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03화 (103/252)

103화

* * *

일행이 서 있는 곳은 최고급 호텔 앞의 넓은 주차장.

주차장의 크기만 해도 평범한 고등학교의 운동장보다 넓게 느껴지는 곳.

이곳이 던전 내부였다.

잠시 후면 호텔의 정문과 후문에서 짐승이 쏟아져 들어올 거다.

숨 막히는 긴장 속에서 무령이 입을 열었다.

“……제 포지션이 어떻게 됩니까?”

서은서가 고개를 틀어 무령을 바라봤다.

무령은 서은서의 경호실장, 던전에 들어오는 것은 오랜만이다.

직접 짐승과 싸우는 것 역시 마찬가지.

벌써부터 짐승과 붙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본연의 임무가 경호인 만큼 마음대로 싸울 수 없다.

그래서 서은서에게 자신의 임무를 물어보는 거다.

“마음대로 해. 다치지 말고.”

서은서의 흔괘한 대답에 무령은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감사합니다.”

서은서는 시선을 틀었다.

이번에 보인 사람은 무령과 함께 들어온 또 한 명의 복면인이다.

“저기?”

복면인의 고개가 서은서에게 틀어졌다.

그런데 이 복면인은 조금 이상했다.

다른 복면인들은 눈은 내놓고 다닌다.

그런데 이 복면인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하지만 규정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고 서은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쪽도 마음대로 해. 다치지 말고.”

복면인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두의 머릿속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스페셜 던전, 끝없는 웨이브에 들어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한 시간 60분.

-첫 번째 웨이브, 100마리.

깜빡이도 켜지 않고 던전 퀘스트가 들어왔다.

정문과 후문에서 짐승이 쏟아진다.

-카아아악!

정확히 100마리, 짐승의 종류는 하나, 키가 1m쯤 되는 원숭이였다.

하지만 작다고 우습게 볼 수는 없다.

놈들은 손에 단도를 들고 있고 엄청난 민첩성을 자랑한다.

길창식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이 던전의 클리어 조건은 천 마리를 죽이거나 대장을 죽이는 겁니다. 하지만 예상일 뿐, 클리어 조건은 확실하지는 않고요.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다 죽이면 됩…….”

길창식의 목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옆에서 두 복면인이 튀어 나갔기 때문이다.

파아아앙!

길창식의 시선은 서은서의 경호실장 무령을 쫓았다.

‘무령이다. 무령이야.’

무령의 존재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

랭킹에는 없지만 페이트의 경호실장, 그 직책이 주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제대로 포인트를 관리했다면 랭커에 들었을걸.”

“적어도 50위?”

“권능이 바람이래!”

“그쪽 권능이면 엄청 셀 거야.”

소문만 무성했던 그 실력을 직접 눈으로 볼 기회, 길창식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았다.

쾅! 쾅! 쾅! 쾅!

무령의 주먹에 원숭이가 퍽퍽 쓰러진다.

이어서 무령이 자세를 낮추고 손을 뻗었다.

검은 연기가 소용돌이치더니 단검이 쥐였다.

“간다.”

무령은 더 빠르고 거침없이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

말 그대로 바람.

그런데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진다.

무령이 지나간 자리에 원숭이의 신체가 토막 났다.

팔다리가 사방으로 튀었고 역한 피 냄새가 진동한다.

-키엑!

-꾸엑!

-카악!

그리고 원숭이들이 주춤주춤 물러섰을 때, 무령이 뚝 멈춰 섰다.

무령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좋은 거리다.’

동시에 손에 쥔 단검으로 허공을 그었다.

권능을 사용한 거다.

‘허리케인 커터.’

회오리가 만들어졌고 후우우웅!’ 원숭이를 향했다.

그런데 평범한 바람이 아니다.

바람에 닿은 원숭이의 팔이 썩둑 잘렸다.

회오리를 피해 도망가도 소용없다.

주변에 있는 순간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간다.

-키아아악!

순식간에 대량 살상되었다.

“오오오!”

길창식은 흥분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길이 가는 것은 무령만이 아니다.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복면인.

추영민과 이유미가 부상을 당하며 대타로 들어온 또 1명!

그는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 주먹만으로 싸우고 있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위력적이다.

콰직! 콰직! 콰직!

원숭이가 썰물처럼 갈리고 있다.

권능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원숭이도 보인다.

하지만 복면인은 묵묵히 원숭이를 죽이고 또 죽였다.

길창식은 눈을 비볐다.

‘저게 인간이야?’

그 힘만 보면 무령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다.

‘도대체 누구야?’

하지만 기억에 없다.

‘페이트는 괴물만 있어?’

길창식이 놀라고 있을 때 순식간에 100마리가 썰렸다.

딱 3분이었다.

‘이 속도면 1천 마리가 가능해.’

길창식이 마른 입술을 핥을 때 시스템 메시지가 이어졌다.

-두 번째 웨이브. 100마리.

메시지와 동시에 공기가 바뀌었고 무거운 살기가 공간을 짓눌렀다.

이어서 크르르르, 짐승의 험악한 소리가 들린다.

나타난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다리를 가진, 몸에는 잔털이 나 있고 색은 징그럽게 알록달록한 벌레다.

그리고 그 1마리, 1마리의 길이가 3m를 훌쩍 넘어선다.

-카아아악!

입을 벌리고 내뱉는 험악한 소리엔 독의 냄새까지 느껴졌다.

적어도 방금 나타났던 원숭이보다 몇 배는 강해 보였다.

무령과 저 복면인이라 해도 이 벌레를 쉽게 잡을 수는 없을 거다.

길창식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자신도 구경꾼을 벗어나 전투에 참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품에서 철퇴를 꺼내 들었다.

‘간다.’

길창식도 벌레를 향해 뛰어들었다.

벌레의 머리를 향해 철퇴를 휘둘렀고.

퍽!

녹색 피가 길창식의 얼굴에 확 튀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성현과 서은서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 * *

그 시각, 성현과 서은서는 호텔 안에 들어와 있었다.

1층의 로비.

인테리어는 완벽했고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는 중세 유럽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섬뜩하다.

이런 공간에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찮을까요?”

서은서는 밖에 남아 있는 세 명을 걱정했다.

5명이라는 인원 제한, 그런데 백 마리씩 나타나는 짐승을 놔두고 전장을 이탈한 게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괜찮을 겁니다.”

성현은 담담히 대답하며 로비를 가로질렀다.

성현이 던전에 들어온 이유는 하나다.

강한 짐승과 싸우며 실전 경험을 높이기 위해서다.

성현은 마녀의 피를 흡수했고 권능 이해도를 한껏 높였다.

하지만 실전이 부족하다.

물론 보통 사람과 비교하면 성현의 성장은 지나칠 정도로 빠르다.

이 속도로 성장한다면 가까운 시일에 국내 톱 30, 어쩌면 부귀영화가 약속된 세계 랭커에도 오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성현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애초에 인간들끼리 치고받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지연우를 무너뜨리고 종말의 어머니 플로르, 존재의 단체 교와 싸우는 게 최종 목표다.

지금의 실력으로는 한참 모자랐다.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아요.”

서은서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꾹 눌렀지만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녀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하죠?”

이 던전은 제한 시간이 있다.

60분 안에 보스를 찾아 잡아야 한다.

그런데 길이 미로처럼 꼬여 있다면 그 안에 보스를 찾는 것은 시간상 무리다.

성현은 무던한 표정으로 품에서 개 코 가루와 길잡이 벌레를 꺼냈다.

개 코 가루는 반경 50m 이내의 짐승을 찾아내는 아이템이며 길잡이 벌레는 미로를 탈출할 수 있게 도와주는 벌레다.

서은서가 눈을 깜빡였다.

“항상 가지고 다녀요?”

“네.”

회귀 전 성현은 인생의 대부분을 노숙으로 보냈다.

짐승의 땅은 물론이고 이계의 끝없는 사막을 걸었다.

그때부터였다.

개 코 가루와 길잡이 벌레가 없으면 불안하다.

성현이 개 코 가루를 뿌리자 가루가 빙그르르 돌더니 복도의 끝에 있는 계단을 향해 휘어졌다.

길잡이 벌레 역시 마찬가지다.

개 코 가루와 같은 방향으로 이동한다.

저곳에 던전의 보스가 있다는 것.

“가죠.”

성현은 길잡이 벌레를 따라 앞서 달렸다.

그리고 2층에 도착했다.

붉은 카펫이 놓인 복도의 양옆으로 객실 문이 보인다.

이어서.

쾅!

모든 객실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짐승이 나타났다.

인간처럼 두 발로 선 늑대, 그 숫자가 약 30마리.

놈들이 칼과 낫, 망치 같은 것을 들고 살벌한 표정으로 포효한다.

-카아아악!

늑대의 핏발 선 눈이 성현을 쏘아봤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성현을 씹어 먹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복도의 끝에서 검은 연기가 일렁였다.

나타난 것은 황금색 의자.

그리고 거대한 덩치의 호랑이가 그곳에 앉아 있다.

딱 봐도 알 수 있다.

저놈이 보스다.

성현이 조용히 웃었다.

‘좋네.’

성현이 창을 뽑으며 입을 열었다.

“나서지 마세요.”

“네?”

서은서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위험해요.”

그녀는 성현이 강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앞에 나타난 늑대는 30마리, 게다가 1마리, 1마리의 능력이 만만치 않다.

놈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현의 눈빛은 확고하다.

서은서는 한숨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도울 거예요.”

“네.”

성현은 자세를 낮게 취하며 창끝을 앞으로 옮겼다.

“와라.”

꼭 사용해 보고 싶은 전략이 있었다.

어쩌면 한동안 필승 패턴이 될 수도 있을 전략.

이계에서 수없이 많은 짐승들을 상대로 반드시 필요한 것.

-커헝!

늑대가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창을 쥔 성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작정 달려오는 짐승을 상대할 때.

일직선상의 복도에서 적을 상대할 때.

창의 장점이 나온다.

들고 있기만 해도.

콰직!

뱃가죽이 뚫려 죽는다.

-키에에엑!

그리고 뒤에 있던 늑대는 앞에서 동료가 죽는 것을 봤지만 멈추지 않고 달려든다.

또 다른 늑대가 밀려오기 때문에 멈출 수 없는 거다.

어쩔 수 없이 달려들고 있다.

자살 특공대다.

성현은 기다렸다는 듯 창을 찔러 넣었고, 늑대는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졌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전략을 사용할 준비가 끝났다.

성현은 발밑에 죽어 있는 늑대를 보며 눈을 번뜩였다.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 그 강령술.

죽은 늑대가 좀비처럼 일어섰다.

그리고 방금까지 동료였던 늑대를 향해 아가리를 벌린다.

-카아악!

당연히 살아 있는 늑대가 더 강하다.

아무래도 사체는 움직임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체의 장점은 고통이 없다는 것.

팔이 잘리고 목을 물려도 끝없이 움직인다.

결과적으로 살아 있는 늑대가 쓰러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성현의 창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놈들을 엄호했다.

-키엑!

-깨앵!

-컹!

늑대가 죽고 또 죽는다.

그런데 또 강령술로 일어난다.

죽은 늑대와 살아 있는 늑대가 뒤엉켜 싸웠고 공간은 늑대의 비명으로 가득했다.

그것은 늑대들에게 지옥이었고 늑대의 눈에 비친 성현은 악마였다.

성현은 창에 묻은 피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 앞을 바라봤다.

황금 의자에 앉은 호랑이가 보인다.

성현과 눈이 마주치자 호랑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크르르르.

드디어 놈이 몸을 일으켰다.

어깨높이 약 5m.

포효하는 것만으로 공포를 심어 주는 스킬.

그런데 성현은 조금 실망했다.

짐승은 진화할수록 언어적 능력을 갖춘다.

하지만 이 호랑이는 언어적 능력이 없고.

‘약하네.’

아쉽기는 하지만 이번 던전은 강령술을 활용한 것, 30마리를 움직이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안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럼 마지막까지 강령술을 사용해야지.’

성현이 손을 들었다.

‘너희가 싸워라.’

죽어서 성현의 인형이 된 늑대.

그 서른 마리가 어기적어기적 호랑이를 향해 다가갔다.

자신의 부하였던 것들이 다가오자 호랑이는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눈을 부릅뜨고 포효했다.

하지만 공포를 주는 스킬이 사체에게 통할 리 없다.

계속해서 호랑이를 향해 다가간다.

이제 호랑이는 늑대와 싸워야 한다.

성현이 손가락을 쭉 뻗어 호랑이를 가리켰다.

‘죽여라.’

늑대가 호랑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성현의 머릿속에 뭔가 퍼뜩 떠올랐다.

“잠깐!”

호랑이를 향해 가던 늑대가 모두 걸음을 멈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