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 * *
어미 대모벌이 죽었다.
성현의 머릿속에는 메시지가 울리고 있었다.
-카니발의 숨겨진 퀘스트, ‘대모벌의 어미를 죽여라’를 달성했습니다.
-선물함을 확인해 주세요. 대모벌 로드의 독침을 보상받았습니다.
-이계의 사파이어를 보상받았습니다. 권능으로 독 저항력 +10%가 담겨 있습니다.
성현은 무심한 눈으로 고개를 틀었다.
박수무당 장칠중, 그의 뱃속에서 꾸물꾸물 애벌레가 기어 나오는 중이었다.
애벌레가 그의 몸을 갉아먹으며 성장한다.
이내 등이 갈라지며 대모벌이 탄생했다.
아직은 30cm.
날개도 마르지 않은 새끼 대모벌이다.
놈이 몸을 부르르 떨 때, 성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도끼를 휘둘렀다.
콰직!
어린 대모벌은 약했다.
도끼질 한 번에 몸과 머리가 분리되며 생을 마감했다.
성현은 애벌레의 등에서 대모벌이 나올 때마다 도끼를 휘둘렀다.
콱! 콱! 콱! 콱!
2라운드를 통과하는 조건은 대모벌 10마리, 성현은 순식간에 10마리를 채웠다.
-2라운드의 두 번째 통과자가 나타났습니다. 16번 통과.
하지만 성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죽인다.
마지막 1마리까지 전부.
-숨겨진 퀘스트 ‘대모벌 20마리를 죽여라’를 달성했습니다. 스텟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숨겨진 퀘스트 ‘대모벌 30마리를 죽여라’를 달성했습니다. 스텟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숨겨진 퀘스트 ‘대모벌 40마리를 죽여라’를 달성했습니다. 스텟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멈춰, 이 새끼야!”
김간우였다.
그는 제물로 사용하기 위해 은발 머리 한만보를 등에 업고 돌아왔다.
그런데 어미 대모벌이 죽어 있다.
남은 애벌레가 있지만 대모벌이 되는 즉시 성현의 도끼질에 족족 죽고 있다.
그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제발 암컷하고 수컷 1마리씩만 남겨 줘!”
2라운드를 통과하려면 새끼를 까야 한다.
그러려면 암컷과 수컷이 필요하다.
하지만 성현은 무심한 눈빛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퍽!
마지막 1마리의 머리가 땅으로 툭 떨어졌다.
이제 살아남은 대모벌은 없다.
모조리 죽었다.
성현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김간우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다…… 죽였나?”
“어.”
“내 말이 안 들렸냐?”
“들렸어.”
“그런데, 왜?”
“대모벌을 못 죽이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어. 히든 퀘스트라도 나오려나?”
김간우는 고개를 저으며 등에 업고 있던 한만보를 땅에 떨어뜨렸다.
이곳까지 열심히 업고 달렸지만 이제 한만보가 필요 없어졌다.
어미 대모벌은커녕 새끼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물은 짐 덩어리가 되었다.
김간우가 품에서 칼을 꺼내 푹, 한만보의 목을 거침없이 찍었다.
한만보는 가늘게 경련을 일으키다가 그대로 멈췄다.
김간우의 시선이 천천히 성현을 향했다.
그 눈빛이 점차 서늘하게 변해 갔다.
하지만 성현은 침착했다.
도끼에 묻은 벌의 체액을 툭툭 털며 그를 바라볼 뿐이다.
“죽인다.”
김간우가 험악한 말을 내뱉으며 저벅저벅, 성현을 향해 다가갔다.
그의 손에 쥐인 칼에서 서늘한 빛이 번쩍거렸다.
성현도 도끼의 날을 만지며 그를 향했다.
“와라.”
싸움을 걸어오면 피하지 않는다.
상황이 어떻든 받아 준다.
그게 성현이었다.
그때 그들의 머릿속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14번, 16번. 3라운드 진출을 축하드립니다.
-3라운드를 시작하기 전에 보너스 게임을 즐겨 주세요.
[보너스 게임 : 5번을 사냥하라]
제한 시간 : 30분
달성 : 5번의 사망
보상 : 100골드
5번은 김간우다.
성현을 향해 다가가던 그가 멈칫거렸다.
얼굴은 뻣뻣해지는 중이다.
“……사냥이라고? 나를?”
전투라면 자신 있었다.
그런데 성현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서준식도 상대해야 한다.
‘죽으라는 것인가?’
그가 입을 꽉 다물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이어졌다.
-이것은 5번에게만 전해지는 메시지입니다.
[보너스 게임 : 패자 부활전]
제한 시간 : 30분
달성 : 30분 동안 생존
보상 : 부전승으로 결승 진출
김간우의 눈이 반짝였다.
마냥 사냥을 당하는 게 아니었다.
대모벌을 잡을 수 없는 대신 3라운드에 진출할 방법이 생긴 거다.
‘바로 결승?’
대모멀 10마리를 잡지 못한 게 전화위복이 됐다.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럼 보너스 게임을 시작합니다.
-사냥꾼은 3분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동시에 성현과 서준식이 서 있는 땅 아래에서 검은 손이 나와 발목을 잡았다.
이제 두 사람은 3분 동안 움직일 수 없고 김간우는 그 시간 동안 멀리 도망가야 한다.
김간우는 두 다리를 툭툭 두들기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할 수 있어.’
그가 계약한 존재는 ‘북쪽 바람의 정령 애티라’.
바람의 권능답게 속도에는 그 무엇보다 자신 있었다.
다리를 꽉꽉 주무르던 그가 땅을 박차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익!
그는 수 초 안에 1km를 주파할 수 있는 스텟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3분이란 시간이 주어졌고 거기에 바람의 권능을 쓸 수 있다면…….
그의 입술에 미소가 걸렸다.
‘절대 잡히지 않아.’
그의 머릿속은 이미 패자 부활전을 통과해 결승에 가 있었다.
-2분 58초.
-2분 59초.
-3분.
-지금부터 30분 내에 사냥에 성공하십시오.
발목을 잡고 있던 검은 손이 스르륵 땅속으로 사라졌다.
서준식이 발목을 풀며 성현에게 시선을 옮겼다.
“제안 하나 하고 싶은데.”
“제안?”
“내가 저놈을 잡으면 바로 결승이 진행되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난 그쪽과 싸우고 싶지 않아. 그래서 제안하고 싶어. 기권을 했으면 좋겠어.”
어처구니없는 제안에 성현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서준식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가 느릿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쪽이 아까워서 제안하는 거야. 지금 죽기에는 어린 나이잖아. 그리고…….”
서준식은 뒷말을 끌었다.
그는 ‘나와 함께 일할 기회를 주겠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지켜본 성현은 꽤 유능했고 잘만 키우면 보석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았다.
‘이곳은 카니발이야.’
밖에서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의 목소리가 어떤 형태로 세상에 흘러들어 갈지 모른다.
만약 페이트 길드의 서준식이란 신분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그건 절대 안 돼. 서두르지 말자.’
그는 성현의 얼굴을 알고 있다.
카니발이 끝나고 밖으로 나갔을 때 성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기권만 하면 내가 얻은 상금은 모두 주도록 하지. 원한다면 그 3배를 챙겨 줄 수도 있어.”
이곳에서 돈 자랑을 하다니, 성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대답 대신 조용히 바라만 봤다.
서준식이 계속 말했다.
“당장 답하지 않아도 좋아. 사냥하는 것을 보면서 고민해. 그리고 결정해. 어떤 것이 너에게 유리할지.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해라. 목숨은 소중하니까.”
“걱정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건방은 떨지 않는 것이 좋아.”
그 말을 끝으로 서준식이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김간우를 쫓는 거다.
엄청난 속도.
주변의 풀과 나무가 바람에 휘어질 정도였다.
서준식의 모습은 이미 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쉬이이이익!
김간우 역시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가 손바닥을 펼쳤다.
성현과 서준식의 위치가 보인다.
‘한참 떨어져 있어.’
그가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이대로 30분만 도망 다니면 된다는 거지?’
김간우는 약 100km가 이어진 개활지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숲에 있는 성현이나 서준식이 이곳까지 오려면 수십 분은 걸릴 거다.
하지만 그는 방심하지 않는다.
‘북풍의 얼음 바람.’
권능을 사용했고 스피드와 파워를 올려 주는 알약도 꺼내 먹었다.
허벅지가 부풀어 올랐고 등 근육이 쩍쩍 갈라진다.
지금까지도 엄청난 속도였는데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었다.
쐐애애애액!
‘30분이 아니라 3시간이라 해도 상관없어.’
그는 승리를 자신했다.
이 정도 거리를 좁히려면 적어도 랭커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랭커가 이런 데에 나올 이유가 없잖아?’
그 순간이었다.
그는 등 뒤에서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인가에 쫓기는 두려움, 전신을 씹어 먹는 살기.
그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서준식이 보였다.
“씨, 씨×!”
김간우가 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뒷말을 이어할 수는 없었다.
이미 다가온 서준식이 김간우의 얼굴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았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김간우는 수백 미터를 굴렀다.
꽈아아아앙!
건물 벽에 박히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끄으윽!”
온몸이 아스팔트에 갈리며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지금 통증을 하소연할 시간은 없었다.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 앞으로 저벅저벅, 서준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 오지 마! 오지 마!”
그에게 서준식은 괴물처럼 보였다.
아니, 괴물이었다.
이 먼거리를 쫓아왔는데 권능을 사용하지 않았고 호흡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김간우는 기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오지 마! 제발!”
서준식은 대답대신 망치를 꺼내 휘둘렀다.
콰직!
-14번이 보너스 게임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보상으로 100골드를 받았습니다.
서준식은 물을 꺼내 얼굴에 뿌리고 있었다.
김간우를 죽이며 얼굴에 튄 핏물이 후드득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으며 계속해서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
-3라운드. 결승을 시작합니다.
-14번 VS 16번.
서준식은 손바닥을 들어 성현을 찾았다.
그런데 손바닥을 보자마자 그의 눈이 찌푸려졌다.
‘뭐지?’
성현도 사냥감을 쫓기 위해 이곳으로 오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현은 대모벌이 있던 숲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애초에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
사냥할 생각이 없던 거다.
‘무슨 생각이지?’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 * *
컨벤션 센터.
김간우가 죽었다.
그것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난 채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죽은 그는 관심 밖이었다.
모두 서준식의 강렬함에 탄성을 내뱉고 있었다.
“랭커 아니야?”
“랭커는 체면 차리느라 저런 곳에 안 나가잖아?”
“얼굴이 안 나오니까 나간 거 아냐?”
그들은 서준식이 랭커라고 추측하고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얼굴이 그림으로 가려져 있었고 권능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 정체를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스크린에 성현의 모습이 잡혔다.
이주안과 싸웠던 지하 상가, 성현은 그곳에 있었다.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기대감이 가득 채워졌다.
“16번이다!”
“지금껏 뭘 하고 있었지?”
“손이 더러운 것을 보니까 뭘 만지작거린 것 같은데?”
하지만 성현의 우승을 점치는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
그들은 서준식의 전투를 지켜봤고 힘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김간우의 능력을 보면 성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는데 서준식의 앞에서는 유치원생이나 다름없었다.
일방적인 폭력, 이번에도 그 결과는 다르지 않을 거다.
그런데도 그들은 실낱같은 기적을 기대하며 스크린에 집중했다.
지하 상가로 들어온 성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곳저곳에 화장품 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화장품 병이 사방에서 깨진다.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뭘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