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 * *
탕! 탕! 탕!
지금은 환각의 마법이 걸린 동굴을 지나 6시간을 더 걸었을 때였다.
성현과 일행의 앞으로 털 없는 들개가 미친 듯이 달려왔다.
한 마리, 한 마리의 크기가 황소 같았고 그 숫자는 수 백, 아니 수천이었다.
타탕! 탕! 탕! 탕!
일행은 뒤로 물러서며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짐승은 다리가 부러지고 내장이 쏟아졌으며, 피를 튀기며 바닥에 쓰러졌다.
“좋아! 계속 쏴!”
김대은은 용병들을 격려했다.
넓은 개활지였다면 저 많은 숫자의 들개가 부담스러웠을 거다.
하지만 이곳은 좁은 동굴, 한 번에 아홉에서 열 마리 정도만 상대할 수 있었다.
타타탕!
문제는 놈들의 숫자가 끝이 없다는 것.
그리고 가지고 온 탄이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
어느새 탄이 바닥을 보였고 끊임없이 이어지던 총소리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젠장!”
김대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지금껏 성현에게 질질 끌려왔다.
그래서 뭔가 보여 주고 성현처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로 여겨지고 싶었다.
그래야 다시 용병으로 돌아갔을 때, 부하들이 그를 더 잘 따를 것 같았다.
‘지금도…….’
그가 곁눈질로 힐끗 성현을 바라봤다.
지금도 그랬다.
부하들은 김대은이 아니라 성현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멍청한 놈들아! 저 새끼는 죽여야 할 대상이라고! 너희가 지시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나야!’
김대은은 자신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보여 줘야 해.’
들개의 숫자가 많지만 놈들을 돌파해서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대장으로서 체면이 선다.
그가 총을 집어 던지고 한발 앞서 걸으며 품에서 쌍검을 꺼낸 후 자세를 낮췄다.
그런데 그때였다.
-카아아아악!
동굴 끝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달려오던 들개들이 행동을 멈추고 좌우로 도열했다.
김대은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 포효 소리만으로 오줌을 지릴 것 같아서다.
마약을 했어도 느껴지는 원초적인 공포.
포식자의 소리가 약한 인간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 포식자는 마녀의 침실을 지키고 있는 들개의 왕, 케르베로스.
온몸이 시커먼 놈이 들개의 시체를 밟으며 인간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개의 몸뚱이, 거기에 달린 개 대가리가 3개, 꼬리는 혀를 날름거리는 뱀이다.
검은 이빨과 날카로운 발톱은 스치기만 해도 몸이 두 동강이 나고 말 거다.
마지막으로 그 크기가 꼭 아프리카코끼리를 보는 것처럼 거대했다.
-카아아아!
놈의 울부짖는 소리가 동굴을 울렸고 김대은은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고 말았다.
“사, 살려 줘! 살려 줘!”
김대은뿐만 아니라 다른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마약에 찌들어 있었지만 진정한 공포 앞에서는 제정신이 되었다.
귀를 막고 바들바들 떤다.
누군가는 엄마를 찾으며 엉엉 운다.
그들에게 이곳은 지옥이었다.
성현이 고개를 틀어 일행을 확인했다.
‘다행이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주체 못 하지만 이계의 짐승, 그것도 케르베로스의 포효를 듣고 버티는 게 대단한 일이었다.
지금껏 마녀의 농도 짙은 마력을 견뎌 냈고 익숙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녀의 침실에 도착할 즈음에는 지금보다 더 좋아지겠어.’
공포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마녀가 살점을 뜯어먹어도 반항 한 번 못하고 살려 달라며 비는 게 전부일 거다.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 하는 것, 세상에서 슬픈 일 중 하나였다.
케르베로스의 시선이 천천히 성현과 일행을 향했다.
그 살기로 가득한 눈빛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거기서 한 발만 더 들어오면 죽인다.’
가장 앞서 있던 김대은이 엉금엉금 기어서 다시 성현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 누구도 나서지 못한다.
‘지금은 내가 나서야겠지.’
성현이 품에서 작은 막대기를 꺼내며 케르베로스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케르베로스가 또 울부짖었다.
-카아아아악!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동굴의 흙이 투투툭 떨어질 정도로 쩌렁거렸다.
놈의 포효에는 두 가지 권능이 있다.
첫째, 케르베로스의 목소리를 들으면 몸이 마비된다.
둘째, 케르베로스의 목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빨리 뛰고 체력이 고갈된다.
하지만 성현에게는 우스웠다.
회귀 전, 성현이 마지막으로 상대했던 존재가 종말의 어머니 플로르다.
플로르에 비하면 케르베로스는 애완견이었다.
성현이 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에 마력을 집어넣자 막대기가 주욱 늘어나더니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창으로 변했다.
그 창을 만족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성현이 입을 열었다.
“와라, 멍멍아.”
멍멍이라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케르베로스가 이빨을 드러내며 거칠게 달려들었다.
성현은 피하지 않았다.
한 발, 두 발, 놈과의 거리를 살펴보며 단 한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성현은 케르베로스의 어깻죽지에 창을 쑤셔 넣었다.
콰아아아악!
케르베로스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멎었다.
하지만 성현은 멈추지 않는다.
창끝에 힘을 주고 더 밀어붙였다.
푸우우욱!
‘찌릿할 거다.’
성현의 손에서 스파크가 파직거렸다.
엄청난 전기가 창을 타고 케르베로스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키에에엑!
케르베로스가 눈동자를 꿈틀거리며 앞발을 휘둘렀다.
스치기만 해도 몸이 잘려 나갈 것 같은 검은 발톱.
하지만 성현은 놈의 발버둥을 예상하고 있었다.
간발의 차로 피하며 창을 뽑아 반대쪽 어깨에 쑤셔 박았다.
한 번이 아니라 계속.
푹! 푹! 푹! 푹!
짧은 시간 동안 놈은 앞발을 사용할 수 없었고 오른쪽 눈이 실명됐다.
케르베로스의 신경이 하나하나 끊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성현은 계속해서 창을 휘둘렀다.
‘멈추지 말고 계속!’
겉으로는 성현이 케르베로스를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밀리고 있는 것은 성현이다.
케르베로스의 상처는 빠르게 재생되는 중이지만 성현의 체력은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이라도 멈칫거리는 순간 케르베로스의 발톱과 이빨에 몸이 조각조각 나고 말 것이다.
케르베로스를 죽이려면 놈의 생명력이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찌르고 또 찔러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성현이 쥐고 있는 무기가 창이라는 것.
전보다 두 단계는 더 강해졌다.
후우우우웅!
성현의 창이 다시 한번 케르베로스를 찔러 들어갔다.
성현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서준식은 마른 한숨을 내뱉었다.
‘난 지금 뭐 하는 거냐?’
능력치로만 따지면 서준식은 성현보다 강하다.
스텟부터 권능까지, 모든 것을 서준식이 압도할 게 분명했다.
카니발에서의 싸움을 기억해도 그렇다.
서준식은 권능 한 번 사용하지 않고 성현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였다.
방심하지 않았다면 성현의 목을 순식간에 잘라 버렸을 거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는 지금 성현의 싸움을 지켜보고만 있다.
멍하니 서서 손뼉만 치는 응원단이 된 거다.
그가 스스로를 위로했다.
‘원래 이럴 계획이었잖아. 난 그냥 지켜볼 생각이었어.’
서준식이 짐승의 땅에 온 것은 그 빌어먹을 노예 계약 때문이었다.
그래서 계약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설렁설렁 움직일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
‘그래, 계획대로야.’
계획대로다.
분명 처음 생각했던 그대로 그는 가만히 있다.
하지만 분하다.
서준식의 입술이 꽉 다물렸다.
‘어쩔 수 없이 지켜보는 것은 아니잖아?’
지금 응원단이 된 것은 서준식의 의지가 아니었다.
케르베로스가 무서워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거다.
자신보다 훨씬 약한 성현이 거침없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는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할 뿐이다.
‘제기랄…….’
스스로의 의지로 가만히 있는 것과 무서워서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것, 그 차이는 크다.
‘쪽팔리게.’
서준식의 손에서 붉은 안개가 일렁거렸다.
김대은은 아직 엎드려서 성현의 싸움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뭐야, 약하잖아?’
케르베로스는 아프리카코끼리만 하다.
머리와 꼬리를 제외한 순수 몸길이만 약 7m, 어깨높이가 3m…….
그런데 그 거대한 놈이 성현에게 두들겨 맞고 있다.
말 그대로 복날에 개 패듯이 맞는 중이다.
‘목소리만 큰 거였어?’
흉측할 정도로 검은 털과 검은 이빨, 검은 발톱이 두렵게 느껴졌지만 가만히 보니까 약하다.
김대은이 나서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김대은이 던전에서 만났던 수많은 짐승들을 떠올렸다.
덩치만 크다고 강한 게 아니었고, 덩치가 작다고 약한 게 아니었다.
김대은이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자신의 부하 용병들, 침을 질질 흘리면서 성현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해야 해.’
김대은이 쌍검을 콱 쥐었다.
‘그래야 나를 따를 거야.’
김대은은 케르베로스를 지켜보며 싸움에 끼어들 틈을 살폈다.
성현은 계속해서 케르베로스를 찍어 대고 있었다.
놈의 행동이 느려지는 것을 보니 생명력이 떨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이제 거의 다 잡았다.
케르베로스를 죽이고 마녀의 침실로 들어가면 된다.
‘후…….’
하지만 성현도 많이 지쳤다.
고속으로 쉬지 않고 움직이며 땀이 뚝뚝 흘렀고 호흡이 한계를 넘어서는 중이다.
한 방에 죽이는 방법은 있다.
놈의 귓구멍에 창을 박아 넣는 것.
하지만 이런 짐승도 자신의 급소는 지키는 법이다.
여간해서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성현은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았다.
굳이 급소를 노릴 필요는 없다.
조금씩 생명력을 갉아 끝내도 되는 거다.
그때였다.
“죽어!”
김대은이 케르베로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성현과 싸우고 있던 케르베로스가 김대은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케르베로스는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김대은을 먹어야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를 쑥 내밀더니 김대은을 물어뜯었다.
꽈득! 꽈득! 꽈드드득!
비명조차 없었다.
몸이 반으로 접히더니 꿀꺽 삼켜졌다.
그게 끝이었다.
김대은과 똑같이 ‘어?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하던 용병들이 몇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대장이 정말 허무하게 씹혀 먹히는 것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유성현이 괴물이었어.’
입에 묻은 피를 혀로 핥은 케르베로스가 다시 포효했다.
-크어어어엉!
땅이 울릴 정도였다.
모두가 귀를 틀어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도 느꼈다.
케르베로스가 김대은을 먹으며 체력을 회복했다는 것을.
그런데 케르베로스의 시야에 성현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역시 없다.
-크르르…….
그 순간 케르베로스는 심각한 통증을 느꼈다.
성현의 창이 케르베로스의 귀를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우우욱!
놈이 김대은을 먹고 있을 때, 성현은 동굴 천장으로 튀어 올라갔다.
그리고 한 방에 놈을 죽이기 위해 그 귀에 창을 꽂았다.
고막이 터지고 달팽이관이 찢어졌으며 귓구멍의 뼈가 으스러졌다.
케르베로스의 귓속에서 ‘찌이이이이잉!’ 하는 고약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웨에에에엑!
케르베로스의 비명이 동굴을 울렸지만 잠깐이었다.
놈의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며 그 거대한 덩치가 쿠우우웅, 땅에 쓰러졌다.
성현이 창을 쑥 빼냈다.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준식…… 그의 손에 붉은 연기가 아무도 모르게 나타났다가 스르륵 사라졌다.
그는 결국 아무것도 못 했다.
잠깐 쉬었다 가자는 성현의 말에 반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용병들조차 이제 그의 말을 따르고 있다.
모두 자리를 잡고 바닥에 앉았다.
그런데 정작 쉬자고 말한 성현은 쉬지 않는다.
케르베로스의 이빨을 뜯어냈고 눈동자를 파냈다.
꼬리에 붙은 뱀 대가리에서 독을 채취했다.
그 옆으로 다가선 서은서가 물었다.
“뭐 해요?”
“바로 위에 마녀의 침실이 있습니다. 방문하는데 선물은 들고 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