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 *
한때는 사람이 북적거렸을 도시였다.
하지만 짐승에게 땅을 뺏기며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도로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깨진 유리 조각이 곳곳에 나뒹굴었다.
쓰레기와 시체 그리고 동물의 사체가 썩어 가는 곳, 하수 시설이 망가져 악취가 진동하는 곳, 이곳이 도망자들의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한 아파트 최상층.
한 남자가 느긋하게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180cm 정도의 키에 150kg은 나갈 것 같은 비대한 몸, 그의 이름은 성칠음, 칠음 패거리의 우두머리였다.
200억 원대의 사기를 저지르고 짐승의 땅으로 들어왔지만 이곳에서도 수완을 발휘해서 황제 부럽지 않은 삶을 누리고 있었다.
아파트 각 호실마다 그를 위해 대기하는 아름다운 여자가 수십 명 있었고 짐승의 땅에서 얻는 아이템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그는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짐승의 땅을 넘어 인간의 땅도 자유롭게 오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목표를 위해 군인들의 옆에 여자를 앉혀 줬고 돈을 꽂아 줬다.
그 덕에 그의 인맥은 사정없이 넓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대대장에서 여단장까지 넓혔고 조만간 사단장과 도지사까지 넓힐 계획이다.
‘도지사까지만 이어지면 새로운 신분을 만드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
성칠음이 입에 담배를 물었다.
흐릿한 연기가 공간을 채웠다.
그때 쾅,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성칠음이 고개를 틀어 남자를 바라봤다.
“왜? 무슨 일이야?”
“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응? 뭐가?”
“군인들이 오고 있습니다!”
“뭐?”
성칠음은 어떤 경우에도 이 마을을 공개하지 않고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그게 최소한의 안전이었다.
그런데 뚫렸다니…….
성칠음의 얼굴이 있는 대로 험악해졌다.
“어떤 멍청한 새끼가!”
그 시각, 성현과 박상문 하사는 5명을 쫓아 도망자들의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놈들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나뭇가지와 넝쿨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긴 터널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이런 행동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놈들은 온갖 잡스러운 짓으로 자신들의 마을을 숨기고 있었다.
“이제 저 다리만 건너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성현과 박상문 하사는 놈들의 안내를 받으며 터널을 지났고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박상문 하사는 눈을 찌푸렸다.
다리를 건너며 보게 된 현실은 끔찍했다.
길거리에 누워 굶주린 배를 잡고 있는 자들, 이미 죽어 벌레가 꼬인 시신, 산 채로 벌레에게 뜯기는 남자…….
이들이 누구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정치인의 핍박을 피해 짐승의 땅으로 도망친 일반인들, 여우를 피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지만 오히려 호랑이를 만났다.
성현이 낮은 한숨을 내뱉으며 이곳으로 안내한 사내에게 물었다.
“마을은 멀었지?”
뚱뚱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20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합니다.”
“마을까지 20분이라……. 그럼 이 사람들은 먹이로 쓰이나?”
뚱뚱한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성현의 질문에 긍정한 거다.
박상문 하사가 고개를 틀어 성현을 바라봤다.
“먹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짐승에게 줄 먹이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짐승은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짐승에게 이 사람들을 바친 거야? 먹고 마을까지 들어오지 말라고? 그게 같은 인간이 할 짓이야?”
“네.”
박상문 하사가 고개를 저으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모두 남자다.
성현에게 잔혹한 말을 들었어도 힘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왜…… 왜 도망가지 않는 거지? 여기에 있으면 잡아먹힌다며?”
“누군가가 인질로 잡혀 있을 겁니다. 자식이나 아내 또는 부모님이…….”
“왜…… 왜…….”
박상문 하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들이 인간답지 않은 대우를 받을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동안 이놈들에게 얻어먹은 술과 뒤로 받은 돈이 이들의 생명과 바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박상문 하사는 얼굴을 쓸어 만졌다.
“씨×…….”
그가 현실을 봤다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
그는 하사, 하지만 저들에게 돈을 받아먹는 놈들은 저 위에 계신 높은 나리들…….
박상문 하사는 스스로의 무능력함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구, 군인이다.”
그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남자다.
그의 목소리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성현과 박상문 하사에게 향했다.
그들은 성현과 박상문 하사가 토벌을 위해 왔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들이 엉금엉금 기어 왔다.
“……사, 살려 주세요.”
“우리 애기 좀 구해 주세요.”
“마을에 집사람이 잡혀 있어요.”
박상문 하사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들을 외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울 수도 없어서다.
하지만 다가오던 사람들이 멈칫거렸다.
성현과 박상문 하사의 옆에 서 있는 5명의 놈들을 본 거다.
칠음 패거리에서도 사납기로 유명한 놈들.
그들을 본 사람들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다가오는 것을 멈췄다.
“탈영병인가 봐…….”
그들은 성현과 박상문 하사도 이 마을로 온 도망자라고 생각했다.
성현은 계속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쫓아 걷던 박상문 하사는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도시 곳곳에 죽어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걸려서다.
그런데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만…….’
박상문 하사는 이곳으로 오기 전 성현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제 두 눈으로 직접 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지내는지.”
“……그래서 예상했던 대로 비참하게 살고 있다면?”
“글쎄요.”
성현은 모호하게 말을 끊었다.
‘뭘 하려는 거지?’
그가 지켜본 성현은 보통 사람과 달랐다.
사람을 해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고 고문의 잔혹함은 상식을 초월했다.
말 그대로 사이코패스라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행동, 평범하게 살아온 박상문 하사에게 성현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문제는 실력도 그만큼 따라 준다는 거다.
성현은 스텟 15가 넘은 실력자 6명을 순식간에 쓸어버렸다.
그것도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
‘설마, 여기서 난동을 피우려는 것인가?’
박상문 하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성현의 실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곳은 놈들의 본거지다.
1천 명이 넘는 놈들이 한꺼번에 공격하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이놈 이제 스무 살이잖아?’
성현의 나이는 갓 스물,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아직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벗어나지 않은 짐승이다.
스스로의 힘을 과신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일 수도 있다.
박상문 하사가 다급히 성현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뭘 하려는 거야?”
“네?”
“뭘 하려는 거냐고!”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할 겁니다.”
“오늘은……?”
“네.”
성현이 이곳에 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위치 파악과 놈들의 세력 파악이다.
정부에서 파악한 놈들의 숫자는 약 1천, 하지만 놈들의 규모는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다.
정부의 보고는 예측일 뿐이다.
싸움은 적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오늘은…… 그냥 가는 거야. 알았지?”
“네.”
“돌아가서 초소장님과 이야기하고 움직이는 거야. 알았지?”
“네.”
“꼭이야, 꼭!”
박상문 하사는 성현의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해 몇 번이나 물었고 대답을 들었다.
언덕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앞이었다.
“저, 저기가 마을입니다.”
아파트 단지는 한눈에 봐도 본거지로 삼기에 꽤 괜찮은 구조물이었다.
꽤 높은 언덕 위에 지어져 있었고 2m가 훌쩍 넘는 담벼락이 단지를 둘러쌌다.
그리고 그 위에 철조망까지 놓여 있으며 전면 동의 각 베란다에는 총을 든 저격수가 20명 배치되어 있었다.
성현은 아파트를 죽 둘러봤다.
‘지형 파악은 끝났고…….’
다음은 놈들의 세력을 확인해야 했다.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
100여 명의 남자들이 손에 칼과 총 같은 무기를 들고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 발소리가 멀리서부터 음산하게 들려왔다.
그들의 등장에 성현을 이곳까지 안내한 5명의 사내들은 겁을 집어 먹었다.
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무릎을 꿇고 이마를 조아렸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여 주십시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100여 명의 남자들이 그 앞에 섰다.
서늘한 적막이 내려앉으며 박상문 하사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한 명, 한 명의 눈빛이 매서웠고 엄청난 고수로 보였다.
5명의 사내들은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정말 죽을죄를 저질렀습니다! 죽여 주십시오!”
한 남자가 가장 앞으로 걸어 나왔다.
눈에는 아이섀도, 입술에는 붉은 립스틱을 바른 남자, 그가 입을 연다.
“죽여 달라고?”
그러자 5명의 사내들이 발발발 떨며 울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여 주십시오!”
“좋아. 그게 소원이라면 알았어. 죽여 줄게.”
남자는 그대로 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그게 끝이었다.
5명의 사내들은 그대로 축 늘어졌다.
남자가 총구를 향해 “후!” 하고 입김을 분 뒤 고개를 들어 성현을 향했다.
그 눈빛이 살벌하다.
“군인들이 여기는 왜 오셨을까?”
성현은 이 남자를 알고 있었다.
‘장기 매매 업자 오중찬.’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잡아 그들의 장기를 매매했던 쓰레기 같은 놈, 경찰에 꼬리를 밟힌 뒤 짐승의 땅에 숨어들었다.
하지만 이곳에 숨어들어서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브로커와 연락을 취하며 세계 각지의 권력자들에게 인간의 장기를 제공했다.
마을 초입에서 배를 곯아 죽어 가는 남자들, 그들이 이놈에게는 돈벌이였다.
성현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내뱉어졌다.
‘네가 여기에 있었구나.’
회귀를 했다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런 범죄자 새끼들이 어디에 처박혀 몸을 숨기고 있는지 알기는 어려웠다.
성현이 입을 열었다.
“부초소장님?”
“……어?”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박상문 하사가 눈을 깜빡였다.
“왜?”
“짐승의 땅에서 범죄를 저지른 도망자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행동 강령을 듣고 싶습니다.”
“해, 행동 강령?”
박상문 하사는 불안했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성현이 제촉했다.
“말씀해 주십시오.”
“이, 이유를 불문하고 체포, 반항하면 사살해도 좋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성현은 그 즉시 ‘찰나’를 사용해서 엄청난 속도로 장기 매매 업자 오중찬의 앞에 섰다.
오중찬이 갑자기 튀어나온 성현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놀라지 않고 입술을 뒤틀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체포? 나를 잡아가겠다고? 이등병 새끼야, 내 전화 한 통이면 너희 여단장한테 연락이 올 거야. 널 영창에 박아 넣으라고!”
“전화는 네 마음대로 하고.”
“뭐?”
“오늘은 조용히 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뭐라는 거야?”
오중찬, 이놈은 먼 훗날 지연우에게 잡혀 죽을 놈이며 지연우의 명성을 높이는 데 쓰일 경험치다.
그리고 당시 성현의 친구 배를 갈랐던 악마였다.
“넌 죽이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