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오중찬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음이 통했네. 나도 당장 너를 죽이고 싶어. 그런데 우리는 착한 사람이거든. 너에게 기회를 줄 거야. 칠음 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그냥 보내 줄 수는 없다. 선택은 두 가지. 죽을래? 아니면 살래? 사는 것을 선택하면 우리 마을에 들어와서 예쁜 여자를 만날 수 있다. 좋지? 너 군바리잖아! 크핫핫핫핫!”
천박한 선택의 강요에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범죄자랑 엮이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 말과 동시에 성현은 무엇인가를 투투툭 떨어뜨렸다.
연막탄, 그것도 3개였다.
오중찬은 당황했다.
“이, 이걸 왜?”
연막탄을 터뜨린 이유는 세 가지다.
하나는 베란다에 위치한 저격수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성현의 권능을 숨기기 위해서고. 마지막은 박상문 하사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기 위함이다.
성현이 연기 속으로 몸을 숨기며 입을 열었다.
“오미로 베루스.”
그 즉시 오미로 베루스가 나타났다.
하지만 가득한 연기 때문에 오미로 베루스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상문 하사를 안전한 곳으로 던져 놓고 돌아가.”
지시를 받은 오미로 베루스는 파아아앙, 엄청난 속도로 박상문 하사의 뒷덜미를 잡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영문을 모르고 끌려가는 박상문 하사가 비명을 질렀다.
“우아아아악!”
그리고…….
오중찬은 짜증을 내뱉고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그는 정면으로 붙지 않고 잔머리 쓰는 놈이 가장 싫었다.
치사하다고 느꼈으며 재수 없게 여겨졌다.
그가 성현이 있던 자리를 향해 권총을 조준했다.
탕! 탕! 탕!
총구가 불을 뿜었다.
하지만 성현은 그 자리에 없었다.
성현이 있는 곳은 오중찬의 바로 옆.
“여기다.”
어느새 나타난 성현이 도끼를 휘둘렀다.
부아아아악!
오중찬은 곧장 칼을 뽑아 성현의 도끼를 막아 냈다.
채앵!
날붙이가 부딪치며 불꽃이 요란하게 튀었다.
오중찬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거 알아? 난 연막탄이 너무 좋아. 그래서 내 앞에서 연막탄을 터뜨린 새끼들은 다 해외여행을 보내 줬어. 간은 중국에! 신장은 미국에! 눈깔은 일본에! 너도 곧 배에 실어 주마!”
“사양하지.”
* * *
“어디서 왔다고?”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겁먹은 대답이 들려왔다.
“가, 강릉에서 왔습니다.”
칠음파의 우두머리 성칠음은 속옷만 입은 여자와 마주 앉아 있었다.
성칠음이 여자의 팔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릉이라……. 거기 자주 갔었지.”
성칠음은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여자는 180cm에 150kg이 나가는 성칠음을 보며 오들오들 떨고 있다.
성칠음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어깨를 양손으로 가볍게 잡으며 말을 이었다.
“아기가 세 살이라고?”
“……네.”
“인간의 땅에서 정치인에게 땅을 뺏겼지?”
“……네.”
정치인이 땅을 빼앗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놈들은 국민을 위한다는 개소리를 내뱉는다.
-짐승이 언제 출몰할지 모르기 때문에 지역을 통제합니다. 모든 것은 국민의 안전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쥐꼬리만큼의 보상금을 받고 강제로 이주해야 한다.
터전을 잃고 농사지을 땅을 빼앗기고.
반대를 하면 군인과 경찰에게 진압당한다.
기억을 떠올리던 여자는 눈물을 떨어뜨렸다.
“남편은 시위를 하다가 감옥에 갔어요. 머리를 다쳐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그녀는 결국 토지 보상금을 받았다.
그 돈을 받아야 남편을 풀어 준다는 정부의 말을 믿은 거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남편의 주검이었다.
그녀는 어깨를 가늘게 떨며 서럽게 울었다.
성칠음이 그녀를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그녀의 귀 뒤로 넘겨 주며 입을 열었다.
“이제 다 끝났어. 괜찮아. 여기는 천국이야.”
“저, 저기…… 우리 애는 언제 볼 수 있어요?”
“애기? 내 말을 잘 들어야 볼 수 있지! 크핫핫핫핫!”
성칠음이 벨트를 풀어 헤치며 크게 웃기 시작했고 여자의 표정은 무너졌다.
이곳은 성칠음에게 복종해야 하는 지옥이다.
짐승이 나타나며 세상의 법치는 무너졌고 약자를 보호하는 곳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곳에 적응해야 했다.
그때,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렸다.
“크, 큰일 났습니다!”
성칠음의 비서였다.
금테 안경을 낀 그가 평소와 달리 다급해 보였다.
성칠음이 인상을 찌푸리며 비서를 바라봤다.
“왜! 뭐가 큰일인데!”
“오, 오중찬이…….”
“오중찬이 뭐!”
“……사망했습니다.”
여자의 뺨을 쓸어내리던 성칠음의 손이 멎었다.
“죽었다고? 중찬이가?”
그 시각, 해가 떨어지며 세상엔 어둠이 깔리고 있을 때였다.
성현은 5층 건물의 난간에 기대 복부를 잡고 있던 손을 뗐다.
그러자 피가 주르륵 흘렀다.
“……쿨럭!”
성현은 한참이나 기침을 해 댔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직 멀었어.”
성현은 상처를 입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고속으로 이동하며 도끼를 휘둘렀던 싸움.
성현은 오중찬의 칼을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고 초근접전의 개싸움을 벌였다.
채채채채챙!
날이 부딪치며 스파크가 튀는 요란한 싸움이 한참 이어졌다.
하지만 성현은 놈을 압도했다.
놈이 점차 뒤로 밀렸고 성현은 마지막 승부를 보기 위해 도끼를 휘둘렀다.
그 순간 놈은 숨기고 있던 작은 단검을 휘둘렀고 성현의 복부를 갈라 버렸다.
“멍청하게…….”
조금만 더 냉철했다면 다치지 않았을 거다.
‘더 냉정해져야 해.’
성현은 품에서 진통제를 꺼내 씹었다.
다시 싸움을 복기하며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그사이 그의 앞으로 오미로 베루스가 스르륵 나타났다.
박상문 하사를 옮긴 후 이제야 돌아온 거다.
“안전한 곳으로 보냈어?”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돌아가서 대기하고 있어. 금방 움직여야 할 테니까.”
-크르르.
오미로 베루스가 스르륵 사라졌고 성현은 난간을 잡고 일어섰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횃불을 든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게 보였다.
모두 성현을 쫓는 자들이다.
“이계로 튄 거 아냐?”
“이런 상황에선 창고로 이동 못 해. 알잖아?”
창고는 위험한 곳에서 갈 수 없다.
비전투 지역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일대에 횃불이 깔렸기 때문에 이계로 갈 수 없다.
“군인 못 봤어?”
“대답해! 이 새끼야!”
“도움 안 되는 놈들.”
놈들은 굶어서 뼈만 남은 남자들을 발로 짓밟으며 성현의 행방을 물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말하지 않을 겁니다.”
성현의 귀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틀자 정리되지 않은 머리와 수염을 가진 지저분한 노인이 서 있었다.
적의는 없어 보인다.
아니, 깡마른 몸은 걷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누구죠?”
“……아까 오중찬을 죽이는 것을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성현이 오중찬과 싸울 때, 이들은 건물 곳곳에 숨어 그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통쾌해했다.
오중찬은 젊은 남자가 죽으면 장기를 매매하기 위해 그 시체를 수거하던 놈, 이들이 가장 저주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성현이 그 복수를 해 준 것 같았다.
그가 비척비척 성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내민 것은 크림빵이었다.
“저희가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요. 드시고 도망가세요. 감사의 표시입니다.”
성현은 물끄러미 빵을 바라봤다.
빵을 들고 있는 노인의 손은 더러웠다.
얼마나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지저분하다.
하지만 성현은 빵을 받아 들었다.
이것은 이들의 일용할 양식이다.
먹지 않으면 굶어 죽는 자들이 아끼고 아낀 식량이다.
그걸 내준 거다.
거절할 수 없었다.
성현이 빵을 베어 물며 입을 열었다.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 네.”
“이 빵…… 어디서 났습니까?”
“네?”
“짐승의 땅에서 구하기에는 비싼 빵이라서요.”
인간의 땅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짐승의 땅에서는 다르다.
이곳에서 크림빵을 구하려면 10배는 더 돈을 내야 한다.
노인은 갑자기 빵의 행적을 묻는 성현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오, 오가며 던져 주는 것을 받아서……. 그래요. 구걸해서 얻은 것을 저장해 둔 겁니다.”
노인은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현은 더 캐묻지 않았다.
이 빵을 어떻게 얻었는지 예상됐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탁을 하나 하고 싶은데요.”
“……뭐든요.”
성현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증오했던 오중찬을 죽여 준 성현이 메시아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시체를 모아 주십시오.”
“시체요?”
잠시 후, 성현은 붕대를 꺼내 배를 꽉꽉 묶었다.
진통제를 먹어서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편했다.
‘좋아.’
몸 상태를 확인한 성현은 몸을 돌렸다.
시체가 가득하다.
성현의 부탁대로 주변에 죽은 자의 시신을 모두 수거해 온 거다.
그리고 성현은 또 부탁한 게 있었다.
“데려왔습니다.”
빵을 줬던 노인의 목소리였다.
몸을 틀자 낯선 남자가 그 옆에 서 있었다.
그가 허리를 굽혔다.
“안영호라고 합니다.”
안영호는 성칠음의 측근이었다.
하지만 눈 밖에 나며 팔 한쪽을 잘리고 이곳에 버려졌다.
그가 입을 열었다.
“뭐가 궁금한 거죠?”
“성칠음 옆에 있었다고요?”
“보좌관이었습니다.”
“그럼 저 마을에 전투 가능 인원이 몇 명인지 잘 알겠네요?”
안영호가 끌끌끌 웃었다.
모든 것에 절망한 남자의 웃음이다.
“왜요? 싸우게? 지원군이라도 온다고 합니까? 하늘에서 전투기가 포탄이라도 떨어뜨린답니까?”
“대답이나 해 주세요. 전투 가능 인원이 몇 명이죠?”
정부가 파악한 숫자는 1천 명이다.
하지만 안영호의 입에서는 다른 숫자가 나왔다.
“2,500명입니다. 그런데 그거 알아봤자 소용없어요. 성칠음이 고위직의 주머니에 넣어 주는 돈만 한 달에 몇억이에요. 성칠음이 죽으면 윗분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지는데, 여기에 군대를 보내겠어요?”
성현은 그런 더러운 일에 관심 없었다.
집중하는 것은 오직 하나.
“2,500명이라…….”
예상했던 것보다 2배가 넘는 숫자다.
성현은 도시 곳곳에서 타오르는 횃불을 보며 턱을 쓸었다.
“가능하려나?”
안영호가 그 중얼거림을 들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뭘 하려고 그러는 겁니까? 설마, 혼자서 싸우려고요? 2,500명을 상대로?”
성현의 시선이 안영호에게 향했다.
“안 되나요?”
안영호가 킥킥킥 웃었다.
“미치겠네, 오중찬을 이겼다고 해서 어떤 사람인가 했더니 또라이였어. 자살을 꿈꾸는 거요? 선임이 괴롭혀요? 이등병 자살, 그런 건가?”
오중찬을 이겼기 때문에 성현이 충분히 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한계는 명확했다.
성현은 오중찬을 상대로 복부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즉, 성현의 실력이 오중찬을 크게 넘어서지는 못한다는 것.
그런데 혼자서 2,500명과 싸워 이길 생각이라 하면 누구도 믿지 않을 거다.
성칠음 패거리에는 오중찬 정도의 실력자가 20명은 더 있다.
“그런데 혼자 하겠다고?”
“네.”
“불가능해요!”
“가능해요.”
“아, 미치겠네.”
안영호가 머리를 북북 쥐어뜯었다.
그런데 그의 행동이 점차 느려진다.
눈은 커졌고 입은 떡 벌어졌다.
“저, 저게 뭐죠?”
성현의 뒤에서 수많은 시체들이 스르륵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들의 눈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