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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92화 (92/252)

92화

* * *

다른 일행이 아직 짐승의 땅에 있을 때 서준식은 창고를 통해 먼저 서울에 도착했다.

그런데 얼굴에 상처하나 없다.

뢰피크르를 상대하며 다친 상처를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치료했기 때문이다.

거실을 걸으며 옷을 벗어 쓰레기통에 처박은 후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샤워를 하고 거실로 나온 서준식은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텔레비전이 켜졌다.

당연히 짐승의 날, 그중에서도 마녀를 잡은 이야기…….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툭툭 말리던 서준식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녀?’

짐승의 날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녀라니.

마녀를 사냥하던 장소는 짐승의 땅,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방송사가 어떻게 알고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뭐지?’

서준식은 눈을 찌푸리며 화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으, 은서? 서은서?’

성현의 옆에 서은서가 서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리포터의 질문을 받으며 마녀를 사냥한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뢰피크르는 힘든 상대였지만…….

서준식은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으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뭐지? 서은서가 저기 왜 있는 거지? 설마, 유성현을 이용해 나를 궁지로 몰고 있나? 길드의 마스터가 되려고? 아니면…… 유성현이 지금 뭔가를 꾸미고 있나? 꾸미고 있다면 그건 뭐지?’

어떤 것도 답이 될 수 없었지만 그 무엇도 답이 될 수 있었다.

기장 중요한 것은 인류 최초 온전한 마녀 사냥에 성공한 파티원 중 하나가 서은서라는 것.

어쩌면 이번 일로 서은서가 페이트 길드의 마스터 자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섰을지도 모른다.

서준식이 입술을 꽉 물어뜯었다.

‘젠장!’

그때였다.

계약된 존재인 거짓의 군주 카디르버에게 메시지가 왔다.

-유성현에게 협조하라.

서준식이 입술이 뒤틀렸다.

‘협조하라고요?’

-협조하라.

‘그럼 내 뜻이 꺾이는데? 내 욕망이 사라지고 꿈이 사라지는데? 그럼 살아갈 가치가 있습니까? 그냥 죽고 말지!’

-더 큰 것을 줄 것이다.

카디르버는 거짓의 군주, 하지만 계약자들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더 큰 것을 준다는 말에 서준식의 눈동자가 기울었다.

‘더 큰 것? 길드 마스터보다 더 큰 것?’

존재는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그들은 우주를 알고 있고 작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보잘것없는 싸움을 하찮게 생각한다.

그런 카디르버의 입에서 ‘더 큰 것’이라는 말이 내뱉어졌다.

“그게 무엇입니까?”

하지만 더 이상 카디르버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것까지 알려 주지 않겠다는 거다.

서준식은 꽉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을 풀었다.

‘믿어 보죠.’

그리고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유성현과 한 번은 싸워도 괜찮겠죠? 아니, 싸워 보고 싶습니다.”

서준식은 성현과 싸워 보고 싶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카니발에서 성현과의 일전을 떠올렸다.

당시 서준식은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 신체의 힘만으로 일방적으로 몰아쳤다.

성현은 서준식의 앞에서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았다.

만약 서준식이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냉정했다면 성현은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

하지만 서준식은 패배했고 그 패배를 지금까지는 ‘내가 권능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래.’라는 정신 승리로 포장했다.

‘하…….’

그런데 마녀를 만난 후 문득 불길해졌다.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지금도 성현의 객관적인 능력을 보면 서준식보다 약하다.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주먹 몇 번 휘두르지 않고 승리할 수 있을 거다.

어쩌면 닭의 목을 비트는 게 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서준식은 자신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성현이 뢰피크르를 상대로 사용한 번개가 떠올랐다.

엄청난 마력이었고 무시무시한 마녀 뢰피크르가 녹아내릴 정도로 강력했다.

물론 그 힘이 성현의 것은 아니다.

화산재와 뼛가루를 이용해 더 강한 권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꼼수를 부린 거다.

하지만 꼼수도 아무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성현의 싸움이 그랬다.

그는 지금껏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렇게 이겨 왔다.

‘난 이길 수 있을까?’

그래서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성현보다 강하다는 것을…….

비록 말도 안 되는 계약 때문에 명령을 따르고 있지만 ‘강함’이라는 순수한 증명을 스스로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서준식이 카디르버를 향해 그리고 자신을 향해 중얼거렸다.

“조만간 싸우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인정한다.

카디르버의 허락이 떨어졌다.

* * *

짐승의 땅, 마녀의 성 앞.

인터뷰가 끝났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일행은 일단 초소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다행히 방은 많았고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는 짐승의 날을 맞아 도망자들의 마을에 지원을 갔다.

두 명, 세 명씩 짝을 지어 방에 들어가면 충분히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성현은 쉴 생각이 없었다.

사람들을 방으로 안내한 뒤 곧바로 창고로 이동했다.

모두 하얀 세상에 뢰피크르의 피가 거대한 짐볼처럼 뭉쳐 있었다.

그 피에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찌릿거리는 마력이 느껴졌다.

그 피를 바라보며 성현이 중얼거렸다.

“오미로 베루스.”

스르륵 오미로 베루스가 나타났다.

고릴라에게 맞으며 부서진 뼈가 아직도 다 회복되지 않았지만 절그럭절그럭 걷는 것을 보면 그래도 괜찮아 보인다.

“던전으로 데려가줘.”

-크르르르.

오미로 베루스가 성현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동시에 성현의 눈앞에 보이는 배경이 창고에서 어두컴컴한 동굴로 바뀌었다.

오미로 베루스의 던전으로 이동한 거다.

성현은 던전을 휘 둘러봤다.

음침한 동굴 그리고 높은 계단 위로 보이는 오미로 베루스의 왕좌.

‘바뀐 것은 없네.’

단 하나를 제외하고 바뀐 것이 없었다.

바로 고양이다.

당시 오미로 베루스를 잡기 위해 가져왔던 이계의 씨앗, 그 씨앗에서 태어난 이계의 생물.

당시는 분명 새끼 고양이었는데, 지금은 시베리아 호랑이정도로 커졌고 그것도 온몸이 검은색이다.

모르고 만났다면 움찔했을 것 같다.

그런데 고양이는 오랜만에 만난 성현을 기억하는 한편 주인으로도 인식하고 있다.

옆에서 골골거리며 얼굴을 비비적거리는데 힘이 엄청나다.

“이제 고양이나 냥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어. 조만간 괜찮은 이름을 새로 지어 줄게.”

고양이가 골골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이 고양이를 쓰다듬은 후 오미로 베루스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잘 키우고 있었네? 잘했어.”

오미로 베루스는 칭찬을 받아 좋은가 보다.

“크르르르” 하고 소리를 내는 동시에 안구 속 금빛이 반짝였다.

성현은 잠시 던전을 둘러봤다.

“이제 이 던전이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됐지?”

-크르르.

이 던전은 스페셜 던전이다.

던전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 기간에 한 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때 이 던전을 털기 위한 계약자들이 들어올 테고…….

“짐승을 좀 채워야겠어.”

다른 사람에게 털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 전에 강한 짐승을 잡아 와 이 던전에 풀어 둘 생각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오미로 베루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크르르르.

“좋아. 그럼 보강할 점이 있나 확인해 볼까?”

-크르르르.

성현은 오미로 베루스와 함께 모든 층을 돌았다.

각 층에 맞는 짐승을 떠올렸고 머릿속에 기억했다.

그러고 나서야 다시 오미로 베루스의 왕좌가 있는 동굴에 도착했다.

이제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을 처리해야 한다.

“기다리고 있어.”

성현은 오미로 베루스를 계단 아래에 배치시킨 뒤 계단을 걸어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정상에 도착한 성현은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짐볼의 형태로 뭉쳐 있는 뢰피크르의 피가 스르르륵 나타났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뢰피크르의 피.

성현은 그 피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이 피를 흡수해야 한다.

그 과정은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러울 거다.

마녀의 힘은 성현의 힘을 아득히 넘어가기 때문에 단 1%만 흡수해도 몸이 부풀어 찢어질 수 있다.

하지만 견뎌야 한다.

남의 힘을 공짜로 먹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다.

성현은 한숨을 내뱉은 후 이계의 진통제를 꺼내 먹었다.

이어서 온몸의 스텟을 올려 주는 남은 알약 전부를 집어삼켰다.

마녀의 힘을 견딜 몸의 기초를 만드는 중이다.

주먹에 심줄이 솟아났고 이내 팔뚝을 넘어 이마까지 불룩 불룩 튀어나왔다.

‘좋아.’

비록 약에 의존한 것이지만 힘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성현은 주먹을 쥐었다 펴며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바라봤다.

펜던트가 8개.

마녀의 피를 통제하지 못할 것 같으면 하나씩 뜯어낼 생각이다.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 어차피 이 힘도 통제할 수 없잖아.’

통제 못할 힘이 서로 부딪히며 새로운 힘을 만들어 낼 거다.

성현이 할 일은 그것을 견디는 것.

성현은 품에서 단도를 꺼내 손가락의 끝을 살짝 베어 냈다.

핏물이 흐르는 그 상처로 마녀의 피를 흡수할 예정이다.

‘시작하자.’

성현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을 뻗었다.

이어서 마력을 집중하자 마녀의 피가 확 닿는다.

거대한 핏덩어리가 손가락에 살짝 난 상처를 쑤시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극!

손가락이 기형적으로 확 부풀었다.

손가락이 사라지는 것 같은 통증.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여기서 아프다고 소리치면 될 것도 없다.

‘집중, 집중, 집중!’

성현은 손끝에 모인 핏물을 몸속으로 천천히 끌어당겼다.

마녀의 피는 인간의 피와 다르다.

저것 자체가 실체하는 마력이다.

당연하지만 성현이 원래 지니고 있던 마력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끄으으으읍!”

성현의 온몸에 징그러울 정도로 심줄이 솟아났다.

꽉 다문 입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머릿속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뢰피크르의 힘을 0.0001% 흡수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와중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고작 0.0001%라니, 도대체 존재의 힘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끄아아압!”

성현은 다시 입을 꽈악 다물었다.

턱에 힘이 들어가며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심해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온몸을 칼로 도려내는 느낌을 받고 있다.

폐가 수축되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이제 그만…….’이라는 말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시작했는가?

던전의 천장에 지르힐의 눈동자가 박혔다.

그 목소리에 오미로 베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르힐의 시선이 성현에게 옮겨졌다.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다.

-견뎌라. 견디는 수밖에 없다.

지르힐이 갇힌 원죄의 탑,

지르힐은 손을 뻗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성현을 안아 주고 쓰다듬어 주고 싶어서다.

무엇을 위해 저렇게까지 하는지, 항상 벼랑 끝을 달려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언제나 성현은 외로웠고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뻗어지지 않는다.

덜그럭 쇠사슬에 묶여 있기에 움직일 수 없어서다.

그녀가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

“함께 아플 수 없어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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