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갈색 머리는 성현의 날카로운 눈빛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다가 낄낄 웃는다.
급기야 배를 잡고 웃다가 주변을 보며 물었다.
“야,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이 새끼가 지금 나 죽이겠다고 한 거 맞지?”
갈색 머리와 함께 다른 5명의 사내들이 함께 웃기 시작했다.
이들은 명백히 성현을 무시하고 있다.
언제든 찢어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자신감을 보며 박상문 하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갈색 머리는 물론이고 함께 온 다른 5명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모두 칠음 패거리에서 서열 50위 안에 드는 강자들, 특히 갈색 머리는 패거리의 간부였다.
박상문 하사가 성현의 앞을 가로막으며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며칠 전에 막 전입해 온 신병입니다. 사망 사건도 신병이라 모르는 게 많아서…….”
갈색 머리가 껄렁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박상문 하사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하사야…… 알아, 알지! 그런데, 이등병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네! 저 눈빛 좀 봐! 아주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겠어!”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박상문 하사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허리에 차고 있던 소형 무전기를 꺼냈다.
이창민 중사에게 연락하기 위해서다.
그라면 뭐라도 해결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리였다.
갈색 머리가 박상문 하사의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아악!”
들고 있던 무전기가 툭 떨어졌고 갈색 머리는 곧바로 콱콱 짓밟았다.
그리고 무전기가 박살이 났을 때, 무서운 눈빛으로 박상문 하사를 쏘아봤다.
“하…… 대가리가 나쁜 것 같으니까 다시 설명해 주지. 방해하면 짐승의 밥이 될 거다. 복귀해서 이창민한테 말하면 넌 뇌물을 받은 하사로 언론에 알려질 거다. 하지만 조용히 있으면 평소처럼 살게 될 거다. 선택해.”
“제발,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까…….”
“짐승의 밥이 되겠다는 거지?”
갈색 머리는 단검을 뽑아 박상문 하사의 허벅지를 쑤셨다.
콱! 콱! 콱!
피가 난자하게 터지며 박상문 하사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그사이 나머지 5명이 성현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놈들이 성현을 보며 미친놈처럼 웃는다.
“넌 오늘 뒈졌다.”
“네가 죽인 사람이 누군 줄 알아? 우리 형이야, 새끼야.”
“인간 같지도 않은 새끼. 사람 머리를 도끼로 찍었다며?”
당시, 성현을 습격했던 자들은 총 12명.
그중 1명이 도망쳤다.
놈들은 도망친 1명에게 어떤 말을 들었는지 분노가 가득했다.
“똑같이 해 주마.”
“살려 달라고 빌지 마. 목소리가 시끄러워지면 혀를 뽑아 버릴 테니까.”
놈들의 입에서 협박성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박상문 하사는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도망 가! 그냥 도망 가! 난 상관하지 말고 가!”
하지만 성현은 평소와 같은 눈빛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5명의 사내들이 성현을 둘러쌌지만 마찬가지다.
그 모습이 건방져 보였나 보다.
가장 앞선 놈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 스텟 몇이냐? 생긴 거 보니까 이제 막 계약한 하룻강아지 같은데, 건방 떨지 마, 이 새끼야. 우리는 15가 넘어.”
성현의 나이를 보면 절대 15를 넘을 수 없다.
그런데 성현은 이미 평균 30을 넘어섰다.
15와 30의 차이는 격투기 선수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와 같다.
“그럼, 할 말은 다 했나?”
“어?”
성현은 놈의 대답을 더 들어 주지 않고 그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놈의 허리가 90도로 휘어졌고 눈은 핏발이 섰다.
아마 내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을 느끼고 있을 거다.
“커억!”
동시에 성현이 손바닥으로 놈의 뺨을 후려갈겼다.
짝! 짝! 짝! 짝!
고막이 터졌고 턱뼈가 으스러졌으며 광대가 내려앉았다.
마지막으로, ‘쩌억!’.
놈은 3m를 날아가더니 그대로 땅에 뒹굴었다.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몰라도 의식은 없어 보였다.
성현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다음.”
서늘한 적막이 공간을 채웠다.
놈들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서로 먼저 나서라며 눈짓만 보내고 있다.
성현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을 느낀 거다.
적막을 깬 것은 갈색 머리였다.
“뭐 하는 거야! 다 같이 달려들어! 죽여! 죽이라고! 나한테 죽고 싶어!”
그 말에 놈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 젠장!”
붕! 붕! 장검을 휘두르며 위협을 가했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놈의 검술은 어설펐다.
성현은 침착하게 뒤로 물러나며 총을 꺼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장검을 들고 설치던 놈의 무릎에 탄알이 박히며 다리가 기괴하게 꺾였다.
“끄아아아악!”
성현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쏘았다.
탕! 탕! 탕!
한 놈은 발등! 또 한 놈은 정강이에 탄알이 박혔다.
잔혹한 광경과 고통으로 가득한 비명.
“아파! 아파아아아!”
“살려 줘!”
하지만 성현의 눈빛은 처음과 같이 무심했다.
그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메말라 있었다.
의기양양하게 접근했던 놈들은 순식간에 2명만 남았다.
야구방망이를 든 남자와 갈색 머리였다.
야구방망이를 든 남자는 혀를 뽑아 버리겠다고 했던 놈이다.
위세 당당했던 그놈은 지금 발발발 떨고 있다.
성현이 놈을 보며 물었다.
“안 올 거야?”
“씨, 씨×!”
놈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뛰어들었고 성현은 이번에도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놈 역시 다리를 잡고 데굴데굴 땅바닥을 굴렀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 소리, 그리고 바닥을 적시는 핏물.
이제 남은 상대는 갈색 머리뿐이다.
놈이 박상문 하사를 내동댕이친 후 성현을 향해 걸어왔다.
“이 거지새끼들하고 나를 똑같이 보지 마라. 나 이승보야. 들어 봤지?”
“이승보?”
알고 있었다.
5년 전쯤, 여고생만을 연쇄적으로 살인했던 뱀파이어 계열의 계약자 이승보.
그에게 피를 빨려 죽은 학생만 28명.
죽인 학생을 십자가에 매다는 기형적인 범행으로 인해 그의 이름은 도시 괴담으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내가 이승보다, 이 새끼야.”
이승보가 잔혹하게 웃으며 성현을 향해 걸어왔다.
악명 그대로 그의 온몸에서 포악한 기운이 뿜어졌다.
“도망가! 도망가라고!”
박상문 하사는 피가 터질 것처럼 외쳤다.
이승보와 싸우면 성현은 죽는다.
절대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성현은 이번에도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말 좀 들어!”
박상문 하사는 더듬더듬 무전기를 들었다.
지금이라도 이창민 중사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전기는 완전히 박살 났는지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그는 결국 무전기를 집어 던졌다.
“젠장! 젠장!”
그때 그의 귀에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퍽!
박상문 하사는 성현을 걱정하며 싸움이 시작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이승보가 휘청이고 있다.
단 한 방에 그의 입술이 터졌고 피가 주르륵 흐른다.
그가 눈을 번뜩거리며 성현을 노려봤다.
“이 새끼가…… 감히…….”
성현이 그의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느꼈을 텐데.”
“뭐?”
“내가 더 강하다는 것.”
“이 새끼가!”
“아직 못 느꼈어? 그럼, 머리가 나쁜 거고.”
부하들 앞에서 얕잡아 보이자 이승보는 자존심이 상했다.
“죽여 주마!”
그의 주변에 떨어져 있던 핏방울이 솟아올랐다.
이승보는 뱀파이어 계열의 계약자, 피를 이용한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가 준비하는 것은 블러드 체인, 피를 수갑처럼 만들어 상대를 구속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형태를 만들던 핏방울이 주르륵 다시 땅으로 쏟아졌다.
“어?”
이럴 리가 없었다.
당황한 이승보는 다시 힘을 줬다.
핏방울이 떠올랐다.
그런데 모이는 곳이 이승보의 앞이 아니다.
성현의 손 위에 떠올라 꾸물꾸물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이승보는 당황했다.
“뭐, 뭐야?”
“뭐긴…… 내가 너보다 더 강하다는 거지.”
핏방울이 송곳처럼 변했다.
그리고 성현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그대로 날아가 이승보의 허벅지를 뚫고 지나갔다.
퍼어억!
“끄아아악!”
이승보는 비틀비틀 뒤로 물러나다가 더 이상 걷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성현은 놈의 얼굴을 발로 가격했다.
콰직!
코뼈가 으스러졌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성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놈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주먹을 꽉 쥐었다.
폭행의 시간이다.
놈에게 죽은 28명의 여성, 그리고 놈에게 맞은 박상문 하사의 고통.
성현은 사람이 가장 아파할 곳을 골라 타격했다.
손과 손톱 사이, 뼈마디, 보호되지 않은 눈동자.
“끄아아아악!”
놈의 뼈가 뒤틀리며 기형적으로 변해 갔다.
그와 함께 온 5명의 사내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런 잔인함은 그들이 살면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승보의 숨이 끊어졌다.
성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온몸에는 이승보의 피가 묻어 있었다.
성현이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서늘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이놈은 죽었다. 그런데 너희는 왜 안 죽였을까?”
성현은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다리를 공격해 기동성을 없앴을 뿐이다.
놈들이 눈동자를 굴렸다.
어떻게든 답을 맞혀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 안 죽였을까요?”
“앞장서라.”
“네? 어디를요?”
“너희들의 마을.”
“……!”
놈들은 물론이고 박상문 하사의 눈도 커졌다.
놈들은 도망자들이다.
언제 토벌대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보안에 철저했고 그들의 마을은 숨겨져 있었다.
그래서 박상문 하사는 물론 이창민 중사도 가 본 적이 없다.
만나서 술을 먹고 돈을 받는 곳도 약속된 지점이었을 뿐이다.
놈들이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 그건 어렵습니다! 다른 것은 다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제발……!”
“그럼 이승보와 똑같은 방법으로 한 놈씩 죽인다.”
놈들은 저승사자를 만난 것처럼 사색이 되었다.
그들은 방금 이승보가 당하던 것을 지켜봤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모습이었고 그런 고통은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성현이 섰다.
“누구부터 할까?”
잠시 후, 놈들이 나뭇가지를 꺾어 다리에 부목을 대고 있을 때였다.
성현은 박상문 하사의 옆에 앉아 알약을 건넸다.
“진통제하고 회복제입니다.”
“고마워.”
박상문 하사가 알약을 털어 넣었다.
고통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박상문 하사가 수통을 열어 물을 마신 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속삭였다.
“그런데 어쩌려고 그래?”
“네?”
“저놈들의 마을은 왜 가려는 거야?”
놈들은 성현의 협박에 결국 앞장서겠다고 답했다.
이러나저러나 죽게 될 것, 조금이나마 생존 가능성이 높은 확률에 베팅한 거다.
그래서 박상문 하사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놈들의 마을에는 약 1천 명이 있다고 들었다.
그들이 일제히 덤벼들면 아무리 성현이라 해도 버티지 못할 거다.
박상문 하사가 계속 말했다.
“여기서 끝내고 가자. 들어가서 보고하면 초소장님이 처리해 줄 거야.”
“……그거 아십니까?”
“어? 뭘?”
난데없이 질문이 되돌아오자 박상문 하사가 눈을 깜빡였다.
“도망자는 이승보 같은 범죄자도 있지만 정치인에게 재산을 뺏기고 들어온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죠. 그 사람들이 범죄자들, 그것도 계약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지낼 것 같습니까?”
노예다.
인간 같지 않은 대접을 받을 거다.
박상문 하사는 입을 닫았다.
알고는 있지만 생각하지 않았다.
일부러 모른 척했다.
몰라서 구하지 않았다는 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성현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 두 눈으로 직접 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지내는지.”
“……예상했던 대로 비참하게 살고 있다면?”
“글쎄요.”
성현은 조용히 웃었다.
회귀 전, 이창민이 반란을 시도했을 때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 그 마을이었다.
그리고 성현은 그 마을을 시작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릴 생각이다.
그게 군대에 들어온 또 하나의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