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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12화 (112/252)

112화

* * *

“이게 이계의 문이라고요?”

“네.”

서은서는 성현에게 이계의 문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곧장 달려왔다.

알 수 없는 문양으로 가득한 마법진.

그 모습 자체로 경이롭다.

그런데 서은서의 시선은 이계의 문을 보지 않는다.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성현을 보고 있다.

“언제 돌아온 거죠?”

서은서의 목소리는 지극히 사무적이었고 높낮이 없이 건조했다.

무령은 그녀의 목소리에 분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성현은 무심했고 눈치 없이 대답했다.

“그제 왔습니다.”

서은서의 이마에 심줄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화를 꾹 참고 다시 물었다.

“……그제? 어제가 아니라 그제?”

“네.”

서은서는 눈을 감았다.

그녀가 성현의 연락을 받은 것은 어제, 그러니까 성현은 하루 뒤에 연락한 거다.

“하…….”

한숨을 내뱉은 서은서가 다시 물었다.

“걱정할 거란 생각은 안 했나요?”

“……걱정요?”

성현의 시선이 서은서에게 옮겨졌다.

걱정이라니.

성현이 알고 있는 서은서, 그러니까 회귀 전 봤던 그녀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이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사람을 바늘로 쿡쿡 찔렀다.

직원들을 전장에 보내고 와인을 마시던 그녀.

사람이 죽어 나가도 페이트 길드의 순위가 떨어졌다며 분노를 토해 내던 그녀다.

물론 회귀 전 봤던 서은서와 지금의 그녀는 엄연히 다르다.

나이도 어리고 성격도 부드럽다.

게다가 가끔은 인간적인 면도 보여 준다.

그 덕에 성현도 그녀를 동료처럼 여겼다.

그렇다 해도 거기까지다.

서은서가 가진 성격의 본바탕은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그녀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성현이 눈을 깜빡이고 있을 때, 서은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람이 던전과 함께 사라졌어요. 어디로 갔는지 소식조차 들을 수 없어요. 이계로 갔는지 아니면 또 다른 장소로 갔는지!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어떤 것도 알 수 없는데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다다다 쏘아붙이는 서은서를 보며 성현이 멋쩍게 웃었다.

“걱정을 끼쳐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

“저는 당연히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고 다들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판단했어요. 그래서 연락이 늦었습니다.”

서은서가 다시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성현의 입에서 나온 ‘당연히’라는 말에 분기가 확 올라왔다.

그리고 서은서의 목소리가 싸늘히 흘렀다.

“한 대만 맞아요.”

“네?”

“한 대만.”

서은서는 성현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그의 팔과 등짝을 찰싹찰싹 때렸다.

“그걸 어떻게 당연히라고 생각하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 안 해요?”

조금 따끔하기는 하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조금은 맞아 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진짜!”

소란이 가라앉은 것은 잠시 후였다.

성현과 서은서 그리고 무령은 이계의 문을 통해 죽은 자의 사막으로 이동했다.

처음 보는 장소에 서은서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끊이지 않고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과 흩날리는 사막의 붉은 모래.

어딜 봐도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서은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곳이 이계?”

“네. 죽은 자의 군주 나모르의 영역이죠.”

서은서는 나모르를 기억해 봤다.

유명한 군주와 어머니의 이름은 대부분 알고 있는데 나모르는 기억에 없다.

성현이 입을 열었다.

“모를 겁니다. 등급이 낮은 군주니까요.”

“아…….”

성현이 손뼉을 짝 쳤다.

“어쨌든, 이계의 문을 통하면 이곳으로 오게 됩니다. 여기에 계속 있어도 더 알아볼 것은 없을 테고 이제 그만 있던 곳으로 돌아가죠.”

성현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계의 문으로 향하며 말을 이었다.

“이계의 문은 페이트 길드가 발견한 것으로 하죠.”

뜬금없는 말이었다.

이런 문은 찾는 사람이 임자다.

서은서가 눈을 깜빡였다.

“우리가요?”

“제가 발견했다고 말할 수도 있죠. 그런데 전 세력이 없는 개인이고 군인입니다. 자칫 정부가 자신들의 것으로 포장할 수도 있어요.”

서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다.

세상이 어려워질수록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려 한다.

힘없는 개인의 것은 손쉽게 뺏을 수 있다.

하지만 페이트가 나서면 다르다.

그들은 온전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성현이 문 앞에 서며 입을 열었다.

“마녀를 사냥한 후에 찾았다고 발표하면 되겠네요.”

그 순간이었다.

-카아아아악!

귀를 찢을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모랫바닥에서 짐승이 솟구쳐 나타났다.

검은 갑주를 온몸에 두른 콩벌레.

그런데 그 크기가 약 20m.

징그럽게 많은 다리는 제쳐 두고 날카로운 이빨이 소름 끼칠 정도로 사납다.

놈이 엄청난 속도로 모래를 휘날리며 일행을 향해 달려왔다.

갑작스러운 짐승의 등장에 서은서와 무령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성현은 짐승이 나타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미 성현이 한번 이곳을 휘저었다.

그다음 이창민 중사, 박상문 하사와 함께 이곳에 들어와 술판을 벌였다.

나모르가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 짐승을 깔아 뒀고.

-카아아악!

처음 그놈에 이어 수백 마리 더 나타났다.

놈들이 발을 빠르게 움직이며 점점 더 다가왔다.

놈들의 등급을 매기자면 A급?

1마리도 쉽지 않은데 그 숫자가 수백!

성현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뒤로!”

“아, 네!”

서은서는 권능을 준비하며 성현의 뒤로 섰고 무령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령의 임무는 오직 서은서를 지키는 것이다.

무령이 자세를 낮게 낮추며 콩벌레의 공격에 대비할 때, 성현은 창을 뽑았다.

그리고 달려오는 콩벌레의 이마에 정확히 창을 찔러 넣었다.

콰아아악!

녹색 피가 사정없이 튀었다.

하지만 놈은 죽지 않는다.

계속해서 꼼지락꼼지락 움직인다.

성현은 계속해서 창을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콱! 콱! 콱!

녹색 피가 모래에 떨어졌고 성현이 외쳤다.

“어서 문을 통해 돌아가요! 저도 바로 뒤쫓아갈게요.”

성현도 혼자서 놈들 수백 마리를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수백 마리가 끝이 아니다.

지평선을 가득 채울 정도로 더 나타나고 있다.

모래는 더 이상 건조하지 않았다.

놈들의 입에서 떨어지는 침으로 축축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붉은 모랫바닥을 가득 채운 놈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군대가 필요하다.

서은서는 놀란 눈을 깜빡이며 뒤로 물러섰다.

‘이게 뭐야?’

그녀 역시 계약자.

그동안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지만 이렇게 많은 짐승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게…… 군주급?’

경악할 정도였다.

잠시 후.

인간 세상으로 돌아온 성현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쥐고 있던 생수병을 뜯어 손에 뿌렸다.

서은서와 무령은 성현의 행동이 더위를 쫓기 위한 것 또는 손에 묻은 짐승의 피를 닦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사막을 다녀왔기 때문에 정령이 잠들어 있는 반지에 수분을 공급해 주는 중이다.

주르륵 물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서은서가 입을 열었다.

“아까…… 우리가 발견한 것으로 발표하라고 했죠?”

“네.”

“그다음은요? 어떤 것을 계획하고 있죠?”

서은서는 멍청하지 않다.

이계의 문을 손에 쥐었다고 모든 것을 꿀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군주의 영역이라면서요.”

나모르의 등급이 낮다 해도 군주 중에 약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었다.

만약 그 영역을 침범하면 나모르의 손에 많은 인간이 갈려 나갈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방금 군주의 힘을 조금이지만 경험해 봤다.

군주에 비하면 뢰피크르는 아기다.

군주를 만나 보지도 못했지만 수천수만 마리의 짐승은 끔찍할 정도였다.

만약 페이트 길드가 그 짐승과 마주하면 사막은 피로 물들 것이며 바람의 소리는 비명에 막혀 사라질 거다.

“무리한 욕심을 냈다가 페이트가 사라질 수도 있어요. 성현 씨가 그것을 모를 리는 없을 테고. 어떤 계획이죠?”

성현이 물 묻은 손을 툭툭 털며 서은서에게 고개를 틀었다.

서은서는 여전히 놀란 눈이다.

그리고 그것은 성현이 계획한 것이었다.

그녀는 욕심이 많다.

이계의 문을 독점하려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군주의 힘을 체험했고 욕심을 버렸다.

지금은 페이트 길드가 몰살당하는 상상을 하고 있을 거다.

성현이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경매에 올리세요. 그리고 돈만 받고 빠지세요. 개인적으로 연맹에 팔았으면 좋겠습니다.”

“……연맹?”

“네.”

서은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하얀 대리석 바닥, 테이블과 의자도 모두 흰색.

모르고 들어왔다면 창고로 생각이 드는 집이었다.

그곳에 지연우가 나타났다.

저벅저벅 걸어 흰 소파에 앉은 지연우가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아나운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페이트 길드가 짐승의 땅에서 이계로 향하는 문을 발견했다고 알려 왔습니다.

지연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지금껏 무차별적으로 나타난 이계의 짐승, 하지만 이제 인간도 이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타난 겁니다.

‘이계?’

-페이트 길드에 따르면 현대 무기를 옮겨 갈 수도 있으며…….

편하게 있던 지연우가 자세를 고쳐 앉아 그 시선을 화면에 또렷이 집중했다.

지연우는 지금껏 힘을 숨기고 있었다.

힘을 숨긴 지금도 랭커였고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지만 그는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이계로 향하는 문이 발견되었다.

그때가 성큼 다가온 거다.

세상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시간.

전쟁을 통해 지금 세상의 룰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

정치권이 무너지고 연맹 늙은이들의 입김이 사라질 순간.

지연우가 입술을 매만졌다.

‘어쩌면…….’

생각을 이어 가던 지연우의 입가에 빙긋이 미소가 그려졌다.

지연우는 자신의 꿈을 이룰 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 *

-이계의 문에 대한 권리는 연맹에 넘겼어요.

성현은 이계의 문앞에 앉아 서은서와 통화하고 있었다.

성현이 상병을 달던 날, 이계의 문에 대한 경매가 끝났다.

성현의 계획대로 연맹이 그 권리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연맹은 전 세계의 용병 집단과 길드에 공문을 보냈다.

존재와의 전쟁에 참여할 집단은 언제든 오라고.

“고생했습니다.”

-더 해야 할 게 있나요?

“만약 전쟁이 일어나도 페이트 길드는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거예요.

통화를 종료하며 성현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저벅저벅 이계의 문으로 향했다.

곧 성현의 모습이 스르륵 사라졌다.

성현은 다시 죽은 자의 사막에 서 있었다.

얼마 전 봤던 수천, 수만 마리의 짐승은 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놈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헤이.”

입을 열자 조용했던 사막이 꿈틀거렸다.

이어서 거대한 짐승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갑주, 침을 질질 흘리는 콩벌레.

이번에도 지평선을 가득 채운 채 징그러운 다리를 움직이며 성현을 먹잇감으로 생각한다.

그 반대인 줄도 모르고.

성현은 조용히 웃으며 창을 꺼내 잡았다.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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