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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63화 (63/252)

63화

* * *

저벅저벅.

서준식이 지하 상가의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성현이 이주안을 잡았던 그 지하 상가다.

형광등이 꺼졌기 때문에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서준식은 거침없었다.

이 정도 어둠으로 그를 막아서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한참을 걷던 그가 눈을 찡그렸다.

짙은 화장품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있어서다.

잠시 냄새를 맡던 그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독 냄새를 숨기기 위해 화장품을 대량으로 깨뜨린 것인가?”

화장품 냄새에 가려진 독 냄새, 어린 시절부터 독에 대해 배워 온 서준식의 후각을 피할 수 없었다.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정도 독으로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 기권해라! 그럼 상금은 물론이고 그 상금에 준하는 아이템까지 지급하겠다! 그러나 만약 기권하지 않고 덤빈다면 무조건 죽는다! 1분 동안 결정해라!”

물론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서준식은 그 자리에 서서 1분을 기다렸다.

……53초, 54초.

1분이 다 되어 갔지만 성현의 반응은 없었다.

서준식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래서 거지새끼들은 안 돼. 노력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믿는 저능아들이야.”

……58초, 59초, 1분.

서준식의 눈에 살기가 번쩍였다.

“죽인다.”

그때였다.

지금껏 꺼져 있던 형광등이 ‘팡! 팡! 팡!’ 하고 한순간에 켜졌다.

어두웠던 공간이 갑자기 밝아지며 서준식은 순간적으로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순간이었다.

‘찰나.’

지르힐의 권능 ‘찰나’를 사용한 성현이 서준식의 앞에 섰다.

동시에 준비해 뒀던 라이트닝 볼 3개를 그의 얼굴에 처박았다.

콰지지지직!

스파크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며 서준식은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뒤는 벽이다.

턱!

그의 몸이 벽에 닿을 때 성현은 기다렸다는 듯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는 서준식이었다.

시력이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는 성현의 공격을 느꼈고 몸을 비틀어 도끼를 피했다.

도끼는 서준식의 몸을 스치지 못하고 애꿎은 벽만 부수고 들어갔다.

서준식은 빙긋이 미소 지었다.

‘네 능력은 파악하고 있었다.’

성현이 대모벌을 상대할 때, 그는 성현의 전투를 신중히 지켜봤고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속도와 파워 그리고 모든 움직임.

‘눈 감고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이거다.’

서준식은 주먹을 쥐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쉬이이익!

엄청난 속도로 성현의 도끼가 날아오고 있었다.

‘어?’

지금의 속도는 대모벌을 상대할 때와 달랐다.

훨씬 빨라졌고 강해졌다.

이곳에서 얻은 스텟을 모조리 집어넣었고 모든 스텟을 5씩 올리는 문지기의 팔찌까지 사용했다.

이것은 서준식의 예상과 달랐다.

‘젠장!’

그는 공격을 포기하고 다시 몸을 틀며 도끼를 피했다.

타깃을 놓친 도끼가 꽈앙 소리를 내며 벽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서준식도 멀쩡할 수는 없었다.

균형을 잃어 몸이 비틀거렸고 성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콰당탕탕!

바닥에 쓰러진 서준식은 인상을 찡그렸다.

무엇인가가 등에 박히며 살을 찌르는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화장품 병의 깨진 조각이었다.

성현이 서준식의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착각하는 것 같아서 말해 주는데, 독 냄새를 숨기기 위해 화장품을 깨뜨린 게 아니야. 유리 조각에 독을 바르기 위해 깨뜨린 거지.”

“독?”

“그거 대모벌의 독이야. 네가 사냥감을 쫓을 때 난 독을 채취했거든.”

서준식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피부의 감각이 점차 사라지는 중이었다.

이대로 두면 몸이 마비될 거다.

성현이 계속해서 말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너 목숨 걸고 싸워 본 적 없지?”

“뭐?”

“없을 거야. 그러니까 전투 중에 상금을 주니 어쩌니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지.”

서준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누운 채로 성현이 가까워지기만을 기다렸다.

방심한 성현이 범위에 들어오는 순간 망치를 휘둘러 머리를 박살 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성현이 그 범위에 들어왔다.

서준식이 빠르게 일어나 망치를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성현은 그의 생각을 예상하고 있었다.

‘찰나’를 이용해 모습을 감췄고 이어서 형광등이 ‘퍽!’ 소리와 함께 꺼졌다.

다시 어둠이다.

서준식이 황당한 표정으로 어둠을 살피다가 끌끌끌 웃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그는 성현을 인정하기로 했다.

비록 자신보다 약하기는 하지만 고스톱 쳐서 결승에 오른 게 아니다.

나름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가 단검을 꺼내 자신의 팔을 그었다.

이어서 팔에 힘을 주자 핏줄이 울룩불룩 솟아나며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유리 조각에 묻은 독을 빼내는 거다.

완벽하게 해독은 안 되겠지만 마비는 피할 수 있다.

그의 눈이 살벌하게 앞을 향했다.

“장난질은 끝이다.”

성현은 벽에 등을 대고 있었다.

‘역시 강해.’

잠깐 맞붙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서준식은 강하다.

‘하지만 이길 수 있어.’

서준식은 구석에 몰리면서도 권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놈의 권능은 서씨 일가에게만 전해져 오는 카디르버의 붉은 안개, 사용하는 즉시 그의 정체를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카니발에 참여해 치고받고 싸웠다는 소문이 도는 것은 죽기보다 싫을 거야.’

서준식은 허세가 있고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서민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 체면이 너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거다.’

성현은 도끼를 손에 들었다.

서준식이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권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붙어 볼 만했다.

그리고 그는 성현이 전기 계열의 권능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칭의 권능이 전혀 다른 계열이라는 것은 예상 못 하고 있다.

‘그래, 계속 그렇게 생각해라. 그 생각이 머릿속에 박히게 해 주마.’

성현은 다시 차단기를 올렸다.

꺼져 있던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며 어두웠던 지하가 다시 밝아졌다.

‘찰나.’

성현은 지르힐의 권능을 사용해 고속으로 움직였다.

다시 서준식의 앞으로 이동해 도끼를 휘둘렀다.

그런데 서준식이 웃고 있었다.

“기다렸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빛을 통제했고 갑자기 밝아졌지만 빛에 적응할 수 있었다.

“잔재주는 여기까지다.”

바위 같은 주먹이 성현의 광대에 꽂혔다.

꽈직!

엄청난 충격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몇 대는 견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리였다.

단 한 방에 광대뼈가 무너진 것 같았다.

‘젠장.’

성현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코에서 주르륵 피가 흘렀다.

서준식이 차갑게 웃으며 성현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비틀거리는 성현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콰직!

* * *

컨벤션 센터.

회장은 적막했다.

비참할 정도로 얻어맞는 성현을 보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차라리 항복을 하지.”

“에이, 또 한 놈 죽겠네.”

성현의 승리를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지연우도 오즈도 그리고 서은서의 가드 무령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승부는 났습니다. 본부장이 승리할 겁니다.”

지금껏 성현은 기적처럼 역전을 이뤄 낸 적이 많았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다.

상대는 서준식이다.

서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처음에 화장품 조각이 통했을 때만 해도 ‘설마?’라고 생각했지만 역시였다.

성현은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하게 패배를 향해 다가가는 중이다.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기권을 요구할 테고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는 것을 권하겠죠. 유성현은 충분히 매력적인 계약자니까요.”

“……그렇겠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뭐가?”

“유성현이 본부장의 아래로 들어가면……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무령은 서은서의 곁에서 성현의 엄청난 성장을 지켜봤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본부장의 아래로 들어간다면 유성현은 아가씨의 계획에 최대 방해꾼이 될 겁니다.”

“방해꾼?”

“네.”

무령의 생각은 확고했다.

서은서에게 독이 될 싹은 자라기 전에 뽑아야 한다.

그것이 서은서의 곁을 지키는 무령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은서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급기야 배를 잡고 웃는다.

“아, 아가씨?”

“아, 미안. 갑자기 너무 웃겨서. 그런데 오빠가 유성현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아?”

“네?”

“나도 유성현을 통제할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되는데, 오빠가 유성현을 통제한다고? 말도 안 돼.”

그녀가 무령을 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에 유성현이 오빠의 아래로 들어간다면, 그건 오빠의 인생에서 최악의 사건이 될 거야. 몇 년 안에 유성현에게 잡아먹힐 테니까. 그럼 그때 다시 손잡으면 되지.”

그녀가 작고 하얀 손을 쥐었다 폈다.

성현과 손잡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그녀를 무령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타인에 대한 확고한 믿음.

그게 자신의 이득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성현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서은서는 확실히 변했다.

* * *

거친 전투의 영향으로 지하 상가의 형광등은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급기야 툭, 불이 꺼졌다.

다시 완연한 어둠이 되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 상가는 더욱 음산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피 묻은 망치를 툭툭 털던 서준식이 끌끌 혀를 찼다.

“아직 늦지 않았어. 숨이 붙어 있을 때 기권하겠다고 말해라.”

“……미친 새끼.”

성현의 체력은 바닥이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벽에 손을 짚어야 할 정도다.

하지만 서준식은 멀쩡했다.

그가 느긋하게 소매를 걷으며 입을 열었다.

“고기는 때릴수록 부드러워진다지? 너는 조금 더 부드러워질 필요가 있어.”

서준식이 망치를 툭 던져 버리며 말을 이었다.

“아까 목숨 걸고 싸워 본 적 있냐고 물었지? 없어. 생각해 봐. 개미를 밟아 죽일 때 목숨 거는 사람은 없잖아?”

그가 성현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갔고 성현은 비틀비틀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성현은 더는 물러설 수 없었다.

벽에 등이 닿았기 때문이다.

성현을 향해 서준식이 얼굴을 바짝 갖다 대며 잔인하게 웃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껴라. 그리고 고개를 숙여라. 기권이라는 말을 할 때까지 넌 죽지 못할 거다.”

“꺼져.”

“일단 말투부터 고쳐라.”

서준식은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성현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콰직!

성현의 눈이 충혈됐다.

갈비뼈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찢기는 느낌이었다.

“컥!”

입에서 검은 피를 토해 냈다.

하지만 서준식은 성현이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기권해라.”

발을 걸어 성현을 넘어뜨린 후 이어서 성현의 새끼손가락을 밟아 짓이기기 시작했다.

성현의 비명이 지하 상가를 울렸다.

“끄아아아악!”

“기권해라.”

“꺼져!”

“말투부터 고치라고 했다.”

서준식이 발로 성현의 입을 짓밟았다.

콰직! 콰직! 콰직!

코뼈가 으스러졌고 이빨이 깨졌다.

뇌가 흔들리며 순간순간 의식이 날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때리던 서준식이 폭력을 멈춘다.

실수로 성현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는 성현이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주며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회색 연기가 그의 입에서 흘렀다.

잠깐의 휴식, 성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준식을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는 서준식이 아니라 그의 등 너머였다.

그곳에 피를 뚝뚝 흘리며 솟아난 붉은 구체가 보였다.

바닥에 떨어진 핏물이 모여 거대한 구체를 만들어 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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