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65화 (65/252)

65화

* * *

성현은 거울을 보고 있었다.

“멀쩡해졌네.”

카니발을 치르며 입었던 부상을 커스터마이징으로 복원한 후였다.

그런데 지르힐은 불편한 눈빛이다.

성현이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대…… 몸을 좀 아꼈으면 한다. 커스터마이징이 만능은 아니다.

커스터마이징은 껍데기를 치료할 뿐, 몸에 받은 충격은 고스란히 쌓이고 있었다.

성현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뼈가 으스러져 돌아오면 언젠가는 복원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거다.

하지만 성현은 덤덤했다.

“뭐…… 어쩔 수 없지.”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됐고. 부탁한 것은 가져왔어?”

지르힐은 한숨을 내뱉으며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테이블에 놓인 흰 봉투.

성현은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안에는 사진이 수백 장 보였다.

컨벤션 센터에 성현을 보기 위해 찾아온 자들의 사진이다.

성현은 사진을 툭툭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연우와 오즈 그리고 한지혁이 찍힌 사진에서 손을 멈췄다.

비록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성현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확실했다.

‘역시 왔구나.’

성현이 빙긋이 웃으며 지연우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지르힐, 방금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지? 이놈 때문이야.”

-그자가 지연우인가?

지르힐도 지연우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창고의 벽에 적힌 수많은 이름들, 그중에 맨 위에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지르힐의 권능 외에 예언을 할 수 있다는 것, 알고 있지?”

-말해 보라.

“가까운 미래, 인간은 존재의 지배를 받게 될 거야. 정확히는 ‘교’라고 불리는 존재의 단체가 인간을 지배하는 거지.”

교라는 말에 지르힐의 금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뭔가를 아는 눈치다.

하지만 그녀는 곧 그 눈빛을 숨기고 성현을 바라봤다.

-그래서?

“인간은 살기 위해 갓난아기를 바치고 원치 않는 싸움에 끌려가 싸우다 죽고 또 죽고, 던져 주는 빵 한 조각에 감사하다며 굽실거리고 그러다가 종말의 카운트다운에 돌입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죽고 말겠지.”

성현이 사진을 손에 들며 말을 이었다.

“지연우는 존재를 도와 인간을 바칠 거야. 그리고 존재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교주 행세를 할 놈이지.”

성현은 지연우를 막으려 한다.

그러려면 몸을 아낄 수 없다.

계속해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강해져야 한다.

성현이 지연우의 사진을 벽에 붙이며 계속 말했다.

“어쨌든…… 부탁을 할 게 있어서 이 이야기를 꺼냈어.”

-말하라.

“지연우는 이계의 땅을 탈환한다면서 원정대를 꾸릴 거야. 하지만 그 속뜻은 다르지.”

원정대에 포함될 사람은 지연우와 반대측에 선 사람들이다.

지연우는 이번 원정대에서 그들을 죽이려 한다.

짐승에게 죽었다는 핑계로…… 몰살.

본격적으로 권력을 집어삼키기 위한 준비였다.

-그래서?

구름을 뚫고 솟아난 탑, 그 최상층에 쇠사슬에 묶인 지르힐이 있었다.

성현의 말을 들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깔깔깔 웃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말이 되는가? 말이 된다고 보는가? 그리고 그대 역시 그자들을 모두 죽이려 하는 것 아닌가?”

그녀의 귀에 성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꿀 수 있다면…… 난 악마가 되어도 괜찮아.

* * *

“이게 그거냐?”

방학을 맞이한 성현은 서동길의 양평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독을 수련하기 위해서다.

서동길은 성현이 카니발 우승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성현은 그에게 퀘스트로 받은 대모벌 로드의 독침을 보여 줬다.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서동길의 말에 가지고 온 거다.

약 30cm쯤 되는 독침을 바라보던 서동길이 감탄을 내뱉었다.

“보고만 있어도 독 냄새에 혀끝이 아릴 정도야.”

독침에서는 짙은 독향이 뿜어지고 있었다.

서동길이 아릴 정도면 평범한 사람은 냄새만으로 죽고 말 거다.

“그래, 이걸 어디에 쓸 생각인가?”

“무기로 쓰려고요.”

“무기?”

“창이요.”

서동길이 껄껄껄 웃었다.

“창은 모든 병기의 왕이라 불리지. 로드의 독침에 어울리는 무기야. 그래, 나중에 완성되면 꼭 보여 주거라.”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졸업 축하해요.”

익숙한 목소리에 성현이 고개를 틀었다.

서은서였다.

그녀가 생긋 웃으며 성현을 향해 다가왔다.

“여기에 계실 줄 알았어요.”

서동길이 눈을 찌푸렸다.

“날 보러 온 게 아니라 이놈을 보러 온 게냐?”

“죄송해요.”

“됐다.”

서동길은 뒷짐을 지고 집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에게 시간을 내준 거다.

잠시 후, 성현과 서은서는 정자에 마주 앉았다.

그녀가 생긋 웃으며 테이블 위에 파일철 하나를 내려 뒀다.

“이건 졸업 선물요. 졸업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지만 미리 주는 거예요.”

성현이 파일철을 펼쳤다.

부동산 계약서다.

성현이 사는 동네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39평.

“지난번 클럽 일을 도와줬을 때, 25평 아파트를 약속했었죠? 졸업 선물로 14평 더 넓혔어요. 집은 비어 있으니까 이사는 언제든 하시면 되고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파트 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었다.

짐승에게 빼앗긴 땅을 생각하면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9평이면 엄청난 거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뒷말을 끌었다.

성현은 그녀의 말을 기다렸고 한숨을 내뱉은 그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졸업 후 진로는 결정했나요?”

그녀는 페이트 길드의 인사 팀장, 이 대답을 듣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온 거다.

성현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그런데 페이트에는 들어가기 힘들 것 같은데요.”

“……그렇겠죠?”

서준식이 그녀의 오빠다.

자신을 박살 낸 성현이 길드에 들어오는 것을 달가워할 리 없다.

그리고 그것은 서은서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가 성현에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럼 다른 길드에 들어갈 생각인가요?”

서은서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린 계약자 중에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사람은 전 세계를 뒤져 봐도 손에 꼽힌다.

그래서 그녀는 생각했다.

‘다른 길드에 들어가게 놔둬서는 안 돼.’

성현은 긁지 않은 당첨 복권이다.

데뷔 즉시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당연하고, 몸값은 엄청나게 뛸 거다.

빠르면 5년, 성현의 몸값을 감당할 한국 내 길드는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후에는 한국을 벗어나 미국이나 일본, 중국, 중동의 길드에 들어가겠지.’

그래서 그녀는 성현을 잡아 둬야 했다.

훗날 외국으로 보내더라도 ‘유성현은 내가 만들었어요.’라는 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럼 생각해 둔 길드가 있나요?”

성현은 군대를 생각하고 있었다.

계약자는 던전에 들어가 실적을 쌓으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해야 할 일과 만날 사람이 있었고 지연우가 원정대를 보내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성현이 대답하지 않자 서은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기분 나쁘게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려고……?”

“군대에 갈 생각은 없나요?”

“……네?”

성현은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

그런데 군대를 가라니, 서은서는 자신이 말해 놓고도 민망했나 보다.

성현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 그러니까…… 그게, 죄송해요. 지금 서 본부장 때문에 우리 길드에 올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몇 년만 군대에 있으면서 시간을 주면, 제가 그동안에…….”

그녀는 이번에 부장으로 진급을 하고 전략기획본부로 적을 옮긴다.

그녀의 위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고 조만간 서준식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성현을 데려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성현의 대답이 중요하다.

군대에 가지 않고 다른 길드에 간다고 하면 일이 모두 꼬여 버리고 만다.

그녀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연봉은 지급할 거예요. 그리고 또 제가 청탁을 해서라도 수도권에 있는 편하고 좋은 부대로 갈 수 있…….”

“갈게요.”

“네?”

“간다고요, 군대.”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자신이 제안하고도 이상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다고요? 군대를요?”

‘미쳤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네, 그런데 저도 조건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서은서의 목소리는 흔쾌했다.

군대까지 간다는데 못해 줄 게 없다.

그리고 성현이 입을 열었다.

“편한 부대는 됐고요. 대짐승 진압 부대 특무 팀 182부대에 들어가고 싶은데, 힘 좀 써 줄 수 있을까요?”

그녀는 그 부대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성현이 말했다면 분명 호락호락한 곳은 아닐 거다.

“편한 곳도 있을 텐데, 왜 그런 곳을…….”

“그게 조건이에요.”

“알겠어요.”

그녀는 이번에도 흔쾌히 대답했다.

성현이 또 어떤 미래를 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수첩을 꺼내 182부대를 적고 있을 때, 성현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부탁이 있어요.”

“뭐죠?”

“계약서 하나만 만들어 주세요. 이 아파트를 페이트에서 줬다는 것으로 해서요.”

“네?”

“어머니한테 할 말은 있어야 하잖아요.”

계약자가 됐다는 것을 아시면 힘들어하실 거다.

하지만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다.

성현은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뭘 받은 게냐?”

서은서가 떠나고 서동길이 낄낄 웃으며 물었다.

“아, 아파트요.”

“아파트?”

“예전에 약속한 게 있거든요.”

“집을 해 오는 여자라……. 내 손녀지만 참 마음에 들어. 그럼 혼수는 네가 해 오는 거냐?”

서동길은 뭐가 좋은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다가 성현을 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네놈에게 예지 능력이 있다고 했지?”

“네.”

“내가 미래를 보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궁금해 미칠 것 같은 게 있어. 내가 얼마나 살지는 모르겠다만…….”

회귀 전과 같은 역사가 진행된다면 서동길은 몇 년 후 지연우에게 살해당한다.

지연우가 본격적으로 권력을 집어삼키던 때다.

그는 방해자는 모두 죽였다.

‘남은 수명이 궁금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서동길은 자신의 목숨이 궁금한 게 아니었다.

그가 힐끔 성현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내가 살아 있을 때 손주를 볼 수 있는 게냐?”

“네?”

“이름은 내가 지어 주마. 개똥이 어때? 유개똥이. 이름이 싼 티 나야 오래 사는 게야. 하하하하!”

“아, 못 보십니다.”

“어? 개똥이를 못 봐?”

“네.”

서동길은 아쉬워했지만 성현은 단호했다.

* * *

“여기가 어디야?”

서은서가 준 아파트였다.

성현은 어머니를 모시고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아파트에 살던 성현에게 39평은 운동장처럼 여겨졌다.

성현이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이에요.”

“우리 집?”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뜨고 거실을 살폈다.

어머니도 이곳이 이 지역에서 가장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 집’이라니.

어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틀어 성현을 바라봤다.

성현이 거실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아버지 사진을 두면 되겠어요. 이쪽에는 소파를 두고…….”

“무슨 돈이 있어서 여기가 우리 집이야?”

“페이트에서 줬어요.”

“페이트?”

“네, 계약금 받았어요.”

성현은 담담하게 거짓과 진실을 섞어 말했고 어머니의 눈은 붉게 충혈됐다.

끝내 눈물을 터뜨리셨다.

“……그런 걸 왜 해? 하지 마. 여기 가져가라고 해.”

계약자는 언제나 죽음과 함께한다.

짐승과 싸우고 인간과 싸운다.

자식을 전쟁터에 보내고 싶은 부모는 없다.

그래서 성현도 고민했다.

이 아파트를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앞으로의 진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리고 결정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었다.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위험하지는 않아요.”

“그게 어떻게 안 위험해!”

“제가 받은 권능이 무속인처럼 미래를 보는 것이에요. 그래서 전투 현장에서는 좀 벗어나 있어요. 그러니까 걱정하시는 일은 없을 거예요.”

성현은 서은서가 만들어 준 가짜 계약서를 어머니께 건넸다.

어머니는 한참을 우셨다.

멋대로 계약서에 사인을 해서 이도 저도 못 하게 만든 아들이 야속했고 걱정됐기 때문이다.

성현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걱정 마세요.”

* * *

공사가 중단된 5층짜리 상가 건물,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그곳은 을씨년스러웠다.

그곳의 지하에 3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각자의 얼굴은 볼 수 없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끼이이익, 지하실의 문이 열리고 또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 역시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들 4명은 서로 처음 만난 것처럼 경계한다.

서먹서먹하고 낯선 분위기가 강하게 흐를 때, ‘지이이이잉’ 하고 휴대폰이 울렸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의 휴대폰이었다.

그가 휴대폰을 들었다.

영상통화.

통화 버튼을 누르자 성현의 얼굴이 나타났다.

-4명 다 모였죠? 그럼, 가면을 벗어 주세요.

성현의 말에 휴대폰을 들고 있던 사람이 가면을 벗었다.

카니발에서 성현을 상대로 사기를 치려던 윤희진이었다.

“하…….”

그녀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고 다른 사람들도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이주안 그리고 저격수 이준, 마지막으로 서준식이었다.

그들이 성현의 지시를 받고 한곳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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