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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68화 (68/252)

68화

* * *

“셉니다. 진짜, 진짜 셉니다.”

박상문 하사는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중이었다.

이창민 중사가 한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박상문 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유성현이 소총을 들고 정확히 조준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점사로 빵빵!”

“그래서?”

“총을 쏘면서도 흥분하지 않고 연사로 바꿔서 드르륵! 그리고 도끼를 꺼내더니 자세를 딱 잡았습니다.”

박상문 하사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하지만 이창민 중사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등병이 점사를 쐈다고?”

“네.”

“오늘 온 신병이 연사를 갈겼고?”

“네!”

“아직 기초 군사훈련도 받지 않은 놈이 도끼로 레드 스네이크의 목을 땄다고?”

“그러니까요!”

“됐다. 그만해라.”

“네?”

“네가 약하니까 다 세 보이는 거야. 레드 스네이크가 아니라 지렁이였겠지.”

박상문 하사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팀장님, 그냥 강한 게 아니었습니다. 총 쏘는 것도 능숙한 게 꼭 군 생활을 해 봤던 것처럼 완벽했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 진짜! 직접 보셨어야 하는데…….”

“됐어. 알았으니까 신병이나 데리고 와.”

박상문 하사가 눈을 반짝였다.

“데리고 옵니까? 이제야 제 말을 믿어 주시는 겁니까?”

“믿겠냐?”

“그럼 왜 데려오라는 겁니까?”

“신병 면담은 해야지!”

박상문 하사는 입을 삐쭉이며 계단을 내려갔고 이창민 중사는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이창민 중사의 시선이 책상에 놓인 성현의 기록지로 향했다.

계약자로 등록된 지 1년도 안 된 신참.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군대에 온 어린애.

이런 어린애가 능숙하게 총을 쏘고 레드 스네이크를 잡았다니, 이창민 중사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미친놈.”

잠시 후, 전입신고가 끝나고 성현은 이창민 중사와 마주 앉았다.

가죽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색이 변한 소파였다.

이창민 중사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성현을 바라봤다.

‘요놈 봐라…….’

성현의 표정에 긴장감은 없었다.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군대라는 곳에 갓 들어오면 긴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성현에게 느껴지는 것은 느긋함과 여유로움이었다.

‘이런 경우는 단 두 가지야.’

대단한 백이 있거나 또라이거나.

이창민 중사는 신병이 들어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성현에게는 뭔가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그가 담뱃재를 툭툭 털며 물었다.

“유성현이라고? 부대에 오는 동안 도망자 11명을 죽였다고 했지?”

“네.”

이창민 중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그가 책상에서 손에 든 것은 두툼한 서류, 그가 그 서류를 성현을 향해 던졌다.

“읽어 봐. 네가 죽인 놈들이 어떤 놈들이었는지 적혀 있어.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서 생활하려면 알아야 하는 것들이지.”

그 말을 끝으로 이창민 중사는 창가에 기대 담배를 피웠고 성현의 시선은 서류로 향했다.

서류에는 ‘칠음 패거리’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칠음 패거리, 성현이 죽인 일당이 속한 조직의 이름이다.

정부에서는 패거리라 칭하고 있지만 놈들의 머릿수는 1천 명이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는 규모, 성현은 그런 놈들을 죽인 거다.

이창민 중사가 입을 열었다.

“이곳은 짐승의 땅이다. 인간의 법은 통하지 않지. 네가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알고 있습니다.”

담배 연기를 내뱉던 이창민 중사가 멈칫거렸다.

이 일대를 담당하는 여단장과 그 밑의 대대장, 중대장 그리고 초소의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까지 칠음 패거리에게 뇌물을 받고 있다.

그 덕에 놈들은 토벌되지 않고 세력을 넓힐 수 있었고 권력을 쥔 군인은 호의호식할 수 있었다.

일개 도망자가 권력에 끈을 댄 대표적인 일, 이들은 상부상조하는 사이다.

이창민 중사가 물끄러미 성현을 바라봤다.

“알고 있어?”

“네.”

이 이야기를 이제 막 초소에 들어온 이등병이 알 수는 없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이창민 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지력인가?”

기록지에 적힌 성현의 권능은 예지력이다.

“하긴…… 미래를 봤다면 칠음 패거리를 알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성현이 부정하지 않자 이창민 중사가 말을 이었다.

“뭐…… 알고 있다면 됐다. 조만간 놈들이 너한테 접근할 거야. 사냥꾼 몇 마리 죽인 것으로 해코지하지는 않을 거니까 만나면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해.”

성현은 서류를 덮었다.

이창민 중사가 말을 잇는다.

“그럼, 내려가 봐.”

성현은 경례를 한 뒤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이창민 중사는 계속해서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의 표정이 쓸쓸하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울렸다.

존재에게 들어온 메시지다.

-유성현은 놈들에게 사과한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창민 중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고 보니 성현은 묵묵히 앉아 있었다.

‘뭐지?’

이창민 중사는 책상에 놓인 성현의 기록지를 들어 올렸다.

그의 머릿속에 며칠 전 존재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여느 때와 같았다.

도망자들과 만나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신 후 초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비틀비틀, 하늘에 뜬 달도 흔들거렸다.

그가 혀 꼬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쨍하고 해 뜰 날…….”

짐승의 땅에서 만취해 돌아다니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짙은 알코올 냄새에 먹이를 찾아다니는 짐승이 이빨을 드러내고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창민 중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존재의 메시지가 들렸다.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재밌는 일?”

-어떤 사람이 찾아올 거다. 어쩌면 네놈이 원하는 것을 이룰지도 모르겠구나.

비틀거리던 이창민 중사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하지만 이내 끌끌끌 웃기 시작한다.

“……내가 원하는 게 이뤄진다고? 가능하다고 생각해? 참모총장이 방문이라도 하나? 아니, 참모총장이 온다고 해도 불가능할 거야. 이곳에 오는 순간 눈과 귀가 가려질 테니까. 그게 당연하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밑바닥을 바라볼 이유가 없잖아?”

-참모총장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할 수도 있지. 나는 네놈과 그가 함께했으면 한다. 그는 네놈이 원하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줄 수 있을 게다.

그때의 대화를 기억하며 이창민 중사가 중얼거렸다.

“저놈이 참모총장보다 대단한 놈이라는 것인가? 저놈이 당신이 말하던 그 사람인가?”

하지만 존재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창민 중사는 다시 성현의 기록지를 세세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번을 확인해도 성현의 기록은 극히 평범한 수준이다.

몇 달 전 계약자가 되었고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의 신인.

이창민 중사가 다시 끌끌끌 웃기 시작했다.

“미쳤지.”

존재는 분명 참모총장보다 대단할 수도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이등병이라니…….

“미쳤어!”

계단을 내려가던 성현이 고개를 틀었다.

‘이창민…….’

성현은 그를 알고 있었다.

10년 후, 그는 짐승보다 정치인이 더 끔찍하다며 반역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처음에는 300명으로 군대를 일으켰지만 세상이 뒤집히기를 원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반란군은 순식간에 3만, 5만 그리고 10만이 되었다.

부패했던 군대는 무능력했고 반란군과의 전투에서 속수무책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2주 만에 경기도 여주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정부와 연맹이 손잡고 토벌대를 보낸 것이다.

그 토벌대에는 성현도 포함되어 있었고…….

‘내가 죽였던 사람…….’

성현의 창끝에 이창민 중사는 쓰러졌었다.

성현이 옛 기억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번에는 같이 일해 봅시다.’

* * *

군대라는 게 그렇다.

매일매일이 똑같다.

성현도 마찬가지, 휴대용 무전기와 위치 추적기를 허리에 차고 수색을 하는 게 똑같은 일과였고 하루였다.

“여기서 쉬었다 가자.”

갈대가 허리까지 오는 곳이었다.

성현과 박상문 하사는 철조망 앞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박상문 하사가 담배를 입에 물며 건빵 주머니에서 초코파이를 꺼내 성현에게 건넸다.

“먹어.”

짐승의 땅에 위치한 부대다.

담배나 간식거리를 사려면 누구 1명이 휴가를 가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초코파이 같은 간식은 정말 소중했다.

“감사합니다.”

성현은 초코파이를 받았고 두 사람은 말없이 휴식을 취했다.

성현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스텟 평균이 30을 넘겼고 권능 이해도는 17%에 육박하고 있었다.

회귀 전 성현이 이 정도 능력을 갖게 된 것은 계약 후 5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라며 모두가 놀라워했었는데 지금은 약 1년 만에 이뤄 낸 성과다.

하지만 성현은 기뻐하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지만 만족할 수준이 아니다.

‘더…… 더 빨리 강해져야 해.’

그래서 성현은 대모벌 로드의 독침으로 창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수시로 창고에 들어가 독침과 여러 아이템을 조합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계속해서 실패하는 중이다.

좋은 무기일수록 조합 성공률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해야 한다.

성현은 조급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낮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만 일어날까?”

박상문 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담배를 비벼 끈 뒤 꽁초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이제 철조망을 따라 이동하며 계속해서 수색을 이어 갈 시간이다.

그때…….

“어이!”

갈대를 헤치며 여섯 명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칠음 패거리다.

박상문 하사가 눈을 깜빡이며 그들을 향했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에요?”

이곳은 이들의 수색 영역이다.

칠음 패거리가 돌아다닐 지역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박상문 하사를 보지 않는다.

시선은 오로지 성현에게 고정되어 있다.

“하사님, 우리 애들 11명 죽은 거 알고 있죠?”

그제야 박상문 하사는 놈들이 찾아온 이유를 예상했다.

그리고 놈들의 살기로 가득한 눈빛과 험상궂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박상문 하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놈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해가 있던 것 같은데…….”

“오해는 무슨 오해? 죽인 것은 사실이잖아요? 도망자들이라고 멋대로 죽여도 되나? 우리들은 인권도 없나? 어!”

애초에 시비를 걸기 위해 나타난 놈들이다.

분위기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상문 하사는 끝까지 그들을 만류했다.

“오해라니까요. 우리 초소장님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할 테니까 오늘은 그만 돌아가시고…….”

짝!

가장 앞에 서 있던 갈색 머리가 박상문 하사의 뺨을 때렸다.

박상문 하사는 눈을 깜빡였다.

아직까지 자신이 맞은 것을 이해 못 한 표정이다.

그리고 서늘한 적막이 주변에 내려앉았다.

갈색 머리가 자신의 뒷목을 꾹꾹 누르며 입을 열었다.

“이 새끼야, 하사님, 하사님 하니까 진짜 네가 간부인 줄 아냐? 서른도 안 처먹은 새끼가 어디서 지랄이야!”

박상문 하사는 눈동자만 움직여 성현을 바라봤다.

성현 앞에서 뺨을 맞았다.

선임으로서 위엄은커녕 비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갈색 머리의 입술이 뒤틀어졌다.

“왜? 쪽팔려? 그럼, 그냥 눈감고 꺼져. 그리고 가서 보고해. 저 새끼는 짐승에게 잡아먹혔다고! 그럼 다 되는 거야. 어? 지금 노려보는 거야? 그럼, 언론에 흘려 줄까? 하사 새끼가 뇌물 받아 처먹고 계집질한다고?”

“…….”

“그러니까 그게 싫으면 가던 길로 그냥 꺼져! 넌 앞으로도 계속 우리가 주는 거 받아 처먹으면 되는 거야! 개돼지처럼!”

눈동자를 굴리던 박상문 하사가 다시 억지로 웃었다.

여기서 놈들과 싸울 수는 없었다.

이놈들은 딱 봐도 고수다.

스텟 평균이 적어도 15는 넘어 보인다.

싸움을 하다가 성현이 끌려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시죠? 날도 더운데, 하하.”

“웃어?”

갈색 머리가 또 박상문의 뺨을 때리기 위해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손은 박상문의 얼굴에 닿지 않았다.

휘두르는 순간 성현의 손에 잡혀 버렸다.

갈색 머리가 당황했다.

저 멀리 있던 성현이 언제 여기까지 달려와 손목을 잡았는지 그는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뭐, 뭐야!”

성현이 천천히 고개를 틀어 그를 노려봤다.

“죽고 싶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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