며 필요한 물품을 챙겼고 가방은 곧 물건으로 가득 찼다.

그제야 몸을 틀어 윤희진을 향했다.

“그럼, 갈까요?”

성현과 윤희진은 동맹을 맺었다.

성현이 이주안과의 싸움에서 도움을 받았듯이 이제는 도움을 줄 차례다.

두 사람은 지하 상가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한쪽은 개활지고 반대편은 숲이다.

윤희진이 손바닥을 펼쳤다.

“제 상대는 저쪽에 있어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탁 트인 개활지였다.

나무 몇 그루와 바위 몇 개가 지형의 전부, 나머지는 척박한 땅이었다.

그녀가 그곳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제 상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어요.”

“……처음부터요?”

“네, 저기 어딘가에 숨어 있겠죠.”

“상대가 몇 번이죠?”

“12번요.”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12번은 이준이라는 이름의 킬러이며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상대를 죽이는 저격수였다.

상대가 어린애든 누구든, 심지어 자신의 부모까지, 놈은 사람을 죽이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 개활지에 가장 어울리는 놈이다.

성현이 슬쩍 윤희진을 살폈다.

‘상성이 좋지 않아.’

그녀는 손에 활을 들고 있지만 주 무기는 그게 아니다.

그녀는 근접 전투에 능했고 단도로 목을 잘라 버리는 것이 특기였다.

심지어 그녀의 권능은 육체 강화 계열, 저격수는 그녀에게 천적이나 마찬가지다.

운 좋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면 그녀의 승리일 테지만 이곳은 엄폐물이 거의 없는 개활지다.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노출될 테고 사살당할 거다.

윤희진 역시 지금의 불리함을 알고 있었다.

개활지에 숨은 포식자, 녀석이 아가리를 벌린 채 그녀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고민이 많은지 아랫입술을 꽉 물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엄호할게요. 저기 바위까지 달려가 주세요. 그리고 다음은 제가 반대편 나무로 달릴 거예요. 엄호해 주세요.”

서로 엄호하며 교차적으로 달려가는 것.

개활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정석적으로 사용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말은 거짓이다.

그녀는 엄호할 생각이 없다.

성현을 미끼로 사용할 생각이다.

그녀는 성현이 개활지를 바라볼 때 품에서 알약을 꺼내 부서뜨렸다.

그녀가 숨겨 둔 카드 중 하나,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아이템이었다.

-보고 있죠? 저는 이 남자에게 협박당하고 있어요. 이 남자가 그쪽의 상대인 3번이에요. 전기의 권능이 있고 고속으로 움직이는 데 능해요. 곧 바위로 달려갈 거예요.

메시지에 많은 내용을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속을 거야.’

그녀는 항상 성현과 같이 있었고 놈은 성현이 자신의 상대라고 착각할 거다.

손바닥의 레이더는 대략적인 위치만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얼굴이 진실되게 생겼잖아? 믿을 수밖에 없을 거야. 지금껏 쭉 그래 왔으니까.’

그녀는 놈이 성현을 공격하는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위치가 드러나면 고속으로 이동해 목을 베어 버릴 생각이다.

성현은 죽을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성현을 보며 입술을 핥았다.

“……제대로 엄호할게요. 위험하지만 부탁드려요.”

물론 엄호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간절했다.

성현은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개활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과 약 1km 떨어진 곳.

길리 슈트를 입은 이준이 엎드려 있었다.

바로 앞에서 봐도 흙더미로 보일 뿐,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을 완벽한 위장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울렸다.

-저는 이 남자에게 협박당하고 있어요…….

이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망원경을 통해 앞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성현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고개를 숙인 여자.

메시지에 적힌 내용대로 협박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거지?’

그는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든 뒤 성현을 조준했다.

아직은 멀어서 맞힐 수 없지만 그의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머리를 터뜨려 줄 거다.

‘조금만 더 다가와라.’

그가 한쪽 눈을 찡그린 채 성현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그러자 손가락에 검은 기운이 일렁거렸고 곧 1cm의 검은 구체로 변했다.

‘가라.’

검은 구체가 ‘파아아앙!’ 하고 쏘아졌다.

성현과 윤희진은 강한 기운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이준이 쏜 검은 구체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피해요!”

성현이 외쳤고 두 사람은 몸을 숙였다.

콰아아앙!

검은 구체가 바닥에 맞으며 흙먼지가 일었다.

땅에 엎드린 윤희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멍청한 새끼! 나도 맞을 뻔했잖아!’

하지만 지금의 공격이 성현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성현이 몸을 일으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먼저 가죠. 엄호해 주세요.”

그 말에 윤희진은 고개를 숙였다.

표정을 숨기기 위해서다.

그녀는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그렇게 성실한 얼굴로 대답하지 마. 미안해 죽겠잖아! 넌 미끼야. 미끼라고!’

성현이 입을 열었다.

“그럼, 갑니다.”

성현은 시야를 가리기 위해 연막탄을 터뜨렸다.

흰 연기가 치이이익 피었고 성현은 목표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 * *

컨벤션 센터.

가면을 쓴 사람이 더 늘었다.

지금은 한 500명쯤 되어 보인다.

계약자만 있는 게 아니다.

정치인과 기업인도 많이 와 있었다.

그리고 스크린에서는 윤희진이 고개를 숙인 채 웃고 있었다.

그 앞에서 성현은 달릴 준비를 하는 중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속은 건가?”

“멍청한 새끼.”

“아무리 동맹이라 해도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데, 믿는다고?”

“아, 저 새끼한테 베팅했는데…….”

계약자끼리의 싸움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다.

조금 더 이기적이고 영악한 놈이 살아남는다.

그런 세상에서 성현의 행동은 정말 멍청했다.

순진한 목소리에 속아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배당금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16번의 우승 확률이 떨어지고 3번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 베팅하실 분 있습니까!

성현의 고구마 같은 행동에 윤희진의 우승 확률이 올라가고 있었다.

“저 사람…… 유성현이 맞지?”

검은 고양이 가면을 쓴 여자, 바로 서은서였다.

그녀의 말에 옆에 서 있던 남자, 그녀의 옆을 지키는 가드 무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성현이라고요? 전기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아니야, 맞아. 확실해.”

그녀는 확신했다.

성현의 전투를 숱하게 지켜봤기 때문에 지금의 몸짓에서 성현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럴까?”

그녀는 성현이 속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믿었다.

이번 역시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무령은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그가 알고 있는 서은서는 사람을 도구로만 생각했고 목표는 오로지 마스터에 오르는 것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사람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좋은 일인가?’

무령은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시선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연막탄이 터졌고 이준의 손에서 검은 불꽃이 번쩍이고 있었다.

* * *

성현의 모습이 흰 연기에 가려졌고 이준도 정확한 조준을 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검은 구체를 계속해서 쏘는 것이었다.

퍽! 퍽! 퍽!

검은 구체는 땅에 박히며 부글부글 끓는 검은 웅덩이를 만들어 냈다.

저곳에 닿으면 심각한 화상을 입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윤희진은 입술을 뒤틀고 있었다.

‘연막탄? 뒤통수를 맞고 우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연막탄 때문에 성현의 표정은커녕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배신당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던 그녀에게는 아쉬운 일이었다.

‘됐어. 미련 갖지 마.’

그때 성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호!”

“네?”

“엄호하라고!”

그녀가 엄호를 했다면 이준은 이렇게 많은 검은 구체를 쏠 수 없을 거다.

반격이 없으니까 마음 놓고 검은 구체를 쏘아 대는 중이었다.

“할게요! 지금 할게요! 죄송해요!”

하지만 그녀는 엄호할 생각이 없었다.

입에 알약을 털어 넣을 뿐이다.

스피드를 올리는 것과 기척을 지우는 알약이었다.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몸에는 좋지 않지만 우승을 하려면 어쩔 수 없어.’

그때 콰아아앙! 바위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준의 검은 구체가 성현이 숨으려던 바위에 닿은 거다.

바위가 깨졌고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성현의 기척도 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활짝 웃었다.

‘죽었나? 미안.’

성현이 죽든 말든 그녀에게는 상관없었다.

그녀의 지금 목표는 이준이다.

놈은 이미 위치를 노출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연막탄으로 가려져 있다.

‘모든 게 유리해.’

그녀가 손에 쿠크리 단검을 들고 고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익!

그녀는 순식간에 이준의 앞에 도달했다.

성현만 신경 쓰던 그는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늦었다.

“뒈져!”

그녀가 악랄하게 웃으며 칼을 휘둘렀다.

“끕!”

이준의 목이 칼에 그어졌다.

피가 튄다.

이준도 멍청하게 당하지 않았다.

피가 흐르는 목을 틀어쥔 채 검은 구체를 쏘았다.

파아아앙!

하지만 그녀는 가볍게 피하며 단검을 휘둘렀다.

이준의 가슴이 깊게 팼다.

뼈가 보일 정도로 큰 상처다.

“끄읍!”

이준이 비틀비틀 뒤로 물러섰다.

그는 저격수다.

근접 전투에서 그녀를 이길 수 없다.

게다가 목과 가슴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미 의식이 흐려지는 중이었다.

윤희진이 활짝 웃으며 이준을 향해 다가갔다.

“3번은 나야.”

“뭐라고?”

“멍청한 새끼, 넌 속은 거야.”

“속았다고?”

“그래! 아까 달려오던 그 새끼도 지금 너도. 둘 다 속은 거야. 멍청한 새끼들은 다 죽어야 해!”

그녀가 깔깔깔 웃었다.

그때 ‘턱’ 그녀의 머리를 누군가가 잡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고개를 틀었다.

‘어?’

그녀의 머리를 잡은 것은 성현이었다.

그것도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성현이 느릿하니 입을 열었다.

“속은 것은 너야.”

“뭐?”

“속았다고.”

윤희진이 눈을 깜빡였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머리가 복잡했다.

그 순간 성현이 윤희진의 머리채를 확 잡아당겼다.

균형을 잃은 그녀가 사정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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