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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75화 (75/252)

75화

이창민 중사의 머릿속에 존재가 보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는 네놈이 원하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줄 수 있을 게다.

이창민 중사가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원하는 것…….’

그는 현 시스템의 멸망을 원하고 있었다.

짐승보다 더 짐승 같은 권력자들.

국민을 위한다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쓰레기들.

그들 때문에 세상이 썩었고 이런 도망자의 마을이 만들어졌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의 숨통을 끊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놈들은 인간의 정점에 선 권력자다.

말 한마디에 수십만 명의 군대가 움직이고 전투기가 하늘을 날아다닌다.

땅에서는 전차와 자주포의 포신이 불꽃을 뿜어낸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그들과 싸워 이길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 성현이 수천 명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그뿐만 아니라 적장을 죽였고 이 작은 마을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왔다.

이창민 중사의 주먹이 꽉 쥐여졌다.

‘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의 시선이 비서에게 향했다.

“이봐. 내가 여기에 왔다는 것, 숨겨.”

“숨기라고요?”

비서는 눈을 깜빡였다.

이창민 중사는 기관총과 수류탄까지 꺼내며 협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자신이 왔다는 것을 숨기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부탁하는 거야. 그리고 성칠음의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은 버려. 어차피 너희도 충성심으로 그놈 옆에 붙어 있던 것은 아니잖아?”

“…….”

“이 마을에 새로운 질서가 찾아올 거야. 그 질서를 따르면 너희는 똑같이 이곳에서 살 수 있어. 하지만 다른 생각을 먹는다면…….”

이창민 중사의 손에 권총이 나타났다.

그가 그 권총으로 비서의 관자놀이를 겨누며 말을 이었다.

“방아쇠를 당길 거야.”

비서가 관자놀이에 닿은 차가운 금속을 느끼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생존만 보장된다면 뭐든 할 수 있죠.”

“그 마음 잊지 마.”

이창민 중사의 손에 쥐였던 권총이 스르륵 사라졌다.

권총만이 아니라 그가 꺼냈던 수류탄과 기관총도 마찬가지다.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비서가 긴장된 한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저도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권능이 물건을 옮기는 것이란 것은 알겠는데요. 정말 미사일까지 옮길 수 있습니까?”

“글쎄.”

이창민 중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묘한 미소만 남긴 채 그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아파트 관리 사무소.

성칠음의 비서와 경호실장 그리고 수염 난 사내 등 8명이 앉아 있었다.

모두 성칠음의 아래서 권력을 나눠 먹던 자들이다.

긴 테이블에 앉아 성현을 기다리던 중, 수염 난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민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새끼가 성칠음을 죽일 수 있다고? 눈으로 봤어? 그게 가능해?”

대답은 경호실장이 했다.

“성칠음의 시체를 끌고 나온 게 그 군인이었어. 그럼, 누가 죽였겠어? 답은 나왔잖아?”

“젠장! 젠장!”

수염 난 사내가 주먹으로 쾅쾅 테이블을 내리찍었다.

짐승의 땅에 들어와 방탕하게 살아왔다.

원하는 것은 모두 얻었고 술과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

그 삶을 보장해 준 게 성칠음이다.

그런데 성현의 등장으로 모든 게 망가졌다.

성칠음은 죽었고 수염 난 남자의 인생은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게 되었다.

“젠장……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모든 처분은 성현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렇게 그의 손이 부르르 떨릴 때, 관리 사무소의 문이 열리고 성현과 안영호가 들어왔다.

성현이 자연스레 상석에 앉아 입을 열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죠. 지금부터 제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경우 성칠음이 살해당했다는 보고가 사단과 여단에 올라갈 겁니다. 그리고 그 보고가 가져올 결과가 어떨지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성칠음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외부로 퍼지면 이곳의 미래는 뻔하다.

안영호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 설명했다.

“사단장과 여단장은 성칠음에게 돈과 여자를 접대받았습니다. 그런데 성칠음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껏 받아먹었던 돈이 안전한 것인지 궁금해질 겁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접대 장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겠죠.”

“…….”

“그럼 그들의 선택은 하나입니다. 그들의 죄가 세상에 드러나기 전에 이 마을을 초토화시켜 자신의 죄를 숨기는 것.”

“…….”

“어차피 도망자들의 마을. 이곳은 누가 죽어도 상관없는 곳입니다.”

비서를 포함한 8명의 사람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이들이 가진 조잡한 권능으로 쏟아지는 포탄과 미사일을 막을 방법은 없다.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에 성현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비서가 입을 열었다.

“……무엇을 바라십니까?”

“이 마을의 대표는 안영호 씨가 맡을 겁니다.”

난데없이 호명된 안영호가 눈을 깜박였다.

“제가요?”

“네,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어렵습니다.”

안영호는 고개를 저었다.

한때는 성칠음의 보좌관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인간이다.

계약자를 휘둘러 마을을 운영할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성현은 밀어붙인다.

“할 수 있습니다. 이분들이 안영호 씨를 따를 거니까요.”

“따른다고요? 그때는 성칠음이 있어서 이 사람들이 제 말을 들었던 겁니다. 그리고 저는 팔도 하나가 없어요. 외팔이에요. 못합니다.”

권능을 가진 계약자가 평범한 사람을 따를 리 없다.

그게 세상의 룰이다.

그런데 성현이 품에서 거무튀튀한 게 기분 나쁘고 찝찝해 보이는 알약 수십 알을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불길한 느낌을 강하게 받은 비서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게 뭐죠?”

“제가 만든 독입니다. 해독제는 구하려 하지 마세요. 시간 낭비니까요. 먹는다고 통증이나 고통을 느끼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불편한 것은 있죠. 한 번 먹기 시작하면 2개월마다 이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머리가 폭발하거든요.”

성현이 알약을 한 알씩 손에 쥐며 사람들과 천천히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느릿하니 입술을 움직여 말을 이었다.

“말을 잘 들어야 2개월 후에 또 약을 주겠죠.”

“그걸 어떻게 먹으라는 겁니까! 노예가 되라는 거잖아요!”

수염 난 사내가 테이블을 치며 일어섰다.

하지만 성현의 눈빛이 잔인하다.

“그럼…… 지금 죽을 겁니까?”

사람을 미끼로 사용하던 자들이다.

그런 놈들이 지금 똥오줌을 가리려 한다.

성현의 살기로 가득한 눈빛에 수염 난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성현이 빙긋이 웃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세요.”

하지만 모두 망설이고 있다.

독이라는 말에 누구 하나 섣불리 먹지 못한다.

그때…….

“제가 먼저 먹겠습니다.”

안영호였다.

그가 말릴 틈도 없이 알약을 입에 넣고 씹었다.

그리고 약을 삼킨 후 입을 열었다.

“마을을 대표하겠습니다.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마을을 대표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몇 달 전만 해도 저는 이 마을의 이인자였습니다.”

그는 성칠음의 보좌관이었다.

비록 권능은 없어도 똑똑했던 그를 성칠음은 보좌관으로 삼아 마을의 일을 떠넘겼다.

그가 계속 말했다.

“그때와 똑같습니다. 저는 이 마을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게 있습니다. 제 위에는 성칠음이 아니라 이분이 있다는 것.”

“……!”

“그리고 미끼로 삼았던 분들을 마을 주민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이번에는 비서가 벌떡 일어섰다.

“미끼가 없어지면 짐승의 날에 우리가 모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굶주린 짐승이 마을까지 들어올 겁니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 또 다른 인간을 제물로 바친다.

다른 사람을 짐승의 먹이로 삼아 오늘의 하루를 살아간다.

그게 짐승의 땅에서 이 마을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다.

안영호는 고개를 저었다.

“달라질 겁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만약 달라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음 말은 성현이 이었다.

“말리지 않습니다. 마을을 떠나세요.”

마을을 떠나 살 수 없다.

밖에는 먹을 음식이 없고 짐승이 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성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싸우다 죽든지, 가만히 있다 죽든지, 도망치다 죽든지…… 그 선택은 스스로 하세요.”

경호실장이 약을 손에 들었다.

“먹겠습니다.”

나머지 사람들 역시 어쩔 수 없이 약을 입에 넣었다.

먹은 것처럼 속일 수는 없었다.

성현이 또렷이 보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독을 집어삼키자 성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바로 일하죠. 사람들에게 집을 배정해 주세요. 가족을 찾아 주고요. 경호실장은 짐승에 대비한 새로운 방어 라인을 고민하세요. 그리고…….”

성현은 거침없이 지시를 내렸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후였다.

아파트 옥상에 성현과 안영호가 서 있었다.

성현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이승보와 오중찬의 시신을 수습해 주세요. 여단으로 보낼 겁니다.”

“네, 그리고 또 있습니까?”

“아뇨. 그거면 됩니다.”

이승보와 오중찬의 시신이 세상에 드러나면 그와 함께 성현의 이름도 세상에 알려질 거다.

지금껏 조용히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슬슬 존재감을 드러낼 때다.

그래야 다음 계획으로 넘어갈 수 있다.

성현은 시선을 틀어 세상을 둘러봤다.

‘이곳…….’

이창민 중사가 반란을 일으켰던 거점이다.

이곳은 쓸 만한 계약자가 많았고 인간의 땅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성현이 손에 든 노트를 펼쳤다. 성칠음이 작성한 장부였다.

누가 언제 돈을 받았고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심지어 몰래 영상을 찍어 뒀는지 USB까지 보였다.

이것이면 사단장과 여단장을 주무를 수 있다.

물론 당장 그들의 목에 개목걸이를 채울 생각은 없다.

아직은 계속 먹이를 주며 가축을 기르듯 키울 때다.

성현은 성칠음이 했던 것처럼 사단장과 여단장 그리고 대대장에게 계속해서 돈을 찔러줄 생각이다.

돈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늪으로 유도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늪에 빠지는 순간…….

성현이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 * *

“연쇄살인범 이승보와 장기 매매 업자 오중찬이 죽었다고 합니다.”

페이트 길드였다.

업무를 보던 서은서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무령이 다가와 그녀의 앞에 서류를 내려 뒀다.

그녀가 서류를 펼치며 물었다.

“이승보, 오중찬?”

“네.”

“그게 누구지?”

이승보와 오중찬, 몇 년 전에 짐승의 땅으로 도망친 범죄자들이다.

그녀가 그들의 이름까지 일일이 기억하기는 어려웠다.

그녀가 계속해서 서류를 넘겼다.

그런데…….

“유성현?”

반가운 이름이 보였고 그녀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하지만 그 표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령이 입을 열었다.

“세상에 유성현의 이름이 알려질 겁니다.”

“어?”

“이승보와 오중찬은 끔찍한 범죄자였습니다. 유성현이 그놈들을 잡았죠. 유가족들이 유성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유성현과 인터뷰를 잡기 위해 국방부와 연락을 취하고 있죠. 곧 유명해질 겁니다.”

성현을 숨기기 위해 군대로 보냈다.

그런데 거기서 도망자를 잡으며 유명해지려 한다.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렸고 무령의 목소리가 무심하게 이어졌다.

“유성현이 죽인 두 놈은 제법 실력이 있는 놈들이었습니다. 스무 살짜리 꼬마가 잡을 만큼 녹록한 놈들이 아니었죠. 그런데 유성현은 그놈들을 잡았고…….”

“다른 길드에서 주목하겠네?”

“아마…… 그럴 겁니다.”

서은서는 골치 아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또각또각 창가로 걸어갔다.

팔짱을 끼고 한참이나 창밖을 보던 그녀가 고개를 틀어 무령을 향했다.

“부탁할 게 있어.”

“말씀하십시오.”

“면회 한번 가자.”

“네?”

“면회라는 것, 한 번도 안 가 봤거든.”

* * *

그 시각.

성현은 창고에 있었다.

두억시니의 뼈와 대모벌의 독침 그리고 도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턱을 매만졌다.

성현은 지금 창을 만들려 한다.

그동안은 계속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성공하고 싶었다.

금고에 넣고 조합을 시도할 때마다 수천만 원이 들어갔다.

카니발 이후 창 만들기는 계속해서 실패했고 이제 남은 돈은 약 8억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해.’

앞으로 들어갈 돈이 많다.

이번에도 조합에 실패하면 당분간은 창 만드는 것을 미뤄 둬야 했다.

성현은 금고에 재료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금고 문을 강하게 닫고 조합을 시도했다.

금고에서 금빛이 새어 나왔다.

‘제발.’

성현은 금빛이 사그라질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금고가 조용해졌다.

조합이 끝난 거다.

‘성공? 아니면 이번에도?’

성현은 천천히 금고를 열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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