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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90화 (90/252)

90화

뢰피크르는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눈동자에 번쩍이는 번개가 담겼다.

‘피, 피해야 해.’

저 번개에 맞으면 죽는다.

살아도 크게 다친다.

살고 싶은 욕구는 생명체의 본능.

그녀는 번개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어디로?’

번개는 이동의 패턴이 없다.

화산재와 케르베로스의 뼛가루를 타고 마구잡이로 이동하고 있다.

결국 그녀는 번개를 피할 수 없었다.

번개는 그대로 그녀를 관통했다.

콰지지지지직!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네 번!

번개는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꿰뚫었다.

그녀의 몸이 힘없이 흔들렸다.

옷이 찢기고 살점이 떨어졌다.

버림받은 악 지르힐의 권능, 뢰피크르의 힘으로 견딜 수 없었다.

뢰피크르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게, 이게 뭐야…….’

존재로 태어나 이유를 모르고 살아왔다.

삶의 끝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외면한 채 행동했다.

그런데 죽음은 가까이 있었다.

‘……뭐냐고, 이게.’

그때 그녀의 눈앞에 성현이 나타났다.

성현은 사나운 눈으로 뢰피크르를 노려보며 창을 휘두를 준비를 했다.

성현을 보며 뢰피크르가 억울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왜 나야.”

“…….”

“왜 나냐고!”

그녀의 억울한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렸다.

성현은 무심한 눈으로 창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답했다.

“네 피가 필요하다. 그래서 널 선택했다. 네 권능을 빼앗을 거다. 하지만 억울해하지 마. 네가 시작이야. 존재는 다 죽일 거야. 네가 조금 더 먼저 죽을 뿐이야.”

“다 죽인다고?”

“어.”

뢰피크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미친 사람처럼 깔깔깔 웃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다시 비명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존재를 다 죽인다고? 모두? 미친 인간아!”

뢰피크르는 성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권능을 사용하려는 거다.

그녀는 새벽의 마녀.

인간의 꿈을 이용할 수 있다.

꿈이란 또 하나의 자아이며 방어할 수 없다.

뢰피크르는 그 꿈을 통해 사람의 감정을 읽고 영혼을 헤집는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영혼이 박살 난 사람은 인형처럼 변한다.

뢰피크르가 악을 질렀다.

“죽는 것은 너야!”

뢰피크르의 손에서 밝은 빛이 번쩍였다.

그 빛이 성현의 머릿속을 읽으려 한다.

기억을 찾고 그 기억을 통해 성현의 자아를 향한다.

그런데 뢰피크르의 눈이 깜빡였다.

그녀는 성현의 기억을 읽었다.

이서아에 의해 양피지가 피로 물들었고 종말의 어머니 플로르가 악을 질러 댔다.

번개가 쏟아지고 세상이 지옥으로 변해 갔다.

과거를 본 뢰피크르가 중얼거렸다.

“……되돌아왔어? 이게 뭐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성현은 감정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창을 휘둘렀다.

“저주받은 섬광.”

주변에 몰려 있던 먼지가 먹구름처럼 변하더니 성현의 창에 모인다.

이어서 번개를 떨어뜨렸다.

한두 개가 아니다.

이 공간을 뒤덮을 만큼의 많은 번개…….

콰르르릉!

그 번개가 하나로 모이더니 그녀를 향해 떨어졌다.

공간이 어두워졌다가 번쩍이기를 반복했다.

존재들의 세상은 난리가 났다.

천장을 메우고 있던 존재들의 눈동자가 빠른 속도로 깜빡였다.

-번개지?

-번개다.

-번개야!

-번개를 쓰는 존재가 넷인가? 아니, 다섯?

-저주받은 섬광! 저 번개를 쓰는 것은 하나야!

-신의 분노 지르힐.

-버림받은 악 지르힐!

-지르힐은 죽은 것 아니었어?

-멍청아, 살아 있잖아!

-원죄의 탑에 갇혀 있지!

-아아아악!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와 지르힐이라니!

그 시각, 구름을 뚫을 정도로 높은 탑.

꼬마가 지르힐이 묶인 사슬에 유르라헬의 피를 뿌리고 있었다.

‘치이이익’ 소리와 함께 연기가 가득하다.

지르힐이 꼬마를 보며 입을 열었다.

“유르라헬 쪽에서 화가 났겠구나.”

꼬마는 유르라헬의 성에 찾아가 성현과 계약한 존재가 지르힐이라는 것을 알렸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이 바로 이 피.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성현이 저주받은 섬광을 사용했고 지르힐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졌다.

유르라헬 측은 아깝게 피를 버렸다며 분노를 토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꼬마는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낄낄 웃으며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제가 거짓을 말한 것도 아니잖아요?”

치이이이익!

계속해서 피가 쇠사슬에 닿으며 연기가 가득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네요.”

지르힐은 물끄러미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을 바라봤다.

자유의 몸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하지만 쇠사슬이 녹으며 점차 마력이 돌아오고 있다.

그녀가 주먹을 쥐었다 펴자 검은 마력이 일렁였다.

그 폭압적인 기운에 꼬마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르힐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많이 돌아왔다. 고맙다.”

“뭘요.”

꼬마가 탑에 놓인 단 하나의 창으로 걸어가 밖을 바라봤다.

아래로 보이는 구름이 마치 하얀 파도처럼 보인다.

그만큼 높은 탑,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꼬마가 입을 열었다.

“지르힐 님이 다른 곳이 아니라 이곳에 갇혀 있는 게 어쩌면 다행이네요.”

“다행?”

“아시겠지만 예언을 싫어하는 존재도 많습니다. 그들은 지금의 거짓된 평화를 유지하려 하죠. 그리고 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지르힐 님을 죽이려 할 겁니다. 그런데 이곳은 원죄의 탑. 다른 존재들은 이곳을 올 수 없죠. 이곳은 몰락한 왕가의 핏줄과 짐승의 원죄만이 올 수 있도록 허락돼 있으니까요.”

잠시 더 하늘을 바라보던 꼬마가 몸을 돌려 지르힐을 향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동안 힘을 되찾으세요. 힘을 키우고 다시 세상에 나오세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유르라헬의 피를 얻어 오겠습니다.”

* * *

뢰피크르, 방금까지 아름다웠던 그녀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검게 타 버렸고 살이 녹아내렸다.

그녀의 마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 죽을 준비를 하며 비틀비틀 다가오는 성현을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떨려 왔다.

‘넌 뭐야? 어떻게 시간을 거스른 거야?’

하지만 입이 녹아내려 달라붙었다.

질문할 수 없었고 흐느적거리며 무너질 준비를 할 뿐이다.

“그럼, 잠들어라.”

성현이 그녀의 목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그녀는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목을 베여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무너지듯 주저앉았고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쿠웅!

그게 끝이었다.

공간은 음소거를 한 것처럼 적막했다.

서은서는 물론이고 서준식도 그리고 용병들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마녀가 죽었다.

그것도 ‘인간’에게…….

침묵을 깬 것은 낫을 든 마녀 아리였다.

그녀가 배를 잡고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인간 따위에게 죽다니, 쪽팔려.”

한참을 웃던 그녀가 뚝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 성현을 향해 또각또각 다가왔다.

코앞에 멈춰 선 아리가 입을 열었다.

“죽이고 싶어, 지금 당장 너를. 명령이 없었다면 네 정수리에 내 낫을 박아 줬을 거야.”

아리가 붉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환하게 웃었다.

성현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죽여 봐, 입으로 떠들지 말고.”

“어마? 내 능력을 의심하는 거야? 난 뢰피크르보다 강해.”

아리가 성현을 위아래로 훑으며 말을 이었다.

“뭐, 지금은 싸울 상태가 아닌 것 같네.”

성현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껍데기는 멀쩡했지만 속은 다 뒤집어져 있었다.

능력을 벗어난 권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리가 입을 열었다.

“나중에 봐. 도박에 대한 정산금은 따로 보내 줄게.”

그게 끝이었다.

아리는 스르륵 사라졌다.

그제야 성현의 입에서 긴장된 한숨이 흘렀다.

“하…… 운이 좋았어.”

뢰피크르를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 지르힐의 권능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성현의 능력으로 번개를 사용할 수는 없었고 억지로 권능을 끄집어내기 위해 화산재와 케르베로스의 뼈를 이용해 전하를 만들었다.

그것을 준비하는 도중에 뢰피크르가 눈치챘다면 지금 죽어 있는 것은 그녀가 아니라 성현이었을 거다.

성현의 시선이 주변을 둘러봤다.

만신창이로 쓰러져 있는 일행이 보였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뢰피크르의 폭력을 견뎌야 했다.

만신창이었고 용병 중에는 팔이 잘린 사람도 보였다.

이번 싸움의 승리는 뢰피크르의 폭력을 몸으로 받아 준 일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마녀의 몸을 제외하고 이 방에 있는 아이템과 보석은 알아서 가져가요. 갖고 싶은 게 겹치면 가위바위보 하시고.”

성현의 말에 일행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제야 긴장 풀린 한숨을 푹푹 내뱉기 시작했다.

이제야 마녀가 죽은 것이 실감됐기 때문이다.

용병이 낄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도 가져도 됩니까?”

“아, 물론.”

“와!”

용병들이 소리 질렀다.

잠시 후, 팔이 잘린 용병은 치료를 위해 창고로 떠났고 나머지 일행은 아이템을 찾기 위해 마녀의 성 전체를 헤집고 다녔다.

마녀는 죽었고 성을 채우고 있던 짐승도 모두 사라졌다.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물론 시간제한은 있다.

마녀의 성은 마녀의 마력에 의해 유지되는 공간이다.

마녀가 죽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시간.

그 안에 아이템을 찾고 벗어나야 했다.

“대박!”

아이템을 손에 쥔 용병이 소리 질렀다.

이곳은 마녀의 성, 당연히 던전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 가득했다.

“이 칼 좀 봐! 옵션이 3개나 붙어 있어!”

“대박! 마력의 보석이야!”

용병들은 설레발을 치며 보석을 손에 쥐었고 이준과 이주안 그리고 윤희진도 저마다 아이템을 찾아 다녔다.

그런데 서준식과 서은서는 마녀의 침실에 그대로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은 지금도 가면을 쓰고 있었고 서준식은 서은서가 자신의 동생이라고 예상조차 못 하고 있었다.

휴식을 끝낸 성현이 몸을 일으키며 서준식에게 물었다.

“찾는 거 없어요?”

“아, 이미 찾았어.”

“뭐죠?”

서준식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뢰피크르의 의자다.

“저거. 내 방에 잘 어울리겠어.”

존재의 의자.

페이트 길드의 왕좌를 노리는 서준식의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럼 창고에 다녀오지.”

이곳에서부터 의자를 들고 서울로 갈 수는 없었다.

당연하게도, 창고에 넣어 뒀다가 서울에서 꺼내야 한다.

서준식이 사라졌고 성현의 시선은 서은서에게 옮겨졌다.

“가지고 싶은 것 없나요?”

“의자를 가지고 싶었는데, 오빠한테 뺏겼네요.”

“가지고 싶은 게 겹치면 가위바위보 하라니까.”

서은서가 고개를 저었다.

“난 회장실의 의자에 앉을 거예요. 그래서 마녀의 의자는 오빠에게 양보했어요.”

“다친 곳은 없어요?”

“참을 만해요.”

서은서가 진통제를 꺼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웃었다.

성현이 쭉 기지개를 켜며 마녀의 침실을 둘러봤다.

성현의 눈에 마녀의 립스틱이 들어왔다.

화장대로 걸어간 성현이 립스틱을 들어 서은서에게 건넸다.

“마녀의 립스틱. 매력을 올려 주고 마력을 올려 주죠. 기념으로 이거 하나 가져가세요.”

“고마워요. 그런데…….”

“그런데?”

“느낌이 좀 바뀐 것 같네요.”

“제가요?”

“네.”

서은서가 보는 성현은 언제나 날이 서 있었다.

그런데 이 성에 들어와서 좀 달라졌다.

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 길,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조금은 동료애를 느끼고 있어서다.

잠시 후, 성현은 뢰피크르 앞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핏방울이 몽글몽글 솟아 나왔다.

성현이 이곳에 온 이유, 바로 이 뢰피크르의 피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새벽’이다.

이번 싸움에서 그녀는 인간들을 얕보느라 권능을 사용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권능은 꿈.

그녀의 권능을 흡수하면 여러 능력을 쓸 수 있는데, 그중에는 성현이 바라던, 자면서도 수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게다가 꿈속이기 때문에 지치지 않는다.

남보다 3~4배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거다.

가뜩이나 성현의 성장 속도는 스스로도 경악할 만큼 놀라웠다.

지금 순수한 능력만 생각해도 랭커 90위 정도는 꼼수를 부리지 않고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속도를 3~4배 더 빨리한다면?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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