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리포터가 힘차게 주먹을 쥐었다.
“……조금 더 가까이 가죠.”
“은지 씨…….”
그 말에 카메라맨이 걱정했다.
하지만 리포터의 의지는 확고하다.
“우리도 특종 한번 잡아 봐야죠. 매번 진흙탕만 굴러다닐 수 없잖아요. 마녀의 성에 가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해 봐요. 네?”
“…….”
카메라맨은 대답할 수 없었다.
집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자식들이 있고 저녁밥을 해 놓겠다는 아내가 있다.
괜히 더 가까이 갔다가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옷깃을 리포터가 끌었다.
“이거 찍어서 우리도 돈 좀 벌어 봐요. 이렇게 살아서 뭐 해요? 애들 학원에 보내 주고 싶다면서요!”
카메라맨은 울컥했다.
입술을 물어뜯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젠장.”
두 사람을 지켜보던 무령이 품에서 알약을 꺼냈다.
“더 가까이 가려면 마약을 먹어야 할 겁니다. 이 정도 약은 먹어야 마력의 공포를 잊을 수 있을 겁니다.”
“먹으면 그래서 우리가 성 가까이에 가면……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살려 줄 겁니까?”
카메라맨의 말에 무령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없어도 살려 주세요. 그럼, 먹겠습니다.”
무령의 시선이 마녀의 성으로 향했다.
검은 마력으로 가득한 마녀의 성, 저 안에서 서은서는 마녀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무령이 리포터와 카메라맨에게 알약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드세요. 그리고 가까이서 잘 찍어 주세요.”
두 사람을 데려온 것은 서은서의 지시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녀는 방송국 직원을 데려오라 말했고 무령은 그 지시를 따를 뿐이다.
두 사람이 알약을 먹을 때 무령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지금도 서은서와 같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고 싶었다.
* * *
“……닫혔다고?”
뢰피크르는 큰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왜? 왜? 왜?’
수십억 년을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그녀 스스로도 문을 닫을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왜?’
순간 그녀는 정말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뢰피크르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자장가를 들을 때였다.
뢰피크르의 어머니는 예언서를 작성한 성녀 파라.
그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젠가 그가 너를 죽이러 올 거야.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네 목에 칼을 대겠지. 울지 마라, 아가야. 슬퍼하지 마라, 아가야. 네가 태어난 이유란다. 넌 시작이란다. 그래서 넌 새벽의 마녀란다. 새벽은 시작이고 그 시작은 괴롭겠지. 하지만 나중에는 모든 존재가 먼저 죽은 너를 부러워할 거다. 그러니 너의 하얀 목을 곱게 내밀어라.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뢰피크르는 모른다.
성녀 파라는 언제나 모호한 말을 내뱉었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있다.
파라의 예언에 따르면 뢰피크르는 오늘 죽을 수도 있다는 거다.
뢰피크르가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싫어. 내가 왜 죽어? 저놈을 가루로 만들어야겠어, 다시는 태어나지 못하도록. 나는 오늘 저놈을 죽이고 예언의 세상에 종말을 선언하겠어.”
뢰피크르의 손에 들린 검에 검은 기운이 일렁였다.
그 기세가 폭력적이다.
거센 기운이 태풍처럼 몰아쳤고 서준식과 그 일행은 그 기운에 밀려 한 발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 순간 뢰피크르의 몸이 스르륵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서준식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고속으로 움직인 거다.
그리고 콱, 뢰피크르의 손에 서준식의 목이 잡혔다.
“컥!”
“네가 내 새끼를 죽였다고?”
“……약하던데?”
서준식이 억지로 웃었고 뢰피크르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죽어!”
-뢰피크르가 지금 인정한 거지?
-진짜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인 거야?
-난 지금까지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그게 몇 번째 태어난 하루의 마법사지? 처음인가?
-그런데 저 인간, 유성현이라고 했나? 저놈의 존재가 누구지?
-전기를 사용한다고 했어. 전기를 권능으로 사용하는 존재가 누구지? 다 끄집어내 봐.
그사이 뢰피크르의 성은 난리가 났다.
콰직! 콰직!
용병의 머리에서 피가 터졌고 이주안의 몸이 출렁거렸다.
콰직!
이준이 내동댕이쳐지며 피를 토했다.
“쿨럭!”
서은서의 복부에 뢰피크르의 주먹이 꽂혔다.
“악!”
문제는 뢰피크르의 몸이 보이지도 않는다는 거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고속으로 움직이는 뢰피크르에게 두들겨 맞고 있다.
윤희진이 팔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뢰피크르의 공격을 막으려는 거다.
하지만 소용없다.
꽈직!
팔이 부서질 뿐이다.
“아아아악!”
윤희진이 부러진 자신의 손목을 보며 울부짖었다.
기형적으로 꺾인 팔이 끔찍하게 보였다.
적막한 공간에 그녀의 비명이 울릴 때 스르르릉, 지금껏 맨손으로 공격하던 뢰피크르가 드디어 칼을 잡았다.
“지금부터 썰어 주마.”
“……!”
모두 공포에 질려 갔다.
압도적인 힘,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이 공간에 생명체로 살아남기 위해선 뢰피크르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조금만 더…….’
하지만 성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조용히 주변을 살피며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초에 정공법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성현이 쓸 수 있는 스킬은 한정적이다.
기껏해야 지르힐의 라이트닝 볼과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가 주는 피로 만든 구체.
게다가 여차하면 사용하려 했던 오미로 베루스는 고릴라에게 맞으며 제대로 된 타격을 입었다.
성현의 눈동자가 스륵 고릴라를 향해 움직였다.
‘그래, 너도 있었구나.’
성현은 가방에서 케르베로스의 뼈를 꺼냈다.
이빨과 발톱이다.
그리고 고릴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곧 고릴라의 눈에 금빛이 일렁거렸다.
‘내게 다가와라.’
고릴라가 성현을 향해 느릿느릿 다가왔다.
뢰피크르는 성현의 일행을 상대하느라 그 사실을 모른다.
‘부숴.’
고릴라가 케르베로스의 뼈를 주먹으로 으깨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가루로 만들고 있다.
‘좋아.’
성현은 뢰피크르의 눈치를 보며 가방에서 이계의 꼬마에게 구매한 화산재를 꺼냈다.
그것들을 바닥에 슬슬슬 뿌렸다.
* * *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새벽의 마녀 뢰피크르의 성 앞에 와 있습니다.”
리포터가 손으로 뒤를 가리켰다.
영화에서 볼 법한 거무튀튀한 성이 카메라에 잡혔다.
리포터가 한숨을 내뱉었다.
공포를 이기기 위해 마약을 먹었지만 그녀는 계약자가 아니라 일반인이다.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공포를 쉽게 떨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힘을 주고 말을 이어 갔다.
“이 안에서 다수의 계약자가 마녀를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만약 승리로 이어진다면 온전한 힘을 가진 존재를 이긴 첫 사례가 되는데요.”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성이 흔들리며 거대한 바윗덩이가 사방으로 날렸다.
“꺄아아아악!”
리포터가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고, 카메라의 화면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지진이 난 것 같은 상황, 안에서 일어난 마력 때문이다.
그 영상이 전국에 방송되고 있었다.
지연우도 그 방송을 보는 중이었다.
텔레비전을 보던 그의 시선이 휴대폰 화면으로 옮겨졌다.
SNS에 올라오는 실시간 메시지…….
-그런데 누가 싸우는 거지?
-존재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이면 랭커 아니야?
-1위에서 10위는 절대 아니야. 그 사람들이 서울에서 싸우는 것, 기사 났음.
-그럼 누구야? 10위권은 되어야 마녀를 상대할 수 있는 것 아니었어?
-아직 몰라. 리포터 말로는 5명 정도 팀 짜서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기면 대박. 스타 탄생이지.
-랭커 새끼들, 마녀도 못 이기면서 거들먹거리고 다녔던 것인가?
-존재 앞에서 설설 기면서 짐승이나 잡던 놈들.
-존재의 장난감들이지 ㅋㅋㅋ
-존재의 장난감 222
-악! 방금 지진 난 것 봤음? 와, 짐승이랑은 비교가 안 되는데?
-바위 떨어짐. 리포터 울 것 같음.
-죽었냐? 살았냐? 카메라가 이상한 곳을 비추는 거 봐라.
-살았어, 목소리 들리잖아.
-다행이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지연우가 휴대폰을 툭 내려 뒀다.
그런데 지연우의 표정이 불쾌하다.
‘어떤 놈이…….’
바람이 불어오는 게 느껴졌다.
지금껏 세상은 지연우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연맹에서 높은 직책을 맡지 않았고 일부러 랭킹도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생각했고 지연우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누군가는 지연우가 대통령에 나가면 찍어 준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 바람이 지금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위기의 상황에 딱 나타나 짐승을 박살 내고 약자를 돕던 지연우를 생각하지 않는다.
마녀를 끄집어내고 싸우는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지연우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빨리 움직여야 했어.”
지난번 성현이 만들어 낸 카니발, 지연우는 존재의 신체를 통해 카니발을 열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마녀를 사냥해서 카니발을 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발 늦었다.
먼저 마녀사냥에 돌입한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영악하게 방송국 카메라까지 끄집어 왔다.
지연우가 담배를 입에 물며 건조한 눈빛으로 텔레비전을 바라봤다.
“누구냐, 넌?”
* * *
“끄아아아악!”
용병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팔이 신체와 분리되었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용병을 향해 뢰피크르가 천천히 다가갔다.
“이번엔 다른 팔을 잘라 주지. 그다음은 다리란다. 그렇게 몸뚱이만 남았을 때, 목을 잘라 줄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소름이 끼쳤다.
사나운 말을 내뱉으면서 눈동자는 평온했다.
그런데 칼을 들어 용병을 노리던 뢰피크르가 멈칫거렸다.
“콜록.”
기침을 했다.
그녀가 시선을 틀었다.
성현이 있었고 그 옆에 고릴라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죽었던 고릴라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강령술?”
그 말에 쓰러져 있던 일행이 힘겹게 눈을 뜨고 성현을 바라봤다.
윤희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령술로 마녀를 이길 수 없어. 원래 저 여자의 애완동물이었잖아.”
그 말에 모두들 쓰게 웃었다.
이 방법, 저 방법 생각해 봤지만 인간의 상상으로 마녀를 이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죽을 거다.
처참하게 그리고 비참하게…….
하지만 한 사람은 달랐다.
구석에 쓰러져 있던 서은서는 피를 토하면서도 조용히 웃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다.
성현이 뭔가 저지르고 있으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뢰피크르가 히죽 웃었다.
“그깟 고릴라의 사체로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저놈들의 말대로 내 애완동물이었다. 가죽을 벗기는 것은 1초도 걸리지 않아.”
그런데 그녀가 또 기침을 했다.
“콜록.”
뢰피크르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눈동자로 주변을 살폈고 그제야 그녀는 사방에 먼지가 가득한 것을 느꼈다.
“먼지? 이게 뭐지?”
“뭐긴, 넌 이제 죽는다는 거지.”
“뭐라?”
그 순간 고릴라가 그 큰 주먹으로 바닥을 ‘꽝! 꽝! 꽝! 꽝!’ 하고 사정없이 내리쳤다.
먼지 때문에 성현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자욱해졌고, 그사이 성현은 창을 꺼내 바닥에 콱, 꽂았다.
성현의 눈빛이 서늘하다.
‘볼캐닉 라이트닝(Volcanic Lightning).’
그 순간 성현의 손에서 시작된 전기가 창을 타고 허공으로 퍼졌다.
이어서 먼지 사이로 번개가 솟구치더니 뢰피크르를 향한다.
쩌어어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