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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15화 (115/252)

115화

지연우는 ‘인류의 행복’이나 ‘발전’ 또는 ‘국가를 위해’ 등의 건설적인 이야기는 입에 담지도 않았다.

지연우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했다.

“우리가 전장에 나가는 이유는 하나, 가족을 위해서입니다. 계속해서 우리 가족의 목숨이 짐승에게 위협받는 이 상황을 지켜볼 것입니까? 우리가 토벌할 대상은 그 짐승을 다루는 군주. 놈을 죽이면 우리의 가족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을 겁니다.”

이어서 지연우는 한 가지 예를 들었다.

얼마 전 강태준이라는 계약자가 의정부 회룡역에 나타난 짐승을 없애기 위해 출동했다.

계약자는 최선을 다했고 그 짐승을 죽였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강태준의 집 앞에도 짐승이 나타난 거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강태준이 싸우는 동안 그 집은 불에 타 버렸습니다. 이제 막 돌 지난 아들이 죽었고…….”

강태준의 이야기에 계약자들은 숙연해졌다.

그것은 계약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불안감이다.

‘내가 싸우고 있을 때, 내 가족은 안전할까?’

지연우가 낮은 목소리로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 전쟁은 우리의 가족을 위한 것. 그리고 이 전쟁에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동시에 지연우가 손을 번쩍 들어 주먹을 꽉 쥐었다.

5천 명의 계약자는 환호했다.

“와!”

그들의 목소리에는 반드시 죽은 자의 군주 나모르를 없애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물론 죽은 자의 군주 나모르가 짐승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연우의 연설은 정확히 나쁜 놈을 지정했고, 이들을 악을 처단하는 정의의 기사가 된 것이다.

단순한 선동이지만 5천 명의 계약자는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눈을 번뜩이며 이계의 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지연우는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 지연우가 단상을 내려오며 뒤를 쫓는 노인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유성현이라고 기억하지?”

노인은 지연우의 경호원 오즈였다.

오즈는 나이와 성별 그리고 출신이 모두 미상.

알려진 것은 미치광이라는 별명뿐이다.

오즈가 유성현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기억해!”

요양 병원에서 짐승을 잡아 죽일 때였다.

지연우와 오즈는 성현을 마주했었다.

당시는 허접했는데 뢰피크르를 잡아 죽일 정도로 강해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강해진 거다.

“그런데 갑자기 유성현은 왜? 죽여? 목을 찢어? 아니면 콱! 쑤셔?”

오즈는 강자와 싸워 그 목을 뽑아 버리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오즈의 바람과 달리 지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감시해.”

“엥? 감시? 겨우?”

“어.”

지연우가 손가락을 뻗어 군부대를 가리키며 계속 말했다.

“놈은 군인이야. 지금 저기 어딘가에 있겠지.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정확한 권능이 무엇인지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해.”

오즈가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지연우의 명령에 ‘살인’이 없다는 게 아쉽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오즈에게 지연우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따라야 한다.

그 행동을 지켜보던 지연우가 신분증을 꺼내 오즈에게 건넸다.

“미군이다. 계급은 대위. 이름은 다니엘 조. 한국계 미국인으로 이번 토벌에 파견 형식으로 참여한 것으로 되어 있어. 소속이 다른 만큼 어떤 명령도 듣지 않고 프리하게 움직일 수 있지. 유성현의 팀을 쫓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거야.”

“이것도 오케이. 그런데 얼굴은?”

“뒤쪽에 가져다 놨어. 그럼, 고생해.”

지연우는 손을 흔들며 떠났다.

오즈는 몸을 돌린 뒤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단상의 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오즈는 단상의 뒤에 도착했다.

한 남자가 목이 꺾여 죽어 있다.

저항 한번 못했는지 상처 없이 깔끔한 모습이다.

군복에는 다니엘 조라는 이름이 보인다.

오즈가 방긋방긋 웃으며 칼을 꺼냈다.

그 칼을 다니엘 조의 귀 뒤에 대며 중얼거린다.

“쏴리.”

칼이 쑥 들어갔다.

* * *

죽은 자의 사막은 적막했다.

이따금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에 붉은 모래가 흩날릴 뿐이다.

계약자 5천과 사단급 규모의 부대가 들어와 있지만 드넓은 사막에서는 티도 나지 않는다.

자연 앞의 인간이 얼마나 작은지 경험하는 중이다.

“일단 첨병을 보냈다고 하니까 본격적인 진행은 내일부터 시작될 것 같아.”

회의에 다녀온 이창민 중사가 성현과 박상문 하사에게 음료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성현이 음료를 받으며 물었다.

“분위기는 괜찮습니까?”

“뭐, 예상대로지.”

계약자들은 군부대를 소모성 도구 또는 지원부대나 짐꾼으로 생각하고 있다.

“계약자 측에서 무시하고 있어. 우리 쪽 높은 분들은 핏대를 세우고 있고.”

성현이 고개를 저었다.

힘을 하나로 합쳐도 어려운데 벌써부터 싸우고 있다니…….

“긴장감은 있습니까?”

“없어.”

이계의 문을 통과할 때만 해도 미지의 세계로 간다는 두려움이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 모래만 있다.

성현이 나모르의 애완동물인 콩벌레를 다 죽였기 때문이지만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 수는 없었고.

-별거 없네?

시간이 지나며 팽팽했던 긴장이 느슨해지고 있었다.

“술 먹는 사람도 있더라. 나도 술이나 한잔해야겠어.”

이창민 중사가 낄낄 웃으며 수통을 열었다.

물 대신 소주를 담아 왔는지 알코올 냄새가 확 난다.

성현은 한숨을 내뱉었다.

여러모로 최악의 상황이다.

군부대와 계약자들이 서로 지분 싸움을 하고 있고 긴장감 없이 느슨하다.

말 그대로 당나라 부대.

어쩌면, 회귀 전에 봤던 1차 전쟁보다 더 큰 지옥을 볼 것 같다는 빌어먹을 예감이 든다.

그때였다.

“짐승의 땅을 경계했던 팀이라고요? 그렇게 들었는데.”

20대 후반의 잘생긴 청년이 이들을 향해 다가왔다.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는 일단 경계했다.

처음 보는 군복, 낯선 사람.

청년이 일정 거리에 멈춰 서더니 손을 저었다.

“미군에서 파견된 다니엘 조라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도 존재와 전쟁을 벌일 수 있으니 직접 경험해 볼 필요가 있거든요.”

다니엘 조는 신분증까지 꺼내 보였다.

그제야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는 경계를 풀었다.

하지만 성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다니엘 조?’

성현은 회귀자다.

지금의 강자들 그리고 앞으로 유명해질 사람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다니엘 조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 본다.

‘그런데, 강하다고?’

다니엘 조가 강하다는 것은 반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지금껏 쿨쿨 잠만 자던 정령이 다니엘 조의 등장으로 게슴츠레 눈을 뜬 거다.

정령이 말했다.

-이 사람…… 강해. 그런데 기분 나빠.

정령은 불안한 듯 몸을 떨었다.

다니엘 조를 믿을 수 없는 거다.

-피 냄새가 나. 지독해. 짐승의 피가 아니야. 인간……. 이 사람,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어.

“……!”

-이 사람이 웃으면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을 거야. 그러니까 피해. 도망가.

“…….”

-그리고 이 사람, 인면피를 사용하고 있어. 원래 얼굴은 저렇게 안 생겼어.

정령은 진실을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상대가 골격과 외모를 숨겼어도 그 뒤에 묻은 피 냄새를 맡은 거다.

성현은 정령이 말한 ‘인면피’라는 세 단어에 집중했다.

‘인면피라고?’

인면피를 사용해 정체를 감추는 자.

정령이 불안할 정도로 강한 자.

성현은 그런 사람을 1명 알고 있다.

바로 오즈.

그런데 오즈를 떠올린 순간 성현은 끌끌끌 웃기 시작했다.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지연우한테는 안돼도 오즈는 상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도망가라니.

‘아직도 나는 약한가?’

그 마음을 알아들었는지 정령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

성현은 자신의 생각을 정령이 읽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놀라지 않고 자연스레 물었다.

정령이 반지에 걸터앉아 입을 열었다.

-넌 주변의 사람이 죽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어? 사지가 잘리고 비명을 질러도?

“……!”

성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정령의 시선이 옆으로 틀어졌다.

-이 아저씨, 이창민 중사라고 했나? 이 사람을 방패로 쓸 수 있어? 이 사람의 시체가 칼에 베이고 창에 찔려도 방패로 사용하며 싸울 수 있어?

성현은 이번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

정령이 오즈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얘는 더한 것도 할 수 있어.

“……!”

성현의 굳은 표정을 보며 정령이 조용히 웃었다.

-그런 마음으로는, 지금 실력으로는 저 사람을 이길 수 없어.

정령이 반지 위에 발을 딛고 일어서더니 양손을 허리에 대고 말을 이었다.

-이기려면 인간이 아니라 마법사가 되어야 해. 그럼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거야.

‘……마법사가 되라고?’

-몰라, 끝. 피곤해. 물 좀 뿌려 줘. 여기는 나에게 힘든 곳이야. 사막에는 왜 온 거야? 짜증 나게.

정령은 갑자기 토라지더니 다시 반지에 드러누웠다.

이어서 그녀의 모습이 반지에 스며들 듯 스르륵 사라졌다.

정말 제멋대로다.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하…….’

마법사가 되라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놈들과 싸우려면 감정이 더 메말라야 한다.

지금 사막의 모래처럼 퍽퍽하게.

그렇지 않으면 지연우는커녕 오즈에게도 안 된다.

일반적인 살인을 넘어 가족 또는 친한 친구까지 베어 죽일 수 있는 괴물.

그게 놈들이다.

괴물과 싸워 이기려면 더 악랄한 괴물이 되어야 한다.

성현은 한숨을 내뱉으며 손에 물을 뿌렸다.

반지의 색이 짙은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그쪽은 상병?”

다니엘 조의 얼굴을 한 오즈가 성현을 향해 물었다.

성현은 오즈의 정체를 알고 있지만 모른 척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상병입니다.”

“군대에 오기 전에는 원래 뭐 했어요? 학생?”

오즈는 미친놈이다.

그런데 다니엘 조의 얼굴을 뒤집어쓰고서는 정상적인 척 하고 있다.

친절한 미소로 신상을 터는 중이다.

성현이 손을 툭툭 털며 입을 열었다.

“아뇨. 고등학교 졸업하고 곧장 군대에 왔어요. 앞으로 뭘 할지는 천천히 생각해 봐야죠.”

성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즈는 고개를 틀어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의 표정을 살폈다.

성현이 거짓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파악하는 거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창민 중사는 수통에 담아 온 소주를 마셨고 박상문 하사는 통신 장비를 들고 만지작거린다.

두 사람은 성현이 전역 후 페이트 길드에 들어갈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안 될 일.

의도적으로 진실을 숨기는 중이다.

그 표정을 살핀 오즈의 입술이 뒤틀어졌다.

‘이 새끼들 봐라?’

오즈도 이들이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끈끈하다 이거지?’

오즈가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품 안에 숨긴 단도를 툭툭 만지며 히죽 웃었다.

‘동료가 죽을 때 이놈들의 표정은 어떻게 바뀔까? 생각만 해도 행복해!’

오즈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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