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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74화 (74/252)

74화

성현은 곧장 도끼를 휘둘렀다.

공기를 찢는 소리가 날 정도로 엄청난 속도.

하지만 케이트는 몸을 가볍게 틀어 성현의 공격을 피했다.

그녀가 감정 없는 눈으로 성현을 보며 말했다.

“성칠음은 루카누스 님의 명령을 어겼다. 죄는 피로 씻어야 했다. 그게 루카누스 님의 뜻이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이놈의 죽음이 아니다. 루카누스 님이 그대를 원한다고 하신 말씀이 중요한 것이다.”

“개소리.”

성현은 멈추지 않고 도끼를 휘둘렀다.

붕! 붕! 붕!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느긋하다.

“마리안느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것은 알고 있다.”

도심형 던전의 병원에서 성현은 마리안느와 싸웠고 그녀의 눈동자를 손에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난 마리안느와 다르다. 그대는 내 발아래에 고개 숙이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내게 사나운 이빨을 드러낼 것인가?”

성현도 그녀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현은 멈추지 않는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인간의 목숨을 쉽게 생각하는 존재에게 한 방 먹여 주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아픔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녀급의 존재를 상대로 어디까지 통할지 궁금했다.

계속해서 도끼가 휘둘렸고 이번에도 그녀는 가볍게 피했다.

“소용없다고 했다.”

“그럴까?”

애초에 성현의 목표는 도끼로 그녀를 맞히는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준비한 게 있었다.

바로 라이트닝 볼이다.

성현이 라이트닝 볼을 쏘려 할 때, 그녀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권능을 사용해도 소용없다.”

그녀는 빠르게 물러서려 했다.

멀리 떨어져 모두 피하려 하는 거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이미 예상 안에 있었다.

성현은 바닥에 쓸리는 그녀의 치맛자락을 콱 밟았다.

“어?”

뒤로 물러나던 그녀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성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라이트닝 볼을 집어 던졌다.

1개, 2개, 3개, 4개!

그녀가 마녀급의 존재라 해도 근접 거리에서 쏘아진 라이트닝 볼 수십 개를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파지지지직!

그녀의 몸에 정확히 처박혔다.

“끄으으읍!”

그녀는 고통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피가 날 정도였다.

느껴 본 적 없는 고통, 그녀의 눈빛에 처음으로 분노가 채워졌고 몸에서는 사나운 살기가 쏟아졌다.

“죽여 주마!”

그녀의 손에 마력이 모였다.

검은 연기가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농구공 크기까지 커졌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이뤄질 수 없었다.

머릿속에 검은 숲의 군주 루카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멈춰라.

-너도 지시를 어기겠다는 거냐.

-내 뜻만 전하고 물러서도록 하라.

그녀의 행동이 멈칫거렸고 분한 듯이 치아를 꽉 깨물었다.

손바닥 위에 모였던 마력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화를 참는 듯 한숨을 내뱉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간…… 루카누스 님의 은총으로 목숨을 연명하게 되었구나. 루카누스 님은 그대를 원하며 그대와 함께 에느가인을 찾고자 하신다. 잘 결정하라. 모든 존재가 에느가인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에느가인은 세상의 균형을 깨는 것.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숨기려 하는 존재도 많다. 그자들은 그대를 죽이려 하겠지. 그대가 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루카누스 님께 복종하라. 그럼 넌 살 것이다.”

“…….”

“오늘은 루카누스 님의 뜻을 전하는 날. 다음에 올 때는 그 대답을 받아 낼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케이트는 스르륵 사라졌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성현이 그녀가 있던 자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쉽네.”

성현이 아쉬워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가 있던 바로 위, 천장에는 핏방울이 모여 수천 개의 송곳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녀가 조금만 늦게 떠났다면 수천 개의 송곳이 그녀의 몸에 박혔을 거다.

‘그럼, 죽일 수 있었을까?’

마녀급의 존재를 이기는 것, 성현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케이트가 떠나며 그 순간은 잠시 미뤄야 했다.

성현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거실 벽으로 다가가 걸린 그림을 떼어 냈다.

뒤에는 금고가 보인다.

‘비밀번호는…….’

익히 알고 있었다.

놈의 생일이다.

비밀번호를 누르자 ‘끼리릭’ 소리를 내며 금고가 덜컹 열렸다.

성현은 그 안을 조용히 바라봤다.

현금 다발과 반짝이는 보석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성현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성현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구석에 놓인 열쇠다.

성현은 열쇠를 손에 쥐고 옆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옆집의 거실에는 온갖 아이템이 잡동사니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먼지가 쌓여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물건들.

하지만 이것이 성칠음이 평생에 걸쳐 모으고 숨겨 둔 진짜 보물이다.

그중에서 성현의 눈이 닿은 것은 두억시니의 허벅지 뼈였다.

길이가 2m, 여간해서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강도도 좋고 무게까지 가볍다.

성현은 이것으로 창을 만들 생각이다.

대모벌 로드의 독침과 합쳐지면 무시무시한 무기가 될 게 분명했다.

‘좋아.’

뼈를 손에 들고 세세히 살피던 성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다시 성칠음이 죽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성칠음은 도망자들을 모아 미끼로 사용하고 자신의 군대로 이용했던 쓰레기다.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했지만 결국 존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하찮은 이유로 죽고 말았다.

‘멍청한 놈.’

성현은 성칠음의 팔을 잡고 질질질 밖으로 끌고 나갔다.

* * *

시신 30여 구와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참여한 사람들이 떨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약 500명의 계약자들이 서슬 퍼런 칼을 들고 서 있다.

이내…….

“죽여!”

수염 난 사내의 지시에 500명의 계약자들이 무섭게 달려들었다.

이대로 계약자들과 맞붙으면 전멸하고 만다.

시신 30여 구가 500명의 계약자들을 맡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결의에 찬 눈으로 앞을 보고 있다.

“미끼로 사용되느니 인간답게 죽자!”

한 사람의 외침에 다른 사람들이 손을 번쩍 들며 함성을 내질렀다.

“와!”

그 순간 계약자와 시신이 맞붙었다.

-카아아악!

시신 30여 구는 쉽게 길을 터 주지 않았다.

그 안에 오미로 베루스도 있기 때문이다.

놈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계약자들은 큰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밀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머릿수의 차이가 컸다.

그때였다.

“지금!”

안영호가 외쳤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연막탄을 집어 던졌다.

펑! 펑! 펑!

하늘도 이들을 돕는지 바람조차 불지 않고 있다.

자욱한 연기가 골목을 채우며 적과 아군이 구별되지 않는 지옥이 만들어졌다.

안영호가 다시 외쳤다.

“뒤로 빠져!”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약자들은 그들을 쫓지 못한다.

그 앞을 시신 30여 구와 오미로 베루스가 막아서고 있어서다.

게다가 연기가 자욱했다.

계약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골목을 벗어났을 때, 안영호가 호루라기를 입에 대고 힘껏 불었다.

삐이이이익!

그게 신호였다.

옥상에 설치된 소총이 불을 뿜었다.

타타타타탕!

시신은 이미 죽은 자들이라 총을 맞아도 상관없다.

오미로 베루스는 다시 재생된다.

하지만 계약자는 다르다.

그들은 총에 맞으면 피를 흘리고 살이 찢어지는 인간이다.

“끄아아악!”

연기 속에서는 비명 소리가 잔인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수염 난 사내는 침착하다.

그가 빠르게 해결 방법을 지시했다.

“엄호해 줄 테니 벽을 기어올라! 총 들고 설치는 새끼부터 죽여!”

수십 명의 계약자들이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자들은 건물 옥상을 향해 권능을 쏘아 댔다.

“총을 쏘던 놈은 손가락을 아작 내라! 시체 뒤에 숨어 있던 놈들은 잔인하게 씹어 먹어라!”

이제 조금만 있으면 싸움은 끝난다.

미끼의 반란은 하루 만에 정리되는 거다.

‘그 군인만 잡으면 되는데…….’

그때 그의 귀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크, 큰일 났습니다!”

수염 난 사내의 얼굴이 도깨비처럼 일그러졌다.

“또 뭐!”

“주, 죽었습니다.”

“누가? 누가 죽어!”

같은 시각, 다 무너진 주택가의 골목.

별동대를 안내하던 박병욱은 궁지에 몰려 있었다.

“그 군인 새끼가 여기 있다며?”

“그, 그게…….”

당황하는 박병욱을 보며 비서가 고개를 저었다.

“흔적이라도 있으면 믿어 주려고 했는데, 흔적도 없잖아?”

박병욱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몸이 발발발 떨려 왔다.

하지만 힘을 내서 입을 열었다.

“짐승보다 너희가 더 짐승 같아. 가축으로 사느니 그냥 죽는 게 낫겠다. 죽여라.”

비서가 황당한 표정으로 박병욱을 보다가 이마를 잡고 낄낄낄 웃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온 게 다 거짓이라는 거지?”

“그래.”

“아, 이런 미친 새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몰라? 그렇게 죽고 싶어?”

“죽여.”

비서는 차가운 눈으로 몸을 돌리며 별동대에게 지시했다.

“죽여 달란다. 죽여 줘라.”

“예.”

별동대가 저벅저벅 박병욱을 향해 다가갔다.

차가운 칼날이 그의 목에 닿는다.

그때 낯설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를 향해 틀어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창민 중사였다.

비서가 눈을 찌푸렸다.

“……이창민 중사?”

“어.”

“혹시…… 이등병 하나가 난동을 피운 게 이창민 중사의 뜻이었습니까?”

“아니라고 하면 믿어 줄 거냐?”

“믿을 겁니다. 중사님은 믿습니다.”

“고맙네. 그런데 그 난동 피우는 이등병이 지금 어디 있지? 데리러 왔거든.”

비서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중사님과 그 이등병은 다르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놈이 몇 명을 죽였는지 알고 있습니까?”

“책임은 너희가 묻는 게 아니라 내가 묻는 거야.”

이창민 중사의 목소리는 사나웠다.

비서의 눈빛이 비틀어졌다.

“지금…… 싸우자는 겁니까? 이곳은 짐승의 땅. 짐승에게 잡아먹혔다 하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중사님을 죽여도 아무도 모를 겁니다.”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별동대는 자세를 낮추며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끝냈고 박병욱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다리를 후들후들 떨었다.

하지만 이창민 중사는 느긋하다.

“가장 위험한 초소에 전투병과 나 혼자인 이유.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어? 내 권능 때문이다.”

이창민 중사의 권능은 물건을 옮기는 거다.

눈으로 보고 머릿속에 좌표를 기억한 물건은 모두 옮길 수 있다.

그의 앞에 기관총과 수류탄이 나타났다.

“내게 다가오면 수류탄이 터질 거다.”

그가 손으로 그들이 마을로 사용하는 아파트 단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기에 포탄이 떨어지겠지. 이 동네 옥상 이곳저곳에 박격포를 옮겨 뒀거든. 그리고 미사일도 떨어질 거야. 저 뒤쪽으로 미사일이 배치될 테니까.”

비서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그, 그게 가능하다고?”

“허세라고 생각하나? 그럼, 박격포부터 갈겨 줄까? 그게 싫으면 내 새끼 얌전히 데려와. 성칠음이고 뭐고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으면 내 명령을 따라.”

일개 도망자들의 마을이 떨어지는 포탄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일대는 폐허가 될 거다.

재건의 시간을 생각하면 여기서 물러나는 게 옳다.

비서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는 걱정하고 있었다.

‘그놈이 아직까지 살아 있을까?’

성현을 죽이기 위해 별동대가 움직였다.

그뿐만 아니라 수염 난 사내가 수천 명을 데리고 쥐 잡듯이 쑤시는 중이다.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

최소 중상이다.

비서의 표정을 본 이창민 중사가 말을 이었다.

“……만약에 내 새끼가 죽었으면 너희는 오늘 모조리 죽는다.”

“저, 저기…….”

그때 한 사내가 다급히 달려오며 외쳤다.

“크, 큰일 났습니다! 죽었습니다! 성칠음이 죽었어요!”

그 간절한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비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죽었다고?”

그리고 이창민 중사의 눈이 번쩍였다.

‘성칠음까지 죽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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