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콰당탕탕!
그녀는 사정없이 바닥을 굴렀다.
그 상황에서도 그녀의 눈빛은 시퍼렇게 빛났다.
‘내가 속았다고?’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죽여 버릴 거야!’
하지만 그 생각은 바로 끝났다.
이준이 검은 구체를 쏘아 만들어진 검은 웅덩이, 부글부글 끓는 그곳에 그녀의 다리가 닿았기 때문이다.
살이 익어 가는 고통에 그녀가 비명을 찔렀다.
“끼아아악!”
피부가 흘러내렸고 화상을 입은 부분에 수포가 올라왔다.
그녀는 엉금엉금 바닥을 기어 웅덩이를 벗어났다.
걷기는 힘들었지만 심각한 화상은 아니었다.
창고로 이동하면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창고, 창고로. 제발, 창고로…….”
하지만 헛된 외침이었다.
창고에 갈 수 있는 것은 전투가 없을 때나 가능하다.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앞으로 성현이 저벅 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난 그쪽을 속이지 않았어요, 저놈을 속인 거지. 그리고 분명히 엄호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그녀의 눈동자가 돌아간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요! 연막탄, 연막탄이 터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엄호를 할 수 없었고…….”
“아, 제가 연막탄을 터뜨려서 볼 수 없던 거예요?”
성현의 존댓말에 윤희진의 눈이 반짝였다.
“맞아요! 이해해 주세요. 연막탄이 터졌는데 어떻게 엄호를 할 수 있겠어요? 잘못하면 그쪽이 맞을 수도 있잖아요!”
지금껏 본 윤희진의 얼굴 중에 가장 간절해 보였다.
그녀가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발 이해해 주세요.”
“좋아요.”
“이, 이해해 주는 건가요?”
“아니.”
“네?”
“너 같으면 이해하겠냐?”
성현의 표정은 삽시간에 변했고 그녀의 얼굴은 뻣뻣하게 굳어 갔다.
“방금 좋다고…….”
“오해야. 잘못 말했어.”
성현은 무심한 눈빛으로 연막탄을 하나 꺼냈다.
바닥에 툭 던지자 흰 연기가 솟아오르며 성현과 윤희진의 모습을 가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단도를 들고 비명같이 목소리를 내질렀다.
“오기만 해! 죽일 거야! 죽일 거라고! 적어도 네 뱃가죽은 찢어 놓을 거야!”
“할 수 있으면 해 봐.”
성현은 다리를 휘둘러 그녀의 복부를 가격했다.
콱! 콱! 콱!
그녀는 바닥에 엎드려 컥컥거리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내장이 꼬이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그녀가 생각한 것은 단 하나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녀는 성현을 미끼로 삼았고 이준은 미끼를 삼켰다.
그 단순한 계략에 어긋날 부분은 전혀 없었다.
그때 성현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보다 내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어.”
“머, 먼저?”
성현은 이준이 상대라는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아이템을 사용해 메시지를 보냈다.
함께 그녀를 공격하자는 내용이엇다.
“저놈이 나에게 답을 해 줬고.”
성현과 윤희진이 작전을 이야기할 때였다.
두 사람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이준은 갑자기 검은 구체를 쏘았다.
그것은 성현의 개략에 찬성한다는 뜻이었다.
“다 알고 있던 거야?”
“네 이름도.”
“뭐?”
“꽃뱀 윤희진.”
그녀의 눈동자가 떨려 왔다.
그녀는 사기꾼이다.
사람의 생명을 끊는 게 살인이라면 사기는 사람의 인생을 끊어 버린다.
그녀는 원한 살 일을 많이 벌여 왔고 자신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성현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성현이 빙긋이 웃었다.
“시작하지.”
윤희진은 그 미소가 악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곧 그녀의 비명 소리가 죽을 것처럼 울렸다.
“끼아아아악!”
* * *
성현이 윤희진을 상대하고 있을 때, 이준은 바닥에 누워 알약을 한 움큼 씹어 먹으며 치료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목과 가슴의 상처가 깊었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회복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그때 메시지가 울렸다.
윤희진과의 승부에서 이준이 승리했다는 내용이다.
이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이겼다고?’
싸운 것은 그가 아니라 성현이었다.
그런데 이겼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허탈했다.
그가 고개를 틀었다.
연막탄의 연기 속에서 성현이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이준이 상체를 일으켜 나무에 등을 기대앉았다.
그리고 성현이 다가왔을 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쪽이 이긴 거지.”
“내가 이겼다?”
성현이 이준의 옆에 나란히 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상처는?”
“30분 정도 있으면 회복될 것 같아.”
이준이 씁쓸하게 답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한숨처럼 잿빛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 날 공격할 생각인가?”
“아니. 얻는 것이 없어.”
“얻는 것?”
“개인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상대의 스텟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고 했잖아?”
성현은 이주안과의 싸움에서 그의 스텟 중 파워 8을 흡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윤희진을 상대로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내 상대가 아니어서 그런가 봐.”
두 사람의 건조한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개활지에 앉아 다른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1라운드 마지막 전투 결과가 나왔습니다. 1번 VS 5번. 5번의 승리입니다.
-1라운드에서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라운드가 끝났다.
곧바로 메시지가 이어졌다.
-2라운드에 진출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2라운드 통과 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정된 상대를 이겨야 합니다.
-대모벌 10마리를 잡아야 합니다.
-제한 시간은 3시간입니다.
2라운드는 1라운드와 달랐다.
상대를 이기는 것은 물론이고 지정된 짐승도 10마리를 잡아야 한다.
문제는 잡아야 할 짐승이 대모벌이다.
벌침은 물론이고 그 이빨도 위험하다.
게다가 하늘을 날아다니기 때문에 까다롭다.
자칫 개인 전투에서 승리하고 짐승을 잡다가 사망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메시지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각자의 상대를 지정해 주는 거다.
성현의 머릿속에도 대전 상대가 지정되었다.
-2라운드 대전 상대가 결정되었습니다.
-상대는…….
성현은 상대의 번호를 들은 뒤 시선을 틀어 이준을 바라봤다.
이준도 번호를 들었다.
그는 상대의 위치가 뜨기를 기다리며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성현이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싸울 수 있겠어?”
이준이 윤희진에게 당한 상처는 만만한 게 아니었다.
적어도 30분은 숨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한 게 있었다.
“난 저격수야. 부상을 당했어도 거리만 떨어져 있으면 이길 수 있어.”
“그래? 다행이네.”
그리고 이준의 손바닥에 상대의 위치가 떴다.
그런데 그 위치가 이상하다.
한가운데다.
‘……가운데라고?’
이준이 눈을 깜빡일 때 그의 귓가에 성현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야.”
“어?”
이준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성현이 손을 툭툭 털며 몸을 일으켰다.
“부상자를 건들고 싶지는 않았는데, 미안하네.”
미안하다는 말과 달리 성현은 잔인하게 웃고 있었다.
이준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이 악마 같은 새끼!”
“부모를 죽인 놈이 할 말은 아니잖아?”
이준이 멈칫거렸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나를 알아?”
“조금.”
성현이 연막탄을 툭 떨어뜨렸다.
치이이이익.
두 사람의 모습이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 * *
-2라운드 전투의 첫 번째 결과가 나왔습니다. 12번 VS 16번. 16번의 승리입니다.
컨벤션 센터.
사회자의 목소리에 회장은 난리가 났다.
성현에게 돈을 건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 거다.
분명 1라운드에서 5명이 죽었다고 알려졌지만 관심 밖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계약자의 죽음보다 돈을 딴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시!”
“난 저 새끼가 우승할 것 같아.”
“연막탄을 터뜨려서 뭔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들어.”
“그래, 배당금이 얼마야?”
사회자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아시다시피 카니발은 존재들의 세상에서도 베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막 속보로 들어온 것이 있습니다. 존재들이 뽑은 우승 후보!
방금 전까지 시끄러웠던 회장이 고요해졌다.
이곳에 모인 사람은 정치인이며 기업가였고 길드 또는 연맹의 사람들이다.
강한 계약자는 반드시 옆에 두고 싶었다.
그것도 존재들이 선택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존재들이 뽑은 우승 후보는!
“서준식 본부장일 겁니다.”
무령의 목소리에 서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14번 참가자는 서준식이었다.
서씨 일가의 특징인 붉은 안개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서은서와 무령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 몸짓은 분명 서준식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저곳에서 오빠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녀는 성현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아직은 서준식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서준식은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라 왔다.
성현이 가파르게 성장했다고 해도 그의 앞에서는 아직은 어린애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가진 스텟과 경험치가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존재들도 알고 있을 거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회장을 울렸다.
-가장 높은 확률의 우승 후보 16번! 이어서 14번! 마지막으로 8번!
서은서의 얼굴이 굳어졌다.
16번은 성현이다.
14번은 서준식이고.
“뭐, 뭐야?”
물론 존재들은 별생각 없이, 단지 성현이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찍은 경우가 많았다.
그들에게 베팅이란 지긋한 삶에서 벌어지는 유흿거리일 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서은서는 마른침을 삼켰다.
성현은 존재들의 평가에서 서준식을 넘어섰다.
카니발에서도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고 있다.
지금도 이런데 1년, 2년 후에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을까?’
* * *
성현은 개활지에서 벗어나 숲을 달리고 있었다.
손바닥에 표시된 대모벌을 찾아가는 중이다.
한참을 달려 숲의 중앙으로 들어왔을 때, 성현은 걸음을 뚝 멈췄다.
바로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먼저 온 계약자 2명이었다.
검은 모자를 쓴 김간우와 머리를 은빛으로 염색한 한만보였다.
그들은 싸워야 할 상대였지만 대모벌을 잡은 후 승부를 가리기로 협의했다.
그들이 성현을 발견하고 검지로 입을 가린다.
조용히 하라는 뜻.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서 벌의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우우우웅.
성현은 나무의 뒤에 숨어 앞을 살폈다.
3m 정도 되는 벌이 한 여자의 발목을 이빨로 물로 질질 끌어오고 있었다.
여자의 옷은 대모벌에게 뜯겼는지 이미 다 찢어져서 벌거벗겨져 있었다.
성현은 눈을 찌푸렸다.
‘채은지?’
그녀는 젊고 예쁜 여자를 잡아 납치하는 취미가 있었다.
집의 지하실에 가둬 두고 채찍질을 하며 그 피를 핥았다.
그럼 영원히 젊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연우의 아래에 들어가서도 그 취미를 버리지 못해 많은 학생들을 죽이고 또 죽였었다.
그런 그녀가 대모벌이 판 구덩이에 구겨져 넣어졌다.
“으으음.”
기절했던 그녀가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흉측한 대모벌이다.
-쉬익! 쉬익!
대모벌이 거친 숨을 내뱉는다.
“꺄아아아악!”
그녀가 비명을 지를 때, 대모벌의 꼬리에 살벌한 벌침이 드러났고 그대로 그녀의 몸에 처박혔다.
콰아아악!
그녀의 비명이 멎었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며 몸에 심줄이 울긋불긋 솟아올랐다.
이어서 그녀의 배가 부풀었다.
배를 찢고 성인 주먹만 한 크기의 애벌레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