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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건드리면 벌어지는 일-117화 (117/252)

117화

그리고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촉수.

그것이 한 용병의 몸을 휘감았다.

“어?”

용병이 내뱉은 마지막 말이다.

그 말을 끝으로 비명을 지르며 촉수에 잡혀 어둠 속으로 끌려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용병들이 당황했다.

“뭐야!”

동시에 어둠 속에서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까드득거리며 들려왔다.

“으아아악! 사, 살려! 아아악!”

동료가 죽는 목소리를 들으며 용병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놈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현과 이창민 중사는 당황하지 않았다.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조명탄을 꺼내 쏘았다.

피잉!

솟구친 조명탄이 허공에서 불타올랐다.

어둠이 걷히며 밝아진다.

“저…… 저!”

촉수에 끌려갔던 용병이 보였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우그러져 있는 게 그저 고깃덩이다.

두꺼운 갑옷도 종이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소름 끼치는 모습의 짐승이 드러났다.

어깨높이 20m의 염소.

입에는 살벌한 이빨과 함께 돌기 같은 촉수가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다.

촉수가 지렁이처럼 땅바닥을 철썩이며 걸쭉한 침을 질질 흘린다.

-크르르르.

성현과 이창민 중사가 소총을 꺼내 놈을 겨눴다.

타타타탕!

총구가 불꽃을 뿜으며 탄알을 쏘아 댔다.

인간의 살상 무기는 짐승에게도 통한다.

다만 덩치가 큰 놈일수록 소총에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는다.

이 짐승도 마찬가지.

몸에서 끈적이는 녹색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당당히 서 있다.

염소 특유의 불길한 눈으로 인간을 바라볼 뿐이다.

철컥!

성현의 총이 격발을 멈췄다.

곧 이창민 중사의 사격도 종료됐다.

총소리가 사라지며 세상은 무서울 정도로 적막해졌다.

이어서 용병들이 인상을 구기며 활을 꺼내 짐승을 조준했다.

“비켜! 새끼들아!”

“퇴각하죠.”

성현의 말이었다.

경험 많은 용병이 인상을 콱 찌푸렸다.

“퇴각?”

“네.”

“야, 저 짐승이 총 맞고도 가만히 있는 거 안 보여?”

동료 하나가 죽을 때만 해도 당황했던 용병들이다.

하지만 총을 맞고도 가만히 있는 짐승을 보며 여유를 찾았다.

놈들이 성현을 비웃었다.

“저건 움직일 수 없는 고정된 짐승이야. 아까는 기습을 당했지만 지금은 조명탄으로 시야도 확보된 상태야. 저 촉수만 조심하면 일도 아니야. 그러니까 뒤로 빠져 있어. 그리고 욕심 내지 마. 저놈의 가죽하고 머리에 달린 뿔은 우리 거다!”

“고정된 짐승요?”

“그래!”

분명 땅에 박혀 고정된 짐승이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땅에 박혀 있을 경우.

저 짐승은 네 다리가 있었다.

용병은 욕심에 눈멀어 주변을 보지 못하고 화살을 쏘아 댔다.

성현은 한숨을 내뱉었다.

제르날 용병이라고 해서 조금은 기대했다.

계급이 없다 해도 이름이 알려진 단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놈들은 약하며 경험도 부족하다.

기껏해야 A급 짐승, 그것도 단체 행동으로 사냥하며 어깨에 힘을 줬을 게 분명하다.

‘짐승이 왜 가만히 있었겠어.’

놈은 인간을 붙잡아 두기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된 거다.

놈의 임무는 이곳에서 시간을 버는 것.

성현은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스스스슥-.

암살자처럼 다가오는 음산한 소리가 들렸다.

성현의 예상이 맞은 거다.

그리고 그 숫자는 적어도 10마리가 넘는다.

“지금은 퇴각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성현은 다시 말했다.

하지만 놈들은 성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미친 새끼.”

“겁은 많아 가지고!”

성현이 슬쩍 이창민 중사를 향했다.

“우리라도 빠집니까?”

이창민 중사도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상문아, 무전기 접고…….”

그때였다.

한 용병의 손에 검은 마력이 일렁거렸다.

몸을 숨긴 짐승과 싸울 때 마력은 신호탄과 같다.

마력을 사용하는 즉시 암살자처럼 숨어 있던 놈들이 튀어나올 거다.

성현이 다급히 외쳤다.

“그만!”

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성현의 말을 듣지 않았고.

콰아아앙!

짐승을 향해 권능을 사용했다.

“제대로 맞았어!”

“좋아!”

“어? 저거 뭐야?”

그제야 이들도 봤다.

모래가 들썩이며 숨어 있던 짐승이 튀어나왔다.

-카아아아악!

앞에 선 짐승과 똑같은 염소 형태의 짐승.

그 숫자가 스물, 어깨높이만 20m가 넘는 거대한 놈들이 사방을 포위했다.

“젠장!”

놈들의 촉수가 사방으로 뿌려지기 시작했다.

콱! 콱! 콱!

용병은 땅을 구르며 촉수를 피했고 촉수에 닿은 모래 바닥이 움푹움푹 팼다.

이를 갈던 한 용병이 도끼를 꺼내며 외쳤다.

“죽여! 촉수만 피하면 별것도 없는 놈들이야!”

이제라도 퇴각해야 했지만 용병은 자신이 본 것만 믿었다.

짐승이 가진 카드가 촉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다.

“촉수를 잘…….”

콰직!

짐승의 발이 용병을 밟아 버렸고 용병은 파리처럼 죽었다.

“아…….”

이제야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조명탄의 불꽃이 사그라지며 의지했던 시야도 어두워졌다.

“꿀꺽.”

용병은 마른침을 삼켰다.

벌써 2명이 죽었고 이제야 깨달았다.

“도, 도망쳐!”

애초에 이들의 목표는 적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첨병.

굳이 싸울 필요는 없었다.

용병들은 도끼와 칼을 휘두르며 퇴로를 찾으려 했다.

“이쪽! 이쪽으로 와!”

“조명탄 없어?”

“촉수 조심하고!”

“활! 빠지면서 활을 쏴!”

첫 짐승이 나타나고 단 5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이곳은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성현은 냉정했다.

짐승의 촉수를 피하며 차가운 눈빛으로 오즈를 바라봤다.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은 알았을 테고.’

거대한 짐승이 사방을 포위했다.

도망칠 방법은 없고 살아남으려면 싸워야 한다.

‘가면을 벗고 싸워라.’

성현은 오즈가 움직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성현이 알고 있는 것은 회귀 전 오즈의 능력이지 지금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의 오즈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싶었다.

그럼, 지연우의 능력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즈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팝콘이 있었으면 하는 표정으로 용병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있다.

그리고 애초에 이곳으로 오기 전 오즈는 이렇게 말했다.

“보호구는 필요 없어요. 여차하면 빠질 테니까.”

오즈는 이 전투에서 누가 죽든 말든 상관없었다.

오즈의 임무는 성현을 지켜보는 것이니까.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오즈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럼 직접 싸워야 한다.

품에 손을 넣어 볼펜 크기로 작아진 창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다시 전투 상황을 눈에 담았다.

‘한 놈은 죽일 수 있을 것 같고.’

짐승 1마리는 충분히 잡을 수 있다.

문제는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 때다.

‘놈들은 20마리. 입에 달린 촉수가 100여 개.’

그러니까 2천여 개의 촉수를 피하며 싸워야 한다.

‘쉽지는 않겠어.’

오즈가 지켜보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성현은 지르힐의 권능과 마법사의 권능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할 수 있다.

지금은 지르힐의 권능만 사용하며 오즈가 ‘아, 저런 방식으로 싸우는구나.’라고 믿게 하면 된다.

그럼 마법사의 권능으로 뒤통수를 칠 수 있다.

성현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이창민 중사가 알아챘다.

그가 눈빛을 보낸다.

‘지원해 줄까?’

이창민 중사가 총을 쏘는 시늉을 보였다.

이창민 중사의 권능은 소환.

그는 기관총을 꺼내 갈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 오즈의 시선이 성현에게 틀어졌다.

성현과 눈이 마주치자 오즈가 생긋 웃으며 뒷짐을 지고 자박, 자박 다가왔다.

성현의 코앞에 선 오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쪽은 안 싸울 거예요?”

오즈도 기다리고 있던 거다.

성현이 움직이기를.

오즈 역시 성현이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예전에 봤을 때 보다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성현은 오즈가 바라는 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오즈가 움직일 게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현은 생각을 바꾸고 한발 물러섰다.

“지금은 퇴각을 고민해야죠.”

물끄러미 성현을 보던 오즈가 물었다.

“안 싸우고?”

“우리 임무는 첨병입니다. 싸워서 이겼다고 인정해 줄 사람은 없어요.”

오즈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군인이란 그 임무만 잘 수행해도 칭찬받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퇴각……. 뭐, 그것도 재밌겠네. 내가 길을 열어 줄까요?”

“네?”

“기다려 봐요.”

오즈는 방긋 웃더니 몸을 틀어 용병들을 향해 걸었다.

용병의 팔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튀는 폭력적인 상황이었지만 오즈는 산책을 나온 것처럼 여유로웠다.

성현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어떤 식으로 퇴로를 열 생각이지?’

아무리 오즈라 해도 지금 나타난 짐승은 만만치 않다.

놈들을 상대하려면 그 실력을 내보여야 한다.

그럼, 오즈의 전투 능력을 가늠할 수 있다.

원하던 상황이다.

‘해 봐.’

성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오즈의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오즈는 칼을 휘두르며 촉수와 싸우는 용병의 뒤에 섰다.

오즈가 용병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저기?”

뜬금없는 상황에 용병이 고개를 틀어 오즈를 바라봤다.

“뭐야?”

용병의 얼굴은 사나웠다.

가뜩이나 다급한 상황에 군바리, 그것도 미군이 쓸데없이 다가와 몸을 터치했으니 짜증이 솟을 수밖에 없었다.

“뭐냐고!”

“미안.”

“뭐?”

오즈는 용병의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용병이 ‘어?’ 하는 순간 짐승을 향해 던졌다.

짐승이 하늘로 던져진 용병을 기다린다.

천천히 입을 벌리더니 콱, 씹었다.

까득!

두꺼운 갑옷은 짐승의 이빨을 견뎌 내지 못했다.

두부처럼 바스러지며 피가 튀고 몸이 잘렸다.

용병이 발악하며 바동거렸지만 그게 끝이었다.

용병을 씹는 짐승의 소리가 아득아득 잔인하게 들릴 뿐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오즈는 다시 산책하듯이 움직였다.

그사이 짐승이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다.

오즈를 향해 촉수를 내뱉었다.

하지만 촉수는 오즈의 몸에 닿지 않고 허공을 스칠 뿐이다.

그렇게 오즈는 또 1명의 용병 앞에 다가섰고 이번에도 용병의 머리를 잡았다.

용병은 방금 오즈가 사람을 집어 던지는 것을 봤다.

무서웠고, 두려운 눈빛으로 오즈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 살려 줘. 제발.”

용병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하지만.

“미안.”

오즈는 활짝 웃으며 용병을 집어 던졌다.

짐승은 2명의 인간을 씹기 시작했다.

그 피가 오즈의 머리에 뚝뚝 떨어졌고 피 묻은 오즈의 모습은 정말 기괴하게 보였다.

하지만 오즈는 상관 않는다.

다시 성현을 향해 시선을 틀며 인간을 씹어 먹는 짐승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쪽으로 뛰어가면 될 것 같은데요. 이놈도 짐승이라고 식사 시간에는 얌전하네요.”

그 말이 사실이었다.

짐승은 먹는 데 열중하고 있다.

다른 짐승이 곧 이곳으로 올 테지만 그 전에 뛰어 도망치면 생존할 수 있다.

그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살아남은 2명의 용병이었다.

“아아아악!”

그들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렸다.

동료가 죽었지만 지금 그 영혼을 애도할 시간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살고 싶었다.

이어서 이창민 중사와 박상문 하사도 퇴로를 향해 달렸다.

짐승은 도망치는 그들을 슬쩍 보는 게 전부였다.

놈은 여전히 먹는 것에 열중한다.

마지막으로 성현이 오즈의 옆을 스쳤다.

문지기처럼 짐승의 앞에 서 있던 오즈가 손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저도 금방 따라갈게요.”

성현은 오즈의 힘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즈는 싸우지 않았다.

망설이지 않고 인간을 미끼로 삼았다.

성현은 놈의 잔혹함이 언제든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길게 살려 두면 안 되겠어.’

그리고 모두가 도망치고 오즈와 둘만 남은 지금.

‘기회네.’

성현이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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