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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84화 (84/252)

84화

케르베로스의 몸에서 뜯어낸 것만 한가득이었다.

빵빵해진 가방은 혼자 들기 어려울 정도였다.

‘무겁네.’

하지만 마녀 뢰피크르와 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다.

성현은 가방을 어깨에 걸치며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만 가죠.”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지금껏 건들거리던 용병들이 벌떡 일어서더니 일사천리로 행군할 준비까지 마쳤다.

“준비 끝났습니다!”

그들은 케르베로스가 그들의 대장 김대은을 한입에 꿀꺽하는 것을 지켜봤다.

케르베로스는 지옥에서 올라온 짐승처럼 소름 끼칠 정도로 두려웠고 무서웠다.

그런데 그 괴물을 복날 개 패듯 때려잡은 게 성현이었다.

아무리 거친 용병이라 해도 강한 자 앞에서는 얌전해지는 법이다.

그들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성현을 바라보며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성현이 그들을 보며 슬쩍 웃었다.

“그럼, 출발하죠.”

성현이 가장 앞서 걸었고 그 뒤로 서은서, 서준식 마지막은 용병들이 줄을 이었다.

동굴의 끝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위로 올라가자 대리석 바닥이 깔린 공간이 보였다.

그곳은 고등학교 운동장처럼 넓었고 마치 큰 회사의 로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사방에 보이는 문이 수십 개다.

마녀 뢰피크르의 침실을 찾기 위해선 일일이 문을 열어야 했지만 이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성현이 가장 끝에 있는 문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저기, 저기가 마녀 뢰피크르의 침실입니다. 그런데…….”

성현이 뒷말을 줄였다.

침실 이외의 다른 방에서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하…….”

성현이 한숨을 내뱉으며 창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손님이 또 계셨네요. 이건 예상 밖인데…….”

성현의 말과 동시에 거만한 목소리가 흘렀다.

“우리를 느꼈어? 제법이네?”

이어서 방문이 벌컥벌컥 열렸다.

나타난 것은 8명의 남자, 그들이 저벅저벅 성현과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은 마녀 뢰피크르의 계약자들, 뢰피크르의 지시를 받고 이곳에 불려왔다.

그중 가운데 노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성현도 아는 사람이었다.

랭커 이두용, 마녀급의 존재와 계약을 했으면서도 랭커에까지 올랐다.

국내 랭킹 81위, 사이코패스 같은 성격 탓에 가까이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실력만큼은 분명히 인정해야 했다.

이두용이 일본 회칼을 꺼내더니 시퍼런 칼날을 혀로 핥으며 잔혹하게 웃었다.

“뢰피크르 님이 말씀하셨어. 너희의 심장을 꺼내 바치라고. 나머지는 내가 먹어도 상관없다고! 거기 여자가 둘이지? 너희 둘의 십이지장은 내가 끊어 주지! 크하하하하!”

놈의 목소리를 듣던 용병들이 눈을 찌푸렸다.

그들도 이두용의 악명은 들어 봤다.

그런데 지금 이두용의 태도는…….

“저놈도 약 먹었나 봅니다. 듣기로 이두용의 성격이 잔인하기는 하지만 미친놈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용병의 말에 나머지 일행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약 먹은 게 아니에요.”

“네?”

“마력에 취한 거죠.”

이곳은 마녀 뢰피크르의 성이다.

곳곳에 뢰피크르의 마력이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저들은 뢰피크르와 계약한 계약자들이다.

뢰피크르의 마력에 반응했고 그와 함께 평소와 다른 엄청난 힘을 느끼고 있었다.

성현이 창을 들고 앞서며 말을 이었다.

“평소와 달리 힘이 넘치겠죠. 아무리 싸워도 힘이 넘친다고 생각하겠죠. 똥개도 제 집에서는 먹고 들어가는 법이니까요.”

성현이 창끝을 이두용에게 겨누며 자세를 낮췄다.

이두용이 더 활짝 웃기 시작했다.

“똥개? 푸하하하! 한 번은 창쟁이의 피를 마셔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오네?”

“능력 있으면 해 봐.”

성현은 지나치게 침착했다.

이두용이 묘한 눈빛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이두용의 얼굴은 방금 붕 떠 있던 표정이 아니다.

사이코패스의 잔혹한 눈빛이 성현을 훑기 시작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나 모르냐?”

짐승이 나타나는 세계, 이 세상에서 랭커는 미디어가 만들어 낸 스타와 같다.

100위 안에 든 것부터 영광이며 81위라 할지라도 인기 아이돌, 한류 스타의 인기를 영위한다.

게다가 81위는 고스톱 쳐서 딴 랭킹이 아니다.

죽이고 또 죽이고 계속해서 죽였다.

그가 죽인 짐승과 인간의 사체가 산을 이루고 그 핏물이 강을 채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원망과 존경의 대상이며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의 얼굴만 봐도 웬만한 계약자들은 꼬리를 말고 오줌을 지리며 도망간다.

그런데 앞에 있는 꼬맹이가 당당하게 창을 겨누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모르냐고, 이 새끼야.”

“넌 날 아냐?”

“뭐?”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죽을 것, 서로 통성명하고 알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

이두용이 치아를 빠드득 씹었다.

“이 새끼가…….”

“혓바닥 기네……. 와라.”

성현이 손바닥을 까딱거리며 이두용을 자극했다.

이두용이 시뻘게진 얼굴로 자신과 함께 등장한 다른 계약자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야, 너희들은 나서지 마. 나 혼자 할 테니까. 이 꼬맹이 새끼는 죽여서 갈아 버려야겠어. 그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아.”

이두용의 몸에서 폭력적인 기운이 사납게 솟아났다.

성현은 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아픈 곳은 없다.

체력도 나쁘지 않고 몸에 흐르는 마력도 마음에 든다.

‘좋아.’

사실 성현의 힘으로 랭커를 상대하기는 아직 무리였다.

하지만 성현의 힘은 단지 지르힐의 권능과 스텟이 전부가 아니다.

오미로 베루스가 있고 호칭의 권능이 있다.

분명 일대일의 싸움이지만 상대는 3명을 상대하는 기분을 느끼게 될 거다.

“잠깐.”

성현의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틀어 보니 서준식이 나오고 있었다.

이곳에 오면서도 양복을 고수했던 서준식, 그가 처음으로 넥타이를 풀며 입을 열었다.

“내가 상대하지.”

“네?”

“이두용 저놈은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이 대리석 바닥에 묻어 주고 싶어.”

서준식은 지금껏 창피했다.

케르베로스에게 겁을 먹고 움직이지 못한 자신이 싫었다.

생각해 보면 케르베로스는 이주안급에서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짐승이다.

그런데 서준식은 놈의 권능,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는 그 능력에 겁을 집어먹고 몸이 굳어 버렸다.

‘젠장.’

그 화풀이를 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 타깃이 정해졌다.

바로 이두용이었다.

서준식이 성현의 옆에 서며 입을 열었다.

“죽여 주지.”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기기 힘들걸요?”

성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서준식은 분명 강하다.

하지만 그는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사용하는 순간 숨기고 있던 신분이 모두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준식은 간단히 정리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 다 죽여 버리면 되는 거야.”

그런데 서준식이 끝이 아니었다.

이주안, 이준, 그리고 윤희진도 나섰다.

이들 역시 부끄러웠다.

스스로가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강아지 1마리 앞에서 겁을 먹었다는 게 치욕스러웠다.

그런데 그 치욕을 씻어 낼 제물이 앞에 나타났다.

랭커라는 타이틀도 딱 적당하다.

군인 출신 이주안이 말했다.

“저놈이 들어갈 대리석은 내가 뜯어내지.”

다음으로 저격수 이준이 입을 열었다.

“넌 그냥 마녀에게 가. 여기는 우리가 정리할 테니까.”

용병들은 눈을 깜빡였다.

그들은 성현의 강함은 지켜봤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서준식과 이준, 이주안 그리고 윤희진은 얼마나 강한지 몰랐다.

가면을 쓰고 있고 한발 빠져 있어서 쩌리인 줄 알고 있었다.

한 용병이 윤희진의 옆에 서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이두용이 누군지 몰라요? 그냥 빠져요. 잘못하면 죽어요, 죽어.”

윤희진이 고개를 저었다.

“랭커? 나와 싸워 본 적도 없는데 랭커라면 무서워해야 하나?”

그 말을 들은 이두용이 낄낄낄 웃기 시작했다.

배를 잡고 웃다가 눈물까지 닦아 냈다.

“미치겠네.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지? 랭커가 토끼 몇 마리 잡으면 되는 것 같지?”

한참을 웃던 그의 시선이 벽에 등을 기대선 서은서에게 향했다.

“야, 넌 아무 말 안 하냐? 너도 해 봐. 너도 나를 이길 수 있다고 말해 봐!”

“약해 보여.”

“뭐?”

“너 약해 보인다고.”

서은서는 나설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성현이 있고 서준식이 있다.

불쌍한 것은 이두용이었다.

이두용이 이마를 짚으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 안 되겠어. 자존심 상해. 모조리 죽여야 게…….”

하지만 이두용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그의 얼굴이 서준식의 손에 잡혔고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꽈아아앙!

이어서 서준식의 주먹이 일방적으로 그의 얼굴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꽝! 꽝! 꽝! 꽝!

성현에게 당해서 노예 계약까지 했지만 그는 서준식이었다.

페이트 길드의 본부장이었고 그 역시 랭커다.

그는 강했다.

“이 새끼들이!”

이두용을 제외한 나머지 뢰피크르의 계약자 7명이 서준식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주안 등 나머지가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도 있다!”

용병들도 눈치를 보다가 싸움판에 뛰어들었고 공간은 개판이 되었다.

그 싸움에 끼어들지 않은 것은 서은서와 성현뿐이었다.

그때 성현의 머릿속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히든 퀘스트 : 지금 당장 마녀의 침실을 엿보세요.]

보상 : ???

실패 페널티 : ???

성현의 눈이 찌푸려졌다.

‘뭐지?’

마녀 뢰피크르의 침실은 바로 눈앞에 있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혼자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상대는 존재였고 지금은 짐승의 날이다.

마녀는 이계와 똑같이 완벽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당장가라고?’

다른 사람들은 싸우고 있다.

즉, 지금은 혼자 가는 거다.

혼자 마녀를 만나 싸우면 당연히 진다.

갈기갈기 찢겨 죽는다.

몸과 목이 분리되어 이계의 사막에 던져질 게 분명하다.

보상만 있다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실패 페널티가 눈에 걸린다.

그게 무엇인지 알려 주지도 않고 ‘???’라니…….

성현이 입을 꽉 다물었다.

서준식과 다른 사람들을 보면 이곳에서의 싸움이 10분은 걸릴 것 같다.

‘마녀를 상대로 10분을 버틸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성현이 입을 열었다.

“먼저 가겠습니다. 뒤따라오세요.”

“전 지금 갈게요.”

서은서였다.

그녀가 성현의 뒤를 쫓았다.

“여차하면…….”

“알아요. 도망갈게요.”

“약속하세요.”

“알았어요. 도망갈게요.”

성현은 서은서의 확답을 받아 낸 후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이 공간의 가장 끝, 마녀의 침실이 있는 문고리에 성현의 손이 닿았다.

문고리를 돌렸다.

그러자 문이 끼이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역시 학교 운동장만 한 공간.

찢어진 커튼과 깨진 유리 조각, 금이 간 거울……. 한바탕 폭풍이 할퀴고 지나간 침실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을씨년스러웠다.

그리고 그 공간의 끝에 중세의 귀족이 앉았을 것 같은 화려한 의자가 있었다.

그곳에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검은색 미니스커트와 몸매가 드러날 정도로 쫙 달라붙는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

바로 마녀 뢰피크르였다.

그녀가 감정 없는 눈동자로 성현을 지켜보며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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