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 * *
새벽이 되자 계약자들은 갑옷을 입기 시작했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보호구를 입고 그 위에 탄알도 튕겨 낼 만큼 두꺼운 쇳덩이로 만들어진 갑옷.
움직임에는 거추장스러워 보이지만 전쟁은 일대일 싸움이 아니다.
짐승의 이빨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탄탄한 방어구는 생존력을 높여 준다.
그래서 유명 장인이 만든 방어구는 수십억을 호가하기도 하지만 없어서 못 판다는 게 정설이다.
반면에 군인들은 그 흔한 방검복이나 방탄복도 없었다.
머리에 뒤집어쓴 방탄모가 전부다.
“죽으라는 거지.”
“어차피 우리는 총알받이, 임무는 전쟁이 시작되면 딱 10분만 버티는 거야.”
“하, 20분 살았으면 좋겠다.”
여기저기서 군인들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성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속도전을 즐겨 한다.
빠르게 움직여 적의 숨통을 끊는 게 전투 방식.
두꺼운 갑옷은 움직임을 제한하는 일이었다.
“준비해. 우리가 두 번째 첨병이란다.”
이창민 중사의 말에 박상문 하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첨병요?”
어제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 첨병이 정찰을 나섰다.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소식이 전해져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연우와 군부대의 높은 분들은 두 번째 첨병을 보내기로 했다.
그 대상이 이창민 중사, 박상문 하사 그리고 성현이다.
짐승의 땅에서 초소를 지킨 정예 용사라나 뭐라나.
하지만 성현은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회귀 전을 기억해도 두 번째 첨병은 이 초소의 군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가시죠.”
성현은 몸을 일으키며 군장을 착용했다.
무심히 준비하는 성현을 보며 박상문 하사가 툴툴거렸다.
“이놈은 천생 군인이야. 이럴 때 욕 좀 하면 안 되냐?”
“어차피 가야 하잖아요?”
“어차피 가야 하는 데 그게 왜 하필 나야? 그것도 이 새벽부터. 젠장, 젠장, 젠장!”
박상문 하사는 구시렁대면서도 탄띠를 손에 들었다.
이창민 중사가 들고 있던 더블백을 툭 내려 뒀다.
“그래도 방어구를 챙겨 주네. 별거 없지만 입어.”
“아싸!”
박상문 하사가 더블백을 뒤적거렸다.
계약자들이 입고 있는 수억 원의 방어구에 비하면 극단적일 정도로 초라하지만 나름 짐승의 가죽과 뼈로 만들어진 거다.
방탄복보다는 강했고 사막의 열기와 추위도 견딜 수 있게 되어 있다.
박상문 하사가 무릎 보호대와 팔꿈치 보호대 등을 꺼내 착용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다니엘 조, 그러니까 오즈도 생긋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저도 같이 갈게요.”
오즈는 미군 소속으로 위장되어 있다.
위장된 임무는 전쟁의 모든 것을 지켜본 후 미군에 전달하는 것.
“보호구는 필요 없어요. 여차하면 빠질 테니까.”
너희들이 죽든 말든 자신은 뒤로 물러나겠다는 말.
정말 재수 없는 목소리였지만 이창민 중사가 거절할 상황은 아니었다.
“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그 순간 성현은 느꼈다.
오즈의 시선이 계속해서 자신을 향해 있었다는 것을.
‘뭐지?’
지연우의 옆에 붙어 있어야 할 오즈가 이곳에 온 이유.
오즈의 진짜 임무가 확실해지는 순간이다.
‘……나를 관찰하고 있었어.’
즉, 지연우가 성현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
성현은 턱을 매만지며 정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넌 주변의 사람이 죽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어? 사지가 잘리고 비명을 질러도? 이 아저씨, 이창민 중사라고 했나? 이 사람을 방패로 쓸 수 있어? 이 사람의 시체가 칼에 베이고 창에 찔려도 방패로 사용하며 싸울 수 있어?
정령은 성현이 오즈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정령이 했던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주변에 신경 쓸 사람 없이 일대일로 맞붙는다면 이길 수도 있다는 것.
성현의 시선이 천천히 오즈에게 틀어졌다.
눈이 마주치자 오즈는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든다.
‘전투가 시작되면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몰라.’
생각대로 성현과 오즈가 둘만 남을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오즈에게 인질이 될 사람이 없어지는 순간.
‘죽이면?’
오즈는 지연우의 전력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소문이 있다.
오즈가 사라지면 지연우는 큰 타격을 입을 거다.
‘그 기회를 노리자.’
성현은 그 마음을 숨긴 채 오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합니다.”
* * *
“지휘는 우리가 한다.”
첨병은 성현의 일행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계약자 측에서도 6명이 붙었다.
그렇게 10명이 한 조가 되어 사막을 걷기 시작했다.
“해가 뜨기 전까지 최대한 이동할 테니까 휴식 시간은 생각하지 말도록. 그리고 짐승이 나타나면 군인이 1선, 우리가 2선을 맡는다.”
계약자의 목소리는 권위적이었다.
게다가 대놓고 1선을 지시한다.
고기 방패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거다.
놈들은 군인을 무시하고 있었다.
성현은 슬쩍 놈들을 살폈다.
갑옷에 난 전투의 흔적을 보면 알 수 있다.
놈들은 닳고 닳은 용병이다.
그러니 초소나 지키던 군인은 허접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현은 그들의 그런 말투와 행동을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제 역할만 잘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랫바닥을 걸으며 그들의 이력이나 살펴보기로 했다.
일단 그들의 갑옷에 박힌 문장을 보며 물었다.
“제르날입니까?”
묵묵히 사막을 걷기 시작한 게 벌써 2시간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만 바라보던 게 심심했는지 용병은 곧장 대답해 줬다.
“들어 봤어?”
“그럼요. 사하라사막 토벌 작전에 앞장섰던 부대잖아요?”
제르날은 꽤 알려진 용병단이었다.
짐승 토벌은 물론 국가 간의 전쟁에도 참여하며 전공을 쌓았기에, 놈들이 나타나면 적군이 퇴각을 준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전공만큼 악명도 자자했다.
전쟁이 끝나면 약탈과 방화 그리고 여자를 끌고 가 범죄를 일으켰다.
즉, 싸움‘만’ 잘하는 양아치 집단.
그리고 회귀 전, 성현이 몰살시켰던 집단이기도 하다.
‘왜 몰살시켰더라?’
성현은 잠시 과거를 기억했다.
하지만 죽인 사람이 너무 많다.
이제 왜 죽였는지,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전쟁은 그런 것이었다.
어쨌든, 성현은 계속 놈들을 띄워 주며 전력을 파악했다.
“그런데, 제르날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왜?”
“전역하면 저도 취직을 해야 하잖아요. 용병 쪽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용병?”
“네, 어떻게 들어가는지 좀 알려 주세요. 동원 훈련이 있는 부대는 선배님들이 이것저것 알려 준다는데 저희는 그런 게 없어서 정보가 없어요.”
용병이 성현의 위아래를 살폈다.
제법 몸이 탄탄하다.
그런데 방탄모를 써서 확실하지 않지만 성현의 얼굴에 상처 하나 없어 보였다.
이런 놈의 경우 대부분 존재의 커스터마이징으로 몸을 만든 놈이다.
“존재의 힘을 빌리지 말고 스스로 노력해야 해. 전투는 실전이야. 그리고 우리 같은 경우는 테스트를 통과하기가 어려워. 일단 기초 체력에 집중해.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 턱걸이 20개 이상, 10km 달리기를…….”
용병의 입이 터졌다.
성현은 용병의 표정을 관찰하며 진짜 궁금했던 것을 조심스레 물었다.
“실례되지만 혹시 용병단에서 계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용병단도 길드와 마찬가지로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
다만 길드가 경험과 나이에 대한 존경을 갖추는 것에 비해 용병단은 힘이 곧 인격.
그래서 계급을 알면 앞으로 일어날 전투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계획을 짤 수 있다.
“계급? 새끼야, 제르날에서 계급 받기가 쉬운 줄 알아? 우리는 그냥 평단원이야.”
성현은 고개를 숙이고 인상을 팍 찌푸렸다.
어깨에 힘을 뻣뻣이 주고 있어서 뭐가 있는 줄 알았더니 쭉정이였다.
엿 됐다.
일행은 계속 걸었다.
그런데 붉은 모래가 점차 검은 모래로 바뀌고 있다.
그렇게 불길한 기운이 넘쳐흐를 때 용병 중에서 가장 높은 놈이 손을 들었다.
“스톱.”
일행의 걸음이 멎었고 놈은 개처럼 킁킁거리다가 입을 연다.
“피 냄새가 난다.”
놈의 말에 용병들이 낄낄낄 웃는다.
“걷느라 지루했네. 이제 몸 좀 푸나?”
“군주라고 했지? 그거 목 베면 얼마 받을 수 있을까?”
“군주가 입구에 있겠냐? 성에 처박혀 있겠지.”
“어쨌든, 얼마냐고.”
“100원, 새끼야.”
놈들의 웃음소리는 경박했다.
하지만 성현과 이창민 그리고 박상문은 웃지 않았다.
심지어 오즈마저 진지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분명 뒤에서는 해가 뜨고 있는데 이곳은 점차 어두워진다.
살갗을 찌르는 살기가 느껴질 정도다.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던 오즈가 입을 열었다.
“앞마당에 들어온 것 같은데…….”
이창민 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박상문 하사를 툭 친다.
“연락해.”
박상문 하사가 짊어지고 있던 무전기를 내려 둔 후 안테나를 펼쳤다.
“알파, 알파!”
성현은 주변을 둘러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사실 성현은 검은 모래가 있는 이곳까지 수백 번을 오갔다.
그동안 전투에 사용할 짐승의 사체를 이 주변에 숨겨 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짐승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음침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콩벌레 이후로 성현은 이 땅에서 짐승과 싸운 적이 없었다.
게다가 죽은 자의 군주 나모르의 성까지는 이곳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한다.
즉, 이곳에서 인간의 피 냄새가 날 리 없다.
‘그런데, 피 냄새가 난다고?’
그 이야기는 죽은 자의 군주 나모르가 이곳까지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것.
놈이 극단적으로 예민해졌다는 것.
‘그 이유는 아마도…….’
성현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는 존재의 눈동자가 별처럼 박혀 있다.
놈들은 팝콘을 입에 쑤셔 넣으며 즐거워하고 있을 거다.
-나모르가 뒈지나 인간이 뒈지나 내기 할래?
-나모르 새끼, 인간한테 무시나 당하고. 에휴.
-나모르 공선전 하는데 내 캐릭터 완벽 무장시켰음 ㅋㅋㅋ
-나도.
-난 직접 조종하려고.
-22222
-333333
-나모르 쫄릴 듯 ㅋㅋㅋ
많은 존재들이 이곳에 인간을 보내며 값비싼 아이템으로 무장시켰다.
오직 나모르를 ‘죽이기’ 위해.
심지어 직접 인간을 조종해서 나모르를 죽이고 싶어 하는 존재도 있다.
존재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왔다.
그들에게 이런 이벤트는 일탈에 가까웠기에 인간의 관념으로 이해하면 안 됐다.
동족을 죽이고 동족을 먹는 것.
존재에게는 지루한 삶에 벌어진 유희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행동은 나모르에게 꽤나 큰 스트레스였다.
보란 듯이 인간을 몰살시키고 그를 향해 칼을 겨눈 존재들을 깔보고 싶은 마음.
그 스트레스가 이곳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용병들은 여전히 여유만만이다.
낄낄대며 농담을 지껄이고 있다.
“나모르가 여자였으면 좋겠네.”
“왜?”
“나도 이제 장가가야지.”
이창민 중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적이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조금 신중했으면 합니다.”
소리에 예민한 짐승도 있다.
만약 놈들이 움직이면 소수의 인원으로 감당하기 힘들 거다.
하지만 용병이 비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중사 아저씨, 짐승 몇 마리나 잡아 봤어? 내가 지금껏 죽인 짐승이…….”
그때였다.
-크르르르.
세상에 어둠이 깔리며 폭력적인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가슴이 울릴 정도로 쿵쿵대는 소리.
분명 끝없는 사막인데 죽음의 사신이 다가와 속삭이는 것 같다.
“넌 오늘 죽어.”라고…….
용병들의 얼굴도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