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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82화 (82/252)

82화

* * *

쨍그랑!

던져진 유리컵이 벽에 부딪쳐 떨어지며 조각난 유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마녀 뢰피크르의 방이었다.

그곳의 광경은 처참했다.

안 깨진 창문이 없었고 검은색의 커튼은 신경질적으로 찢겨져 있었으며 바닥은 유리 조각과 함께 온갖 물건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뢰피크르, 그녀의 검은 머리는 마구잡이로 헝클어져 있었다.

뢰피크르의 눈동자가 방의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 낫을 든 마녀 아리가 벽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그녀를 보며 뢰피크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죽기를 원한다고?”

“어, 거의 대부분은.”

뢰피크르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박자박, 화장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 조각이 맨발에 밟혔다.

유리가 맨살을 파고들며 피가 배어났지만 뢰피크르는 상관하지 않고 화장대에 도착해 앉았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뢰피크르의 눈빛이 섬뜩할 정도로 고요했다.

방금 유리컵을 던진 존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뢰피크르는 무심한 눈빛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빗질했다.

“나비 모양 가면을 쓰고 있는 여자라고 그랬나? 유성현이 유일하게 동료로 여기는 게?”

“어. 그럴 거야.”

나비 가면을 쓴 사람은 서은서였다.

뢰피크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유성현을 앞에 두고 그 여자를 산 채로 씹어 먹어야겠어. 손가락, 팔목, 팔꿈치, 어깨……. 비명을 지르다 못해, 살려 달라고 울면서 애원할 때까지, 유성현이 차라리 자기를 먹어 달라고 부탁할 때까지.”

“그렇게 해.”

빗질을 하던 뢰피크르의 행동이 멎었다.

그녀의 눈이 시퍼렇게 변했다.

“감히 인간 따위가 내게 도전을 해? 그리고 다른 존재들은 뭐야? 내가 벌레에게 죽는다는 거야? 그걸 믿고 있고 원하는 거야!”

뢰피크르가 손에 들고 있던 빗을 확 집어 던졌다.

‘쾅!’ 소리와 함께 빗이 거울에 박혔고 화장대는 쩍 금이 갔다.

금이 간 거울이 뢰피크르의 모습을 여러 명처럼 보이게 하고 있었다.

“핏방울 하나 남기지 않을 거야. 모두 먹어 주지.”

그때, 뢰피크르의 귓가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히든 퀘스트 : 건방진 인간의 버릇을 고쳐 줘라]

클리어 조건 :

1) 성에 들어온 적대적 인간을 모두 죽이시오.

2) 계약자를 불러 가드를 세우시오.

3)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를 드시오.

보상 : 귀족에 가까운 마력

뢰피크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마녀급의 존재, 이런 식의 시스템 메시지는 인간만이 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메시지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뢰피크르도 ‘시스템’의 일부.

그 안에서 움직이는 작은 부속일 뿐이다.

이 상황이 낯선 것뿐이다.

그리고 뢰피크르의 시선이 머문 곳은 하나였다.

‘귀족에 가까운 마력?’

귀족에 가까운 마력이라니…….

마녀를 넘어 백작이나 공작 또는 군주…… 어쩌면 여왕이 될 수도 있다.

방금까지 성현에 대한 분노로 물들었던 뢰피크르의 눈빛에 기쁨이 스며들었다.

이것은 기회다.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를 먹으면 귀족에 가까운 마력을 얻을 수 있다.

“놈을 죽여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겼어.”

뢰피크르가 깔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깨진 창문으로 스산한 바람이 들어오며 갈기갈기 찢긴 커튼이 음산하게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며 마녀 아리가 조용히 웃는다.

그리고 같은 시각, 성현은 성의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와 있었다.

2층 역시 여전히 동굴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쉬었다 가죠.”

성현의 말에 일행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용병 김대은과 그 무리가 자리했다.

김대은의 표정이 초췌하다.

성현의 도움을 받은 뒤부터 그는 단 한 번도 주도권을 얻은 적이 없이 질질 끌려왔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온몸에 짐승의 피를 뒤집어썼지만 그들이 원해서 싸운 게 아니다.

성현이 등을 떠밀어서 달려 나간 거다.

“젠장.”

용병 무리는 모두 착잡한 표정이었다.

“죽어 가는 표정은 그만하고 약이나 맞읍시다.”

한 용병이 주사를 꺼내 팔에 꽂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주고 신경을 마비시켜 통증을 없애 주는 마약이다.

물론 불법이지만 이런 약물 없이 마녀의 성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행동에 다른 사람들도 팔에 주사를 꽂았다.

마약이 주입되며 눈빛이 몽롱하게 변했고 딱딱했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그리고 한 용병이 복면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용병으로 던전과 짐승의 땅을 백 번은 넘게 왔을 겁니다. 그런데 저런 놈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들어 봤습니다.”

그가 지칭한 사람은 성현이었다.

“어떻게 애새끼가 저렇게 침착할 수 있죠?”

성현은 능숙했다.

짐승을 잡는 것은 물론이고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단지 강한 꼬맹이는 간간이 볼 수 있지만 경험까지 갖춘 어린애는 있을 수 없잖아요? 그리고 길 찾는 거 보셨죠? 길잡이 벌레 몇 번 안 던지고 탁탁 찾아내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흔 살은 훌쩍 넘은 것 같네요.”

“그래서?”

“네?”

김대은이 성현을 칭찬한 용병을 쏘아봤다.

“그래서 뭐? 저 새끼가 있으니까 든든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이 뭐야?”

김대은의 말에 그들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이들은 ‘용병’이다.

어디까지나 목적을 수행하고 돈을 받는 자들이다.

김대은이 담배를 입에 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약이나 빨고 있어.”

“알겠습니다.”

용병은 짧게 대답한 후 복면을 올려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김대은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시선을 성현에게 틀었다.

‘새끼…….’

그리고 그들의 반대편, 이주안은 담배를 물고 숨을 크게 내뱉고 있었다.

그는 아직 이곳에 적응하지 못했다.

2층으로 올라오며 몇 번이나 짐승과 싸웠지만 마녀의 농도 짙은 마력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사기꾼 윤희진이 사탕을 까서 이주안의 입에 넣었다.

“뭐야? 읍.”

“사탕.”

“사탕은 왜?”

“당분이 들어가면 좀 괜찮을 거야.”

윤희진이 이주안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이 누나도 겁나. 하지만 꾹 참고 있잖아? 산전수전 다 겪은 군인이었다며? 버텨 봐. 어차피 저놈이 우리를 놔주지는 않을 것 알잖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군인들 구호 아니야?”

이주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싫어하는 여자에게 위로를 받으면 초라해진다.

“누가 누나야!”

“나이가 많아야 누난가? 예쁘면 누나야. 몰라?”

하지만 윤희진과 티격태격하며 조금은 긴장이 풀어진 것 같았다.

이주안이 한숨을 푹 내뱉었다.

“이제 출발하죠.”

성현의 목소리가 들리며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최악의 마법 중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반드시 들어가는 게 환각이다.

적과 싸우는 게 아니라 팀과 싸워야 하고 때로는 자해하며 싸우는 경우도 있다.

친구를 죽이고 가족을 죽이며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 그게 환각이다.

지난 부여 던전에서도 환각의 가루 때문에 병력의 절반 이상이 갈려 나갔다.

그리고 지금 마녀 뢰피크르의 성에도 환각의 마법이 걸려 있었다.

“환각의 마법이 걸려 있네요.”

성현이 경고했다.

서은서나 서준식은 걱정할 게 없다.

어린 시절부터 환각의 가루와 그 마법에 적응해 왔고 수련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품에서 알약을 꺼내 한 명, 한 명에게 건넸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환각에 빠질 거예요.”

“알약은 어떻게 준비한 거지?”

서준식이 물었다.

그는 지금껏 궁금했다.

성현은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이 미궁을 자유롭게 안내했고 때에 따른 알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건 예지가 아니다.

이렇게 자세한 예지가 있다는 것은 들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성현은 앵무새처럼 준비된 답변을 할 뿐이다.

“예지입니다.”

그리고 김대은은 성현에게 알약을 받으며 자신의 용병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가 용병들에게 눈빛을 보냈다.

‘정신 바짝 차려라. 우리는 한 명도 죽어서는 안 돼.’

이들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존재에게 받은 퀘스트, 하나는 마녀 뢰피크르가 있는 최상층까지 성현과 함께 올라갈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녀 뢰피크르와 싸우기 직전에 성현의 뒤통수를 쳐서 죽일 것.

이들과 계약한 존재는 예언이 이뤄지는 것을 막으려 하는 부류였다.

지금껏 평화롭던 존재의 세상, 계급은 정해져 있지만 단 한 명으로 인한 독재는 없던 세상, 하지만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라는 호칭이 등장하며 존재의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언대로라면 누군가는 에느가인을 찾아 창조주의 힘을 얻게 된다.

그럼, 특별한 누군가의 아래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거다.

이들은 그것을 막으려는 측이다.

그리고 김대은은 존재의 명령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존재의 지시를 받았을 때는 왜 꼭 뒤통수를 쳐서 죽여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애새끼 따위야 굳이 뒤통수를 치지 않아도 쉽게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 들어와 성현의 능력을 지켜봤다.

그리고 생각을 싹 고쳐먹었다.

‘정면으로는 죽일 수 없어.’

전투 능력은 물론이고 경험도 김대은의 능력을 한참 상회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김대은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꾹 누르는 것을 느꼈다.

방금 복면을 벗고 떠들어 대던 용병이었다.

“왜?”

하지만 용병은 대답이 없다.

힘을 주고 김대은의 어깨를 누를 뿐이다.

“왜 그래? 이거 놔.”

용병은 더 힘을 줬고 김대은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놓으라고!”

“어, 엄마가 왜 여기 있어? 엄마가 왜 여기에 있냐고!”

“……!”

“내가 죽였잖아!”

용병이 김대은을 확 밀쳤다.

김대은이 동굴 벽에 처박혔고 용병은 칼을 꺼내 김대은을 향해 휘둘렀다.

김대은은 가까스로 피했고 칼이 벽에 닿으며 카카카카캉, 불꽃이 튀겼다.

이어서 용병이 칼을 집어 던지더니 김대은을 향해 달려들었다.

“뭐 하는 거야! 정신 차려!”

하지만 이미 용병의 눈은 돌아 버렸다.

시뻘겋게 충혈되었고 입에서는 침을 뚝뚝 흘리고 있다.

그가 억센 손으로 김대은의 목을 쥐었다.

그리고 꾸우욱 누른다.

“죽으라고! 죽어! 제발 죽어!”

“노…… 놓아줘……. 놔아아…….”

김대은의 얼굴에 심줄이 솟아나며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환각의 마법이 시작됐다.

용병은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죽어! 죽으라고! 엄마, 엄마! 왜!”

다른 용병들이 달려들어 그를 떼 놓기 위해 힘을 썼다.

하지만 이것은 환각의 가루가 아니라 마법이다.

마법에 걸린 그는 이미 인간의 힘을 넘어섰다.

평소보다 더 강해진 힘으로 김대은의 목을 죄고 있었다.

그들은 어쩔 줄 몰랐다.

김대은을 살리고 이 마법을 푸는 방법은 단 하나다.

그 목을 쥐고 있는 용병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막돼먹은 용병이라 해도 방금까지 함께 떠들던 동료를 죽이기는 어려웠다.

그때, 그 앞으로 저벅저벅 성현이 걸어왔다.

그리고 용병의 머리에 총을 가져다 댔다.

“부디 다음 세상에서는…… 짐승과 존재가 없는 곳에서 태어나십시오.”

그게 끝이었다.

탕! 탕! 탕! 탕! 탕!

다섯 방의 총성, 피가 튀었고 김대은의 목을 쥐고 있던 용병의 손에 힘이 스르륵 풀렸다.

용병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그 피를 온몸으로 받은 김대은은 멍한 눈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도대체 이놈은 뭐야?’

성현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스스로의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고 벼랑길을 달려가는 중이다.

그 길은 피로 물들어 있지만 그 끝에 닿아야 비극적인 미래가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방아쇠를 당기는 성현의 마음이 얼마나 문드러졌는지 모른다.

성현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단순히 생각한다.

‘……저게 인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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