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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66화 (66/252)

66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던 그들의 시선이 멎은 곳은 서준식이었다.

페이트 길드의 후계자,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살피던 이주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연예인? 배우? 가수?”

“멍청한 새끼, 누군지 몰라?”

윤희진이었다.

그녀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자 이주안의 눈이 뒤집혔다.

“멍청? 뒈지고 싶냐?”

“능력 있으면 죽여 봐. 나도 죽고 싶으니까.”

험악한 말이 오갈 때, 성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싸우세요. 우리는 이제 팀입니다.

“팀은 개뿔, 씨×!”

욕설을 토해 낸 것은 이주안이었다.

하지만 성현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그가 품에서 양피지를 꺼내 펼쳤다.

그것은 그들이 피로 적은 계약서였다.

-좋은 말로 할 때, 따라 줬으면 좋겠는데요.

계약서를 본 이주안이 입을 빠득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젠장…….’

그는 잠시 몇 달 전을 떠올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냥 죽여 주세요. 제발…….”

카니발이었다.

이주안은 오미로 베루스에게 짓밟혀 넝마가 되어 있었고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심으로 죽고 싶었다.

그가 눈물 콧물 흘리며 손을 싹싹 빌기 시작하자 성현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정말 악마 같았다.

“죽여 줘?”

“……부탁드립니다.”

성현이 양피지를 꺼내 그의 가슴 위로 툭 던졌다.

“읽어봐.”

이주안은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양피지를 잡고 읽었다.

-목숨을 유성현에게 바친다.

-목숨을 스스로 끊을 수 없다.

-유성현의 명령에 따른다.

-명령이 비합리적이고 정당하지 않더라도 따른다.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

-유성현이 죽으면 같이 죽는다.

-어떠한 경우에도 유성현과 그 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해를 끼치면 죽는다.

이런 식으로 적힌 조항만 서른 가지가 넘었다.

모두 성현에게 종속되어 평생 노비처럼 살겠다는 조약이다.

이주안이 벼락같이 분노를 토해 냈다.

“그냥 죽이라고, 이 개새×야!”

“안 죽인다니까.”

그 말과 동시에 오미로 베루스가 이주안의 손톱 하나를 뽑아 버렸다.

“끄아아아아악!”

옛 기억을 떠올리던 이주안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그가 군대에 있을 때, 적에게 사로잡혀 며칠 동안 고문을 받았을 때도 견뎠다.

하지만 성현의 앞에서는 단 몇 분을 견디지 못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해 버렸다.

‘어린 놈의 새끼가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성현의 잔혹함은 기억만으로도 끔찍했다.

이주안이 주변을 살폈다.

앙칼지게 덤비던 윤희진을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은 눈치다.

성현이 양피지를 펼치자 입을 닫고 가만히 있다.

그리고 성현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들려왔다.

-오늘 모이라고 한 것은 서로의 얼굴을 익히기 위해서입니다.

* * *

“……앞으로의 연락은 윤희진 씨를 통해 하겠습니다. 조만간 뵙겠습니다. 그럼.”

어느 빌딩의 옥상이었다.

성현은 휴대폰의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검게 변한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성현은 차갑게 웃었다.

‘악당들로 구성된 팀…….’

저격수 이준과 사기꾼 윤희진 그리고 탱커 이주안과 올라운드 플레이어 서준식이 있다.

‘조합은 나쁘지 않아.’

그들은 지금껏 제 멋대로 살아왔다.

먼 미래를 보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쾌락과 욕망에 몸을 맡긴 거다.

‘이제 바뀔 거야.’

성현의 시선이 밤하늘로 향했다.

멀리 먹구름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세상은 곧 먹구름에 뒤덮일 거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것도 모른 채 오늘의 하루를 살고 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그리고 오늘과 똑같은 내일…….

하지만 성현의 눈에는 지옥 같은 미래가 보였다.

인간은 짐승에게 땅을 잃고 존재에게 권력을 빼앗긴다.

존재의 말에 따라 죽고 사는 게 결정된다.

인간은 가축과 같아지고 제 새끼를 바쳐 목숨을 연명한다.

하지만 그 시작은 과격하지 않았다.

인간은 끓는 냄비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의지를 잃고 존재의 힘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인간이 담긴 냄비가 끓기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성현은 회귀 전 악당들로 이뤄진 팀을 이용해서 그들을 막을 생각이다.

‘회귀 전과 달라.’

그때는 성현도 끓는 냄비 속의 개구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냄비가 끓는 것을 알고 있고 엄청난 속도로 강해지는 중이다.

‘막을 수 있어, 지연우뿐만이 아니라 존재까지도.’

이서아가 봤던 무량대수의 일, 그 확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할 수 있어.’

그런데, 성현의 표정이 조금 씁쓸해 보였다.

성현은 오늘 팀을 구성했다.

회귀 전과는 전혀 다른 멤버.

한 명, 한 명이 악당이고 소모품처럼 다룰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지, 구악의 멤버가 기억나는 밤이었다.

한참 그렇게 있던 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댔다.

“나와.”

잠시 후, 가로등이 깜빡거리는 골목길.

거대한 그림자가 저벅저벅, 성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성현이 고개를 틀었다.

“왔어?”

거대한 덩치의 주인공은 이태산이었다.

그가 성현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왜 불렀지?”

“밥 안 먹었지? 밥 먹자.”

“뭐? 밥?”

성현은 뜬금없이 이태산을 불러내더니 밥을 먹자 말하고 있다.

그런 성현을 이태산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태산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는 거야? 갑자기 밥은 왜?”

이태산이 눈을 깜빡일 때 성현이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순댓국밥 좋아하지? 이 근처에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데, 그거 먹자.”

이태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순댓국밥이다.

‘이건 또 어떻게 알았지?’

당황스러워하는 이태산을 보며 성현이 말을 이었다.

“가자. 배고프다.”

“어? 어.”

성현이 빙긋이 웃었다.

구악의 멤버에게 배불리 밥을 사 주고 싶은 밤, 오늘은 그런 밤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특무 팀 182부대요?”

“네.”

서은서는 육군본부 인사과장 박재안 중령을 만나고 있었다.

특무 팀 182 부대에 들어가고 싶다는 성현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다.

박재안 중령이 멍한 눈으로 서은서를 보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이 서은서에게는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웃으시는 거죠?”

“아, 죄송합니다. 이 자리에 있으면 여러 청탁이 들어오거든요. 수도권으로 보내 달라, 편한 보직을 찾아 달라……. 그런데 182부대라니요. 깜짝 놀랐습니다. 짐승의 땅으로 보내 달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이거든요. 하하하.”

182부대……. 실상은 짐승의 땅에 위치한 작은 초소다.

현재 2명이 근무하는 중이고 10km 앞으로는 도망자들의 도시까지 있다.

즉, 짐승과 도망자가 얽혀 살아가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

매일매일이 던전에서 생활하는 것과 같다고 알려져 있다.

서은서는 성현이 왜 그런 곳에 가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편한 곳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 줄 힘이 있는데…….

하지만 그녀는 성현의 결정을 바꿀 수 없었다.

성현은 언제나 가장 위험한 곳에서 극적인 성장을 이뤄 냈고 그가 하는 일에는 언제나 의미가 있었다.

“그쪽으로 보내 주세요. 이 사람이에요.”

서은서는 성현의 정보가 담긴 파일철을 중령의 앞으로 건넸다.

* * *

성현은 택시에서 내렸다.

경상북도, 주왕산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보이는 곳이었다.

성현은 졸업 후 곧장 영장을 받았고 해당 부대는 182부대였다.

계약자로 이뤄진 부대는 딱히 훈련소라는 개념이 없다.

일반인이 아니라 계약자이기 때문에 훈련소가 아니라 자대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게 된다.

그래서 곧바로 182부대로 향하는 거다.

가방을 걸치고 조금 걸어가자 위병소가 보였다.

성현은 182부대로 들어간다는 출입증을 보인 후 위병소를 통과해 한참을 더 걸었다.

전기가 지직거리는 철조망이 보인다.

이번에도 출입증을 꺼낸 뒤 통과했고 안개가 덮인 곳으로 들어갔다.

본격적인 짐승의 땅.

-가아아악!

30m는 훌쩍 넘어 보이는 브라키오사우루스가 괴성을 지르고 있다.

물론 생김새가 브라키오사우루스일 뿐 놈은 육식을 즐겨하는 짐승, 지금도 매머드를 물어뜯고 있다.

성현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놈들과 일일이 싸우다가는 10년이 걸려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을 거다.

성현은 계속 걸었다.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 점점 더 짙어졌다.

이번에는 작은 마을이 보였다.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

집은 허물어졌고 모기와 날파리가 윙윙 날고 있었다.

그때 성현의 귀에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 살려 주세요.”

성현은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흰색 블라우스가 찢긴 여성이 비틀거리며 성현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성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줘?”

“부탁이에요. 저 뒤에서…… 저 뒤에서…….”

그녀의 뒤는 안개로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성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도끼를 손에 쥐었다.

그런데 그 도끼가 정확히 그녀를 향하고 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건 왜……?”

성현은 이런저런 말 없이 도끼를 휘둘러 여성의 머리를 찍어 버렸다.

콰지직!

“꺄아아아악!”

머리가 반이 쪼개진 여성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그녀의 뒤에서 길이가 8m나 되는 지네가 쑥 튀어나왔다.

짐승의 이름은 머메이드 센티페드, 마리안느와의 싸움에서 만났던 놈.

촉수에 달린 여성으로 인간을 유혹하고 잡아먹는 짐승이다.

성현은 비명을 지르는 여성의 입에 라이트닝 볼을 쑤셔 넣고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지네가 아가리를 벌리고 다가온다.

텁! 텁! 텁!

성현은 계속해서 뒤로 빠졌고 놈은 허공을 물어 댔다.

‘지금!’

성현은 공중으로 붕 뛰어 놈의 머리에 올라탔다.

이어서 계속해서 도끼를 휘둘러 놈의 머리를 찍었다.

퍽! 퍽! 퍽! 퍽!

짐승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성현은 짐승의 머리에 박힌 도끼를 뽑아냈다.

하지만 도끼를 집어넣지 않고 서늘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 눈이 어둠을 응시했다.

“나와.”

그 말과 동시에 안개 속에서 12명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모든 사내들의 손에 날붙이가 들려 있다.

그들이 성현을 에워쌌고 그중에 온몸에 문신을 한 사내가 성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게 얼마짜리인 줄 알아?”

놈이 가리킨 것은 머메이드 센티페드다.

“네가 길들인 거냐?”

성현의 질문에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놈들이 있었다.

짐승을 길들여 도적질을 하는 놈들.

이놈들은 머메이드 센티페드를 길들여 도적질을 한 거다.

성현이 도끼를 툭툭 흔들며 입을 열었다.

“피곤하니까 입씨름하지 말고……. 와라.”

그런데 문신한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싸울 생각은 없어.”

놈이 싱거운 대답을 내뱉은 뒤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성현이 조금이라도 겁먹은 기색을 보였다면 강하게 나갔을 거다.

하지만 성현은 그들을 상대로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그것은 강자라는 뜻.

문신 남자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이만 가도록 해.”

성현은 몸을 돌렸다.

그 역시 덤비지 않는 상대와 싸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성현이 몸을 돌리는 순간 그들은 이빨을 드러냈다.

놈들이 빈틈을 노리고 성현에게 달려든다.

번쩍이는 날붙이를 들고 승냥이 떼처럼 사납게…….

“가방은 놓고 가야지!”

그 순간 성현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울렸다.

[숨겨진 퀘스트 : 도망자들에게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는 것을 알려 줘라]

제한 시간 : 10분.

달성 : 전원 항복 또는 전원 사망.

보상 : 머메이드 센티페드의 램프,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성현이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퀘스트를 보니까 짐승의 땅에 온 게 느껴지네.’

이곳의 환경은 이계와 비슷하다.

툭하면 퀘스트다.

죽여라, 죽여라, 또 죽여라.

이곳에서 인간의 법은 통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는 죽여야 한다.

성현이 살벌한 눈빛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바닥에 주욱 선을 그었다.

“그 선을 넘으면 죽는다.”

“미친 새끼!”

그럴 줄 알았다.

마지막 기회를 줬지만 사내들은 신경 쓰지 않고 선을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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