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73화 (73/252)

73화

* * *

성칠음의 아파트.

문이 거칠게 열리고 경호실장이 들어왔다.

그가 불길한 눈으로 바라보자 성칠음이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왜! 또 뭐야!”

“뚜…… 뚫렸습니다.”

“뭐라고?”

“뚫렸습니다! 그 군인이 정문을 넘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뚫렸다고?”

이 마을이 철옹성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렇게까지 허탈하게 뚫릴 것이라 생각한 적도 없었다.

전투 가능 인원만 2천 명이다.

저격수가 배치되어 있고 적외선 감지기부터 각종 방어 도구가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단 한 명에게 뚫려 버렸다.

“다, 당했어.”

생각해 보면 성현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놈의 뜻대로 병력을 밖으로 보냈고 마을은 텅텅 비었다.

책상을 짚은 성칠음의 손이 바르르르 떨려 왔다.

이내 책상을 탕탕탕 내리치며 벼락같은 호통을 내질렀다.

“그놈은 도대체 뭐 하는 새끼야!”

그 시각, 성현은 성칠음이 있는 아파트 앞에 도달했다.

15층, 복도식 아파트였다.

‘최상층이라고 그랬지?’

성현은 품에서 도끼를 꺼냈다.

그리고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동시에 아파트 각 호실의 문이 벌컥벌컥 열리더니 험상궂게 생긴 남자들이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어떤 새끼가 여기까지 온 거야!”

“죽여 버려!”

날붙이 소리가 계단을 타고 1층까지 내려왔다.

성현은 숨을 깊게 내뱉었다.

‘가자.’

그런데 성현의 코에서 코피가 또 주르륵 흘렀다.

지금껏 30여 구의 시체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약을 집어 먹었지만 꺾이는 체력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성현은 멈추지 않았다.

손으로 코를 슥 닦은 후 다시 달렸다.

성현의 목표는 가장 빠른 속도로 강해지는 것이다.

1초도 낭비할 수 없었다.

언제나 가장 위험한 길, 최악의 길에 최대의 성장이 기다리는 법이다.

성현이 건물로 들어섰다.

복도와 계단에 꽉 채워진 사람들이 성현을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가장 앞에 선 사람은 나무 방패를 들고 있다.

“네가 도끼를 쓰는 것은 이미 알고 있어! 이 개새×야!”

나무 방패는 도끼를 쥔 사람에게 천적이다.

도끼가 나무에 박히면 쉽게 빼기 어렵기 때문이다.

놈들이 의기양양하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놈들이 놓친 게 있었다.

성현은 군인이었다.

“도끼만 있는 줄 알아?”

성현은 수류탄을 꺼내 안전핀과 클립을 이빨로 뜯었다.

그리고 뒤로 물러서며 가차 없이 놈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1개, 2개, 3개!

밀물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놈들, 그들은 좁은 공간에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에게 수류탄은 최악의 무기였다.

“흐, 흩어져!”

늦었다.

꽈아아아앙!

수류탄의 파편이 그들의 살점 그리고 핏물과 함께 사방으로 튀었다.

* * *

182부대 특무 팀의 초소.

이창민 중사가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23시…….’

점심에 수색을 나갔던 성현과 박상문 하사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무전기를 눌러 봤지만 답도 없다.

‘무슨 일이 있나?’

그의 눈빛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이곳은 S급이나 등급 외 짐승이 심심치 않게 모습을 드러내는 짐승의 땅이다.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했다.

그가 다시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앞으로 1시간.’

12시가 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보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찾으러 간다.’

이창민 중사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흐린 연기가 입에서 내뱉어질 때였다.

“큰일 났습니다!”

박상문 하사가 허벅지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유성현은?”

“그, 그게…….”

“대답해!”

“칠음 패거리의 마을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박상문 하사는 있었던 일을 전했고 이창민 중사의 얼굴은 점차 일그러졌다.

“유성현이 이승보를 죽였다고?”

“네.”

이창민 중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 역시 이승보를 알고 있었다.

인간의 땅에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이곳으로 도망친 놈이다.

그 실력 역시 대단하다.

‘그런데 이승보를 죽였다고?’

성현의 나이는 이제 스무 살, 그것도 몇 달 전 계약한 신인 중의 신인이다.

몇 번을 생각해도 유성현이 이승보를 죽이기는 어렵다.

그런데 박상문 하사는 유성현이 정말 손쉽게 박살 냈다고 한다.

‘도대체 뭐지?’

그 순간 이창민 중사의 머릿속에 존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참모총장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할 수도 있지. 나는 네놈과 그가 함께했으면 한다. 그는 네놈이 원하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줄 수 있을 게다.

이창민 중사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줄 수 있다고?’

잠시 생각에 빠졌던 이창민 중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야.’

지금은 성현을 구하러 가야 한다.

성현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수천 명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다.

더군다나 성칠음은 이승보와 차원이 다른 계약자다.

이창민 중사가 소총을 손에 들며 말했다.

“기껏 들어온 신병을 죽일 수는 없지. 구하러 간다. 하지만 넌 여기서 기다려.”

“네? 초소장님 혼자 가시려는 겁니까?”

“어. 그 몸으로 뭘 어쩌려고?”

박상문 하사는 허벅지에 큰 부상을 입었다.

진통제를 먹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지원 요청이라도 하겠습니다.”

“하지 마. 한다고 해도 안 와.”

이 지역을 관리하는 대대, 여단의 고위직의 주머니에 성칠음의 돈이 쑤셔졌다.

이등병 하나 죽는다고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등병보다 채워질 주머니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 혼자 간다.”

“위험합니다!”

“내 능력이 뭔지 알잖아?”

이창민 중사가 엷게 웃었다.

그가 손에 쥔 소총이 스르륵 사라지고 있었다.

* * *

성칠음은 소파에 앉아 턴테이블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독주곡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가 찻잔을 손에 쥘 때, 현관문이 ‘쾅!’ 하고 열렸다.

성현이 피를 뒤집어쓰고 나타났다.

성칠음이 고개를 틀어 성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차 한잔 마시지?”

성현이 저벅저벅 그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그러자 성칠음이 찻잔을 내려 두며 물었다.

“다 죽였나?”

“눈에 보이는 것은.”

“이유는?”

“덤볐으니까.”

성칠음이 껄껄 웃었다.

“어린놈이 살인에 익숙하다니……. 말세야, 말세.”

“여유 그만 부리고……. 이제 시작할까?”

“잠깐, 이 이야기를 들어 봐. 이 소파가 얼마인 줄 아나? 3천만 원이야.”

뜬금없는 소리에 성현이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성칠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 입을 연다.

“이 찻잔은 270만 원이지. 그리고 저기 턴테이블 있지? 저 가격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밖에서는 이곳을 짐승의 땅이라 부르지. 하지만 우리에겐 이곳이 천국이야. 자극적인 쾌락, 지루할 만큼의 평화, 어떤 것이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어. 너에게 그런 지위를 주지.”

성칠음은 지금 당장이라도 성현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존재의 메시지가 울렸다.

-이 군인과 함께하라.

-손을 잡으라.

-이것은 명령이니라.

-그럼 척박해진 네 땅에 비를 내리리라.

그는 성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존재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그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함께하자. 한 번 사는 인생, 즐기며 살자. 나와 동등한 지위를 약속하지.”

그가 성현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성현은 그를 보고 있지 않다.

성칠음의 뒤,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었다.

성현이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그림 뒤에 금고가 있나?”

“뭐?”

“저기 있는 것 맞지?”

성칠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안에는 그가 평생에 걸쳐 모아 둔 보물이 들어 있다.

비서조차도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그가 뻣뻣해진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냐고!”

그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울렸다.

그런데 그사이에도 머릿속에는 존재의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었다.

-금고에 있는 보물을 군인에게 건네라.

-그만큼의 보물을 다시 안기리라.

미쳐 버릴 정도로 들어오는 메시지에 성칠음은 빠득 소리가 날 정도로 치아를 갈았다.

‘젠장, 평생 모은 것을 다 주라고? 미친 거야?’

그의 마음이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성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함께하자고? 동등한 지위를 보장해 준다고?”

“그, 그래.”

“미안한데, 난 네 모든 것을 빼앗을 생각이야. 금고 안에 든 것부터 그 하찮은 권력까지.”

성칠음의 눈에 불이 뿜어졌다.

“이런 건방진!”

-참고 또 참으라.

-저 군인과 손을 잡으라.

-이것은 명령이니라.

하지만 성칠음의 눈은 이미 돌아갔다.

허접해 보이는 이등병이 나타나 모든 것을 빼앗겠다니.

지금 당장 죽여 버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존재의 지시를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죽여 주마.”

그의 온몸에 검은 기운이 일렁였다.

근육이 꿈틀대며 검은 갑옷으로 변했고 양손에 잔혹한 톱이 나타나 쥐였다.

그의 존재는 검은 숲의 군주 루카누스, 짐승형 존재로 사슴벌레의 권능이었다.

“네 도끼는 내 피부를 뚫지 못할 것이다. 네 권능은 내게 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자근자근 씹어 주마.”

성칠음이 톱을 던졌다.

톱은 엄청난 속도로 휘둘려 날아갔고 콰아아악, 성현의 복부에 꽂혔다.

미처 피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커헉!”

성현이 비틀비틀 뒤로 물러섰다.

오중찬과 싸워 생긴 상처가 더 심하게 벌어지며 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네 온몸을 톱으로 썰어 주마.”

“어설프게 회유하는 것보다 이게 마음에 드네.”

성현이 억지로 웃었고 성칠음의 입술은 뒤틀렸다.

“그 건방이 언제까지 가나 보자.”

그가 저벅저벅 성현을 향해 걸어갔다.

손에 쥔 톱이 무시무시하게 보인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치맛자락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고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는 검고 둔탁한 곤봉이 이질적으로 들려 있다.

갑자기 등장한 그녀 때문에 성칠음의 걸음이 멎었다.

“뭐, 뭐야?”

그녀가 서늘한 눈으로 성칠음을 노려봤다.

“루카누스 님께서 말씀하셨다. 명령을 어긴 죄, 죽음으로 갚으라 하셨다.”

“너, 넌 누구야?”

“질문은 없다 하셨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곤봉으로 성칠음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콰직! 콰직!

압도적인 힘과 속도, 성칠음은 피하지 못했다.

단 한 방에 갑주가 깨어지고 간절한 비명이 공간을 울린다.

“아아아악!”

하지만 그녀는 냉랭한 표정으로 조용히 곤봉을 휘두른다.

빠직! 빠직!

“하찮은 인간을 오늘 폐기하라 하셨다.”

존재에게 인간은 게임 속 캐릭터와 같다.

단지 소유물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성칠음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결과가 이거다.

쓸모없는 놈, 말을 듣지 않는 놈은 언제 죽여도 아깝지 않다.

성칠음은 더 이상 꿈틀거리지도 않는다.

비명은 물론 신음조차 흘리지 못한다.

이미 죽은 거다.

성칠음의 머리를 곤봉으로 짓이기던 그녀가 몸을 틀어 성현을 향했다.

그리고 얼굴에 튄 성칠음의 피를 닦아 내며 그녀가 말한다.

“난 검은 숲의 군주 루카누스 님을 모시는 마녀 케이트. 루카누스 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대를 원한다 하셨다.”

“나를 원한다고? 그런데 이놈이 나와 싸우려 하니까 죽인 건가?”

“그렇다.”

성현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마음에 안 들었다.

성칠음이 나쁜 놈이라 해도 그는 오랫동안 존재와 함께해 왔다.

그런데 가차 없이 죽인다.

존재의 저런 행동이 신물 나게 느껴졌다.

성현이 마녀 케이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누가 멋대로 나서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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