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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01화 (101/252)

101화

* * *

“그럼, 다녀올게요.”

정해진 휴가 기간이 모두 끝났다.

성현은 현관에 서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전투복은 아니다.

짐승의 땅에서 복무하는 유일한 장점 덕에 사복을 입고 휴가를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성현을 바라봤다.

“차 조심해. 전화 자주 하고.”

“네.”

몇 번을 다짐을 받았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하다.

성현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정말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성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편의점 앞으로 서은서의 스포츠카가 보인다.

성현이 차로 이동해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러자 서은서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눈인사를 했다.

“AAA급 던전이에요.”

정해진 휴가는 끝났다.

하지만 포상으로 받은 며칠이 아직 붙어 있다.

성현은 그 시간에 던전을 쑤시고 다닐 생각이다.

“강화도에 있어요. 글러브박스에 태블릿 PC가 있으니까 확인해 보세요.”

그 말을 끝으로 서은서는 핸들을 틀었고 성현은 태블릿PC를 꺼내 기사를 읽어 갔다.

대형 길드가 포기한 AAA급 던전

제한 시간이 존재하며 5명만 입장할 수 있어서 포기

용병과 군소 규모의 길드가 도전하지만 모두 실패

강화도 던전, 희귀 아이템 반드시 있다!

네티즌, “랭커가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 청원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짐승이 나타나는 스페셜 던전이다.

클리어 조건은 천 마리를 죽이는 것 또는 던전의 주인을 잡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클리어한 적이 없으니 아직 정확한 것은 모른다.

어쨌든, 60분 동안 5명이 천 마리를 죽이려면 한 사람이 분당 3~4마리를 죽여야 한다는 것.

허접한 짐승만 나와도 아슬아슬한 숫자인데 중간중간 대형 짐승이 끼어 있다면 불가능한 수치다.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

던전의 주인을 찾아 죽이는 거다.

그런데 모든 기사를 뒤져 봐도 던전의 주인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언급되어 있지 않다.

“대장이 꽁꽁 숨어 있나 봐요?”

“네, 아직 그림자도 못 봤다고 들었어요.”

“궁금하네요, 어떻게 생겼는지.”

성현이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틀었다.

그 미소에는 반드시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인다.

그리고 강화도 던전.

신미양요의 격전지로 알려진 광성보였다.

평소에는 관광지였지만 지금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나라를 지켰던 대포 앞에 던전의 문이 솟아났기 때문이다.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군인을 제외하고 오가는 사람은 던전 클리어를 노리는 계약자와 기자 들뿐.

주차장에 앉아 담배를 피워 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이 던전에 도전하는 3명.

길창식, 이유미, 추영민.

길창식은 도굴꾼과 용병 생활로 이골이 난 사람이다.

그가 낄낄대며 입을 열었다.

“여기에 왜 랭커들이 안 오는 줄 알아? 깨지면 쪽팔리거든.”

클리어 조건이 정말 최악이다.

그래서 랭커들은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있다.

“게다가 위험하기도 하지.”

도전한 사람의 90% 이상이 사망했다.

겨우 탈출한 사람들도 하나같이 “던전 내부는 지옥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겠어?”

얻는 것 하나 없이 위험하기만 한 던전.

랭커는 외면했고 대형 길드는 먹을 게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우리 같은 놈들은 알거든.”

길창식이 음흉하게 웃으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냄새가 나. 대박의 냄새가. 로또 연속 10개 당첨 같은 분위기.”

스페셜 던전은 허접한 아이템을 내뱉지 않는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은 만큼 합당한 대가를 지불한다.

“이제 며칠 안 남았어.”

스페셜 던전은 계속 이곳에 있는 게 아니다.

일정 시간 또는 일정 숫자의 인간을 먹어 치우면 모습을 감춘다.

길창식이 시선을 틀었다.

퇴폐적인 미모의 이유미가 보인다.

붉은 입술에 담배를 물고 있는 게 정말 섹시했다.

게다가 저 짧은 청바지 핫팬츠에 흰색 탱크톱.

그리고 결정적으로 샛노란 머리!

길창식은 이유미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지, 돈.’

길창식이 이유미의 얼굴과 몸매를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추영민이 손을 툭툭 털었다.

“우리 말고 같이 들어갈 2명은 언제 오는 겁니까?”

“어?”

추영민은 길창식, 이유미와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옆에 사람이 오는 것을 싫어한다.

추영민이 입을 열었다.

“3명이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5명이 있어야 문을 열어 준다는데.”

추영민의 외모는 정말 거지 같다.

갈비가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깡말랐고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은 조선 시대 망나니처럼 산발이었다.

게다가 옷 역시 찢어지고 다 헤졌다.

겉모습만 보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다.

다만 만만히 볼 수 없는 게 저 눈빛.

감정이라는 게 없다.

오로지 죽고 사는 문제만 고민하는 짐승의 눈빛이다.

‘……새끼, 병 걸려 뒈질 것 같은 놈이 더럽게 무게 잡고 있네.’

길창식이 마른 입술을 핥을 때 이유미가 식칼을 손에 쥐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빠, 진짜 언제 와? 기다리는 것도 지치네.”

길창식의 시선이 이유미의 식칼로 향했다.

저 식칼에 썰려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유미, 보기에는 싼마이지만 실력만큼은 진짜다.

길창식이 낄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올 거야. 아이스크림 먹을래?”

잠시 후 그들의 앞으로 붉은색 스포츠카가 멈춰 섰다.

길창식이 눈을 부릅떴다.

‘저…… 저 차는……?’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부가티 베이론.

돈이 웬만큼 많아서는 함부로 탈 수 없는 차.

저런 차에 앉아 액셀을 밟을 수 있다면, 태생부터 부자일 가능성이 높다.

‘주, 죽인다.’

그리고 그 차에서 늘씬한 미녀가 내린다.

얼굴에 흰색 가면을 써서 알아볼 수 없지만 몸매를 보면 알 수 있다.

미녀다.

옆의 이유미처럼 싼마이가 아니라 기품이 철철 넘치는 진짜 미녀.

그리고 그 옆으로 한 남자가 서 있다.

‘저 새끼는 집사겠지?’

집사여야 하고 별 볼 일 없는 놈이어야 한다.

그래야 배가 덜 아플 거다.

그때.

“길창식 씨?”

미녀가 앞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아, 네.”

길창식은 곧장 일어섰고 미녀와 마주 섰다.

“참가 신청한 여자 A, 그리고 남자 A입니다. 따로 통성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죠?”

“아, 그럼요.”

계약자 중에는 얼굴을 밝히기 싫어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가면을 쓴 남자 A와 여자 A는 성현과 서은서였다.

“30분 후에 입장하시겠습니다.”

서은서와 길창식이 사인을 하자 군인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은 모두 개인의 것으로 인정되지만 남겨 두고 온 모든 것은 국가 소유의…….”

그 시각, 성현은 광성보의 문에 등을 기대섰다.

시선은 길창식과 함께 온 일행을 보고 있었다.

먼저 부엌칼을 손에 쥔 이유미다.

그녀를 보던 성현이 끌끌 웃었다.

‘여기서 놀고 있었어?’

성현은 이유미를 잘 알고 있었다.

광녀 이유미.

저 부엌칼로 짐승의 목을 썩둑썩둑 썰고 다녔다.

아니, 짐승뿐만 아니라 사람도 죽였다.

스스로 악당이라 칭하며 피를 뒤집어쓰고 깔깔깔 웃던 그 소름 끼치는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하지만 그건 껍데기다.

그녀는 원래 천상 여자였다.

그것도 정말 순하고 착한.

회귀 전 들었다.

그녀를 미치게 만든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일이었다고.

그녀는 임신을 했다.

하지만 남자가 쓰레기였다.

-그게 내 새낀지 어떻게 알아!

남자는 책임지지 않았다.

이유미를 때렸다.

주먹으로, 발로.

이유미는 어떻게든 아기를 보호하려 했지만…….

-유산입니다.

그 이후 그녀는 존재와 계약했다.

복수를 위해, 미치기 위해.

그리고 그 남자를 끌고 던전으로 들어갔고 슬픈 복수를 마쳤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녀는 지금도 착하고 순한 이유미로 살고 있을 거다.

옛 기억을 떠올리던 성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시선을 그 옆으로 향했다.

이유미에게서 약 2m 정도 떨어져 앉아 있는 남자 추영민.

거지 같은 외모.

깡마른 몸은 물론이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푸석푸석한 피부.

성현이 팔짱을 풀고 추영민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갔다.

그러자 추영민이 눈동자만 움직여 성현을 바라본다.

냉랭할 정도로 대단한 경계의 눈빛,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의 눈빛을 보인다.

하지만 성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걸어갔다.

급기야.

“오지 마라.”

추영민의 서늘한 목소리가 성현의 귀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성현은 이번에도 그의 경고를 무시했다.

한 발 더.

추영민이 검에 손을 댔다.

스릉.

더 다가오면 검을 뽑아 휘두르겠다는 뜻이 살기로 뿜어져 나온다.

“오지 마라.”

말 그대로 짐승이다.

낯선 사람을 극도로 경계한다.

스스로 몸을 뒤로 물리며 윗입술을 움직여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성현은 멈추지 않았다.

그를 향해 한 발 더 다가섰다.

동시에 엄청난 살기가 공간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오지 말라고 했다.”

그 섬뜩한 살기에 군인과 대화를 나누던 서은서와 길창식의 시선도 그들을 향해 틀어졌다.

성현과 추영민이 보이는 일촉즉발의 상황.

길창식이 눈을 크게 뜨고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저, 저…… 저놈을 자극하면 안 되는데……! 저놈은 진짜 위험한 놈이라고요! 말려요! 어서 저 남자한테 뒤로 물러서라고 해요!”

그가 말한 남자는 성현이다.

하지만 서은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성현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괜찮을 거예요.”

“아, 진짜! 부가티 타고 온 것을 보면 대단한 분들인 것 알겠는데, 쟤들은 달라요! 뒷세계에 살며 알려지지 않았지만 웬만한 랭커보다 강하다고요! 그러니까 어서 말려요! 안 그러면 죽어요!”

길창식의 외침에 서은서가 고개를 저었다.

성현은 추영민과 대치하고 있었다.

추영민이 검을 쥔 손에 힘을 꽉 쥔다.

이제 1cm.

성현이 그만큼만 다가오면 추영민의 거리다.

검을 휘둘러 발을 벨 수 있다.

“죽인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이유미가 깔깔 웃는다.

“가면 쓴 오빠, 저 거지 말 들어. 안 그러면 발목 날아가. 난 몸 좋은 오빠가 죽는 게 싫거든.”

“…….”

“아니면, 내가 도와줄까? 저 거지 목을 잘라 줘? 댕강?”

이유미가 부엌칼을 들어 보였다.

성현이 허락하면 정말 돕겠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성현은 이유미를 바라보지 않는다.

서늘한 목소리로 추영민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밥은 먹었냐?”

“……!”

“지금도 죽으려고 하는 거냐?”

살벌하게 변한 추영민의 눈동자가 성현을 향했다.

“뭐라고?”

-자살자 추영민.

-죽지 못해 사는 자, 추영민.

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다고 좋아할 사람 없어. 이제 네 인생을 살아라.”

뭔가 알고 말하는 것 같았다.

동시에 추영민의 눈에 불이 뿜어졌다.

“뭐라는 거야!”

그의 검이 뽑혔다.

하지만 휘둘리기 전에 성현이 뒤로 물러섰다.

거리를 잃은 검은 멈칫거렸고 추영민의 공격은 실패했다.

그때 이유미가 깔깔깔 또 웃었다.

“저 오빠, 몸만 좋은 줄 알았는데 되게 빠르네? 더 마음에 들어. 오빠, 나랑 사귈래?”

성현의 시선이 이유미에게 틀어졌다.

“너도 이제 네 인생을 살아라.”

“……뭐?”

“그랬으면 좋겠다.”

그 눈빛이 진심으로 이유미를 걱정하고 있다.

이유미의 입술이 뒤틀렸다.

“너 지금 되게 재수 없는 것 알지? 오빠, 오빠 하니까 나이 많은 줄 알아? 내 인생 아는 것처럼 떠드네? 그래, 계속 떠벌려 봐.”

이유미의 부엌칼이 성현을 향했다.

그리고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더 떠들어 보라고!”

“그런다고 바뀌는 것은 없어.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 그만해,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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