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80화 (80/252)

80화

“다른 사람들은?”

“곧 오겠죠.”

짐승의 날, 온전한 힘을 갖고 강림할 마녀 뢰피크르를 성현 혼자 상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카니발에서 만났던 인물들을 이곳으로 불렀고 성현의 예상대로 이준이 가장 먼저 왔다.

그는 저격수다.

남보다 먼저 도착해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는 습성이 있다.

이준은 나무에 등을 기댄 후 힐끗 성현을 바라봤다.

성현은 이준이 나타나고 지금까지 시선 한번 돌리지 않고 하늘만 보고 있다.

“하늘에 뭐가 있나?”

“예쁘잖아요. 또 언제 볼지 모르고.”

“하긴…….”

이들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하늘을 봐 두는 것도 마지막을 위한 준비일 수 있다.

이준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했다.

별이 쏟아질 것처럼 보인다.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에 이준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별은 셀 수 없이 많다지?”

“우리 은하에 있는 별의 숫자만 2~4천억 개래요. 우주 전체에는 몇 개의 별이 있는지 예상조차 어렵죠.”

“되게 많네.”

“존재의 숫자가 별보다 더 많다고 하네요.”

이준의 시선이 성현에게 틀어졌다.

“……존재가 그렇게 많아?”

“네.”

인간은 고작 60억 명이다.

그런데 인간의 힘을 아득히 넘는 존재, 그들의 숫자는 그들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많다.

별보다 많고 우주보다 넓게 퍼져 있다.

그게 존재, 그들은 영원을 살아가는 생명체이며 계속해서 출산을 반복하는 생명체다.

그 숫자는 지금도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거의 대부분의 존재가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극히 일부만 인간에게 관심을 갖고 간섭하려 하는 거죠.”

“그건 다행이네.”

진심이었다.

그 많은 존재 모두가 인간에게 관심을 갖는다면 지구는 남아나지 않을 거다.

조금 더 하늘을 보던 성현이 자세를 바로 했다.

이제 휴식은 끝났다.

슬슬 일을 시작해야 한다.

성현은 가방을 열어 쇠로 만들어진 건틀릿을 꺼내 이준에게 건넸다.

건틀릿은 쇠나 가죽으로 만든 긴 장갑.

뜬금없이 건틀릿을 받은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필요할 것 같아서 만들었어요. 마력을 없애는 쇠사슬로 만들었거든요.”

“마력을 없애?”

이들은 마력을 베이스로 싸우는 계약자다.

그런데 마력을 없애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성현이 나직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저격수를 찾고 가장 먼저 죽이죠.”

전투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 중 하나가 저격수다.

숨어서 쏘아 대는 마력은 정말 성가시기 때문에 전투가 벌어지면 가장 먼저 저격수를 찾아 죽인다.

“그래서 이 건틀릿을 특수 제작했어요. 착용자의 마력은 간섭하지 않지만 탐색 마법에는 걸리지 않습니다. 딱히 방어력이 올라가진 않지만 저격수에게는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더 완벽히 숨을 수 있다는 거지?”

“네.”

“고마워.”

이준이 슬쩍 웃었다.

그 미소에는 진심으로 감사함이 보였다.

숨어 있는 장소만 걸리지 않는다면 그는 무적이었다.

그가 건틀릿을 착용해서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고 손가락 끝에 마력도 모아 봤다.

“불편하지도 않아. 편하네.”

“잘됐네요.”

이계의 꼬마에게 수억을 주고 부탁한 건틀릿이다.

허접하면 억울했다.

이준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하나 물어봐도 될까?”

“네.”

“우리는 언제까지 네 종으로 있어야 하지?”

이준은 물론이고 카니발에서 만났던 사람 모두가 성현과 노예 계약을 했다.

인간이면 자유를 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성현이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

“머지않을 겁니다.”

“그래? 풀어 주기는 할 건가?”

“네, 그러니까 죽지 말고 살아 주세요. 그때는 건틀릿이 아니라 자유를 선물할 테니까요.”

“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노비로 있다가 죽는 거잖아?”

이준이 다시 나무에 등을 기대고 말을 이었다.

“난 연구원이었어.”

이준은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계약자끼리의 불문율 중 하나가 과거를 묻지 않는 것.

이들은 어떤 욕망에 의해 존재와 계약했고 그 욕망을 밝히는 것을 서로 꺼렸다.

하지만 먼저 꺼낸 이야기를 듣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성현은 이준에게 시선을 틀었다.

앞서 말한 불문율 때문에 이준의 과거를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소문을 통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상대가 어린애든 누구든, 심지어 자신의 부모까지 죽인 킬러이자 살인마 이준.’

계약자 중에 몇몇 변태적 취향을 가진 살인마가 있었다.

어떤 놈은 여자의 비명을, 누군가는 어린애의 비명을 즐겼고, 피의 뜨듯함에 성적 쾌락을 느끼는 놈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준은 달랐다.

감정 없이 사람을 죽였다고 들었다.

이준이 계속 말했다.

“우리가 했던 연구는 짐승을 개조하는 것, 짐승의 유전자로 인간을 개조하는 것, 인간의 유전자로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

사람의 팔을 잘라 짐승의 이마에 붙이고 짐승의 혓바닥을 인간의 옆구리에 붙였다.

기하학적이고 끔찍한 연구가 매일같이 이뤄졌다.

“어느 날 한 여자가 연구소에 실험체로 들어왔어. 반정부 시위를 하다가 잡혀 온 여자지. 난 바보 같게도 그 여자에게 반했어.”

“…….”

“풀어 줬지. 도망가라고 말했지.”

이준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그 여자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 상황만을 전달했다.

“하지만 탈출은 무리였어. 다시 잡혀 왔지.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잡아 온 거야. 아, 내가 있던 연구소에는 우리 부모님도 계셨어……. 우리 아버지가 연구소의 소장이었거든.”

“…….”

“그리고 그 여자는 지네가 되었지. 배 속에는 내 아이가 자라고 있었는데…….”

이준의 시선이 성현에게 닿았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난 계약자가 됐어. 분노로 뒤집혔던 눈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연구소는 사라져 있었지.”

잠시 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틀어 성현을 바라봤다.

“언젠가 내 존재에게 그런 말을 들었어. 미처 태어나지 못한 아기는 죽음이라는 개념으로 다가설 수 없기 때문에 소멸의 바다에 있을 수 있대. 그곳에 가면 만날 수도 있대. 그래서 난 사람을 죽이고 있어. 소멸의 바다로 가려면 그 영혼을 밟아야 하니까.”

“…….”

“내 욕망은 그곳에서 내 아기를 찾는 것. 한 번만 안아 보는 것.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이준이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먼저 와 있었네요?”

사기꾼 윤희진과 군인 출신 이주안이 보였다.

두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다.

이주안의 성격은 극단적이고 여자를 낮게 생각한다.

반대로 윤희진은 남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 두고 가지고 논다.

두 사람의 사이가 좋을 리 없다.

하지만 둘은 중간에 만났고 이곳에 오는 동안 쉬지 않고 싸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2시간쯤 더 지났을 때 서준식이 나타났다.

그렇게 모두 모이자 성현이 손바닥을 짝 쳤다.

“짐승의 날이 가까워질수록 짐승의 힘이 강해진 것을 느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대는 짐승이 아니라 존재입니다. 그것도 마녀. 내일이면 완벽한 힘을 갖춘 마녀를 이 앞으로 끌고 올 겁니다.”

서준식을 제외한 모두는 마른침을 삼켰다.

평소의 마녀도 인간이 어떻게 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런데 온전한 힘을 갖춘 마녀는 자연과 같다.

인간은 지진을 향해 원망하지 않으며 홍수와 해일을 욕하지 않는다.

당하고 죽임을 당해도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자연이며 그런 힘을 가진 것이 마녀다.

성현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내일 한 명 더 함께할 겁니다. 여러분의 얼굴을 그 사람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으니까 가면을 쓰고 작전을 수행할 겁니다.”

내일 오는 한 명은 서은서였다.

그녀는 서준식에게 얼굴을 알리고 싶지 않아 했기에 모두 가면을 쓰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짐승의 땅에 모였다.

“오늘은 주무시고 내일 뵙죠. 초소에 올라가면 방이 많습니다. 아무 곳이나 잡아 주무시면 됩니다. 식사는 내일 아침 8시에 1층 식당에서 하겠습니다.”

끝이었다.

성현이 가장 먼저 온 이준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게 전부였다.

성현은 특별한 정을 나누기를 원치 않았다.

이들은 회귀 전 잔혹한 악당이었다.

그런데 정을 나누면 진짜 동료가 될 수도 있다.

그건 싫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계단을 타고 초소로 올라갔고, 군인 출신 이주안은 오랜만에 맡는 군대 냄새가 좋은지 한참 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 * *

성현은 이계 시장에 있었다.

꼬마의 좌판을 눈으로 쭉 훑는 중이다.

“살 것은 다 샀잖아요?”

평소 구매하던 것, 진통제부터 각 스텟을 올리는 알약까지 모두 챙겼다.

하지만 성현은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계속해서 좌판을 보고 있었다.

“필요한 것 있어요?”

“주변 온도를 올리는 마도구는 없나?”

“있죠.”

꼬마는 품에서 빨간색 알약을 꺼내 좌판에 올리며 말을 이었다.

“고온의 불꽃이 30초 동안 튀죠. 제가 실험해 봤을 때 영하 2도의 온도가 순간적으로 영상 4도까지 올라갔어요. 이거 쓸 때는 멀리 떨어져야 해요. 안 그러면 노릇노릇 익어 버릴 거예요.”

“좋네.”

성현은 빨간색 알약을 건네받았다.

“또 있나요?”

“그리고…….”

성현은 이것저것 필요한 도구를 이야기했다.

모두 마녀를 잡기 위해 필요한 물품이다.

“마지막으로…… 계약서 하나만 더 줘 봐.”

“네? 계약서요?”

카니발에서 만난 4명을 노비로 만든 계약서, 성현은 이번에도 계약서를 원하고 있다.

꼬마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번에는 계약할 대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어디에 쓰려고요?”

“됐고, 줘 봐.”

꼬마는 고민하다가 활짝 웃었다.

“뭘 하려는지 모르지만 좋아요. 이번에도 저를 재밌게 해 주세요.”

성현이 구매한 것은 한 보따리, 가격만 4억이 넘어갔다.

이것으로도 마녀를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성현에게는 카니발에서 만난 4인, 서은서, 마지막으로 오미로 베루스와 호칭의 권능이 있다.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몸을 돌려 떠나려는 성현을 향해 꼬마가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어? 왜?”

“요즘 마력 농도가 강해진 것 같은 기분 안 드나요?”

“농도?”

성현은 손바닥을 펼치고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농도가 짙어졌다.

전기의 찌릿함이 손에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그런데? 이유가 뭐지?”

“글쎄요.”

꼬마가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모른 척했지만 꼬마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지르힐의 몸을 옥죄고 있는 쇠사슬의 일부가 조금 녹았기 때문이다.

그 쇠사슬이 녹을수록 그녀의 힘은 개방될 테고 성현은 더 강해진다.

그리고 그 쇠사슬이 끊어지는 날, 존재의 세상은 신의 분노를 보게 될 거다.

꼬마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다음 날이었다.

성현은 공터를 찾아 복잡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쉽게 말해 마법진 또는 마녀를 강림시키기 위한 주술이다.

그리고 그 그림 위에 짐승의 피를 뿌렸고 꼬챙이에 짐승을 꿰어 세워 뒀다.

마지막으로 동서남북에 은으로 만든 방울을 나무에 걸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방울이 울음소리를 낸다.

딸랑, 딸랑, 딸랑.

성현과 카니발에서 만난 4인 그리고 서은서는 그 밖에 서서 그 그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준식은 계속해서 서은서를 힐끗거렸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느낌이 낯익다.

서준식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구지?’

하지만 그 생각은 거기서 멎었다.

짐승의 날, 일식이 시작된다.

태양과 지구 사이로 달이 들어오며 세상은 달의 그림자로 채워졌다.

동시에 음산한 기운이 주변을 채우며 그림에 뿌려 뒀던 짐승의 피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