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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81화 (81/252)

81화

이어서 지진이 난것처럼 땅이 울리더니 성이 솟아났다.

구름을 뚫고 올라갈 정도로 높고 거대한 성이다.

마치 영화 속 드라큐라나 마왕이 살 것 같은 분위기.

벽면부터 모든 것이 검은색이었고 불길한 까마귀가 난간에 앉아 깍깍 울어 댔다.

저 안에 마녀 뢰피크르가 있다.

살벌한 표정으로 성현과 일행을 기다리고 있을 거다.

이들 모두를 산 채로 씹어 먹기 위해…….

그리고 성을 바라보던 군인 출신 이주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 안에서 짙은 마력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

그에 대한 두려움이 이주안을 조여 왔다.

그가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존재가 성에 산다는 것은 들어 봤는데, 직접 보니까 이거 진짜 무섭네. 긴장감이 골수까지 처박히는 것 같아.”

그가 억지로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누구도 그 농담을 받아 주지 않았다.

사기꾼 윤희진과 저격수 이준 그리고 서준식마저도 같은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마녀를 만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심장이 쾅쾅 울렸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성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진짜 죽을 수도 있어.’라는 생각을 확신처럼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하지만 성현과 서은서는 달랐다.

서은서는 부여 던전에서 만난 존재급의 짐승 마리안느를 상대하며 예방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이 감정이 익숙했다.

물론 견뎌 낼 수 있다는 거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긴장된 눈빛으로 성을 바라보고 있을 때, 성현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일식이 시작되어 어두워진 하늘에 존재의 눈동자가 하나둘 나타났다.

섬뜩한 눈동자가 깜빡거리며 성현과 그 일행을 바라본다.

지켜보는 거다.

어느 놈이 가장 먼저 죽을까…….

성현은 한숨을 내뱉은 후 총을 들고 수류탄을 품에 넣었으며 탄창과 단도를 준비했다.

이계가 아니기 때문에 현대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일행도 각자 무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각자가 편한 무기, 나이프도 보였고 채찍도 보였다.

그런데 공통적인 것은 품에 총을 넣고 있다는 거다.

총은 방아쇠만 당기면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편리한 무기였다.

“준비 끝났나요?”

성현의 질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빛에 강한 결의가 느껴질 정도다.

성현이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일행이 뒤쫓았고 가장 마지막에 자리 잡은 이주안은 고개를 숙이고 중얼중얼거렸다.

“미쳤어……. 이건 진짜 미친 거야.”

성에 가까워질수록 마력의 농도가 더 짙어졌고 숨도 쉬기 어려웠다.

그 마력에 잠식되어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성현은 앞으로 나아갔고 이주안은 그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따라야 하는 노예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미쳤어, 미쳤어. 차라리 그때 죽을 것을 그랬어.”

그런데 그때였다.

“헤이!”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틀어 뒤를 보니 전투복을 입은 여덟 명의 남자들이 보였다.

그 전투복이 군복은 아니다.

장터에서 흔히 구매할 수 있는 편한 작업복.

가장 앞서 있던 남자가 성현의 앞으로 건들건들 다가왔다.

“우리 존재가 여기에 오라는 지시를 내렸거든요.”

성현이 마녀 뢰피크르를 잡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미 많은 존재가 알고 있었다.

그중에는 무관심한 존재도 있었고 하늘에 눈동자를 박아 놓고 관찰하는 존재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직접 참여하기를 원하는 존재도 있었다.

지금 나타난 이들이 그랬다.

“인사부터 해야 하나? 김대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칼림이라는 용병단의 소속이죠.”

용병은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길드에 소속되면 업무가 분담되고 세분화되지만 용병은 다르다.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한다.

짐꾼부터 사람을 죽이는 것 그리고 짐승과 싸우는 것 등등, 뭐든…….

그중에 칼림은 용병 중에서도 잔혹하기로 유명했다.

“우리는 이런 경험이 많으니까 도움이 될 겁니다.”

“이런 경험? 마녀를 만나 봤나요?”

“마녀는 처음이지만 꽤 강한 짐승의 목은 많이 따 봤죠.”

용병은 성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문으로 다가갔다.

이어서 다른 용병들이 검은 복면을 착용하며 성현을 스쳤다.

껌을 씹기도 하고 심지어 휘파람을 부는 놈도 있다.

성현은 눈을 찌푸렸다.

그들의 예의 없는 행동에 눈을 찌푸린 게 아니다.

‘뭐지?’

마녀의 마력이 살 떨리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마녀의 마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낮은 등급의 던전에 들어가는 것처럼, 마치 마실 나온 사람처럼 들어가고 있다.

대짐승 진압 부대에서 엄청난 전투를 경험한 이주안조차 벌벌 떨고 있는데 이들은 담담하다.

서은서가 성현의 옆에 서서 물었다.

“어떻게 할 거예요?”

목소리를 변조했기 때문에 서준식은 그녀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성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존재의 명령을 받았다고 하잖아요. 거부하면 저 사람들 다 죽습니다. 경험 많은 사람이 있는 게 나쁜 것도 아니고, 일단 가죠.”

“뭔가 찝찝하지 않아요?”

서은서는 자신의 오빠 서준식을 힐끗 바라봤다.

페이트 길드의 본부장인 서준식조차 긴장하고 있는데 용병 따위가 담담하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상한데…….”

“가 보면 알겠죠.”

그들이 앞장섰고 성현과 일행이 그 뒤를 쫓았다.

성 앞에 서자 거대한 문이 끼이이익 열렸다.

그 안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암흑의 공간이다.

용병들이 어깨에 걸치고 있던 손전등을 켜자 동굴 같은 통로가 보였다.

용병 김대은이 휘파람을 불었다.

“재밌겠는데?”

용병들이 앞서 걸었고 열렸던 문이 쾅, 강하게 닫혔다.

이제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마녀 뢰피크르를 죽이는 것.

* * *

타타타탕!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어두웠던 동굴이 어두웠다 밝아지기를 반복했고 이따금 격발된 예광탄의 불빛이 길게 이어졌다.

“수류탄.”

용병 김대은의 지시에 용병 하나가 수류탄을 꺼내 집어 던졌다.

콰콰쾅!

“일제히 격발!”

그들은 땅바닥에 엎드려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탕!

-키에에에엑!

어둠 속에서 신음을 토해 내는 것은 두 발로 서 있는 흑염소였다.

놈들이 눈동자를 기이하게 데굴데굴 굴리며 달려오는 중이다.

그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탄피가 쌓일 정도로 방아쇠를 당겼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달려오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보통은 쓰러진 동료를 밟고 달려오는 그들의 모습에 공포를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용병들은 달랐다.

이번에도 장난처럼 이야기한다.

“여기서 탄을 다 쓰는 거 아니야?”

“독 챙겨 온 사람 있지? 방독면 쓰고 던져.”

“방독면을 던져?”

“미친놈. 크크크.”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약을 한 것 같아요.”

서은서가 속삭였고 성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독을 쓴다고 하니까 우리는 일단 뒤로 물러서 있죠.”

나서서 싸워 준다는데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마녀 뢰피크르를 만났을 때 마지막 기력까지 쏟아 내려면 최대한 몸을 아껴야 한다.

성현이 뒤로 물러서는 것을 보고 용병 김대은은 픽 웃었다.

“허접한 놈들.”

용병 김대은은 성현과 일행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가면을 쓰고 있어서 모르지만 하나를 보면 전체를 안다고, 성현의 얼굴을 통해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린 새끼.’

이제 갓 스무 살, 전투 경험도 짧고 권능도 약할 거다.

그런데 저 어린놈을 쫓아다니는 일행은 오죽할까?

저런 놈들이 마녀를 잡겠다고 설치고 있으니 우습기만 했다.

‘존재가 왜 저놈을 신경 쓰는지 모르겠네.’

어쨌든, 지금 용병 김대은의 존재는 신이 났다.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불태워라. 저 염소들을 모두 불에 태워 죽이라.

용병 김대은이 낄낄 웃었다.

“좋아요! 좋아! 불로 다 태워 죽이겠습니다! 하하하!”

그는 품에서 소이 수류탄을 꺼내 던졌다.

퍼엉!

삽시간에 불꽃이 일어나며 어두웠던 동굴이 훤히 밝아졌다.

“당겨!”

다시 방아쇠를 당겼고 드르르르륵! 탄알이 염소의 몸에 박혔다.

“가죠.”

용병 김대은은 자신만만하게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불이 꺼지며 동굴은 다시 어둠으로 채워졌다.

손전등의 불빛에 의존하고 있지만 불에 탄 염소와 그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염소는 없다.

사체뿐이다.

그가 낄낄거리며 다시 말했다.

“가자고요.”

그런데 그가 웃자 다른 용병들도 낄낄낄 웃고 있다.

서은서의 말대로 약을 한 게 분명한 것 같았다.

성현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왜?”

“아직 흑염소의 보스를 안 잡았어요.”

“보스?”

“놈은 머리를 쓸 줄 알죠. 코너에 숨어 있을 겁니다.”

“그래 봤자 염소 대가리지……. 그냥 갑시다. 무서우면 내가 먼저 갈 테니까 뒤쫓아오든가. 일일이 확인하고 움직이면 마녀는 언제 잡아요? 가다가 늙어 죽겠네.”

그 말과 함께 용병 김대은은 흑염소의 사체를 밟으며 앞서 걸었다.

그 순간 코너에 숨어 있던 흑염소가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뿔로 김대은의 옆구리를 노린다.

-키아아악!

“어?”

김대은은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무방비, 이미 늦었다.

게다가 약에 취한 상황이다.

행동은 반박자 느렸고 염소의 뿔에 찔려 죽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 순간, 성현이 튀어 나갔다.

흑염소의 뿔을 잡고 단도를 꺼내 목을 쑤셨다.

푸욱!

단 한 방이다.

피가 튀며 흑염소가 축 처질 때, 성현은 그것을 엄폐물로 삼아 앞에 뒀다.

그리고 아직 멍하니 있는 김대은의 품에서 수류탄을 빼앗아 들더니 어두운 동굴의 끝을 향해 던졌다.

콰아아앙!

사방으로 흑염소의 얼굴과 팔, 다리가 튀었다.

그곳을 향해 성현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탕! 타탕! 타탕!

물 흐르듯 완벽한 전투, 용병들은 성현을 보며 눈을 깜빡거리는 게 전부였다.

‘스무 살 맞아?’

‘요즘은 이등병이 저래?’

이어서 흑염소가 사방으로 숨는 소리가 들렸고 동굴은 다시 적막해졌다.

성현이 몸을 일으키며 김대은을 향했다.

“왜 살려 줬는지 모르지?”

“네?”

성현이 반말을 했지만 김대은은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아직 멍할 뿐이다.

“저 흑염소는 인간을 죽이면 바로 안 먹어. 팔다리를 들고 동굴 곳곳을 다니는 습성이 있어.”

“…….”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아? 네 피가 사방에 떨어질 테고 그 냄새가 동굴 전체에 퍼지겠지? 그럼 인간을 먹고 싶어 하는 짐승들이 여기에 집결하겠지?”

“…….”

“네가 예뻐서가 아니라 내가 죽을까 봐 살려 준 거야. 넌 경험이 없어서 저 짐승을 모르지만 난 잘 알고 있거든.”

이제야 성현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김대은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하지만 성현이 뭔가를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반론은 펼치지 못했다.

성현이 그런 김대은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살고 싶으면 지금부터 내 지시를 따라. 알았어?”

김대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꽉 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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