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 * *
숲이 불타며 하늘은 검은 연기로 가득했고 뜨거워진 공기에 살이 익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성현은 도끼를 휘둘렀다.
서걱!
벌의 몸과 머리가 분리됐다.
진득거리는 체액이 성현의 몸을 덮으며 하수구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성현은 냄새 따위는 상관 않고 뒤이어 날아온 벌을 노렸다.
콰직!
이것으로 7마리.
조금만 더 죽이면 어미 대모벌의 앞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런데 성현의 상태가 이상했다.
얼마나 많은 독침이 스쳤는지 피부는 퍼렇게 변했고 경직된 근육은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급기야 쿨럭거리며 검은 피를 쏟아 냈다.
비틀비틀, 휘청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쓰러질 수 없다.
여기서 무릎을 꿇으면 놈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
몸에 알이 박히고 애벌레가 태어나 갉아먹을 거다.
‘그건 안 되지.’
성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어미 대모벌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새끼들이 죽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성현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성현은 잠시 주변을 살폈다.
암컷 냄새에 홀렸던 수컷이 제정신을 차리는 중이고 연막탄은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있었다.
모든 게 성현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젠장.’
조용히 성현을 지켜보던 어미 대모벌이 머리를 까딱거렸다.
놈은 신중했다.
지금껏 성현의 상태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은 성현의 힘이 다했다고 판단했다.
고개를 들고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뱉는다.
-카아아악!
그러자 암컷 냄새에 빠져 있던 수컷 대모벌 몇 마리가 고개를 들어 어미를 바라봤다.
계속해서 ‘카아아아악!’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수컷 대모벌이 날개를 퍼덕이며 어미 대모벌을 향해 날았다.
이어서 4마리의 수컷이 어미 대모벌의 몸에 달라붙는다.
어미 대모벌이 수컷의 머리를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까득 까득, 수컷 대모벌의 껍질이 씹히는 소리가 울렸다.
성현의 몸에 알을 낳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그리고 머리가 뜯긴 수컷 대모벌이 툭툭 땅에 떨어질 때, 어미 대모벌의 징그러운 눈이 성현을 향했다.
-카아아아악!
어미 대모벌이 성현을 향해 움직였다.
그 속도가 지금까지의 대모벌과 달랐다.
성현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넌 속았어.’
지금의 성현은 하늘을 나는 기술이 없었다.
어미 대모벌이 내려오지 않으면 솜털 하나 뜯어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놈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일부러 몸을 치료하지 않고 있었다.
‘죽여 주마.’
성현은 품에서 해독제를 꺼내 이빨로 뚜껑을 뜯었다.
까드드득!
유리병이 바스라지며 입안에서 유리가 씹혔다.
하지만 상관 않고 벌컥벌컥 마셨다.
해독제를 마셨다고 곧바로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몸에 생기가 돌았고 굳어 있던 근육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와라.”
성현은 코앞으로 다가온 어미 대모벌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퍼억!
그 순간이었다.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합니다.
권능이 발현됐고 도끼는 어미 대모벌의 머리를 찍어 들어갔다.
콰지지직!
처음 느껴 보는 통증에 어미 대모벌은 휘청거렸다.
하늘로 도망가기 위해 날개를 퍼덕인다.
“어딜!”
왼손으로 더듬이를 잡고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콰아앙!
이어서 날개를 뜯어낸 후 오른손에 전기를 담았다.
파지지직!
상처를 입히고 그 상처에 전기를 욱여넣는 것!
성현의 필승 패턴 중 하나였다.
‘끝이다.’
하지만 성현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만!”
갑자기 나타난 김간우가 어깨로 성현을 밀쳤기 때문이다.
퍽!
성현은 아직 독에서 완벽히 풀리지 않았고 가벼운 공격에도 힘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일어나려 했지만 무리였다.
김간우가 빠르게 다가와 복부를 가격했다.
퍼억! 퍼억! 퍼억!
성현이 축 늘어졌을 때, 김간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살폈다.
“젠장! 설마 했는데…….”
살아 있는 대모벌은 어미를 포함해 23마리가 전부다.
다른 사람이 오기 전에 빨리 10마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3라운드에 진출할 수 없다.
‘할 수 있어.’
하지만 그는 곧 절망에 빠졌다.
콰직! 콰직! 콰직! 콰직!
벌의 껍데기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벌을 파리 잡듯 죽이며 다가오는 사내, 서준식이었다.
그는 권능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주먹만 사용한다.
그런데 벌의 머리가 터졌고 내장이 찢어졌다.
비명을 지르며 땅에 처박힌다.
김간우의 얼굴은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아, 안 돼!”
순식간에 벌의 숫자가 줄고 있었다.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2라운드의 첫 번째 통과자가 나타났습니다. 첫 번째 통과자는 14번.
14번은 서준식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10마리를 죽였고 통과했다는 메시지에 행동을 멈췄다.
쓸데없는 행동으로 힘을 빼지 않으려 하는 거다.
산보를 나온 것처럼 느긋한 태도로 나무에 등을 기댔다.
‘도대체 저 새끼는 뭐야!’
김간우는 분노했지만 따질 수는 없었다.
서준식이 모자를 쓰고 있어서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있었다.
그가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것.
김간우는 한숨을 내뱉으며 대모벌을 바라봤다.
‘13마리. 아직은 괜찮아.’
10마리만 잡으면 된다.
그럼 다 해결되는 거다.
‘지금까지 몇 명 남았지?’
지금 남은 사람은 5명.
성현과 김간우 그리고 서준식과…….
“이건 뭐야?”
또 한 사람이 등장했다.
치열한 싸움을 했는지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박수무당이었다.
이름은 장칠중, 알록달록한 무복을 입은 그가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벌의 사체, 불이 붙어 타오르는 숲,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그도 곧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3라운드로 진출하려면 10마리가 필요해.’
장칠중과 김간우의 눈이 마주쳤다.
“젠장!”
두 사람은 곧장 벌을 죽이기 위해 뛰어들었다.
남은 벌은 13마리다.
상대보다 더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3라운드에 진출할 수 없다.
“죽어!”
장칠중과 김간우는 벌의 체액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10마리의 벌을 잡기 위해 죽자 사자 움직인 거다.
그 덕에 남은 벌은 어미 대모벌을 포함해 2마리.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밝지 않다.
둘 다 10마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간우가 장칠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해결 방법을 알고 있는데…….”
“해결 방법?”
장칠중의 눈이 반짝였고 김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은 모르겠지만 애초에 벌은 1마리였어.”
김간우는 그가 봤던 상황을 설명했다.
대모벌이 한 여자의 발목을 끌고 알을 낳은 것.
애벌레가 나와 그녀의 몸을 갉아먹은 것.
어미 벌이 여성의 몸에 알을 까고 30여 마리가 된 것.
김간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가 통과하려면 한 놈을 더 제물로 바쳐야 해.”
“제물로 인간을 바친다고?”
“저쪽.”
장칠중은 김간우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틀었다.
쓰러진 성현이 보였다.
“저놈을 제물로?”
“어. 목에 칼만 꽂으면 될 것 같은데.”
“……그런데 그건 네가 해도 되잖아?”
장칠중은 꺼림칙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 처음 본 놈의 말을 믿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김간우의 눈빛은 또렷했다.
“난 네가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보험을 들어 놓은 것을 가져올 거야.”
“보험?”
“내 상대, 혹시 몰라서 아직 안 죽였거든.”
장칠중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2라운드의 전투 중 마지막 1개의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게 그쪽의 전투였나?”
“어.”
장칠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믿지.”
“그럼.”
두 사람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에 동의했다.
어떤 거리낌도 없었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계약자가 되어서 그런 것인지 처음부터 그랬는지, 이들은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껏 이 자리에 선 것도 누군가를 죽이고 짓밟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김간우는 보험을 찾기 위해 달렸고 장칠중의 시선은 성현에게 향했다.
성현은 누워서 거친 호흡만 내뱉고 있다.
장칠중이 입술을 핥으며 저벅저벅 걸었다.
“미안하지만 죽어라.”
장칠중이 단도를 빙글빙글 돌리며 차갑게 웃었다.
그는 타락한 무속인이었다.
미래를 본다는 알량한 재주로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는 데 열중했고 예쁜 여자가 오면 온갖 협박을 통해 겁탈하는 쓰레기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미래는 몰랐다.
그가 성현의 가슴팍을 향해 칼을 휘두를 때였다.
성현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칼을 쥔 그의 손목을 콱 잡았다.
‘어?’
장칠중이 눈을 깜빡일 때, 성현이 그의 손가락을 반대로 꺾었다.
두드득!
“끄아아아악!”
성현은 멈추지 않았다.
이어서 그의 뒤통수를 잡고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그의 몸이 땅에 엎어지는 순간 곧바로 일어나 사정없이 그의 등짝을 짓밟았다.
콱! 콱! 콱! 콱!
갑자기 당한 공격에 장칠중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몸을 둥글게 말고 아픔을 참으며 공격이 끝나기만 기다려야 했다.
그때 성현의 공격이 멎었다.
‘죽여 버리겠어!’
그가 눈에 분노를 담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성현의 목소리가 두렵게 들려왔다.
“미안, 나도 3마리가 더 필요하거든.”
“뭐? 3마리?”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미 대모벌의 더듬이를 잡고 있는 성현이 보였다.
“그, 그게 뭐야?”
“미안하다고 했잖아.”
성현은 어미 대모벌을 장칠중의 몸 위로 던졌다.
그리고 알이 가득 찬 대모벌의 꼬리를 잡고 장칠중의 몸으로 찔러 넣었다.
“안 돼……. 안 돼!”
하지만 늦었다.
놈의 꼬리가 장칠중의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갔고 장칠중의 몸에 붉은 핏줄이 징그럽게 솟아올랐다.
“끄어어어어업! 이 악마 같은 새끼야!”
그의 배가 부풀었다.
어미 대모벌의 할 일은 끝났다.
성현은 도끼를 들어 대모벌의 대가리를 찍었고 그동안 모은 전기를 어미 대모벌의 얼굴에 처박았다.
파지지지직!
어미 대모벌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르르르 떨었다.
성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도끼로 놈의 머리를 계속해서 찍었다.
꽈직! 꽈직! 꽈직!
그 모습을 서준식이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성현의 모습을 하나하나 담는 중이다.
* * *
“아가씨?”
컨벤션 센터, 스크린을 통해 성현의 싸움을 지켜보던 무령이 입을 열었다.
서은서가 고개를 틀어 그를 향했다.
“왜?”
무령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만약에 서준식 본부장과 유성현이 붙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유성현은 우리 길드에 들어올 수 없을 겁니다.”
스크린을 통해서는 카니발에 참여한 계약자의 얼굴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다.
“카니발의 참가를 숨기려 하는 본부장에게 유성현은 달갑지 않은 손님입니다.”
“그렇겠지.”
“서준식 본부장은 유성현의 가입을 반대할 겁니다.”
“그럴 거야.”
“그런데…….”
무령이 뒷말을 끌었다.
서은서가 고개를 틀어 그를 향했다.
“왜? 말해.”
“본부장이 유성현을 영입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화면 속 서준식은 조용히 성현을 보고 있었다.
“……오빠가 유성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