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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04화 (104/252)

104화

바위처럼 멈춰 선 늑대들이 성현의 명령을 기다린다.

성현은 호랑이와의 싸움을 잠시 그만두고 천천히 고개를 틀어 서은서가 있는 곳을 향했다.

서은서는 처음과 똑같이 계단 앞에 서 있다.

성현이 서은서를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시야를 가려라.”

그 말과 동시에 서른 마리의 늑대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는 호랑이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서은서가 이곳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거다.

다른 곳이라면 어려웠겠지만 이곳은 복도이기에 큰 덩치의 늑대가 길을 막는 것만으로 시야를 가릴 수 있었다.

이제 서은서는 늑대에 가려 성현의 앞에 선 호랑이를 볼 수 없게 됐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녀는 알 수 없다는 거다.

성현의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걸렸다.

‘좋네.’

성현이 다시 시선을 돌려 호랑이와 마주했다.

놈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살벌한 눈동자로 성현을 쏘아본다.

기회만 된다면 지금 당장 성현을 씹어 먹겠다는 의지로 가득하다.

하지만 성현의 눈빛은 다르다.

성현은 호랑이를 보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호랑이에게 언어적 능력은 없다.

그것은 다른 스페셜 던전의 주인보다는 약하다는 뜻.

하지만 다른 주인보다 약하다는 것이지 보통의 짐승보다는 압도적으로 강하다.

‘마음에 들어.’

그 순간 호랑이가 포효했다.

이제 싸우자는 뜻.

호랑이가 인간처럼 저벅저벅 두 발로 걸어 다가왔다.

손에는 거대한 해머가 들려 있고 놈의 살기로 공기마저 얼어붙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성현은 공격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창도 작게 만들어 품에 넣은 상태다.

누가 본다면 죽고 싶어 환장한 것처럼 여기겠지만 성현은 다른 생각이 있었다.

바로…….

“오미로 베루스.”

스르륵 오미로 베루스가 나타나 성현 앞에 섰다.

눈동자가 있어야 할 곳에 금빛이 일렁인다.

어떤 임무라도 지시를 내리면 받들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다.

-크르르르.

그리고 성현이 손가락을 들어 천천히 호랑이를 가리켰다.

“저거.”

“…….”

“가져가서 키워.”

오미로 베루스가 덜그럭덜그럭 호랑이를 향해 다가갔다.

* * *

잠시 후, 성현의 눈앞에 호랑이는 없었다.

놈은 오미로 베루스에게 끌려갔고 지금은 주인을 잃은 황금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성현의 주변에 남은 것은 30마리의 늑대들.

‘이만 쉬어라.’

성현이 마력을 끊었다.

그러자 30마리의 늑대들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풀썩, 풀썩 엎어졌다.

그제야 서은서가 보였다.

그녀가 성현을 향해 다가오며 물었다.

“……정말 혼자 끝냈네요?”

그녀는 성현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슨 짓을 해도 놀라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늑대 30마리를 동시에 조종하다니.

이건 미친 거다.

게다가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이제 스무 살이라는 것.

이런 사람이 적이 된다면 정말 무시무시할 것 같다.

“저기……?”

성현의 목소리에 서은서가 생각을 멈추고 시선을 옮겼다.

“네?”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성현이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메시지.”

“아…….”

서은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던전의 주인이 사라졌는데도 클리어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래도 던전의 주인을 없애는 게 클리어 조건이 아니었나 보다.

혹은 던전의 주인이 죽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하지만 호랑이가 끌려가는 것을 보지 못한 서은서는 거기까지 생각할 수 없었다.

“……천 마리를 죽여야 끝날 것 같은데요.”

“가죠.”

클리어 메시지가 뜨지 않는 이유, 던전의 주인이 죽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조건이 틀려서인지 모르지만 일단 천 마리를 죽여 보면 알 일이다.

성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 * *

-여섯 번째 웨이브, 100마리.

무령의 머릿속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이제 여섯 번째인가?’

남은 시간은 이제 17분.

그런데 지금까지 죽인 짐승의 숫자가 500마리.

웨이브가 넘어갈수록 놈들은 강해지는데 17분 동안 남은 500마리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젠장.’

게다가 이번에 등장한 것은 잠자리, 그것도 버스만 한 크기다.

놈들이 스멀스멀 운동장을 날아다니고 있다.

‘최악이야.’

잠자리는 날아다닌다.

놈들과 싸우려면 무령 역시 허공으로 도약해야 한다.

아무래도 허공에서는 인간의 자세가 불안정하니 다른 변수로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됐어. 무리하지 마.”

복면인의 목소리에 무령의 시선이 틀어졌다.

분명 무령의 직급이 더 높다.

그런데 복면인은 자연스레 반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무령은 그걸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다.

“네? 무리하지 말라니요?”

“애초에 클리어할 수 있게 만들어진 던전이 아니야. 계속해서 강한 짐승이 나타나는데, 1시간? 그리고 5명? 무리야. 다치지 않는 선에서 버티는 데 집중해. 그리고 이런 던전 클리어 하나 못했다고 부끄러워하지 마.”

“알겠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아가씨께 비밀로 하고 따라다니실 겁니까?”

“글쎄, 그것까지 내가 보고해야 하나?”

“죄송합니다.”

무령이 고개를 숙였다.

한편 길창식은 멀리서 무령과 복면인이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복면인이 반말을 하는 것까지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무령이 고개 숙이는 것은 분명히 봤다.

‘뭐지?’

길창식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대체 누구인데 감히 무령이 예의를 갖추고 있을까?

혹시 페이트의 은둔 고수?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지만 길창식의 궁금증은 이어질 수 없었다.

“조심해!”

우우웅!

잠자리가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놈들의 다리에 잡히면 끝이다.

잠자리의 날카로운 이빨이 순식간에 머리를 갉아먹을 거다.

길창식이 허공을 향해 철퇴를 붕붕 휘둘렀다.

“오지 마! 저리 가!”

하지만 잠자리는 모기떼처럼 계속 길창식의 주변을 맴돌았다.

침까지 뚝뚝 흘리면서.

그때였다.

콱!

잠자리의 다리가 길창식의 어깨를 잡았다.

“끄읍!”

동시에 잠자리의 꼬리가 꿈틀거렸다.

꼬리의 끝은 송곳처럼 뾰족했는데 그 안에 독이 발려 있었다.

꽂히면 몸이 마비될 거다.

그리고 잠자리의 꼬리가 길창식의 옆구리를 향해 움직였다.

“아, 안 돼!”

길창식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얼굴에 끈적끈적한 액체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어?”

눈을 살짝 떠 봤다.

잠자리의 얼굴이 성현의 창에 관통된 게 보였다.

동시에 파지지지직!

창을 타고 성현의 전기가 잠자리를 파고들었다.

-꾸에에에엑!

잠자리는 요상한 소리를 내며 타 죽었고 성현은 다음 잠자리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리고 길창식은 긴장된 한숨을 토해 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뒈질 뻔했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짐승이 설치는 세상이어도 살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세긴 세네.”

성현은 잠자리를 한 방에 죽였다.

또한 인류 최초 온전한 마녀를 잡아 죽인 사람이며 랭커급의 권능을 가진 추영민과 이유미를 손쉽게 박살 냈다.

길창식은 성현의 전투를 보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다는 기대, 그것은 없었다.

손목시계를 보면 남은 시간은 이제 16분.

그런데 뒤늦게 전투 현장에 투입해서 500여 마리를 죽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

길창식은 던전 클리어를 포기했다.

‘그럼, 힘 빼지 말고 이리저리 도망이나 다니자.’

아이템도 못 얻을 것, 괜히 잠자리와 싸우다 죽거나 다치면 자신만 손해다.

길창식은 자신이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건 뭐야?’

성현이 잠자리를 향해 창을 집어 던지고 있다.

쐐애액!

퍽!

정타를 맞은 잠자리는 허공에서 퍼덕거리다가 떨어졌다.

창은 크기가 작아진 채 성현의 손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커진다.

그럼 성현은 또 창을 던진다.

퍼억!

-쿠웩!

퍽!

-키악!

활로 잠자리 같은 날짐승을 잡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창이라니.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계속 집어 던지는데 백발백중이다.

저걸 보고 있으니까 ‘날짐승 잡는 게 쉽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죽어서 땅에 처박혀 있던 잠자리가 스르륵 일어나고 있었다.

성현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죽었던 잠자리가 부우웅 날아올랐다.

동시에 길창식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 뭐야? 이쪽 계열이었어?’

죽은 자를 불러내고.

죽은 자를 움직이고.

좀비나 악마를 소환하는 악마의 능력, 강령술.

‘……그래서 숨기고 있던 것인가?’

성현은 갑자기 튀어나온 강자, 미디어가 발전된 세상에서 성현처럼 강한 사람이 뜬금없이 나타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분명 숨어 있던 것이고 숨기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왜?’라는 의문이 있었지만 강령술이라면 충분히 이해한다.

강령술을 사용하면 할수록 인간성을 잃어 간다고 알려져 있다.

시체가 없다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여서라도 실험을 하는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받는다.

보통의 사람들은 강령술을 두려워하고 피하며 저주받은 권능이라 말한다.

그래서 강령술사들은 몸을 숨기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간다.

아그작, 아그작.

죽은 잠자리가 살아 있는 잠자리를 뜯어먹고 있었다.

성현의 창이 계속해서 잠자리의 몸통을 꿰뚫었다.

퍽!

-끄엑!

단 5분.

100마리가 죽는 시간이었다.

-일곱 번째 웨이브, 100마리.

남은 시간은 11분.

이번에 나타난 것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괴수.

촛농이 녹아 흘러내린 것 같은 피부에, 온몸에 촉수가 달려 있다.

놈들이 촉수를 다리로 사용해서 다다다다 일행을 향해 달려왔다.

촉수로 땅을 탁탁 치며 오는 모습이 무척 징그러웠지만 성현은 창을 짧게 잡고 짐승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창을 좌우로 끊어 치며 짐승의 촉수를 잘랐다.

파파파팡!

이어서 조금만 틈이 있으면 창을 찔러 넣어 짐승의 생명을 끊었다.

콰직! 콰직! 콰직!

동시에 하늘에서는 잠자리가 날아다니며 짐승을 잡아 갉아먹었다.

그렇게 죽은 짐승이 있다면 여지없이 강령술에 의해 성현의 병력이 되었다.

모두 성현의 전투를 보며 입만 벌리고 있었다.

무령과 복면인, 심지어 서은서마저도.

‘미, 미친…….’

사실 강령술은 그리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사체가 움직여 봤자 살아 있던 절반의 힘도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현은 응용하고 있다.

창으로 적의 자세를 무너뜨린 뒤에 조용히 있던 사체가 뒤통수를 친다.

또는 혼자가 된 적을 향해 수십 마리의 사체들이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어떻게 보면 정말 치사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오로지 승리만을 생각하는 전투 방법.

게다가 저 많은 짐승들을 움직일 만큼 엄청난 마력을 생각하면 정말 미쳤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성현은 회귀 전 봤던 ‘죽은 자의 군주 나모르’의 전술을 좇는 중이었다.

지독할 정도로 시체를 끄집어내고 사체를 움직이고 세상을 저주로 물들였던 자.

그리고 성현이 조만간 찾아가 박살 낼 두 번째 존재.

강령술에는 그의 전술이 가장 맞는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다른 이들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성현은 지친 숨을 내뱉었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게 57마리?’

슬슬 마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정확히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계산하는 중이다.

‘호텔 내부에서 늑대를 조종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마력을 소모하지 않았다면 70마리까지는 가능할 것 같은데?’

그렇게 촉수 괴물이 100마리가 모두 죽었다.

이번에 걸린 시간은 4분.

-여덟 번째 웨이브, 100마리.

길창식은 자신의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이 7분?’

남은 짐승이 300마리.

7분 안에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저 괴물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어.’

길창식은 자신도 모르게 성현을 괴물이라 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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